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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받는 것과 누리는 것 (딤전 6: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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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정호 목사

사람들 가운데 배운 것에 비해 유식한 사람, 아는 것에 비해 많은 것을 다양하게 표현을 잘 하는 사람, 책을 읽거나 영화를 감상한 다음 멋지고 즐겁게 재미있고 실감나게 표현을 잘 하는 사람, 처한 환경이나 여건에 비해 너무나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 평범한 배우자를 통해서도 너무나 행복해하는 사람, 아름다운 자연을 접할 대 풍성한 감정을 감동하면서 표현하는 사람, 대수롭지 않은 밥상을 대할 때 푸짐하게 먹는 사람, 가진 것에 비해 풍요롭게 나누며 베풀며 즐기는 사람, 말씀을 듣고 받은 은혜를 풍성하게 받았음을 감사하면서 감동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받는 것보다 누리는 은혜를 가지고 삶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더욱더 나누고 베푸는 마음이 커지는 반면에 많은 것을 소유하면 소유할수록 움켜쥐고 확장하려는 마음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은 옛날보다도 경제적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풍요로워졌지만 점점 더 나누고 베푸는 마음은 줄어들고 모두가 소유의 노예로 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 이렇게 경쟁을 하듯이 더 많은 것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는 이웃과 담을 쌓고 지냅니다. 더군다나 이웃을 같이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일원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모두가 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남을 밟고 올라서지 않으면 남이 나를 밟고 일어선다고 하는 일종의 피해망상적인 생각이 이웃과의 간격을 더욱 깊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학교의 뒷면 게시판에는 "네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 네 친구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라고 게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경쟁은 친구와 친구사이의 우정의 벽도 허용하지 않으며 친구도 이웃이 아니라 오직 경쟁상대가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받는 은혜가 있고 두 번째는 누리는 은혜가 있습니다. 받는 은혜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천국백성이 되는 것 그리고 성령으로 성화되는 것은 받는 것입니다. 또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하는 말씀처럼 구할 때 받는 것입니다. 병 고침을 받았다거나, 사업에 실패했다가 회복하여 성공했다는 것은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 받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과는 달리 또 다른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누리는 은혜입니다. 받은 은혜를 가지고 잘 사용하여 즐기는 은혜입니다.

요6장에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한 소년이 바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오천 명이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 배고픈 오천 명이 먹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 오천 명 가운데 가장 기쁜 사람은 누구였겠습니까? 그 사람은 바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바친 소년이었습니다. 그 작은 것, 한 사람의 식사 밖에 안 되는 것을 가지고 오천 명이 먹었으니 이 소년이야 말로 그 오천 명 가운데 가장 기쁘고, 감사하고, 즐거운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작은 것 가지고 기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누리는 은혜입니다.

결국 일은 주님께서 하셨지만 바치는 사람이 있었기에, 그 사람이 바로 누리는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부장의 하인이 병이 들어 백부장은 안타까워하며 그 이웃에 사는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께 좇아왔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이 예수님께 하인의 병을 고쳐주기를 구하니 이웃사람들도 덩달아 백부장의 청을 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백부장은 그 동네에 회당을 지어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이웃사람들이 예수님께 간곡히 부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권력을 가지면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이 사람은 그 권력을 가지고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러니 칭찬받고, 인정받고, 높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백부장이 모두 다 높임을 받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만 특별히 주님의 칭찬과 사랑과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누리는 은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 가지 은혜, 받는 은혜와 누리는 은혜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귀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누리는 은혜에 대해서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주신 다음에는 누리게 하시는 은혜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신 6:24“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

막 4장에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시는데 풍랑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풍랑이 센지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그런데 더 화가 난 것은 예수님이 주무시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은 일어나신 후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바람아, 파도야 잔잔하라”고 말씀하시니 다 잔잔해 졌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있는 것은 받은 은혜입니다.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문제의 해결자이시며 인도자이십니다. 그분과 함께 있다는 것은 받은 은혜가 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이 함께 계심에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받는 은혜는 있었지만 누리는 은혜는 없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 일 없을 거야’ 주님이 함께 계시면 걱정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 주님께 의지하기만 하면, 맡기기만 하면, 내 힘과 노력을 의지하지 않아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기만 하면, 두려워 할 필요도 속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들으시자마자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누리는 은혜가 없으니, 못 받았으니 두려워하고,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아낀다고 아무 것도 쓰지 않으면 결국 모두 다 죽을 수 있습니다. 없다고 하여 아무 것도 안하고 살면 결국은 죽게 되는 것이기에 있는 것을 가지고 서로 활용하여 돕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받는 은혜는 적지만 있는 것을 가지고 누리면서 잘 살아야 합니다. 받는 은혜는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리는 은혜는 더 귀하고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받는 은혜는 있지만 누리는 은혜를 받지 못하면 이것은 엄청난 불행입니다.

