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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매 맺게 하소서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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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삼우 목사

  가을이 성큼 문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가을!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십니까?  아무래도 가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결실입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입니다.  그 동안의 그 숱한 수고와 인내가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는 가을이 되면 논과 밭에서 그리고 또 산에서 수많은 결실들을 보게 됩니다.  가을은 심은 대로, 수고한대로, 땀 흘린 대로 결실을 하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 가을이 지나가면 다시는 결실할 수 없는 겨울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을에 무엇보다 내 인생의 결실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식물계의 결실을 보면서 내 인생의 결실을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지혜입니다.  나는 무엇을 심었으며 얼마나 성실하게 일하고 가꾸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열매 맺고 있는가 물어야 합니다.  얼마나 좋은 열매를 많이 맺고 있는가, 헤아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내 인생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일이요, 내 인생을 점검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열매 맺을 수 없는 겨울이 옵니다.  겨울이 오면 다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겨울이 오면 때는 늦습니다.  늦기 전에 좋은 열매,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가을이라는 이 아름다운 계절 앞에서 우리는 내가 맺은 열매를 두고, 진실하게 자기 존재를 물어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 6,7절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여기 6절에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1장과 마가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말라버리게 하신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실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만, 오늘 본문은 무화과나무를 소재로 하신 하나의 비유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은 포도원 빈자리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으로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왜 무화과나무를 심었겠습니까?  무화과나무는 여러분 아시는 대로 꽃이 없는 나무입니다.  꽃이 없다고 해서 무화과나무입니다.  사실은 열매가 꽃의 역할까지 하는 나무입니다.  아무튼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은 꽃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무화과나무는 관상나무도 아닙니다.  무화과나무는 잎은 가랑잎 같고 자라는 것도 비뚤어지고 굽어지면서 자라기 때문에 볼품이 없습니다.  그러니 관상용으로 심지 않습니다.  곧게 자라지 않기 때문에 가구나, 무엇을 만드는 재목으로도 쓸 수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오직 열매를 목적으로 심는 나무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지만 농부는 무화과열매를 얻기 위해 무화과나무를 심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원하시는 열매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각자에게 각각 목적이 있어 하나님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한 것도 우리 한 사람을 통해 얻고자 하는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사람이 모자라 숫자나 채우기 위해 태어난 내가 아닙니다.  그냥 우리 좋으라고 우리를 구속해 하나님의 자녀 삼은 것 더더욱 아닙니다.  하나님 원하시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고 또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바울은 갈 1장에서 자기의 생을 간증하면서 하나님께서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사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자신에게 이방인의 사도라는 분명한 목적을 부여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모세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한다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에게는 죄악의 어두움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다시 인도한다는 뜻이 있었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에게만 그러한 것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우연히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쩌다가 잘못 태어난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게 하십니다

