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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에도 가격이 있습니다 (롬 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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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문호 목사  (2004. 10. 03 주일 낮 설교)       
                                   
  대가를 비싸게 치른 것일 수록 고귀한 물건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으로 여기는 것은 역시 다이아몬드와 진주입니다. 두 보석은 값비싼 대가를 치렀기 때문에 그렇게 고귀한 보석이 된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화산안에서 강한 열을 받아 용해되었던 평범한 탄소 덩어리가 땅 속 깊은 곳에서 극도로 강한 압력을 받으면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알고 보면 연필심과 다이아몬드는 동일 물질인 탄소입니다. 결합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연필심은 탄소 원자가 얕은 땅에서 대강 합하여지면 이루어지는 물질입니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지구 표면으로부터 120-200km 속에서 형성이 되고 있습니다. 다이아몬드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도와 압력입니다. 높은 온도와 이루 말할 수 없는 강한 압력을 탄소가 받으면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같은 탄소가 약한 열과 약한 압력을 받으면 단지 값싼 흑연이 되고 맙니다.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투명성과 순수성입니다.
  다이아몬드는 투명하고 순수합니다. 다른 물질이 하나도 섞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다이아몬드는 광채를 발하는 데 그 광채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찬란합니다. 보통 58개 면을 가지게 자르는 데 어느 편에서 보던지 같은 광채가 찬란하게 빛나게 됩니다.
  이 같은 찬란한 빛을 발하는 다이아몬드가 되기까지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열과 압력의 고통 속에서 다이아몬드가 태어납니다.
  진주가 귀한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개 속에 작은 모래알이 들어가면 조개는 아파서 쩔쩔 맵니다. 그리고 연약한 살 속에서 모래알의 아픔을 당하며 굴리고 굴리면서 감싸려고 이물질을 내어 감싸기 시작합니다. 조개는 몇 년의 고통을 참으며 이물질을 만들어 모래알 싸고 싸고 싸면서 만들어 낸 것이 진주입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른 보석이 비싼 보석입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가를 많이 치른 사랑이 큰사랑입니다. 값비싼 사랑입니다. 사랑의 대상에게 얼마나 값을 치루었는 지가 사랑의 가격입니다. 사랑에도 가격이 있습니다.
  사랑의 가격은 희생과 비례하고 있습니다. 희생이 적은 사랑은 작은 사랑이고 희생이 큰 사랑은 고귀한 사랑입니다.
  나무의 크기는 자로 재지만 사랑의 크기는 희생으로 잽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따라갈 사랑은 없습니다. 에베소서 3장 18-19절을 보려고 합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사랑의 가로 세로 깊이 높이 크기 용량은 무한대입니다. 이루말로 다할 수 없는 크기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1. 연약할 때 사랑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6)