전 6:2“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많이 벌었는데 누리는 은혜는 받지 못하여 그만 죽으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가끔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는 얘기를 합니다. 좋은 말입니까? 억울하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누려보지 못하면 이것처럼 더 억울한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누리는 은혜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는 은혜도 중요하지만 누리는 은혜도 받아야 합니다.

인류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의 그 많은 것들을 모두 자신의 것을 삼을 수 있었지만 그러나 받는 은혜는 있었지만 누리는 은혜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죄 때문이었습니다.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땀을 흘리고 고생하고 죽음을 바라보고 사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리는 은혜를 받지 못하니 있는 것 다 빼앗기고 뿐만 아니라 그 가문이 부끄러운 가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누리는 은혜를 받았는가, 못 받았는가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알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어려움이 닥쳐올 때에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는 성도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누리는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려운 일 당할 때 원망하고, 불평하고 섭섭하여 주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누리는 은혜는 어려운 일 당 할때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고 섭섭해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은 들어 쓰시는 것입니다. 받는 은혜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은혜를 얼마만큼 받았든지 그 은혜를 가지고 누릴 줄 아는 은혜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얘기합니다.

누리는 은혜를 받으려면 누리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참 신앙인은 날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성도이며 누리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는 성도가 참 성도인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합니다. 하나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진 것이나 갖고 싶은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많이 받는 것은 복입니다. 우리의 실생활에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없으면 얼마나 속상하고 힘이 듭니까? 재물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대로 하루하루 살면서 내일 또 주실 것을 기대하며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재물이라고 하는 것은 희소가치가 있어서 내가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은 조금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누가 많이 가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은 조금밖에 가질 수 없기에 빈부가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빈부의 차가 생기면 상대적인 빈곤감에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싸움이 됩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더 많이 못 가지는 것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전쟁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소망을 두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하다 보니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사회는 잘 살수 없습니다.

또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할 것은 재물은 우리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두려운 이유는 미래가 확실치 않아서입니다. 그러나 재물이 많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재물을 많이 쌓아 둔다고 해서 우리의 미래가 잘 될 것이라고 하면 오산입니다.

또 하나의 두려움은 죽음입니다. 돈이 많다고 안 죽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모두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두려움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돈이 많으면 죽음의 위험이 훨씬 더 많습니다. 돈이 두려움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실패의 두려움도 있습니다. 돈이 있다고 실패하지 않습니까? 실패합니다. 돈이 있다고 가정을 살 수 있습니까? 돈이 있어서 침대는 살지는 몰라도 잠을 사지 못합니다. 돈 가지고 해결되는 것은 없습니다. 병은 또 어떻습니까? 돈으로 모든 병이 해결됩니까? 어느 정도는 해결될지는 모르지만 돈으로 해결될 수 없는 병이 더 많습니다. 돈에 소망을 두지 말라는 것은 돈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가장 결정적이고, 위급한 상황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자녀들을 키우면서 느끼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있다고 해서 자녀들이 바르게 되고, 돈이 없어서 잘못되지는 않습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소망을 두어야 할 것은 누리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에게 은혜와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받은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첫째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기쁨인지 모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할 뿐 아니라 너희가 내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이유는 누리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계명대로 사는 모든 이들에게 누리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직분도 받았습니다. 남이 가지지 못한 직분을 받은 것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교회직분은 물론 가정에서의 직분, 자녀를 낳으면 부모의 직분, 결혼을 하면 남편과 아내의 직분이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입니다. 이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헌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엉뚱한 곳에 가서 행복 찾으려 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직분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내 아내, 내 남편, 내 교회, 내 자녀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누리는 은혜를 받으려면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고부간의 갈등 왜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그저 시집안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 아들에게 아내를 주셔서 며느리를 얻게 하시니 감사합니다’‘하나님 제게 또 한 분의 어머니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것이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받는 은혜보다 누리는 은혜가 더 귀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를 받았든지 이것을 가지고 귀하게 사용하고 높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가 참으로 클 줄 믿습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누며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딤전 6:18-19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아브라함은 손님대접하기를 즐겨 하다가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딱 한번 손님을 대접해서 하나님의 천사들을 만난 것이 아니라 손님 대접하기를 즐겨 하다 보니 하나님의 천사를 대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소돔과 고모라 성이 유황불로 멸망당한다는 소식, 자신의 조카 롯과 그의 자녀들에게 좋은 삼촌이 되었습니다. 남을 대접하고 살아가는 것이 손해인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하나님의 복이 예비 되는 것입니다.

