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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파워 전도자로 삽시다 (고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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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지난 한해동안 우리 나라 주요 교단의 교세가 발표된 것을 얼마전에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우리가 속해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경우 지난 회기보다 2.1%성장하여 교인수가 239만 8331명에 교회수는 2.2%성장하여 7259교회라고 합니다. 다음 두번째가 장로교 통합의 경우 전체교인수가 지난1년 239만5323명으로 2.85%성장하였다고 합니다.교회수는 6978교회라고 합니다. 세 번째가 감리회로 전체교인수가 1백44만 5539명에 교회수는 5492교회라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올한해 교세가 2-3%정도의 성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통계는 과거보다는 그래도 많이 정확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허수의 통계가 있는 것을 감안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몇 년씩 교회출석하지 않는 사람을 그대로 잡고 있거나 타교회로 갔거나 한 분들을 복수로 잡고 있는 점들을 고려한다면 사실 2%대의 성장은 사실 정체내지는 마이너스성장이라고 해야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지만 신도시나 도시의 성장하고 있는 교회들을 가만히 보게 되면 전도되어져서 수직이동이 된 모습보다는 교회에서 교회로 이동한 수평이동의 현실임을 우리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신앙 생활을 묻는 설문지를 조사하던 중에 당신은 몇 명이나 전도하였는가? 라고 하는 질문에 평생에 전도한명 제대로 하지못한 교인들이 많은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것은 복음으로 전도되어 교회를 이루어 가면서 전도에 대한 관심과 번식에 열정보다는 사람의 지혜를 따라 당을 나누고 싸우고 죄의 문제로 썩어가는 건강을 상실한 교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성장이 멈추고 교회내적으로는 파당과 분쟁으로 싸우고 죄의 문제로 썩어가는 미성숙한 교회의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하여 합니까?

이시간 우리가 대하고 있는 본문의 고린도교회도 그런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전도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바울에게 들려온 소문은 교회가 파당을 지어 싸우고 심각한 여러 가지 죄의 문제로 교회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미성숙한 교회인 고린교회의 문제를 바울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주인되신 주님이 계시기에 새롭게 회복되고 변화할 수 있음을 기대하면서 복음전도자로서 자기를 소개합니다.

오늘 교회가 가장 회복되어야 할 모습은 바로 파워있는 전도자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힘있는 주님의 증인들의 수가 더해가는 교회야 말로 지금 이시대에 이 지역에 우리주님께서 가장 기대하시는 모습일 것입니다. 전도는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최대의 명령입니다.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귀한 주님의 명령이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이 아니라 반드시 실천해야 할 절대명령입니다. 교회의 우선 사명 그리스도인의 우선사명은 바로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바울은 가장 파워있는 전도자 였습니다. 그러나 바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도 파워있는 전도자로서 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과연 바울을 통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파워있는 전도자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1. 사람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노니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때에 자기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여기 복음을 증거할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노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바울은 많은 철학적인 지식과 세상적인 지혜의 소유자입니다. 당대에 학문적으로는 굉장히 수준에 올라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복음을 전할때에 바울은 그것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바울은 그것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왜 바울이 이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본래 2장 1절의 말씀은 1장 31절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원어의 문맥에서 보면 “따라서 내가”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전도하여 개척하였습니다.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증거하고 개척한 이유는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의 지식과 지혜로 전도하지 않았고 목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전한 것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소명과 맡은 사명자로서 순종하여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유창한 말솜씨와 세상적인 철학의 지헤로 전도하였다면 아마도 바울 자신이 높임을 받고 인기를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의 지혜로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바울은 3절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 것은 오직 주님만이 자랑되어지기 위함입니다.철저하게 복음의 종으로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위한 수종드는 것을 봅니다.

오늘 우리는 보통 전도하라고 할때 가장 걸리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나를 바라보면서 전도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자신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우리를 전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나같은 사람이 전도한다고 될까?”“나는 배우지 못했고 나는 변변하게 성공하지도 못한 사람이야”“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해”라고 자신을 바라보면서 함정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오해하기를 전도란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많고 말을 잘해야 잘 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복음을 이땅에 증거하기 위해서 좀 세련되고 말잘하고 많이 배운 지식인들을 우선적으로 구원하면 전도가 더 빨리 효율적으로 될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복음을 어떤 사람들에게 적용하십니까?

고전1장26절에 보십시오.“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좋은자가 많지 아니하도다”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육체를 따라 세상적으로 지혜없는 자,문벌이 좋지 못한 사람을 먼저 구원하셨습니까? 바로 고전1장27절에 이유를 소개합니다.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고전1장29절에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전도할 수 있습니까?

고린도교회의 경우 전도가 없었던 교회였습니다. 모든 교인들이 자신을 높였습니다.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왕으로 인식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복음 안에서 구원받은 자신을 복음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고전4:13에 보면 만물의 찌끼같이 여겼습니다.사람중심의 신앙은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중심이 되어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그러기 위해서는 내안에 나는 죽고 주님만 살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당시에 전도자로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김익두 목사님이십니다. 그는 전도되기전에 망나니 인생을 살았습니다.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고 난 뒤에 하루는 부고장을 냈습니다 “김익두 모월 모일 죽어서 장사지냅니다” 라는 부고장을 냈습니다. 부고장을 받아든 많은 사람들은 “에이 그놈 못된 놈 잘 죽었다” 사람들은 좋아했습니다.그러나 그 부고장은 사실 김익두가 과거의 불량하던 자기를 죽고 예수안에서 새로운 탄생을 알린 것입니다. 어느날 죽은 줄 알았던 김익두 목사님이 거리에 나타나 전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김익두가 죽었는데 귀신이 나타난 줄 알았습니다. 그때 김익두 목사님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깡패 김익두는 죽고 예수님믿고 새사람 된 김익두입니다”라면서 열심히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믿음은 항상 예수님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중심이 된 신앙은 나밖에 모릅니다. 교회가 사람이 중심이되면 싸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강동교회가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파가 나뉘어지고 싸우지 않는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는 아닙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우리가 더욱 같은 마음 같은 뜻 같은 비젼으로 하나가 되어 예수신앙 예수중심의 교회로 가야 할줄로 믿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자존심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자랑하는 것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세상의 곧 없어질 돈과 명예와 직책으로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우리에게 지혜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시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인줄 믿습니다.

