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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용기 (단 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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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삼환 목사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 아버지로 믿는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용기와 신앙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 다. 하나님을 잘 믿는데도 용기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은 항상 언제나 담대 함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려 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려면 용기가 있어야 끝까지 믿음으로 잘 달려갈 수 가 있습니다. 용기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될 용기가 있습니다. 쓸데없는 용기가 있습니다. 이런 용기는 혈기에서 나옵니다. 정욕에서 나옵니다. 이런 용기는 교만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헛된 용기입니다. 죄를 짓는 것도 용기가 있어야 죄를 짓는다고 합니다. 그런 용기는 불행 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마귀가 주는 용기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강도는 굉장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고 합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남의 집에 들어가 사람을 죽이는 게 보통 용기예요? 소매치기도 용기가 필요하대요. 처음에는 벌벌 떨린대요. 사기꾼도 용기가 필요하대요. 처음에는 얼마나 떨리겠어요? 태 연스럽게 하려고 하면 가슴이 덜덜 떨리는 것이지요.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하는 거예요. 이런 용기 는 자기 인생을 파멸로 가져다 주는 용기입니다. 쓸데없는 용기도 많습니다. 지난번에 과천 동물원에 여자친구랑 데이트를 가서 사자 앞에 갔을 때 여자친구에게 말을 했어요. 야, 나 사자 굴에 들어갔다 가 올 수 있다. 그래서 여자 친구한테 용기 있는 사나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하다가 사자가 웬 밥이 냐? 그러고 달려들었는데 기적적으로 총을 쏘고 살아난 일도 있어요. 얼마나 어리석은 용기입니까? 애인의 마음은 한 시간 내에도 변할 수 있는데 그 마음을 잡으려고 하다가 죽을 뻔한 거예요. 쓸데없 는 용기입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굉장한 용기가 있어야 한대요. 가져다 놓고도 못 먹는대요. 약을 사 러 가긴 가도 그걸 먹기까지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대요. 그런 용기만 있으면 백 번 더 잘 살 수 있는 데 사람은 이런 잘못된 용기에 매여서 인생을 망치기도 하고 손해를 보기도 하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런 잘못된 용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주 좋은 용기예요. 도덕적인 용기, 애국의 용기, 의의 용기, 진실의 용기가 있어요. 이것 은 순간순간 양심이 판단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성과 지성으로 도덕성으로 결정을 내리는 거예 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을 애국자라고 그럽니다. 사회에 훌륭한 해마다 청룡봉사상 같은 것 이런 상들은 다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거예요. 우리나라에도 상이 많습니다. 이 많은 상들이 이 런 용기 있는 사람들에게 주어지게 되는 거예요. 몇 년 전에 한국 유학생 가운데 이수연이라고 하는 사람은 고려대학교 4학년 재학중인데 일본에 신주꾸라고 하는 곳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지하철을 타 려고 하는데 어떤 일본 사람이 떨어진 것을 보고 건지려 내려갔어요. 그러다가 본인은 그 자리에서 즉 사해 죽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이 사람을 용기 있는 사람이다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 리고 신문에 대서특필하고 일본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기사를 여러분들도 보셨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정조를 지키기 위해서 깡패가 저 옥상까지 데려가서 폭행하 려고 하니까 뛰어내린 분도 있어요. 