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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멘토 바울과 멘티 디모데 (빌 2: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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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미국 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개인주의입니다. 이것은 서구 사회의 큰 자산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 개인주의 때문에 사회는 중대한 병을 앓고 있습니다.

[마음의 습관]이란 책을 쓴 로버트 벨라는 이 미국의 개인주의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호의존이 절대 필요한데도 개인주의를 고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 사회 전반에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가치관의 혼란, 가정의 몰락, 구멍 뚫린 학교교육 등의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뿐이 아닙니다.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현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은 서로 의지하며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독립적으로 살려고 하기 때문에 서로를 통해 얻고 배우는 모든 것을 누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미숙하게 태어납니다. 그래서 선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운동선수에게는 코치가 있습니다. 무술 수련생에게는 사부가 있습니다. 예술가에게는 사사가 있습니다. 학교에는 스승이 있습니다. 직장에는 선배가 있고, 군대에는 고참이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신앙의 선배, 스승, 상담자, 목자, 대부, 후원자, 양육자, 영적 지도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의 안내자를 통틀어 멘토라고 부릅니다.

멘토는 그리스 신화 오딧세이에 나오는 이름입니다. 주전 1200 년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오딧세이 왕이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딧세이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을 가장 믿을 만한 친구에게 맡기고 떠납니다. 그가 바로 멘토입니다. 멘토는 오딧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무려 10 년 동안 왕자를 돌보게 됩니다. 멘토는 왕자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돌보았습니다. 이후로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용어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과 디모데의 멘토링에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멘토입니다. 바울은 선교 현장에서 디모데를 얻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만난 후 평생 그를 그림자처럼 따랐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얻은 곳은 소아시아의 루스드라입니다. 바울의 선교 1 차 여행 때 만났고, 2 차 여행 때부터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디모데의 어머니와 외조모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헬라인인데 일찍 돌아가신 것으로 추측됩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신앙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영적인 아들로 여겼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가 두 편이 들어있습니다. 그 내용은 바울이 각별하게 생각했음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본문 속에서 우리는 바울과 디모데가 멘토링이 잘 이루어진 사이임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영적 삶을 돌보는 멘토입니다. 배우는 디모데는 멘티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속에 나타난 기독교 멘토링의 원리를 찾아 봅니다.

첫째, 멘토링의 목적은 파송에 있습니다.

멘토링의 목적은 신앙이 완성되어 사역케 하는데 있습니다. 사역의 중심은 복음 전파입니다. 예수를 잘 믿는데 전도를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전도는 영적으로 출산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쓸모가 없습니다. 농부가 기다리다가 실망하고 나무를 잘라냅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처한 문제를 디모데가 속히 해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힌 몸이라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바울의 특사가 되어 대신 파송되는 것입니다.

본문 19 절입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나도)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는 목적이 나와 있습니다. “나도 여러분의 사정을 듣고 안위와 기쁨을 얻기 위함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원문에 강조된 ‘나도’를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의 뉘앙스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에바브라디도를 자기에게 보내놓고 걱정하고 있는 빌립보교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서 빌립보교회의 사정을 알아보게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것입니다. 또 돌아올 때는 빌립보교회도 잘 지낸다는 소식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를 통해 좋은 소식을 보내달라는 은근한 압력을 넣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교회는 지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빌립보교회는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도우려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낳았습니다. 에바브로디도가 병을 얻어 오히려 바울의 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이었습니다.

또 교회는 내부적으로 방해꾼들이 많았습니다.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간절한 때입니다. 더구나 지도자인 에바브로디도가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처합니다.

본문 21 절입니다.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지금 빌립보교회에는 지도자들이 자기의 이익만 추구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일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신뢰할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빌립보교회의 형편을 수습하기 위해서 디모데를 보냅니다. 디모데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지도자였기 때문입니다.

본문 20 절 말씀입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디모데는 바울과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교회를 위해서 진실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바울 주변에 이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디모데는 화해의 사신으로 파송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멘토링의 원리는 주님의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19 절 속에는 ‘주 안에서’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바울이 잘 쓰는 용어는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으로 구원을 덕을 본 것을 나타낼 때 잘 쓰는 용어입니다.

