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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아는 지식 (호 4: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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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본문의 1절에 끝 부분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6절에는 지식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여기에 나오는 지식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호세아서는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동시에 호세아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강조하고 있는 성경입니다.

호세아서 6장 3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하였고, 6장 8절에는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를 아는 것, 하나님을 아는 것,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같은 뜻입니다.

오늘은 이와 같은 일들을 살피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떤 것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어떻게 하셨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어떻게 되나?’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같이 찾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앙고백적인 지식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아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이 일치해야합니다.
더 잘 믿기 위해서 더 많이 알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신앙적인 행위가 따라야 그 지식이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이 나의 믿음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하나님에 관한 교양적인 지식에서 그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은 조금 밖에 없지만 그것을 튼튼하게 믿고, 그대로 살기 위해 힘쓰는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면서도 그것을 믿지 못하고 따라서 신앙적인 결단이나 행동이 빈약한 사람보다 훨씬 낫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기본적인 것이 하나님은 유일신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일신이라는 것을 아는데 다른 신을 찾는다면, 다른 신에게도 예배를 드리고, 다른 신도 의지하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신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가장 조금만 알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도 예배의 시작 부분에서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사도신경의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께 대한 고백입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으면 또한 알아야합니다.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고 말한 신학자도 있습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고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시면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것저것, 염려하는 분이 있다면 그 분은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을 가진 분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만드셨다는 것을 아십니까?
기독교인으로서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교회에서 아주 많이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창조주 하나님’이니까요.
알면, ‘하나님은 창조주, 나는 그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 이 차이를 알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경배를 드려야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석 달에 한 번씩 첫 주일에 사도신경 대신에 감리회 신앙고백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다음 다음 주일, 10월 첫 주일, 세계성찬주일에 감리회 신앙고백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할 것입니다.
첫 번째 고백이 이렇습니다.

우리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거룩하시고 자비하시며 오직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여기에 섭리라는 말이 있고 주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시고, 우리 가정을 주관하시고,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알면서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은 이 말을 바르게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섭리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지 않고, 그 섭리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 수능고사가 두 달 안쪽으로 들어왔습니다.
오늘 2부 예배가 끝난 다음에 수험생을 위한 안수 기도회가 있습니다.
수험생들, 또 뒷바라지하는 부모님들 고생스럽습니다.
요즘은 입시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어서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수험생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데 정확하게, 구체적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신문에서 대학입시에 대한 기사들을 스크랩해 두고 보았는데 요즘은 너무 자주 바뀌어서 그렇게 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수험생들, ‘왜 한국에 태어나서 이런 고생과 혼란을 겪어야 하나?’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지 마세요.
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기간을 가지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목표를 정하고 전념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합니다. 
‘누구 약 올리나?’ 하지 말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 힘쓰기 바랍니다.
목표를 정하고 달려갈 때가 목표를 이룬 때보다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뜨뜻미지근하게 살지 말고 뜨겁게,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데 수험생 생활, 얼마나 치열합니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수험생이 된 것을 감사하면서 준비하세요. 훨씬 잘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는 고통을 이기게 하는 에너지가 됩니다.

