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의 요구 (롬 1:16-17)

  • 잡초 잡초
  • 181
  • 0

첨부 1


- 설교 :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지난주에 이어서 16,17절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 복음을 최고의 자랑으로 최고의 가치로 믿고 선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시84: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의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하며 시편기자는 노래합니다. 하나님 없이 천 날을 사는 것보다 주님 안에서 하루가 가치가 있다는 것이요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나음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의 핵심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은 진리를 확신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이 있었던 것은 그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죄와 사망 그리고 사단과 율법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야 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복음에 대해서 오늘 17절은 이렇게 소개합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 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첫째: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복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복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보일 것입니다. 이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는 세상과 사단에 속했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인간의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를 절대 ‘의’라 합니다. 죄와 욕심이 전혀 없는 의입니다. 인간의 ‘의’, 사람의 ‘의’는 노력하면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롬3:16절에 의인은 없나나 하나도 없다 했습니다. 이는 인간이 노력을 해서나 하나님 앞에 탁월한 공로를 세워서 의인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연탄을 물로 깨끗이 씻는다 해서 맑아지는 것이 아니듯 인간은 착하게 살려하면 사는 만큼 도를 닦으면 닦을수록 인간 바닥에 쌓여 있는 죄성으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고백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몇 해 전 죽은 불교계의 최고의 스님이라는 성철스님의 경우를 보더라도 옷 한 벌로 몇 십 년을 입으며 앉아서 몇 년을 자고 이쑤시개 하나로 몇 년을 쓰며 노력해 보았지만 그는 결국 “내가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수미산(불교도들이 오르고자 하는 최고의 경지)보다 높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에 갈기갈기 찢겨 사망을 맞을 것이라”며 자신의 영혼의 결국을 고백했다 합니다. 결국 인간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다는 것과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의 죄의 문제로 곤고해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스스로가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위해 죄 없으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야 했으며 하나님 자신의 완전무결한 의로 인간의 모든 죄를 덮으셨고 대속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복음 안에는 바로 하나님의 의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복음 안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의를 믿는 것입니다.

둘째: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17절에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 나옵니다.
믿음이라는 단어는 같지만 흐름상 의미는 다릅니다. 처음에 나오는 [믿음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믿는 믿음입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용서함을 받은 자임을 믿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 표현했는데 이는 구원 얻는 믿음을 나타냅니다. 내가 의인되었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믿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입니다. 그의 의에 의해서 나를 보고 그의 의에 의해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의 시작은 내가 죄임이라고 느낄 때입니다.

나의 죄 때문에 한번 실컷 울어본 사람은 죄에 대해 아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만져 주심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를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롬5:20절에 보면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이 말은 죄인임을 인정함에 비례해서 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평생을 복음을 위해 살았던 원인이 바로 죄인 중에 괴수임을 깊이 자각했음(딤전1:15)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내가 [믿음으로] 내가 이렇게 죄인이었는데 의인 된 것입니다. 의인으로 인정 된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이신득의] [이신칭의] 라 합니다. ‘이신칭의’ 란 말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인간의 본질이나 품성자체가 의롭게 변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음은 그 복음 안에서 죄인임을 고백하고 용서를 믿는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법적으로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며’ 이는 구원의 믿음, 구원받은 믿음, 천국 가는 믿음을 의미입니다.

사도바울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의와 구원을 하나로 봅니다, 하나님의 의는 구원의 조건이 되고 구원은 의롭게 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오직 믿음이어야 합니다.

셋째: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이 복음의 요구입니다.
의롭다함을 얻었으며 의인되었으니 구원받았으나 천국 백성 되었으니 사는 것이 달라야 한다는 것으로 복음은 요구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의 옷을 입었으니 믿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식물은 자연의 원리에 의해 살고 동물은 본능의 원리에 의해 살고 사람들은 욕심의 원리에 의해 삽니다. 더 높아지고 더 출세하고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믿음의 원리에 의해 삽니다. 복음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말씀의 원리에 의해 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 자 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부자 일 수 있지만 부자이기에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건강할 수 있지만 건강하기에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출세했지만 출세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 할 때 오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에 대해 우리는 너무 받는 쪽으로 만 길들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의 행위를 통해 축복을 원하고 그런다면 믿음 안에 있어도 갈증만 계속 될 뿐입니다.

믿음은 믿음 자체로 기쁨이 있고 믿음 때문에 행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놀라운 믿음의 은혜를 망각하고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축복만을 바란다면 이는 너무나 어린아이의 신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축복의 원리 이상으로 그리스도의 마음과 모습 그리고 자격으로 사는 것이어야 합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서로 섬기며 사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신앙을 우리는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리스도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하박국 2:4절을 인용한 것이니 하박국 선지자가 3:17-18절에 고백하였듯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라 합니다.

나의 기쁨은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에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라는 계속된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사슴은 죽음직전에도 사슴의 자태를 잃어버리지 않듯 믿음의 사람은 믿음의 사람답게 살아야 함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자태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 때 하나님은 결국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는 은혜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나중 승리를 보고 오늘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의 자태를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야 함을 복음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 아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