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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통합적 사고의 필요 (엡 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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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김상복목사 

[ 통합적 사고의 필요 ]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에베소서 4:1-12.

옛날 예수님 시대에는 사람들이 산산조각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정복자 로마인과 피정복자 유대인, 그리고 전 세계가 있었습니다. 통치하는 로마인들은 좋았으나 억압당하는 민족들의 내면에는 분노가 들끓었습니다. 또 유대인들이 있는가 하면 이방인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인 선민이라고 자랑하면서 나머지는 다 쓸 데 없는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부자들이 있었고 가난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귀족들이 있었던 반면 많은 사람들이 귀족을 섬기는 종으로 살았습니다. 남자들이 있었고 여자들은 남자를 섬기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한 부류는 좋았고 즐거웠고 편안했으나 다른 부류는 억압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갈라진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안에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따로 없고, 남자와 여자의 구별도 없으며, 귀족과 천민의 차이도 없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통해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시고 품으시고 하늘의 시민으로 삼아주신다”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이 복음이 전해진지 이미 2천년이 지났습니다.

한국에도 지난 몇 십 년 동안 많은 분열이 있었습니다. 군사정부와 민주세력간의 갈등이 있었고, 영남과 호남이 나뉘어 갈등하였으며, 노사간의 갈등, 정당간의 갈등이 있었습니다. 남과 북이 갈라져 서로 갈등한지도 벌써 반세기가 지났습니다. 이 땅에는 갈라짐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기 몇 개월 전에 미국의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인들의 장점과 단점을 조사해서 통계를 낸 적이 있었습니다. 장점을 찾아 강화하고 단점은 약화시키자는 취지였습니다. 각각 20가지의 장단점이 나왔는데, 대표적인 장점 3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간이라도 빼줄 정도로 정이 많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자기 간을 빼주겠다는 표현은 없을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그 정도로 정이 깊은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열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험생들 공부하는 것을 보거나 이민자들의 삶을 보아도 얼마나 열심인지 모릅니다. 기도도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교회에서뿐 아니라 산에 가서 나무뿌리를 붙잡고 기도하다가 뽑아버리는 일도 있다지 않습니까! 한국 교회는 그런 열심을 가지고 그동안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온 것입니다. 미국 이민자들도 처음에는 힘들게 살았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살고 있는 이유가 그동안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부지런하다는 것입니다. 한국말 가운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단어가 “빨리빨리” 입니다. 미국에서는 한달 정도 걸릴 일을 한국에서는 사흘 만에 해치우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장점들 때문에 한국이 오늘날 이만큼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단점을 살펴봅시다.

첫째는, 협동심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나 혼자는 해도 너하고는 못해” 하는 생각입니다. 역사적으로 극심한 사색당파와 분열이 있었고,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남과 북으로 갈라진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둘째는, 상당히 감정적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접촉사고가 나도 나가서 먼저 욕을 퍼붓거나 주먹을 쓰고 봅니다. 그 다음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합니다. 그러니 상처도 많습니다. 해방되던 무렵 제가 평양에서 자랄 때 많이 본 것인데, 시계를 전혀 본 적이 없는 소련군인들이 한국 사람들의 시계를 빼앗더군요. 그러면 평양사람들이 가만 두지 않아요. 먼저 머리로 탁 받아 때려눕혀놓고 그 다음에 “너 뭐하는 거냐?” 하며 따지는 겁니다.

셋째는, 다른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하면 뭐든 좋지 않게 봅니다. 그래서 남을 심하게 비판하는데 어떤 때는 아주 힘이 들 정도입니다. 신문, 잡지, TV 등 어디서나 비난하는 말이 쏟아지고, 서로 관계가 나빠집니다. 한 번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감정이 악화되고 서로의 관계가 산산조각 나며 마음에 상처들이 생깁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이고 온건한 논리적 판단보다 감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남의 생각을 부정적으로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편은 무엇을 해도 괜찮지만 반대편은 무엇을 해도 나쁘고 싫어하는 경향성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지나친 열심 때문에 많은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빨리빨리 하다보니 졸속도 많아서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 사고가 일어납니다.