  1920년도에 카나다에서 선교사를 뽑는 심사위원회가 열렸습니다.  그 심사위원들 앞에는 오스왈드 스미스라고 하는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한 가지 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꿈은 바로 선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복음을 위해 선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  마침내 그의 기도가 응답되어 선교사로 지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각고의 심사 끝에 그 위원회는 오스왈드 스미스를 선교사로 뽑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그들이 원하는 자격조건에 미달되었던 것입니다.  스미스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준비했는데 어떻게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용기를 얻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비전을 주셨습니다.  내가 선교사로 나갈 수 없다면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는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 일을 해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캐나다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내 소원을 이루어주시지 않는 거기에도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나를 향한 뜻과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처해있는 환경, 직업, 건강, 재산, 모든 형편, 내 모습 이대로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뜻이 있습니다.  가졌으면 가진 그대로, 못 가졌으면 못 가진 그대로, 배웠으면 배운 대로, 못 배웠으면 못 배운 그대로, 건강하든 건강하지 못하든,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한두 번 인생의 죽을 고비를 넘긴 적이 있는 줄 압니다. 그 때 우연히 어쩌다보니 살아남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입니다.  맺어야 할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생각해보십시다.  내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내가 맺어야 할 열매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까?  만약 내가 맺어야 할 열매를 아직도 모른다면 정말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모른다면 인생 헛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맺어야 할 열매는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내 인생의 목적이요 보람이요 의미입니다.  이것을 알고, 다시 말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생애는 복이 있습니다.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습니다.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내게서 열매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본문에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3년을 기다렸으나 열매를 구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여기 3년은 심은지 3년이 아니라 열매 맺을 때가 된 다음 3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무를 심어놓고 아직 채 자라지도 않았는데 와서 열매를 구하는 농부는 없습니다.  당연히 열매 맺을 때가 되어 주인이 와보니 열매가 없습니다.  내년에는 있겠지, 기다렸다가 그 다음해에 와보니 또 없습니다.  화가 났지만 설마하니 내년에는 있겠지 했는데 3년째 되는 해에도 열매가 없습니다.  이렇게 3년을 기다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당장 벌을 내리지 않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다고 당장 잘라버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도 실수할 때마다 책망하고 잘못할 때마다 야단치지 않습니다.  아마 그렇게 해야 한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때리고 책망해야 할 것입니다.  10번 눈감아 주다가 한번 책망하고 스무 번 참다가 한번 꾸중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냥 방관하면서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 것 아닙니다.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열매를 맺지 않았을까?  거름을 더 주고 가지도 다듬고 물을 주고 하면서 기다립니다.  내년에는 열매를 맺을 줄로 믿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투자하셨습니다.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돌보아주셨습니다.  모든 환경 여전 다 간섭해주셨습니다.  계속해서 손해만 보아 오셨는데 그래도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열매 맺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언제까지 참고 기다리시는 것만은 아닙니다.  3년을 열매 맺지 못했을 때 주인은 과원지기에게 찍어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내에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십니다.  그러나 끝까지 열매 맺지 못할 때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간혹 큰 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을 하면 지나온 인생을 후회합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남은 생애를 잘 살겠다고 결심합니다.  제대로 깨달은 것입니다.  그 병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그림자입니다.  그 길로 더 계속가면 심판이 있으니 안 된다고 질병을 통해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병에 걸리지 않고도 깨닫는 자가 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마침내 주인은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내 인생을 찍어 버리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 거두어 가 버릴 수 있습니다.  다 끝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이야기인지 모릅니다.  본문에 주인은 마침내 나무를 찍어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무화과나무는 잘려지지 않습니다.  잘라져야 마땅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심판을 받아도 벌써 받아야 했습니다.  그토록 크신 은혜 베푸셨건만 하나님 기뻐하시는 열매 맺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잘려지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과원지기의 중보적 간청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8,9절 함께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를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과원지기가 중보적 역할을 하고 나선 것입니다.  잘라버리라는 주인 앞에 1년만 더 기다려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금년만 더 참아주시면 내가 어떻게 해서라도 열매를 맺게 하겠으니 1년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내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과원지기의 중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시고, 나를 대신해서 기도하는 분이 있으므로 그 은혜로 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원지기가 누구이겠습니까?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간구합니다. ‘주인님, 한 해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최선을 다해 꼭 열매 맺게 하겠습니다.’ 간구하고 있습니다.

  과원지기는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을 수 있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나무 자체가 잘못되어서 열매 맺을 수 없는 나무로 생각했다면 그도 찍어버리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한 해만 더 기다리면 나무가 열매 맺을 줄 믿고 있습니다.  잘못된 나무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나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뿐 아니라 나무를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믿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배반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 믿음이 실망으로 끝나지 않게 해드려야 합니다.