아주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이런 용기만 아닙니다. 세 번 째는 영적인 용기 에요. 믿음의 용기, 하나님의 자녀들이 갖는 용기 에요. 이 용기는 어떤 인간 의 정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 속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 안에 거하고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믿고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에게 서 나오는 영적인 동기인 것입니다. 주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 나를 사랑하십니다. 내가 주님으로 받 은 이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받고 새로운 삶,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성도는 주님 이외의 길을 배척합 니다. 믿음을 떠난 모든 삶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죄와 불의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항상 용 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이 믿음을 기르려면, 이 믿음으로 살려면 항상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성공한 사람은 용기의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사람은 용기의 사람입니다. 모든 실패한 사람 은 용기를 내야 할 때 내지 못했던 사람들입니다. 쓸데없는 일에 용기를 낸 사람들입니다. 저는 교도 소에서 편지가 오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 내가 한 번 용기를 잘못 내 가지고 영원히 후회하면 서 아무도 원망할 수 없는 이 철창 안에 갇혀있다는 안타까운 하소연을 많이 들어보는 것입니다. 그렇 습니다. 잘못된 용기는 그냥 감옥만이 아니라 영원한 감옥인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하나님이 쓰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 다. 이런 용기를 가지고 결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항상 용 기가 주어지고 항상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용기를 내고 믿음을 지켜야 할 기회를 놓쳐버린 사람에게는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어떤 용기를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실패한 사람에게는 무슨 용기를 내어 결정할 일이 하나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한 번도 그 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 어려운 결정을 내려서 용기를 가지고 하 나하나 주의 뜻을 따라 순종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이런 결정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늘 주어지게 되 는 줄로 믿습니다. 요셉이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치고 형제들 을 용서하고 화해하고 얼마나 용기 있는 사람입니까?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고 믿음으로 사는 것 보 통 용기입니까? 그 잘 살던 하란이라고 하는 넓은 평야를 버리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번 주에도 에디오피아로 가는 의사 선생님이 그 좋은 내과 과장을 버리고, 교수를 버리고 간다는 것이 얼 마나 결정을 잘 하는 것입니까? 이 결정을 하기까지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아마 다 한 2-3년 정도는 마음 고생을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선교사로 가는 것, 주의 종이 되는 것, 보통 마음의 고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하기까지 굉장히 어렵습니다. 다 모두 하나님 앞에 헌신하고 싶지만 결정을 못한 것입니다.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친구가 1학년 때 되돌아갔어요. 학 원 선생으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1년 하더니만 못 참고 돌아갔어요. 또 2학년 때 같이 있던 친구 도 또 돌아갔어요. 이 분은 건축업을 하는데 돈을 너무 많이 벌다가 2년 동안 하나도 못 벌고 신학교 에 있으니 그만 답답한 거예요. 그래서 돌아가 버렸어요. 나중에 후회하는 것이지요. 