  하나님의 사랑이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힘있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높은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돈 있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탈무드 이야기입니다.
  어느 마을에 주기를 좋아하고 줄 것이 많은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동네에서 그 부자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입니다. 돈 있고 덕망이 있으니 사람들은 그가 지나 갈 때마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독 한 명만은 그에게 아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부자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왜 나에게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지 않는가?>
  <나는 나대로 삽니다>
  <내가 내 재산의 반을 주면 고개를 숙이겠는가?>
  <그러면 나와 당신은 같아지는 데 왜 고개를 숙입니까?>
  <내 재산의 반을 주면 고개를 숙이겠는가?>
  <그러면 나는 부자가 되고 당신은 거지가 되는 데 왜 고개를 숙이겠는가?>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연약할 때에 사랑하여 주는 사랑입니다. 상한 갈대도 꺽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아니하는 사랑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다른 놀라운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연약할 때 사랑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고아원, 양로원, 재활원을 찾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지구상에 자선 사업기관은 기독교 사랑에서 나왔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우리는 연약한 사람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미국에서 생긴 일입니다.
  한 노동자가 돈에 한이 맺혀 있었습니다. 돈 때문에 무시당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표는 오직 돈이 되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돈이 없다고 나를 무시한 사람을 무시하며 당당하게 살리라>
  그는 이를 악물고 금광에 들어가서 돈을 모아 오리라 결심하였습니다. 몇 년 고생하고 나오면 당당하여 지리라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금광에 들어가서 20년간을 입을 꾹 다물고 일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꺼번에 돈을 받으려고 20년간 한번도 월급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모두 자기 이름으로 적금을 들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월급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조금이라도 쓰고 싶은 유혹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20년간 거지처럼 생활하였습니다. 죽을 고생을 하였습니다. 입지도 않았습니다. 먹는 것도 거지같이 얻어먹었습니다. 추워도 움크리고 벌벌 떨면서 잤습니다. 드디어 20년이 지났습니다. 20년만에 그는 임금으로 큰 금덩어리 하나를 받았습니다. 배를 타고 당당하게 귀가하던 중이었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이루어지는 순간 같았습니다. 한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 올 때 불행하게도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가 암초에 부딪쳐서 파선하고 말았습니다. 배는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바닷속으로 뛰어 들었습니다.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아까운 물건들을 모두 버리고 맨 몸으로 바다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금덩어리를 보자기에 싸서 허리에 맸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놓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무거운 큰 금덩어리를 허리에 매고 결사적으로 물과 싸워야 할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금덩어리는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사적으로 무거운 몸을 육지를 향하여 움직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갑판 위에서 울고 있는 10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보였습니다. 부모를 잃었습니다. 혼자서 울면서 물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살려 주세요. 무서워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소녀가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하소연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선택하여야 했습니다. 금덩어리와 그 소녀 둘을 같이 안을 수는 없었습니다. 낯모르는 소녀를 구할 것이냐? 20년간 모은 금덩어리를 지닐 것이냐? 갈림길이었습니다. 배는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길게 생각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는 서서히 허리에 맺던 금덩어리 보자기를 푸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닷속으로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를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육지로 결사적으로 헤엄쳐 나왔습니다.
  소녀와 해변가에 선 그는 기쁨의 눈물을 주르륵 흘렸습니다. 사랑의 기쁨, 생명을 살린 감격의 기쁨이었습니다.
  후에 그는 고백하였습니다. 소녀의 생명을 위하여 20년 한이 들어 있는 금덩어리를 <그까짓 것!> 하면서 버릴 때가 가장 기쁨의 순간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얼마나 값진 사랑입니까?
  대통령을 살리려고, 아버지를 살리려고, 자식을 살리려고 금덩어리를 버렸다면 그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알지 못 하는 연약한 소녀. 부모는 배에게 죽고 고아 소녀를 살리려고 금덩어리를 포기한 사랑이기에 고귀한 사랑입니다. 재벌 자녀였다면 대가를 바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고아가 된 소녀를 위하여 투자한 사랑이기에 값비싼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이같이 우리가 연약할 때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이 사랑의 가격은 가격을 정할 수 없는 한없는 사랑입니다.


  2. 경건치 않을 때 사랑입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6)

  사람들은 경건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시람은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경건치 못 한 일을 한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사랑 받을 행동을 하여야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할 때 잘 한다고 사랑하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경건하지 못 할 때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특이하고 큰사랑입니다.
  삭개오가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농산물을 거두어 갔습니다. 세금으로 돈도 거두어 갔습니다. 그래서 로마에 충성하는 사람들을 곳곳에서 선택하여 세금을 거두는 사람으로 세웠습니다. 세금을 더 거두어 가지게는 것도 눈감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세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장 미움을 받는 직업이었습니다. 이중적으로 미움을 받았습니다. 민족을 배반하는 이였습니다. 그리고 동족의 피를 빨아 부자가 되는 이들이었습니다. 모두가 미워하였습니다. 이런 세리를 좋아하는 이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리고 길 주변에 서서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였습니다. 수 백명이었는지 수 천명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키가 작은 사람은 예수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은 성경이 전하여 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 많은 사람가운데 예수님은 세리 삭개오만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서 하루 밤을 주무셨습니다.
  사람들은 경건한 사람을 사랑하지만 예수님은 경건치 못 할 때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에 감동되어 삭개오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세금을 더 거둔 것을 계산하여 4배씩 도로 다 갚아 주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미친 여자입니다. 7 귀신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마리아는 창녀였습니다. 이런 사람을 사랑할 사람은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그 사랑에 감동되어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 가실 때 끝까지 지켜보며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제일 먼저 찾아간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은 우리가 경건치 못 할 때 주신 사랑이고 고귀하고 값진 사랑입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생긴 일입니다.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마약 살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런 돈을 줄 리가 없었습니다. 손자는 화가 나서 두 분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적인 혈기였습니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모두가 그를 당연히 죽일 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한 분은 매일 아들 면회를 갔습니다. 그리고 용서한다는 말을 매일 말했습니다. 다 죽일 놈이라고 하여도 어머니만은 생명을 살 리가 위하여 백방으로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만은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 미워하고 다 돌을 던져도 예수님만은 우리를 어떤 경우라도 사랑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사랑은 값진 사랑입니다. 사랑이라고 다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도 가격이 있습니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외동딸과 함께 외롭게 살아가는 한 중년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딸이 가출하여 술집에서 남자들의 술이나 따라 주면서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 여인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같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있을 만한 곳을 다 다니면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그 전단지에는 어머니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어미가 너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단다. 너를 사랑한단다>