  어떤 잘못된 일을 두고 우리는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라는 말을 쓸 수 있고, ‘어쩌다가’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잘못된 일을 두고 ‘언제나’라는 말을 쓸 때는 그 속에 이미 불평이 들어있습니다.  늦게 퇴근한 남편을 두고 ‘당신은 언제나 늦게 들어온다’고 했으면 벌써 그 속에는 불평과 원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다가’라고 표현할 때는 사랑의 마음과 덮어주는 마음이 있습니다.  자녀가 사고를 냈을 때 부모가 어떻게 변명합니까?  ‘우리 아이는 언제나 그렇다.’그렇게 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어쩌다 잘못하여,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어쩌다가 친구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허물을 덮습니다.  이것이 과원지기의 마음입니다.  근본적으로 잘못된 나무가 아니라 어쩌다가 열매를 맺지 못한 것이니 앞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열매를 맺지 못한 우리의 허물을 덮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이 사랑에 보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그는 무화과나무가 열매 맺지 못한 것이 마치 자기 책임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자기가 거름 주고 보살피는 일에 소홀이라도 한 것처럼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과원지기에는 책임이 없습니다.  과원지기에게 잘못이 있었다면 주인이 과원지기를 책망했을 텐데 주인이 과원지기를 책망한 적이 없습니다.  과원지기에게 잘못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 나무가 열매 맺지 못한 것이 자기 책임인 것처럼 두루 파고 거름을 줄 터이니 기다려달라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그 큰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를 잘 보살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의 불의와 불충, 모든 부족까지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중보하고 있습니다.  이제 더 땅을 잘 파고 거름을 잘 주어서 기어코 열매 맺게 하겠다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화과나무에게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남은 생애는 주님에 의해 주어진 마지막 기회입니다.  주인은 이미 찍어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과원지기도 “금년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찍어 버리소서.”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지막 기회입니다.  이번에도 열매 맺지 못하면 기회는 없습니다.  과원지기의 사랑의 중보에 의해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여러분,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기회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비상시대라는 것입니다.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막연하게 또 기회가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기회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비상시대라 생각하고 모든 힘을 다 내어야 합니다.  사람은 비상한 때에 특별한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월남전이 한참일 때 월남에서 미군병사들이 찝차를 타고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 적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뒤 늦게 잘못 들어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차하면 목숨을 잃을 판입니다.  그러나 길은 좁아 도무지 차의 방향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타고 있던 네 명의 병사가 내려 찝차를 손으로 들어 방향을 옮겼습니다.  그래서 살아나왔습니다.  나중에 다시 한 번 네 명이 찝차의 방향을 앞뒤로 바꿀 수 있나 실험해보니 아무리해도 안 되더랍니다. 사람은 특별한 비상시에는 평소에 수배의 힘을 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바로 이런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서 열매를 맺어야 할 비상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기어코 열매 맺어야 합니다. 

  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가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사시는 분인데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일반 병실에 입원해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마지막 남은 생애인데 힘들게 보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분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건강할 때 전도를 한 번도 못해보았습니다.  이제 병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고나니 그것이 너무도 후회가 됩니다.  주님 앞에 선다고 생각할 때 그것이 너무도 부끄럽고 송구스러웠습니다.  남은 시간만이라도 전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반병실에 입원을 해서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시간과 힘을 모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마음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도 열매 맺어야 합니다.  정말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이 가을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이제 이 가을에 교회적으로 성경공부도 새롭게 시작되고 다락방 모임도 시작됩니다.  금요기도회도 시작됩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계십니까?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고 열심을 내십시다.  성경공부에도 참여하시고 금요 기도회, 새벽기도회에도 나오십시다.  다락방 모임에도 새롭게 참여하십시다.  그래서 어떠하든지 열매를 맺읍시다.  금번에 열매 맺지 못할 때 영원히 후회할 수 있습니다.  기어코 열매 맺어야 하겠습니다.  만물이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결실의 가을에, 하나님 앞에 좋은 열매 많이 맺어드리는 우리 모두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이 좋은 결실의 계절에 저희들 얼마나 열매를 맺고 있는지 돌아볼 때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마땅히 찍어버림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저희들이지만 과원지기 되신 주님이 간구로 아직도 기회가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총을 기억하며 이 마지막 기회에 꼭 열매 맺을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일에 열심을 내게 하여주시고, 그래서 아름다운 열매 많이 맺는 풍성한 계절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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