최근에는 우리 사회가 너무 갈라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전에는 군사정부 대 민주세력, 영남 대 호남, 노사, 정당 정도였는데 이제는 사사건건 갈라집니다. 지난 선거를 통해 젊은 인터넷세대와 어른세대가 확연히 갈라졌습니다. 그것이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쳐 부모와 자식간에 갈라졌습니다.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갈라지고, 친북파와 친미파가 갈라지고, 보안법폐지와 개혁 간에 갈라지고, 이라크 파병이 찬성과 반대로 갈라지고, 친일파 규명 우선파와 경제 활성화 우선파가 또 갈라집니다. 보수적인 1,500명의 원로와 진보적인 70명의 원로가 또 갈라집니다. 서울대 폐교파와 개혁파가 갈라집니다. 독일에서 온 송두율 교수의 반대파와 지지파가 갈라집니다.

친중파와 친미파가 갈라지고, 최근에는 수도이전문제를 놓고 서울사람과 충청도사람이 갈라졌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이슈들마다 계속 갈라지니 걱정이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 일본은 군사대국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자위대 정도가 아니라 세계에 군대를 보내겠다고 합니다. 한편 중국은 군사대국, 경제대국이 되면서 우리의 고구려 역사까지 자기네 것이라고 왜곡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변에 위협세력들이 힘을 더해가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내적으로 산산조각 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생각을 부분적으로 하지 말고 전체적으로 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편 가르기를 해서는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예수님 시대도 지금처럼 다 갈라져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셨습니다. 본문 말씀에도 모두가 통합적 삶과 사고를 위하여 생각의 훈련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1절). 부름에 합당하다는 말은 영어로, “worthy of your calling”인데, 현재 우리의 삶이 어떤 경우든 하나님의 부르심에 맞는 높은 수준의 가치 있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치를 추구하는 삶은 가치 있는(worthy) 삶이지만 산산조각 내는 삶은 가치 없는 삶(unworthy)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려면 전체적인 생각을 모을 줄 아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한 몸의 지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됩니다. 우리 모두가 한 덩어리요 한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야 된다는 공동체 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요, 같은 나라요, 같은 형제입니다. 남이 아닙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장은 자금을 투자해서 회사를 일으키고 상품을 잘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편리한 생활을 하게 하는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함께 일할 사람을 고용했고 그 결과 나에게 직장이 생겼습니다. 나는 돈을 벌게 되었고 내 가족을 부양하고 집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직장인들은 직장을 준 고용주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사를 사랑하고 정말 자랑스러운 회사로 만들고 좋은 물건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해서 다른 사람들의 삶을 더 편리하게 만들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사장은 교육받은 직원들이 그 재능을 자기 회사를 위해 쓰며 함께 일해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장이 “당신은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야. 당신 없으면 일 못할 것 같아?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 하거나, 직원이 “당신은 어찌 되든 나에게 월급만 많이 주시오”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여 분열을 조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한 몸의 지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서 우리가 공동체의 지체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얼마 전, 어느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구역은 우리 교회 두 가족이 동네 사람들을 인도하기 시작해서 이제 열 세 가족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 주민들은 자기 아파트를 아주 좋게 생각하고, 더 좋게 만들려고 서로 얼마나 노력하는지, 제가 참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동네 회장, 부회장, 부녀회장이 모두 우리 교인입니다. 이 세 분이 동네를 화목하고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동네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며 지내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것이 통합적 사고를 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지체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절)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깨어진 사람들을 묶어 하나로 만드시고 지체의식으로 서로 협력하여 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게 하십니다. 이 성령님이 여러분과 제 안에 계십니다. 성령님을 모신 여러분이 가정과 이웃과 직장과 사회에서 통합적 사고와 운동을 일으키는데 앞장서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자질들이 계발되어야 합니다.

첫째는,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나 외에도 중요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독선이나 과대망상이 아니며 자기만 의인이라는 것도 아닙니다. 스스로 메시아인 척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이외에도 얼마든지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겸손해야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독불장군입니다.