길자연 목사님 이 간증하는 걸 들어보니까 신학교에 같이 다니는 친구가 늘 학교를 다닐 건지 목회를 할건지, 어떻 게 할건지 늘 중간에 머물러 있더라는 거예요. 하루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이 친구가 노래 를 이렇게 부르더라는 거예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흐르거라 우리는 전 진한다 이 노래를 어떻게 부르느냐 하면 전우의 시체를 넘을까 말까 넘을까 말까 앞으로 갈까 뒤로 갈 까 앞으로 갈까 뒤로 갈까 낙동강아 흐를까 말까 흐를까 말까 계속 이렇게 부르더라는 거예요. 우리 는 전진할까 말까 전진할까 말까 계속 끝까지 그렇게 부르더래요. 그러더니 결국 목회 안하고 뒤돌아 가 버리더라는 거예요. 교회에 나와서도 전우의 시체를 넘을까 말까 나갈까 말까 집사 될까 말까 은 혜 받을까 말까 늘 이렇게 머물고 있는 성도들이 한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나왔으면, 좋은 결정을 하 셨으면 끊임없는 결정 속에서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회개하는 것도 굉장한 용기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다 용기입니다. 세리 마태가 자기의 삶을 다 청산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 얼마나 용기입니까? 우리의 소중한 인생이 있다면 이 소중한 인생 을 가장 값있게 하는 것이 용기인 것입니다. 모세가 얼마나 용기를 내어서 애굽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 씀을 순종하여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까? 기생 라합이 믿음으로 정탐꾼이 왔을 때 신고해서 쉽 게 살면 국민 태극무공훈장을 받고 얼마나 그 나라에서 잘 살고 자자손손 고래등같은 집에서 잘 살텐 데, 믿음으로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겠다 나는 믿음으로 살겠다 그는 다윗왕의 조상이 되었고 기생이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용기 있는 결단, 믿음은 항상 용기입니 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용기입니다. 십일조하는 것도 굉장한 용기입니다. 저도 십일조 를 해 보니 보통 아까운 게 아니에요. 너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용기예요. 좋은 일 하는 것은 용기예 요. 헌신하는 것 용기입니다. 전도하는 것 용기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 용기입니다. 죄를 물리 치는 것 용기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사는 것 용기입니다. 용기 없는 사람은 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는 기회를, 용기가 있는 사람은 기회를 앞에서 잡습니다. 그러나 기회를 놓친 사 람은 항상 뒤에서 기회를 따라갑니다. 기회를 따라가는 사람은 잡을 수 없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야구처럼 안타를 쳐야 하나님이 주시는 홈런, 인생의 승리의 항해자가 될 줄로 믿습니 다. 용기 있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용기가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 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얼마나 용기가 있었습니까? 바벨론 나라의 황제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놓고 너 내 말 들어라 그랬어요. 너 내 말만 들으면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너희에게 줄텐데 왜 우상숭 배를 안하고 너희 하나님만 믿느냐? 너희 나라 하나님은 죽었어 너희 나라 하나님은 너희를 버린 거 야 그럴 때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황제 폐하 그게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야 나 있는데서만, 나 보이 는 데만 한 번만 그렇게 하라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셨는데 항상 나와 함께 하 시는데 오늘까지 사는 동안 하나님 한 번도 나를 버리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버립니까? 나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아니 나만 알면 되지 않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 보고 계시는데 하나님 앞에서 내가 살아야지 내가 하나님을 속일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너는 사자굴 풀무불 속에 들어가 야 돼. 나는 사자 굴이 두렵지 않습니다. 풀무 불이 두렵지 않습니다. 