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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낙망할 수 없는 이유 (눅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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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요즘 우리 자신과 주변을 둘러보면 신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걱정 근심 소리, 탄식 소리, 투털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신문을 봐도 그렇고, 방송을 들어도 그렇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경제 불황인데다가 국가적인 여러 이슈들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이 심란합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도 갖가지 걱정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답답하다!” “막막하다!”

그런데 한편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그런 상황이 비단 요즘뿐인가? 정도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사실은 세상살이가 늘 그렇습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어쩌면 찬송가 474장 가사 그대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 이 세상에 곤고한 일이 많고 참 쉬는 날 없었구나 ... 이 세상에 죄악된 일이 많고 참 죽을 일 쌓였구나 ... ”

그렇다면 여러분,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주변의 상황이나 환경만 탓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다 틀렸다, 이러다가 망해버리겠구나 ... 그런 식의 패배주의에 빠지면 곤란합니다. 오히려 주변 상황이 어려울수록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차피 인생은 문제 투성이 아닙니까?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숨지는 순간까지 대충 그럴 겁니다. 그러나 그 모든 문제에 해답이 있음을 기억해야 됩니다. 문제가 어렵다고, 문제가 많다고 답이 없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답이 없는 문제는 없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치르는 시험에는 종종 그런 경우가 생기기는 합니다. 이른바 출제 미스가 가끔 있기는 하죠.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출제 미스가 없습니다. 세상에 온갖 문제는 비록 인간들이 일으키는 문제일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 일어나는 겁니다.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그 하찮은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져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세세한 모든 문제에 대해 소상히 알고 계십니다. 당연히 그 답도 알고 계십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문제가 혹시 어려울 수도 있고 많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풀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풀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식한다면 우리는 패배주의에 빠져서 허덕이는 우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가 바로 그겁니다. “하나님에게 답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오라! 하나님께 기도하라!” 문제가 쌓여있는 우리의 인생, 오늘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결코 낙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당당히 승리하는 비결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 살펴봅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인데, 제목을 붙인다면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라고 할 수 있겠죠. 한 도시에 가난하고 힘없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여성의 지위가 격상되고 사회 활동을 합니다만, 여성들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특히 혼자 사는 여인들이 아주 어려웠습니다. 말하자면 소외 계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 억울한 일이 생겼습니다. 재판을 통해 해결을 봐야 되는데 당시 재판관은 로마 정부에 빌붙어 사는 자들로 뇌물이나 먹고 그릇된 판결을 하는 악명 높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힘없고 배경 없는 여인으로서는 절망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굴하지 않고 찾아갑니다. 아마 문전박대를 당했을 겁니다. 그런데도 또 찾아 갑니다. 또 가고, 또 가고 ... 그러니까 나중엔 하도 귀찮아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불의한 재판관도 그렇게 간청하면 들어주는데, 하물며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 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비록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우리 앞에 많은 문제들이 쌓여 있다 할지라도 결코 낙망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낙망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우리에게 기도의 무기가 있기 때문에 낙망할 수 없습니다.

[1]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낙망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암담한 현실이라도 하나님이 계시면 괜찮습니다. 왜 그런가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7절에 “하물며 하나님께서 ... ” 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과 대조적으로 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가요? 여러 가지 면이 있지만 세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절대 보호자 하나님 :

인생은 마치 광야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가운데 동행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시121:3~6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 하리로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인간은 아무리 철저해도 졸며 잘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분초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사막길이 낮에는 뙤약볕으로 일사병에 걸릴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밤에는 달빛으로 훤하게 노출되어서 강도나 맹수의 위험 가운데 노출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편 그늘이 되셔서 밤낮으로 보호해 주십니다. 한 마디로 절대 보호자로 우리의 인생을 지켜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낙망할 수 없습니다.

②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 :

우리는 대개 문제의 크기 앞에 질려버립니다. 두려워서 벌벌 떱니다. 그런데 사실은 문제가 아무리 커도 하나님은 더 크시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일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 우리 안에 계신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에 있는 마귀보다, 그 어떤 문제보다도 더 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면 문제없습니다. 문제가 큰 게 아니라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적은 겁니다.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낙망할 수 없습니다.

③ 나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

그 위대하신 하나님이 나와 상관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분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입니다. 롬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 이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논리적 사고나 이성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에 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감화 감동시켜 주셔서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자체가 기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면 이야기를 끝난 겁니다. 더 이상 군더더기를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부모의 입장이라면 자식을 엄청 위해 줍니다. 아낌없이 주고 또 줍니다. 없으면 꿔다가도 줍니다. 하나님은 더 하십니다. 전지전능하시니까 어디 가서 꾸실 필요도 없습니다. 롬8: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롬8:35, 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가운데 하신 말씀도 이를 증거합니다. 마6:26~30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아니 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 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바로 이런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낙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가 왕이기에 장군이기에 담대했던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46:1~3을 보면 더욱더 실감나는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 하리로다” 환난을 만나도 큰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에 두렵지 않습니다.