  어머니는 딸의 사진을 넣으면 딸이 부끄러움을 당할 가 두려워 자기 사진을 넣은 것입니다. 결국 딸은 어머니 사진이 인쇄된 전단지를 받아 보았습니다. 딸은 어머니 품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통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어요. 저를 위하여 대신 수치를 당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드려요>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경건한 사람을 존경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하지 못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참된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3. 죄인 되었을 때 사랑입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8)

예수님은 의인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죽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을 위하여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지를 위하여 대신 죽을 사람이 어디 있을 가요? 사형수를 위하여 대신 죽을 사람이 어디 있을 가요? 세계적인 테러 조직인 알카이다는 알라 신을 위하여 대신 죽을 동반 자살범 2천명을 대기시켜 놓고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인을 위하여 대신 죽겠다고 자원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 가요?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을 위하여 죽으시는 사랑의 극치를 이루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죄인과 죄를 구별시키셨습니다.
  저는 TV에서 모래속에서 금을 캐는 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채를 가지고 하루 종일 모래를 담아 모래는 버리고 그 안에서 금을 골라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금과 모래를 구별시키고 있었습니다.
  사람과 죄인이 합해 진 것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죄인안에서 죄만 골라 버리고 죄를 버린 죄인은 역시 같은 사람이기에 사람을 사랑하여 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죄는 미워하여도 죄인은 사랑하여 주신·이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6.25 동란 때였습니다.
  공산당이 예수믿는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는 이를 잡아죽이려다가 물었습니다.
  <무엇하는 사람이요?>
  <고아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공산당들은 이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고아들을 돌보아야 하니까 당신 아들을 죽이지>
  이렇게 말하면서 원장님 앞에서 19살 난 아들을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다시 수복이 되었습니다. 그 공산당이 잡혔습니다. 물론 그는 총살감이었습니다. 고아원 원장님은 사형 집행관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집행관님! 이 사람을 죽인다고 내 아들이 살아 돌아오겠습니까? 나도 죄 용서함 받은 사람이니 이 사람의 죄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그 인민군 공산당원은 생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영혼을 구하였다고 합니다.
  죄인 되었을 때 사랑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 가격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랑입니다. 무한한 사랑입니다.


  4. 원수 되었을 때 사랑입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10)

  하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입니다. 높이입니다. 깊이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이들을 위하여 사랑하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영이 스데반 집사에게 임하여 스데반 집사도 자기에게 돌을 던져 죽이는 이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며 죽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극한 대가를 지불한 다이아몬드 같은 사랑, 진주 같은 사랑입니다.
  펜실바니아에 피터 밀러라는 나이 많으신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온 교우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교회 이웃에 교회를 핍박하고 목사님을 헐뜯고 모욕하는 악질 이웃 한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입만 열면 교회 욕, 목사님 흉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는 살인죄를 짓고 사형언도를 받았습니다. 목사님은 이 소식을 듣고 100 KM 거리를 달려갔습니다. 워싱톤 장군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사면권을 행사할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에게 사형을 면하여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끈질긴 요청에 목사님에게 워싱톤이 물었습니다.
  <왜 살려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목사님이 대답하였습니다.
  <저 사람은 나의 가장 큰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감동을 받고 사면장을 써주었습니다. 목사님은 25 KM 떨어져 있는 사형 집행장까지 달려갔습니다. 마침 교수대에 묶이고 있었습니다. 그 살인범은 목사님을 보자 말했습니다.
  <저 늙은 목사가 내가 교수형을 당하는 꼴을 보고 기뻐하려고 오는구나!>
  이 때 목사님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사면장을 보여주며 악질 원수를 살려 주었습니다.
  이런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사랑이기에 가격으로 따질 수 없는 사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피로 사랑하셨습니다.
돈으로 사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9)

십자가 사랑이 가장 큰사랑입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하는 동물은 거북이입니다.5천년 된 거북이를 신귀라고 하고 1만년 된 거북이를 영귀라고 한답니다. 거북이가 그렇게 장수하는 이유는 그렇게 무겁고 딱딱한 등을 평생 짊어지고 다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평생 지고 사는 이에게는 장수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사랑에도 가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싼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비싼 사랑입니다. 사랑에도 가격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 연약할 때 사랑입니다.
  2. 경건치 않을 때 사랑입니다.
  3. 죄인 되었을 때 사랑입니다.
  4. 원수 되었을 때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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