왕이 나를 버리시면 하나님이 나 를 건져 주십니다. 풀무불 아니라 어디에서도 내가 믿는 하나님은 나를 건져주십니다. 설령 안 건져주 고 내가 사자 밥이 되고 풀무불속에 한 줌의 재가 될지라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살수는 없습니다. 여러 분, 이 세상의 불행한 삶은 거기에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이 믿음의 삶은 철저하게 내 생명같이 믿음을 지켜야 영원한 축복이, 영원한 승리가 있 는 줄로 믿습니다. 땅에서 조금 출세하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데 장군 하나 되려고 해도 어마어 마한 용기를 가지고 끊임없는 훈장을 타야 장군이 되는데 하나님 나라의 용기는 세상의 용기와 다릅 니다. 잠깐 되는 영광이 아니에요. 영원한 축복이요 영원한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자녀를 기를 때도 철저하게 믿음으로 기르십시오. 요사이는 대학 입시를 너무 크게 비중을 두니까 교인들 가운데 주일 에도 과외를 시키고 주일에도 교회 예배를 잊어버리는 분들이 너무 많다고 합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림인식 목사님의 출판 기념회가 있어서 순서를 맡고 그 책을 제가 잠깐 보니까 그런 내용이 있 었어요. 림목사님이 대구 영락교회에 계시다가 서울 노량진 교회를 맡아보려 올라오셨어요. 그 때 아 이들이 중학교에 다녔대요. 하루는 토요일에 애가 오더니 그러더래요. 아빠 우리 담임 선생님이 내일 은 도시락을 두 개를 싸 오라고 해요. 왜 그러냐고 하니까 한 반에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을 특별히 공부 를 시켜서 주일날 오전부터 밤 열두시까지 선생님이 또 공부를 시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서울에 4 대 명문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리로 보낸다는 거예요. 그러면 다 백퍼센트 들어간다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나라 서울 대학교에 최고 좋은 과로 다 들어간다는 거예요. 담임 선생님한테 뽑히는 게 보통 어려 운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이 물었대요. 야, 너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인 데 주일날 공부해야 쓰겠냐 주일날 하나님께 나와 예배드려야 되겠냐? 예배 드려야죠. 그래 결정 잘 했다 그러면 주일날 너는 도시락 싸 가지 말고 예배드려라. 예.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학교 갔다오더 니 엉엉 울더래요. 왜? 그 공부한 애들은 담임선생님이 가르쳐서 다 백 점씩 맞는데 자기는 거기서 뚝 떨어졌다는 거예요. 엉엉 울더래요. 그래서 왜 우냐? 성적이 떨어져서 웁니다. 그러면 성적이 높으 면 어떻게 되냐? 좋은 고등학교에 가지요. 좋은 고등학교 다음에는 어디로 가냐? 좋은 대학가지요. 좋 은 대학은 왜 가냐? 성공하려고요. 성공해서 뭐하냐? 잘 살고 복 받으려고요. 그러면 어떻게 살면 잘 살고 복 받겠냐? 예수 믿어야지요. 야, 바로 그거야. 너는 왜 빙 돌아서 그리로 가냐? 예수 믿고 믿음 생활 잘 하면 바로 복 받아 잘 사는데 성공하는데 왜 그러냐? 왜 우냐? 울긴 왜 울어. 그랬더니 얘가 울음을 뚝 그치고 그 다음에는 걔들 따라 가지 않고 주일날 예배를 드렸는데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그 대신 열심히 공부하고 따라가는데 얘들보다 공부도 더 잘해서 좋은 대학에 제일 좋은 학교에서 공 부를 마치고 지금은 목사가 되어서 세계적인 교회인 지금 LA영락교회 박희민 목사님 후임자가 되었 다는 것입니다. 금년에 후임자로 들어갔어요. 이 분은 뉴욕에서도 목회를 잘 해서 LA로 스카웃 되어 서 박희민 목사님 후임자가 되었어요. 여러분, 어떻게 살아야 돼요? 자녀를 어떻게 길러야 돼요? 교인 이면서 양심을 속이지 말라고요. 얘야 주일날 예배가는 척하고 뒤로 공부하러 가라 그러면 안돼요. 교 인들 가정에 자녀들이 이단학교에도 다니고 그러면 안돼요. 양심을 속이지 말아요. 하나님이 기뻐하 시지 않아요. 교인은 좁게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엄청난 손해를 보는 거예요. 하 나님이 만가지로 갚아 주시는 거예요. 신앙은 씨를 뿌리는 게 아니에요? 씨를 뿌리면 가을에 열매를 거두듯이 이런 용기 있는 결정 하나 하나가 내게 한 아름씩 안을 수 있는 기적이 되고 축복이 되고 천 국 문이 열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양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내 신앙을 내가 지키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은 늘 부딪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 는 힘들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니 하나님의 백 성으로 살아가는 것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저는 어려서부터 늘 말씀드린 대로 제사 안 지내는 것 때문에 너무 미움을 받았어요. 