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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문 난 교회 ① (행 11: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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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선화공주와 서동왕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백제의 서동 왕자는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선화공주가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인 서라벌로 갔습니다.
  그는 동네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쳤습니다.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정을 통해 두고 서동(薯童)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선화 공주님이 남몰래 서동 왕자를 좋아한다는 이 동요가 장안에 퍼지자 신라 조정의 대신들이 공주의 품행을 문제 삼았습니다. 결국 선화 공주는 억울하게 시골로 유배당하게 되었습니다.
  공주가 대궐을 떠날 때 서동 왕자는 선화 공주를 백제로 데려와 결혼하였습니다.
  야심 많은 소년이 한 여인을 사모한 나머지 사랑을 이루기 위해 그 여인이 자신과 스캔들이 있다는 식으로 소문을 퍼뜨려서 사랑을 이루었다는 이 이야기는 유치하기는 하지만 동화적이고 낭만적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문이 다 그렇게 낭만적인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악의가 있는 헛소문도 있고 전혀 근거 없는 뜬 소문도 많기 때문입니다.
  선화 공주의 입장에서 보면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셈입니다. 전혀 근거없는 헛소문 때문에 좇겨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서동왕자는 악의적인 헛소문으로 선화공주를 난관에 빠트린 것입니다. 악의적인 헛소문을 악성 루머 (malignity rumor) 라고 합니다. 이것은 칼보다 더 무섭습니다. 한 기업을 파탄에 이르게도 하고 한 사람의 인격을 무참하게 손상시키기도 합니다. 진실이야 어떻든지 소문은 한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갑니다.
  그러므로 소문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신라 조정의 대신들은 소문의 진위를 따져 보지도 않고 공주를 탄핵하고 말았습니다. 선화 공주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말에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은 바로 소문의 위력을 두고 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소문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남을 헐 뜻고 해치려는 나쁜 소문은 잠재우고 복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몇 주 전에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우리 교회에 등록하신 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 분들을 익산에서 삼례로 이사를 왔습니다. 어느 교회를 정할까 고민하는데 직장 동료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양정 교회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삼례에서 송천동이면 거리가 조금 멀기는 하지만 우리 교회에 와 보았고 첫 번째 출석한 날 마음이 끌렸습니다. 재정 수입의 30%를 선교비에 쓰는 교회라면 정말 소문과 같이 좋은 교회일 것이라고 생각하여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결국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만 믿고 영접하기만 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소문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소문이 나쁜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예수 믿는 사람들에 대한 소문이 나쁘면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좋은 소문을 퍼뜨리고 그 소문과 같이 되는 교회를 만듭시다.

  성경에 보면 소문은 하나님이 이용하시는 복음전파의 수단인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구약 때부터 소문을 이용하여 복음을 만방에 퍼지게 하였습니다. 왕상4:34절에 보면 솔로몬의 지혜에 관한 소문을 듣고 천하 모든 왕 들이 그 지혜를 들으러 왔습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솔론몬의 소문을 직접와서 보고 확인하고 감탄하였습니다. 모두가 다 말합니다. 왕상10:6절에 보면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진실하도다” 라고 말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도 여호와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다고 합3:2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9:26절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갔다고 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 병으로 앓던 여인을 고친 일과 죽은 소녀를 살리신 일들이 소문으로 각처로 퍼져나가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마9:31절에 보면 두 소경이 고침 받은 후에 나가서 소문 내지 말라고 엄히 경계를 받았는데도 “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막 1:28절고 눅 4:14-1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의 소문은 온 갈릴리 그리고 온 사방에 두루 퍼져나갔습니다.
  (막 1: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눅 4:14-15)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눅 23:8절에 보면 심지어 간사한 헤롯왕까지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를 한 번 만나서 그가 행하는 기적을 보기를 원하였습니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눅23:8) 
  이와 같이 소문은 복음 전파의 한 가지 수단이었습니다.
  예수의 소문을 퍼뜨리는 것이 복음 전파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소문난 교회가 두 곳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와 안디옥 교회입니다.
  (살전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행11: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
  오늘은 소문난 두 교회 중에서 안디옥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고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성령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성령의 소리를 들었던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과감하게 이방인들에 전도했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유대 주의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여 이방인들에게는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루살렘에 큰 환난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은 복음이 온 세상으로 흩어지게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행 11:19절에 보면 스데반 집사의 순교 후 큰 박해가 시작되자 사람들이 여러 곳으로 흩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왜 핍박을 주었습니까?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되도록 사람들을 복음을 믿는 사람들을 흩어놓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령의 뜻과 음성을 예루살렘 성도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흩어진 후에도 그들은 복음을 유대인에게만 전하였습니다.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행11:19)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성령의 뜻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행 11:20절에 보면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였다 고 했습니다. 
  안디옥 성도들은 성령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성령의 소리를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인 헬라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이방인 전도를 위해서 안디옥 성도들에게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행 13:2-3절에 보면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이 소리에 순종했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울과 바나바를 세워 이방인의 선교사로 파송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소리를 들을 알았으며 성령의 소리에 순종할 줄 아는 교회였습니다.

