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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살과 피 (요 6:5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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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재명 목사 (안산빛나교회)

오늘은 떡과 잔을 통해 주님의 살과 피를 받는 성찬예배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 날 밤에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나누며 “이것은 내 살이요 내 피라” 하시며 처음 성찬을 행하셨습니다. 처음 성찬을 제장하신 주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이것을 행하여’ 성찬예식에 참예하여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기념하라는 말은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 앞에 사도들을 통해 성찬예식이 계속되어졌고 오늘 우리에게 까지 재현되고 있는 기념예식입니다.

성찬예식을 통해 주님의 살과 피를 받는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요 주님의 명령이요 구원받은 백성이 반드시 참예해야 하는 의무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거룩하신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떡과 잔을 통해 주님의 살과 피를 받으며 주님의 은혜를 간직하려 합니다.

첫째: 영생의 양식인 생명의 떡이신 예수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47-48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했습니다.

요6:51절에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 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 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신 영생의 양식인 생명의 떡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우리식을 말하면 주님은 우리의 양식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떡을 먹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앞에 나아오는 것이요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내 곧 생명의 떡이라”는 진리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어떤 의미에서 생명의 떡이 되실까요? 예수 앞에 나오는 것,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을 왜 떡을 먹음으로 비유 하셨을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어 양식은 생명을 위하여 필수적인 것입니다. 먹는다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 필요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떡이라 하셨음은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이 절대 필요라는 것입니다. 떡 곧 양식은 모든 사람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밥은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절대 필요가 되기를 원합니다. 먹지 않아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면 예수님을 절대필요라 느끼지 못한다면 둘 중에 하나입니다. 죽었거나 병들었거나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인 떡이라 하셨으니 양식은 어느 날 한번이 아니라 매일 매일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살수 없다’의 고백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양식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필요하듯 주님의 은혜를 목말라 하는 것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하루도 끊이지 않고 매일 매일 그 날 양식인 은혜를 받아야만 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시면서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영생하는 양식’입니다. 영생하는 양식이 기본이요 목적입니다. 생명의 떡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린 것이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이니 땅에 속한 유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분병과 분잔을 받는 우리에게 있어지는 축복

영광스럽게도 떡과 잔을 받게 될진대 이것은 예수님의 살이요 피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찬 예식 속에서 왜 주님의 살과 피를 받는 자 되어야 합니다. 53절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영적생명 구원받은 생명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살을 마시지 아니하면 ‘믿지 않으면’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의미하며 이는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인자의 살을 몸을 먹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생명이 없느니라’는 말은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다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으면서 내게 영생이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예하며 구원받은 백성임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자 믿는 자의 축복을 54절에는 이렇게 소개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했습니다.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믿습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느니라 합니다. 앞으로 영생을 가질 것이 아니라 이미 영생을 소유한 자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완성된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라는 말은 부활에 대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천국을 보장받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받은 구원을 아무도 빼앗아 갈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과 믿는 자의 또 하나의 축복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56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는 그 안에 거하리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과 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된 것입니다. 더 이상 세상에 마귀에게 속한 자가 아니요 예수에게 속한 자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느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실 뿐 아니라 내가 예수 안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의 기쁨이 내 기쁨이요 예수님의 소원이 내 소원인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이는 온전한 연합입니다. 일대일이 아닙니다. 컵을 바다에 빠트리면 컵 안에 물이 담기고 물속에 컵이 잠기니 이것이 바로 온전한 연합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잠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찬을 통해 나는 그리스도에게 연합된 자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영접한 사람 즉 믿는 자의 축복은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57절을 봅니다.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하였습니다. 구원 받은 백성의 삶의 원리이니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갈증이 있는 사람은 축복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셋째: 성찬을 받는 자의 은혜와 성찬의 특별한 요구

우리는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자인가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대가로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찬에는 헌신의 각오와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살과 피를 다 쏟으셨으니 나도 주님위해 살겠다는 것이요 주님 앞에 드려지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처음 성찬을 행하시고 겟세마네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로마병정들에 이끌려 골고다로 향하셨습니다.

주님이 행하셨던 것처럼 성찬이후에는 반드시 결단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찬의 요구에 대해 고린도전서 11:26절에는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과 부활을 다시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넘쳐나야 합니다. 내안에만 고여 있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합니다. 은혜로 나누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예하는 수가 많아짐은 주님의 원하심이요 기쁨이 됩니다.

언젠가 목회자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성찬 때에 울어야 하나 아니면 웃어야 하나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난 것은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심에 대한 애통과 함께 이처럼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대하여는 기쁨으로 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 성찬의 요구는 우느냐 웃느냐의 감정적인 것보다는 은혜를 기본으로 한 헌신과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것은 내 자격이 아닙니다. 내가 깨끗해서이거나 충성스러워서이거나 남다른 수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찬을 통해 내안에 십자가의 은혜가 살아나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사명이 살아나야만 합니다. 주님을 위해 드려지고 싶은 마음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냥 성찬이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끼리 하는 예식이어서는 아니됩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있어야만 합니다. 성찬을 받으면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찬이 바로 우리의 삶의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병도 문제도 말입니다. 성찬을 받는 성도는 성도답게 하는 성찬의 능력앞에 겸허히 자신을 드리고 주님이 몸과 피를 우리에게 주셨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결단과 헌신이 있어야만 진정한 성찬을 대하는 것입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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