나 혼자 왕따 당했어요. 갓 쓴 어른들 40명 50명이 묘지에 둘러 서 있는데 나 혼자 안 믿고 서서 갓쟁이들한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어요. 그러나 지금 그 갓쟁이들 다 갔어요. 한 분도 없어요. 다 인생 실패하고 다 갔어요. 왜 우리가 갓쟁이를 두려워합니까? 그 때만을 보면 너무 무섭고 사람 취급을 안하고 짓밟히 고 욕 얻어먹었지만 왜 그게 두렵습니까? 그 욕 얻어먹는 것이 왜 괴롭습니까? 그 떡 못 먹는 것이 굉 장한 것입니까? 영원한 생명의 떡을 먹기 위해서 잠깐 그 시루떡 못 먹는 것이 뭐 그렇게 슬픕니까? 잘 믿기를 바랍니다. 주일 지키는 것 때문에 너무 매를 맞았지만 그게 뭐 문제입니까? 훈련소에서도 주일을 철저하게 지켰어요. 생명 걸고 나오니까 아무도 못 막아요. 교회가 없는 부대에 가서도 주일 을 철저하게 지켰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아예 부대에 비상이 있을 때에도 쟤를 위해서는 따로 예배실 을 만들어 줘라 그랬어요. 못 이기니까 아예 만들어주는 거예요. 왜? 내 믿음은 내가 지키는 겁니다. 이 세상에 먹고살기 위해서도 밤잠 안 자고 나가서 근무하고 새벽 일찍 두시 세시에 나가서 일하는 것 을 보면 야, 살기 위해서도 저렇게 애를 먹는데 내 믿음 지키기 위해서 조금 지키는 것, 여기에는 하늘 과 땅의 축복이 다 들어 있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확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 니다. ♬남이야 어찌든 나만은 주님의 용사되리 ♬ 주님의 용사가 되어야 합니다. 술 먹으라고 얼마 나 권하고 군에 가면 얼마나 어렵습니까? 높은 사람이 머리에 막 붓고 기합 주고 그래도 못 먹는 것 은 못 먹는 거예요. 내 믿음 지킵시다. 두려워하지 맙시다. 하나님 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여러분의 앞날에 용기 있는 크리스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개척을 하고 나서 얼마나 그 때, 이 국가가 어려울 때 동아일보가 폐간하고 가끔 가다가 이 권력을 가진 분들이 힘을 남용할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동아일보가 어려움을 당할 때 저희 교회 는 최초로 동아일보에다 헌금해서 그리로 내가 보내주었어요. 얼마나 무서운 일이지만 그 때는 아무 도 그걸 못했어요. 한 면에 우리교회가 처음으로 그걸 내니까 따라서 그 다음에 모두 들어오게 되었어 요. 내가 최초로 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왜 겁이 납니까? 그게 왜 무섭습니까? 도대체 무엇이 무섭 다는 말입니까? 하나님 이외에는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 사는 게 무섭습니까? 여러분, 예수 안에 살아가는 사람은 나와 함께 영원히 살리라 고 했는데 주님이 지키시고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이런 복 있는 생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목회와 주의 일을 따라 갈 때 항상 언제나 끊임없는 이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용기의 대 가는 무한한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신문에 난 것, 국민일보에 나온 거예요. 유계준 장로님 가족 이야 기입니다 라는 것이 크게 나왔어요. 이 유장로님은 교회를 그렇게 핍박하고 선교사를 핍박하고 아주 잘못된 그런 삶을 살았던 분이에요. 그래도 이 분이 예수 믿고 돌아와서는 변화를 받고 믿음으로 살 고 다 정리하고 자기 집에다 교회를 세우고 얼마나 믿음으로 사는지 그 다음 6. 25사변이 일어나니까 자녀들 다 6남 2녀를 남쪽으로 다 내려보내고 자기 혼자 산정현 교회를 지키고 공산주의가 와서 산정 현 교회를 가마니 공장으로 만드는 것을 끝까지 버티다가 거기서 순교를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분을 고문한 분이 내려와서 교인이 되었어요. 목사가 되었는데 너무 철저하게 지키더라는 거예요. 끝까지 어떤 고문을 당해도 믿음을 지키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내려온 그 장로님 자녀들 8남매가 믿 음으로 살아가는 용기 있는 이 아버지 한 사람 때문에 얼마나 복을 받느냐? 8남매가 다 의사이고 다 의학박사고 다 복을 받고 셋째 아들인 유기천 장로님은 서울대학교 총장을 하셨고 또 부총리를 하신 이한빈 박사님도 그 집 사위이고 자녀들이 다 잘 되고 너무 너무 복을 받았다는 거예요. 여러분, 자녀들을 어떻게 잘 길러야 합니까? 부모가 용기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녀는 내가 기르 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기르시는 거예요. 내 인생의 앞날을 하나님이 책임 져 주시는 거예요. 