그런데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일생에서 수험생 때 지식을 제일 많이 소유한다고 합니다.
수능고사를 치고 나면 그 순간에 그 지식들이 다 하늘로 날아가 버렸는지, 땅으로 들어가 버렸는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 생활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 나라 교육의 맹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밥이 우리 몸에 들어가면 에너지로 변화되어 우리 몸을 움직이듯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신앙을 위한 에너지가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천국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식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고, 확실해지고 튼튼해진 믿음을 가지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믿음을 자라게 하고, 확실하게 하고, 튼튼하게 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활용되어야 하는 지식입니다.
어느 장교가 사관학교에서는 1등으로 졸업했는데 그 지식을 잘 활용하지 못하면 실제 부하들을 지휘하는 일에는 무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세상의 지식은 종이로 된 노트에 적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종이로 된 노트에 적으면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전에는 설교를 필기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전에 제가 서울 마포에 있는 교회의 소속 목사로 있으면서 주일 오후 두 시 예배의 설교를 맡았는데 주일 낮예배가 아니니까 좀 자유롭게 문답식으로 했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 제목도 묻고, 본문도 묻고, 설교내용도 물었습니다. 권사님 한 분이 척척 대답을 잘 합니다. 알고 보니까 열심히 필기했다가 그것을 보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필기하는 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것이 참 유익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중국에서는 성도들은 늘어나는데 설교할 분들이 매우 부족합니다.
교회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예배 모임을 처소라고 하는데 처소의 집사님들이 한국의 선교방송에서 나오는 설교를 받아써서 그것을 읽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합니다.
한 사람이 받아쓰면 아무리 애를 써도 빠지는 것들이 많으니까 받아쓰기 조가 있어서 각자 집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설교를 받아 써 가지고 모여서 서로 대조하면서 보충을 합니다.
그래서 비교적 온전한 ‘받아쓴 설교문’을 만들어서 예배드릴 때 그것을 읽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종이로 된 노트에 필기하면 기억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꼭 그렇게 안 해도 됩니다.
지금은 설교 원고들이 인터넷에 올라가니까 그렇게 할 필요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경건의 노트에 적어야 합니다.
경건의 노트에 적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잠언서 3장 1절에서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경건의 노트에 적어야 한다’는 것은 여기의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네 마음판에 새기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라’ 외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경건의 노트에 적어야한다는 것은 경건한 마음으로 배워야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경건이라는 말에는 훈련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 따라 붙습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하였습니다.(딤후 4: 7)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저절로 갖는 것 아닙니다.
경건과 같이 연습, 훈련, 연단에 힘쓰는 가운데 하나님을 아는 생동하는 지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앙고백적인 지식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튼튼하게 하는 지식입니다.
경건의 노트에 적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이와 같은 지식을 풍성하게 갖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대해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치기에 힘쓰셨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은 예수님의 3년 공생애를 요약한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니

가르치신 것, 전도, 병 고쳐주신 것, 이것을 예수님의 3대 사역이라고 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세요.
예수님이 가르치셨다는 기록이 많이 나오는 것에 놀라고, 그 모습이 다양한 것에 놀라게 됩니다.
예수님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셨고,(마 4: 23)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셨고,(마 11: 1)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셨고,(마21: 23) 바닷가에서 가르치셨고,(막 4: 1) 촌에 두루 다니며 가르치셨고,(막 6 :6) 배에서 가르치셨고,(눅 5: 3) 온 유대에서 가르치셨습니다.(눅 23: 5)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가르치셨고,(요4장) 십자가에 달리셔서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치는 일에 힘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은  28장 18절에서 20절까지인데 잘 아시는 대로 ‘지상명령’ 또는 ‘대 명령’이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 18~20)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전도하는 분들이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교사들도 중요하게 여겨야합니다.

초대교회는 가르침을 잘 받는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적은 사도행전 2장 42절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초대교회는 가르침을 잘 받았습니다.
그 가르침이 그대로 그들의 삶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 말씀을 잘 살피면 초대교회가 모범적인 교회가 된 것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잘 받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잘 가르치는 교회, 가르침을 잘 받는 교회가 부흥합니다.

본문 가운데 6절 이하는 제사장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6절 앞부분,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제사장들아, 너희는 내 백성이 나를 아는 지식을 갖도록 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꾸짖는 것입니다.

그 다음,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하셨습니다.
이것은 지식이 없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식대로 경건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지식은 형식적인 지식이 되었고 따라서, 그들이 드리는 제사는 형식적인 제사가 되었습니다.

지식을 버렸다는 것은 또 그 지식을 가르치는 사명을 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내 백성이 나를 아는 지식을 갖도록 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명을 버렸다.’
이 꾸지람은 일차적으로 오늘날의 제사장들이라고 할 수 있는 교역자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가정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 경우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나가서는 교회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교회가 교육적 사명을 소홀히 한다면 하나님은 이와 같이 무섭게 꾸짖을 것입니다.

교회학교의 학생들에게 교사는 제사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이런 것이라고 모범을 보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힘써 가르치기 바랍니다.
그와 같이 하면 하나님은 오늘의 꾸지람 대신에 칭찬하실 것입니다.