반면에 ‘주 안에서’라는 말은 약간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주권의 영역 안에서” 혹은 “주권자의 통치 아래서”를 뜻합니다.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 사단을 이기고 죽음을 깨뜨린 권세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라는 말은 ‘주에 힘입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바울이 주 안에서 바란다는 것은 인간적인 가능성을 보면 확실하지 않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자를 힘입어 디모데를 보낼 희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멘토링에는 멘토와 멘티 사이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 앞에서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다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저히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세 번째 멘토링의 원리는 연단입니다.

사람이 다듬어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생을 겪어봐야 합니다.

연단이란 풀무에 달구었다가 두들긴 후에 찬물에 넣기를 반복하는 담금질입니다. 그러면 연철이 강철이 됩니다.

바울은 22 절에 계속 디모데를 추천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디모데는 연단을 견딘 사람입니다. 연단이란 시험을 겪고, 시험 결과 그 믿음이 증명된 것을 말합니다. 디모데가 증명된 지도자라는 것을 빌립보교회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어떤 시험을 받고 어떻게 합격했는지 여러분이 아시죠? 하고 묻고 있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여정은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이었습니다. 여느 사람 같으면 중간에 힘들어 포기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1 차 전도여행에 따라 나섰던 마가는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바울의 마음속에 낙제 점수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2 차 선교를 준비하면서 바나바와 마찰을 일으킵니다. 바나바는 마가의 삼촌이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동행하려고 했고, 바울은 반대했습니다. 결국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바울과 따로 전도를 떠납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느슨한 것은 참지 못합니다. 제자들을 훈련시킬 때 단단하게 했습니다. 디모데는 이 테스트에 무난히 합격한 사람입니다.


네 번째 멘토링의 원리는 섬김입니다.

그 시험은 바울을 도와 복음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22 절에 복음을 위해 수고했다는 말은 ‘에둘류센’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직역하면 종노릇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자식처럼 바울을 따랐습니다.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종노릇을 했습니다. 바울에게 종노릇 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과 함께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의 섬김을 받을 상전이 아닙니다. 바울 자신도 함께 주를 섬기는 종입니다.

디모데가 바울을 도왔지만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도울 때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섬기듯 했습니다.

멘토링은 장인들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학습 방법이었습니다. 견습생들은 오랜 세월동안 숙련공 밑에서 그의 모든 생활 방식을 배웠습니다. 스승의 집에 머물면서 심부름을 하면서 기초부터 배웠습니다. 현대에 와서 이런 멘토링은 매우 약해졌습니다. 최근에 기독교에서 이 멘토링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은 공식이 아닙니다. 신앙 이론을 가르치고 이해하는 것으로 신앙이 생기지 않습니다. 신앙은 요리문답을 푼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신앙은 오직 멘토의 삶을 통해서 생깁니다.

만약 교회에 신앙의 멘토들이 없다면 신앙의 맥은 끊기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후손들은 알게 모르게 주변에 있는 신앙의 멘토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살면서 영적인 문제를 인도해주는 좋은 신앙의 스승이 있습니까?

멋진교회는 이 멘토링 사역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멋진교회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멘토링 사역들이 있습니다. 소그룹 둥지 모임과 삼겹줄 사역, 불꽃동산, 예닮동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세례식 때 멘토를 세우고 있습니다.
삼겹줄 사역은 새신자를 돌보는 멘토링입니다. 불꽃동산은 초신자를 돌보는 사역입니다. 예닮동산은 세례 받은 후 영적 성숙을 위한 사역입니다.

이 세 가지 사역과 동산은 모두 영적 인도자인 도우미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둥지 모임은 둥지 어미가 멘토 역할을 합니다. 세례식 때 멘토를 세우고 그의 영적 상담자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바울과 같은 멘토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담임목사는 교인들의 멘토 노릇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멘토는 때로 가혹한 꾸중을 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담임목사는 상처를 받을까봐 심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지적을 할 때는 조심스럽고, 지적보다는 위로와 칭찬을 더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런 중간 지도자들이 필요합니다. 교인들의 믿음을 세워주는 멘토가 많을수록 교회는 든든히 서갑니다.

멘토는 멘티가 정중하게 요청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 믿음이 성숙하여 누군가 내게 멘토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내 신앙의 멘토가 있는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 멋진교회는 멘토링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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