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내 생각에는 (왕하 5:8-14)

  • 잡초 잡초
  • 535
  • 0

첨부 1


- 설교 : 송기현 목사

  어떤 낚시꾼이 낚시를 하는데 큰고기는 걸러내고 작은 고기만 바구니에 담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모든 낚시꾼들이 하는 것과는 반대로 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놓아주고 보다 더 큰 것을 바구니에 담는 것이 상식이며 낚시법입니다. 그래서 하도 이상해서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우리집 고기를 굽는 후라이팬이 15인치 밖에 안되서 후라이팬 안에들어가는 고기만 바구니에 담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후라이팬의 크기만 생각할 줄 알았지 고기를 토막내서 굽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사람이 생각이 부족하면, 생각이 막혀 있으면 손발이 고생하고 육체가 고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생각을 하면서 사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생각은 그 사람됨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고 사느냐가 그의 인생을 결정하며 그의 미래를 결정하며 영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루 중에 무엇을 가장 골똘히 생각하며 사십니까?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인 것입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인격을 거두고 인격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각에서부터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모든 만사를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옛페러다임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살아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내 생각을 버리고 나보다 더 나은 이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아서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한센씨병(문둥병)에 걸린 아람의 나아만 장군도 "내 생각에는" 하면서 자기 생각에 갖혀있었습니다. "내 생각에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이러한 사고의 틀은 영적인 한계가 되고 영적인 경계가 되어 믿음의 기적을 일으키는데 장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 생각을 깨트리고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1. "특별한 의식을 통하여 고쳐줄줄 알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로부터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는 말을 전해듣게 되었을 때에 그는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위엄에 걸맞는 정결케 하는 거창한 의식을 기대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체면을 따지고 신분을 따지고 형식을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선지자를 통해서 무엇인가 대단하고 거창한 의식을 행함으로써 자신의 병이 나을 줄 생각을 한 것입니다. 무당 푸닥거리하는 식에 무슨 의식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대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쉽게 빠질 수 있는 믿음의 과오입니다.

  나아만이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 노하여 물러가려는 일을 하려했습니다. 분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병이 믿음으로 고쳐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믿음의 역사는 자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을 때 일어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그것을 알게 해 주고 전해주고 도와주는 것일 뿐입니다.

  2. "아람에는 더 맑고 더 큰 강이 있거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만이 생각할 때 요단강물보다 더 나은 물이 다메섹의 아마나와 바르발 강에 흐르고 있었습니다. 다메섹의 강이 이스라엘의 모든 강물보다 더 깨끗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치료한 것은 팔레스틴에 있는 요단강이냐 아니면 다메섹의 아마나와 바르발 강이냐하는 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 자체의 맑고 더러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선포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곧 거기에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요단강물로 뛰어드는 믿음이 그를 치료한 것입니다. 요단강물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강, 겸손의 강에 들어가는 믿음이 능력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3. "왜 하필이면 일곱번이어야 하느냐?"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요단강 물이어야 하며 왜 하필이면 일곱번이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빠지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빠질 수 있는 어쩌면 당연한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만 이것은 허망한 생각인 것입니다. 우리가 뚫고 넘어가지 아니하면 안될 견고한 우리의 불신앙과 의심의 성벽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믿음의 과오를 부채질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 말씀대로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단강물에 7번씩이나 들어갔다 나왔다는 하는 일을 반복하는 것은 쓸데 없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쓸데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서 계속적으로 하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왜 한번이나 다섯번이나 여섯번이면 안되느냐는 자신의 생각을 이기고 7번씩이나 반복하여 그 강물에 뛰어들었을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나아만은 하마터면 좋은 기회를 놓칠뻔하였습니다. 그는 일생일대에 가장 큰 과오를 범할 뻔 한 것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도 때때로 "믿음의 과오"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주의 말씀보다도 오히려 내 생각에는, 혹은 내 소견에는 이러저러하다는 자기 주장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 가운데서 발생하는 아주 뿌리 깊은 본성에 의해서 이 믿음의 과오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게 된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 치유 이야기 가운데 나타나 있는 그 자신의 모습이 우리가 "빠지기 쉬운 믿음의 과오"가 어떤 것인가를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는 좋은 실례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처럼 "내 생각에는 이러 저러하니"라는 이 무서운 믿음의 적을 이기셔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믿음에 있어서 거치는 돌이며 우리를 믿음에서 넘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믿음의 과오로 몰아넣는 불신앙적이고 악마적이고 사탄적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머리숙이기를 배우지 아니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내 생각에는"하였던 것을 무너뜨렸습니다. 하마터면 내 생각을 고집하다가 과오를 범할 뻔 했는데 그 종들의 충고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전해준 처방전을 믿고 요단강으로 내려갔고 그리고 그곳에서 일곱번 몸을 잠그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서 그의 문둥병은 고침을 받았는데 그의 육신이 어린아이의 것과 같이 부드러운 살결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믿음은 이처럼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