아무 리 미인이라도 미인이 갈 수 있는 것은 얼마 못 가요. 사십 오십대 되면 미인으로서의 그 미는 끝나는 거예요. 더 이상 갈 수 있어요? 얼마까지 갈 거예요? 좋은 대학 나온 것 얼마까지 갈 거예요? 세계 최 고의 대학을 나와도 거기서 박사학위를 받아도 그 주는 혜택을 얼마까지 받을 거예요? 직장에서 몇 년까지 있을 거예요? 우리 교회에도 하버드에서 Ph. D 하신 분들도 많이 있어요. 세계의 명문대학에 서 박사학위를 받은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박사학위 가지고 어디까지 갈 거예요? 부모 잘 만나셨어요? 어디까지 갈 거예요? 빽이 있어요? 어디까지 갈 거예요? 하나님을 잘 믿어야 영원히 가 는 거예요. 이 세상 나라 끝날 때에도 하나님 나라는 이어지고 내 머리가 백수가 올 때도 하나님의 손 은 떠나지 않고 늘 같이 하는 줄로 믿습니다. 용기 있는 크리스천이 되어서 내 믿음을 지키는 분을 하 나님은 영원히 보존하시고 그와 그의 나라를 통해 영광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재치 있고 꾀 있고 수단 있게 이익을 좇아서 자기 안전을 좇아서 편안하게 선택하는 길도 있지만 그런 영광은 짧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1910년에 합방하고 한국교회는 많은 어려움 이 왔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할 때 중국과 러시아와 아시아를 다 점령하고 우리는 모두 다 따 라갔어요. 다 갔지만 끝까지 버틴 분들이 교회예요. 교회는 그래서 일본 사람으로 말미암아 너무 상처 가 많아요. 1910년에 일어난 것이 바로 105인 사건입니다. 여기에 다 90%가 교인들이 걸려들었어요. 1911년에는 학교를 또 전부 폐쇄하려고 해서, 일본 사람들의 정신을 집어넣어서 군국주의를 전부 따 르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전부 거기에 맞출 때, 그 때 있던 우리나라 미션 스쿨들이 다 문 을 닫고 2천 몇 백 개가 나중에는 몇 백 개 안 남고 다 문을 닫았어요. 끝까지 버텼어요. 일본이 하자 는 그대로 하면 다 됐는데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숭실대학도 문을 닫았고 우리 장로회 신학대 학도 문을 닫고 버텼어요. 여러분, 우리가 안 되면 문을 닫고 버텨야지 문 열어 놓고 성공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생명을 내어놓고 지켜야 할 땐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나님이 영원히 살려 주 시는 것이지, 조그마한 이익 조그마한 영광 때문에 그 때에도 하이 하이 하면서 일본 따라간 사람들 은 다 망했어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도 교회가 일어났어요. 그 때에 검거 당한 체포당해서 구속당한 사람이 장로교만 2천 4백 68명의 교인이, 목사님들하고 장로님들이 구속이 되었어요. 감리 교가 560명. 장로교 감리교가 같이 들어와도 장로교가 이렇게 뼈대있는 집안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돼 요. 카톨릭은 55명 불교는 220명이에요. 개신교는 그 외에도 성결교하고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다른 데 다 해도 개신교의 십분의 일이 안되잖아요.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나라의 애국과 이 나라의 앞날 을 가장 하나님 편에 서서 이 나라를 지킨 분들이 거의 다 교인들이에요. 왜 그래요? 교인은 아니까 요. 안 가봐도 일본을 망한다는 걸 아니까요. 세상 사람은 앞에 것만 보니까 일본이 망하냐 안 망하냐 보다도 내가 잘 사느냐 못 사느냐 이 앞에 있는 유익만 맞추다보니 온갖 죄악을 짓는 거예요. 드디어 1937년에는 무척이나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어요. 모든 기독교 학교가 신사참배를 강요당하게 되고, 1938년 9월 제27차 전국 장로회 총회에서는 우리 온 교회가 이제는 신사참배를 결정을 했어요. 그때 에 총회장이 홍택기 총회장이었고 평양노회 박응월목사가 제안을 했고, 평서 노회장 박인년 목사님 이 동의를 했고, 안준호회장 길인섭목사가 제청을 해서 이 엄청난 불행한 일에 일본사람들에게 쇠뇌 를 당하고 협박을 받아서 결정을 한 거예요. 그 이후로는 교회가 뭐하러 모였느냐? 전부 일본을 위해 서 모이는 거예요. 예배도 그래서 드리는 거예요. 목사님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일본 신궁을 건축하는 데 나가서 부역도 하고 교회 안에서 항상 기도회를 하는데 전승축하모임 일본이 어디서 이겼다 그러 면 또 그 축하 기도회를 하고 그런 기도회를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열어주었어요. 교회 헌금을 일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방헌금, 기관총헌금, 저 미, 영 양기를 쳐부수는 애국기헌금 그 때 미국하고 이 미 2차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어쨌든 미국하고 영국 놈을 죽여야 된다고 교회가 그 앞 장서서 헌금까지 했다니까요. 