둘째는, 온유해야 됩니다. 부드러워야 됩니다. 강경하고 결사적인 태도는 상대방을 죽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라의 유익을 위해 데모를 할 기회가 있더라도 ‘결사적’이라는 말은 절대 쓰지 마십시오. 심지어 교회집회에서도 종종 ‘결사’라는 말을 쓰는데, 여러분은 그런 일을 위해 정말 죽으려 하십니까? 결사란 상대방을 죽이거나 내가 죽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합니까? 얼마나 중요하기에 목숨을 걸어놓고 한다는 말입니까? ‘반대한다, 찬성한다’ 정도는 괜찮습니다. 그러나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결사적으로 찬성하면 누구 하나는 죽자는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상대방이 ‘날 죽이라’고 가만히 있겠습니까? 죽어서도 한이 맺혀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단어 선정을 잘 해야 됩니다. 이런 극단적이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표현을 쓰면 마음이 상하고 속이 끓고 한이 맺힙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나라가 잘 되려면 극단적인 것은 안 됩니다. 성경말씀에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좌우를 함께 통합해 나가라는 하나님의 방법, 성경적 방법, 믿는 사람들의 방법, 가치 있는 삶의 방법입니다.

셋째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참아야 합니다. 조급하지 않아야 됩니다.

넷째는, 증오 대신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배척하고 거부하거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만 절대시하는 과대망상에 걸린 모습으로는 나라와 사회와 교회와 가정을 통합할 수 없습니다.

여섯째는, 다양한 은사를 인정해야 됩니다. 우리는 다 한 몸인데, 각 지체마다 자기의 역할이 있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역할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은사가 있고 능력이 있고 가치가 있으므로 그분들의 의견도 들어볼만 하다는 통합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서로 공통점을 찾아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공통점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보편성입니다. 가장 보편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이 땅에 있는 우리는 보편성을 찾기 힘듭니다. 하나님이라야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이라야 영원을 포용합니다. 모든 문화와 언어와 빈부귀천과 교육의 높고 낮음과 모든 사람을 다 품을 수 있는 것은 영원한 통합적 진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만 통합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이요 소망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6절). 하나님은 하나 됨을 원하십니다. 서로 갈라져서 미워하고 갈등하고 싸우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통합적 사고를 통해 통일을 이루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려면 통합적 사고의 습관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남의 의견을 잘 들어야 됩니다. 자기 의견만 주장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자기 말에 복종시키려 하는 것은 독재자의 방법입니다. 다 듣고 이해하기 전에는, 질문은 하더라도, 내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는 식의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는 흑백논리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흑백논리는 적을 만들 뿐입니다. 흑과 백의 사이에는 노랑 빨강 회색 등 여러 색깔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옳고 저것은 좀 부족하다’는 식의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태도가 필요합니다. 자기 생각만 하는 사람이 어떻게 통합적 사고를 할 수 있겠습니까? 양쪽을 다 듣고 장단점을 분석한 다음에 평가를 해야 됩니다. 주관적인 생각을 말할 때는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또는 “우리는 이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여 주관적 견해임을 밝혀야 됩니다. 자기주장을 절대시해서는 통합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원리와 일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객관적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듣고 통합적으로 생각하고 통합적 결론을 내려서 서로를 통합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어느 쪽을 좋아한다고 무조건 찬성하는 것은 통합적 사고가 아닙니다. 당파를 만들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사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가치 있는 삶은 통합적 사고와 통합적 노력을 기울이는 삶입니다. 서로 끌어안고, “같이 가자. 가장 보편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자”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와 직장과 사회와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유를 하나로 만드시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유대인 헬라인이 따로 없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남자와 여자가 따로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사이에 막힌 모든 담을 완전히 무너뜨려서 전 인류를 하나로 만드시길 원하십니다. 통합적 사고를 통해서 내 가정과 교회와 주변을 유익하게 만들고 모두를 살리려는 노력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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