  교회는 성령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소리에 밝고 성령의 소리에 둔하면 그것을 성도의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 지식에 밝고 신령한 세계에 대한 지식이 무식하면 안 됩니다.

  (2)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한 교회였습니다. 
  행13:2-3절에 보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신약 교회 중에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목회자였고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한 후에도 안디옥교회는 물질적인 협력선교를 아끼지 않고 하였습니다. 
  행 11:27-30절을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글라우디오 황제 때 즉 서기 41-54사이에 예루살렘에 큰 기근이 있었습니다.
  이 때 안디옥 교회는 구제 헌금을 작정하고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통해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에게 전달함으로서 이방인 교회가 모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를 구제하는 최초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지교회가 모 교회에 선교비를 보낸 것입니다.

  (3) 성도들의 마음이 일치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 13:1-3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행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안디옥 교회의 구성원들을 분석해 보면 아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일치를 이루었습니다.
  a) 신앙의 선배인 바나바와 후배인 바울이 하나 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b) 헤롯의 젖동생으로 왕족인 마나엔과 별명이 니게르 즉 아프리카 흑인 출신인 시므온이 하나 되었습니다.
  c) 유대인 출신인 사울, 마나엔, 바나바와 이방인 출신인 시므온, 루기오가 하나 된 교회입니다.
  d) 부자인 마나엔과 가난한 사람인 시므온이 하나 되었습니다.
  e) 무식한 시므온과 유식한 바울이 하나 되었습니다.

  교회는 하나 되는 곳입니다. 하나 됨은 화목해야 가능합니다. 화목하지 않으면 화합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교회는 지난 주일 밤부터 한 주간 설립 제 18 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행사를 했습니다.
  지난 18년의 발자취와 각 기관들의 활동 사항을 돌아보는 사진전을 시작으로 김 선진 선교사의 파송식, 춤추는 예배자들의 축하 공연 및 부흥회 그리고 선교 바자회로 이어진 행사가 우리 주님의 은혜와 모든 교우들의 뜨거운 성원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특히 이번의 모든 행사에는 화합, 참여, 선교라는 세 가지 의미를 담았습니다.

  첫째는 화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두가 서로 화목하고 화합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화목이 없으면 화합도 없습니다. 화합이 없으면 부홍도 없습니다. 화합은 겸손과 섬김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둘째는 참여입니다.
  누구 한 사람의 일이 아닌 온 교우들이 합심하여 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바자회였습니다. 평소 교회 일에 모습을 잘 보이지 않던 성도들이 이번 바자회를 통해서 힘을 합하였습니다.
  개회 예배에 참석한 숫자는 지난 번 봄 바자회 때 100명보다 30여명이 더 많은 130명입니다. 이번 바자회의 중심에서 일하고 움직인 일군의 숫자입니다. 그리고 첫날 밤, 조금 과장한다 해도 괜찮을 정도로 바자회 장을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메웠던 모든 교우들과 외부에서 온 많은 분들 그들 모두가 화합과 선교의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셋째는 선교입니다.
  이번 바자회의 모든 수익금은 중앙아시아 키르키즈스탄의 수도인 비쉬캑에 설립한 소망교회 증축공사 마무리와 비품 구입에 쓰일 것입니다. 비쉬켁 소망교회는 우리 교회가 김기호 선교사를 통해 2년 전에 개척 설립한 교회입니다. 현재 100명의 성도들이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현재 많은 청년들이 배출되어 방시몬 선교사가 사역하는 키르키즈 기독 신학교에 입학하여 주의 사역자로 양성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는 이런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어쩌면 바자회 수익금보다 더 귀한 것들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은 보람과 긍지입니다. 비록 힘들기는 했어도 분명 힘들었던 만큼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그것은 바로 화목과 참여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열매 맺어지는 선교의 열매입니다. 
  사진전을 위해 수많은 사진들을 편집하느라 몇날 며칠 밤을 새우고 견디다 못해 병이 나서 앓아누우면서도 맡은 책임들을 감당하고 축하공연과 바자회 행사를 위해 묵묵하게 계획하고 진행하기 위해 애썼던 모든 일군들의 노고를 기억합니다. 이런 일군들이 있기에 교회가 더욱 아름다워집니다. 안디옥 교회처럼 우리교회도 소문난 교회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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