이런 일에 주의 종들이 고난을 당하고 수많은 종들이 감옥에 들어가고 어려울 때에도, 이쪽으로 기울어져서 잠시 가방 들고 일본 구두 신고 요사이는 흔해빠진 가죽 가방인 데 그 잠깐 가죽 가방 그거 대단한 건줄 알고 일본 사람들 따라서 그 주는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의 뜻 을 저버린, 정말 멀리 못 보고 앞만 보고 이렇게 살아가는 용기 없는 주의 종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요. 전투기헌금 다 교회에서 교회 종도 일본 위해서 갖다 바치고 교회 지도자가 애국 강연이라고 전국 을 돌아다니면서 학도야 빨리 가서 황국식민으로 영광스럽게 죽자 그러고요 목사가 또 말은 잘 하잖 아요. 일본이 전부 목사들 동원해서하고요. 여성 지도자들은 조선의 처녀들이여 왜 정신대에 나가서 저 충성스러운 일본 군인들에게 봉사하지 않느냐 그러고 전부 정신대에 동원시키고 이렇게 그 시대 를 적당하게 살아가면 그만이지 뭐 세월 지나면 그만이지 아닙니다. 나는 이걸 들추어내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 시대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언제나 살아야 돼요. 그래서 성도들은 후회하지 않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은 가보고 후회하고 살다가 후회하고 해 보고 후회하지 만 우리는 보나 안 보나 이 길이 될 길이냐 안될 길이냐 하는 것은 보면 다 알게 되어 있어요. 왜? 말 씀을 통해서 보니까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보면 이 사람이 될 사람이냐 안될 사람이냐 보면 아 는 거예요. 후회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이렇게 믿음으로 철저하게 일본을 향해 저항하니까 많은 지성인들과 신문들은 교회를 핍박을 하고 그 대표적인 분인 춘원 이광수는 굉장히 유명한 문학가이지만 교회를 그렇게 욕했습니다. 신문에 난 것만도 이렇게 나 있어요. 금일 야소교는 너무 계급적이다. 야소교는 그 때 예수교라는 말이에요. 둘째, 교회는 지상주의다.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게 말이 되냐는 거예요. 구원이 어디든지 있는 것이지 교회만 구원이 있다? 셋째, 교역자는 너 무 무식하다. 성경만 가지고 말하니 얼마나 무식한지 모른다. 교회는 미신적이다. 무슨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어? 뭐 죽고 나면 부활이 있단 말인가? 기도하면 다 이루어진다? 세상에 그런 미신이 어디 있냐고 막 공격을 했어요.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은 그 시대를, 오늘 우리는 이 시대를 하나님의 자녀 로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용기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 한국의 큰 교회들이 다 정신을 차리고 오늘 한국의 주의 종들이 정신을 차리고 내가 이 교회 목회해서 자자손손 명성교회에 잘 살아야지 그러면 벌써 하나님 앞에 땡이에요. 나는 이 교회를 떠나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나도 잘되고 자손도 잘되는 거예요. 너무 물질 걱정하지 말고 앞날 걱정하지 말고 믿음 있는 용기 있는 성도가 되 어서 내 믿음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처럼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으로 죽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 떠날 때 찬양하고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 세 다만 내 비는 말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더욱 사랑♬ 숨질 때 하는 말 이것일세 살았을 때도 예 수 이 땅을 떠나서도 예수 나는 예수 위해 살고 예수 믿는 믿음으로 바로 살 때 그 사람은 정치적으로 도 인정 받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고 애국자로 길이길이 남고 한 순간에 권력에 맞추어서 놀아난 사 람들은 다 그 권력과 함께 쓰레기처럼 버림당합니다. 우리는 예수 나라 위해서 살아갈 때 권력이 지 난 다음에도 이 세상 천 대, 만 대, 천 년, 만 년 지날지라도 그 이름이 생명록에서 빛나고 다니엘서에 있는 대로 샛벽별같이 빛날 줄로 믿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고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어떤 유혹이 있어도 물리치고 죄는 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복된 성도, 영원 영 원히 승리하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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