가르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힘쓴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르치는데 힘써서 꾸지람 대신에 칭찬을 받는 여러분과 저, 이 교회가 되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어떻게 됩니까?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 가운데 ‘있을 것은 있구요, 없을 것은 없답니다’ 하는 것이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보면 좋은 것들은 별로 없고 나쁜 것들은 많습니다.
있어야 할 것들은 없고 없어야할 것들은 많습니다. 

없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진실, 인애,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있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저주, 속임, 살인, 도둑질, 간음,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잇는 일입니다.
피가 피를 뒤잇는 일은 살육과 학살을 말하는데 요즘 여기에서 점점 더 큰 규모로 일어나고 있는 테러들을 보면 이 말이 실감 있게 느껴집니다. 

왜 있어야할  것들은 없고, 없어야 할 것들은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3절은 환경문제에 시달리는 이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호세아는 기원전 8세기의 예언자인데 어떻게 21세기 지구의 모습을 이와 같이 정확하게 예언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라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아름답게, 보시기에 선하게 지으셨습니다.
세상을 잘 관리해서 그런 모습으로 유지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사람들이 제사장과 다투게 됩니다.
4절 뒷부분,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는 말씀은 백성들이 제사장에 대해서 불만을 갖는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들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평신도와 교역자 간의 갈등입니다.
그 원인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거나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홀히 하면 제사장이 더 이상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나님은 6절 중반에서 말씀하십니다.
이 말을 교역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보지 마세요.
이 말은 나가서 교회가 교회 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7절을 보세요.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번성할수록 하나님께 범죄하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세상의 모습인 것을 우리가 겪고 있습니다.

프로 야구팀 기아의 김성한 전 감독이 모교인 군산상고 감독으로 취임하기로 결정했다고 지난 주간에 발표되었습니다.
김성한 선수는 돈 때문이 아니라 사명감 때문에 이와 같이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한참 자라는 학생들에게 올바른 학생야구를 가르치겠습니다. 학생 야구의 덕목인  기본기부터 가르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구는 한 베이스, 한 베이스 착실하게 전진해서 홈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생과 비슷하지요.
투수가 공을 던질 때 공 하나 하나에 최선을 다 한다는 점도 그렇고 기회가 생기면 놓치지  말고 스틸을 시도해야 한다는 점도 사는데 교훈을 줍니다.

야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고, 그저 인기와 돈 버는 수단으로 여기면 요즘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병역비리 문제 같은 것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우리의 삶이 그와 같이 망가집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지식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기본적인 지식입니다.
또 고귀한 지식입니다.

미국은 처음에는 중고등학교에서 성경을 의무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자율화하였습니다.
그 다음부터 범죄가 증가하였다고 합니다.
한 교육전문가는 이 사실을 연구해서 통계를 들어 말하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백성은 궁극적으로, 어떤 방법으로든지 망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호세아는 오늘 본문에서 이와 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힘써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오늘 본문과 대조되는 말씀이 한 군데 있습니다.
이사야서 11장 9절의 말씀입니다.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우리 교회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들이 몇 있는데 이 말씀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저희 교회가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문화를 널리 보급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줄여서 ‘기독교문화화에 힘쓰는 교회’라고 다소 어색한 표현을 했는데 기독교문화화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지도록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해질 때 오늘 본문의 반대가 될 것입니다.
이 땅에는 진실과 인애가 넘칠 것입니다.
저주, 속임, 살인, 도둑질, 간음,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잇는 일이 적어지고 사라질 것입니다.
환경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교회는 힘을 얻게 됩니다.
번성할수록 더 복을 받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신앙고백적인 지식, 믿음과 일치하는 지식, 경건의 노트에 적는 지식, 예수님이 가르치시기에 그렇게 힘쓴 지식, 이것을 가르치라고 그렇게 간곡하게 당부하신 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먼저 나에게 풍성하게 있게 하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이것을 가르치는 일에 힘쓰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지식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이 세상에 넘쳐서 이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도록 하는 일에 힘쓰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고, 합하여 이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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