기도응답을 받으려면 남을 대접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해도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대접하지 않으니 복을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이 위대한 것은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한 번도 원수 갚을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해하고 손해를 끼칠 때 원수 갚으려고 하면 그것은 자신에게 독입니다.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이 복 주실 줄 믿습니다’ 하는 마음으로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섬기는 자가 되면서 살아갈 때에 그는 누리는 복도 얻게 됩니다.

사랑에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이 나를 사랑하는 것,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도 나누면 커지게 됩니다.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는 삼십대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사십대에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인 쉰셋에 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쿠르트 한 병과 비스킷 두개로만 끼니를 채울 수밖에 없는 중한 병에 걸린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두 가지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돈 버는 일과 주일학교 교사를 충실히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병을 주시다니.. 너무 억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이제부터는 돈 버는 일보다는 돈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날로부터 돈 쓰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지은 교회가 있고, 그가 지은 많은 건물들, 그리고 수많은 자선단체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살게 하셨는지 그는 98세까지 장수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주는 자에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누리는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고 복을 주시고 높이시는 것입니다.

나눔은 우리의 미래를 밝게 만든다 

우리는 보통 나눈다고 할 때 물질을 나누는 차원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눔의 사건은 오히려 물질보다는 더 광범위한 영역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의 생활 중의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우리는 베풀고 나누는 삶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남에게 용기를 주는 말 한마디 속에서 우리는 마음을 나눕니다. 병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기도의 음성 속에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나눕니다. 고통당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발길 속에서 우리는 형제자매에 대한 관심을 나누게 됩니다. 아직 믿지 않는 형제자매를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드린 선교 헌금이 고통 받는 장애인들을 위해서 쓰여 지게 될 때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더욱 커지고 나눔을 통해서 국경을 넘는 사랑에 동참하는 것이며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린 선교헌금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기 위해 교회를 개척하며, 또 소외된 농촌에서 말없이 교인들을 섬겨 가는 교역자들에게 도움을 줄 때 우리의 미래는 좀 더 밝아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제 북녘에 있는 우리의 동포들을 위해서 교회나 나누는 운동에 앞장서게 될 때 이 민족의 미래가 밝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여러분 받는 은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은혜를 받았든지 이것을 잘 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 일수록 없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있는 것 가지고 감사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여기며 누리며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만 없어지면 행복할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지금 너무 힘들어. 그저 다른 사람처럼만 살아도 행복할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더 불행한 환경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 즐겁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실제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국민들은 대부분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빈민국에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 지려면, 정말로 기쁨이 가득한 생활을 하려면 어떤 환경이나 경험 속에서도 기뻐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쁨은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은 항상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누리는 방법을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인생을 즐기려면 자신을 돌아보고 그동안 나에게서 즐거움을 빼앗아간 이기심, 분노, 두려움 세 가지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고 슬프기 때문에 기뻐할 수 없다는 핑계를 '슬픔을 경험하지 않고는 기쁨을 경험할 수 없다'고 하며 고난을 즐기는 법을 가지며 살고 마음 밭을 가꾸고, 자족함을 배우고. 작은 일 가운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인생을 즐기고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없음>을 보충하는 날개와 <있음>을 누리는 날개

사람은 누구나 현재 가진 것이 있고, 또한 갖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에서 현재 자신에게 없는 것을 구비하려는 노력은 매우 소중합니다. 돈, 지식, 지혜, 건강, 의식 수준 등에 있어서, 더 나은 상태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여 자신이 성장해 갑니다. 그런데 이 때 꼭 유념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잘 활용하고 누리는 일입니다. 그럴 때 만족과 감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빠진 채, 없는 것을 채우려는 노력만으로 인생을 살게 되면, 그 인생은 매우 고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족과 감사가 없이, 늘 결핍감으로 허덕이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성장을 위해 부족한 면을 채우려 노력하는가 하면, 한편 현재 있는 것을 잘 활용하고 누리는 것, 이 두 날개를 잘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곧 <없음>을 보충하는 날개와 <있음>을 누리는 날개, 이 두 날개로 인생을 비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없음>을 보충하는 일보다, <있음>을 활용하고 누리는 일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니, 자신에게 현재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 현재 자신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혹은 현재 가진 것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기도의 응답도 좋지만 그 보다도 기도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깨닫고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은 기도를 통해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셔서 누려왔고 앞으로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으로 끝난다면 그것이 영원한 누림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을 누리는 누림의 은혜가 가장 귀합니다. 하늘의 영광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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