이따금 여행을 할 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듭니다. 몇 명이 여행을 해도 먹을 것 챙겨야죠, 입을 것 챙겨야죠, 숙소 준비해야죠, ... 정말 복잡합니다. 그럴 때면 출애굽기나 민수기에 나오는 모세가 생각납니다. 수백만 명을, 그것도 40년 동안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이것 저것 챙겨주고, ... 결국 가나안까지 안착하게 되는데, 과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대단합니다. 뭐 갖고 그랬나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오직 하나 지팡이만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지팡이가 무슨 요술 지팡이였나요?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다는 임재의 증표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셨기에 그 모든 게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한 분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습니다. 바닥을 쳐도, 모든 것을 잃
어 버렸어도 아직은 낙망할 때가 아닙니다. 미국에 산도스 치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들
어온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 못지 않은 대형 체인점입니다. 그 창업자 카놀 산도스의 이야
기입니다. 그가 사업을 하다 쫄딱 망했습니다. 게다가 빚이 수백만 불이었습니다. 그때 그
의 나이는 60세였습니다. 병까지 들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누워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제 모든 게 끝났습니다. 살아봤자 자기에게도 고통, 남에게도 고통입니다. 그래서 자살할
생각으로 병원을 탈출합니다. 그런데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어디선가 찬송 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서 가보았더니 작은 교회당에서 노인 한 분이 기
도 하다가 찬송을 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찬송가 가사와 곡조가 그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을 믿고 용기를 내서 새 출발을 했습니
다. 고물을 주워다 파는 일부터 했습니다. 돈이 조금 모이자 치킨 집을 냈는데 그게 곧 산
도스 치킨의 시작입니다. 그 후 번창에 번창을 거듭해서 해서 억만장자가 된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 주심을 믿습니까? 그러면 어떤 경우에라도 낙망할 수 없습니다. 부디 그 신앙으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우리에게 기도의 무기가 있기 때문에 낙망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무한 능력에 접속되는 것(connect)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마치 가전제품이 전원에 연결되지 않으면 먹통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기도로 하나님께 연결되지 않으면 먹통입니다. 반대로 먹통 같은 우리 인생이라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연결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우리 인생길에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신앙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무엇으로 성공했던가? 그들은 한결같이 돈도 빽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무기 하나 갖고 승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소년 시절 이방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가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어서 성공했나요? 아닙니다. 오직 하나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 제국의 총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그를 이렇게 부를 수 있습니다. 무릎 하나로 평생을 승리한 사람!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렘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기도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기도는 지렛대와 같습니다. 연약한 우리가 조금 힘을 들여 기도하지만 그 결과는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하면 좋을까요? 본문에 나타난 여인의 모습으로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강청하는 기도’를 드리면 됩니다. 그 여인은 재판관을 계속 찾아가서 간청했습니다. 이게 강청하는 기도입니다. 성경을 보면 강청하는 기도를 드린 인물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기도를 좋아하십니다. 한나가 그랬고(사무엘상 1장), 수로보니게 여인이 그랬습니다.(마가복음 7장) 강청하는 기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① 간절한 기도 :

간절함이란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으면 끝이라는 절박함을 의미합니다. 외길을 가는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여인이 그랬습니다. 다른 데 가서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간청합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도 그랬죠. 사38:2 보면 히스기야가 중병으로 죽게 되자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합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했다는 것은 다른 데 가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응답하셨고, 수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② 애통하는 기도 :

어거스틴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의 탄식은 하나님을 약하게 한다.” 하나님이 어찌 약해지겠습니까? 그만큼 하나님이 탄식하고 애통해 하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눈물의 기도를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가족을 위해 애통하며 눈물로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들어주실 겁니다. 제 대학 동기 여학생이 있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신앙을 계속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후일 예수를 믿게 됐는데 어찌 열심인지! 한번은 모친이 중병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답니다. 자식을 위해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도저히 그냥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체면불구하고 병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 애통하며 기도했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기적적으로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어떤 분은 남편에게 신앙을 권해도 계속 거부하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눈물로 기도하다가 그런 생각이 떠올랐답니다. 자기 스스로 교회에 안 가니까 신발이라도 갖고 가자 그런 생각입니다. 그래서 새벽마다 신발짝을 안고 와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그 마음 변화시켜 주셔서 제 발로 오게 해 달라고. 여러분, 어떻게 됐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들어주셨죠.

③ 끈질긴 기도 :

강청하는 기도의 가장 큰 특징은 끈질김입니다. 끝을 보는 겁니다. 옛날 산 기도 많이 할 때 소나무 뿌리 뽑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 믿을 때 정말 나무 하나 뽑아야 되는 줄 알고 나무 붙들고 씨름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만큼 인내심을 가지고 중도에 포기하지도 말고 끝까지 기도하라는 겁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소원을 성취할 때까지 가고 또 갔습니다. 5절 보면 ‘괴롭게 한다’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휘포피아조’인데, 눈 아래 부분을 때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제가 미완료, 즉 계속적인 행동을 나타냅니다. 그 여인이 재판관을 찾아가는 것이 마치 눈 아래를 멍이 들도록 계속 때리는 행위와 같이 괴로운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만큼 끈질기게 강청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승리했죠. 이런 끈질김이 기도 생활 가운데도 있어야 합니다. 몇 번 기도하다 걷어치우는 일을 반복하면 평생 기도의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야고보 선생도 인내하는 신앙을 강조했습니다. 약5:7~11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성도 여러분! 주변을 바라보면 낙망할 일 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망해서도 안 되고, 낙망할 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겐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기도할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결코 낙망치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강청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래서 항상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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