2.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합니다.

4절 “내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라고 합니다.
누가 능력있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여기 능력있는 전도자의 삶을 살았던 바울은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도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바울과 함께 하였던 성령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는 성령님과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나타나셔서 바울에게 전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도하시는 분들은 전도는 쉽다고 합니다.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성령의 능력을 다 믿고 그 능력을 맛보면서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중에 두종류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면 육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살지 않고 구원은 받았지만 자신의 육을 따라서 사는 어린아이의 신앙입니다.이분들은 전도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내가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면서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살지 않고 그냥 사람을 따라 행하면서 자기 안위만을 좇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믿고 인도함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분들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그 능력으로 전도하고 그 뜻대로 사시는 분들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따라 사시는 분들을 보면 우선 자기 안에 성령님이 있음을 확신하고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고전3:16에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합니다.바울같이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안에 성령을 의식하고 그 능력의 인도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가장 외적으로 나타나시는 모습은 전도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도록 나타나십니까? 우선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보여주시는 능력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바울은 고전2: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라고 합니다.여러분 성령님께서 전도자를 통해서 가장 드러내어 알게 하는 비밀은 바로 십자가의 비밀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도록 또 증거할 수 있도록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주십니다. 우리를 증거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지혜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지혜를 보여주시고 증거하도록 도우십니다.복음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많은 지혜가 요구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땅에서 전도하실 때 보면 얼마나 지혜로우십니까?
사복음서에서 우리 주님이 전도할 때 보면 상황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형편에 맞는 지혜로운 질문과 접근을 통하여 전도하셨습니다. 가령 남편을 6명이나 교체한 여인에게 전도하실 때 보십시오. 주님은 그 여인이 우물물을 길러온 시간에 물을 중심으로 하여 그 여자에게 접근합니다. 사마리아여인에 ‘물을 좀달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자기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예수님에 대해서 호감을 갖지요.그때 주님은 의아하게 여기는 그녀에게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여인이 나에게 그 물을 달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 죄가 있으면 그 물을 마실 수 없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그 여인의 숨겨진 죄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합니다. 그때 여자는 예수님이 선지자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영적으로 곤고한 이 여인에게 신령한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생을 말하자 예수님을 메시아요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렇게 주님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이 여인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합니다.

여러분 바울의 경우에도 지혜의 전도를 했습니다. 고전9장에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울의 전도법을 보면 상황에 맞는 지혜의 전도법입니다. 고전9장에 보면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마치 변신의 귀재인 카멜레온처럼 바울은 상황에 맞는 지혜로운 모습으로 유대인도 이방인도 모든 사람들을 전도하였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어떤 선교사님이 아프리카 식인종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혔습니다. 식인종들이 서양고기를 먹기로 작정하고 물을 끓이고 잡아먹을 준비를 했습니다. 선교사님이 이때 지혜가 생겼습니다.추장에게 말을 했습니다. “추장님 저를 잡아먹으실 작정이신데 불행히도 제 고기는 맛이 없습니다. 그러니 저를 살려두는 것만 못합니다” 추장이 말했습니다. “웃기지 마라 우리는 웬만하면 가리지 않고 다 먹는다” 그러니까 선교사님이 “그럼 정 못믿겠다면 제 살맛을 보십시오.칼을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말을 했습니다. 칼을 빌려주니까 오른쪽 다리를 걷고 종아리 살을 깍아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먹어보니까 정말로 맛이 없었습니다. 추장이 말을 했습니다. “얘들아! 저놈은 정말 못먹을 고기니 살려두라”했다고 합니다. 그 선교사님은 전쟁 중에 발을 다쳐 오른쪽 다리가 의족인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전도할 때 우리에게 기도를 주십닏. 그런데 성령님께서 지혜로서 역사하시는 전도를 위해서 우리가 먼저 해야 할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지혜로 역사하십니다. 전도하기 전에도 기도해야 하고 전도하면서도 기도해야 하고 전도하고나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강릉이라고 하는 환경에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들에 필요한 지혜의 전도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관계에 의한 전도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지혜의 전도법은 우리가 어떤 전도대상자를 사랑으로 기도하면서 잉태하게 하고 접촉하면서 관계를 맺으면서 정한 때가 되면 초청하여 주님께로 데리고 오는 전도방법입니다. 이 방법이 우리 지역에 가장 잘 맞는 지혜의 전도방법이라는 것을 우리가 이미 6번에 걸쳐서 우리는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말을 잘 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의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잇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를 잘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은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은 사람은 한 영혼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하고 접촉하면서 관계합니다.그 마음은 마치 아비가 자식을 대하는 것같고 목자가 양을 대하는 것같이 철저하게 희생하고 주는 사랑의 마음입니다.두려움없는 마음입니다.진실한 마음입니다.오늘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힘바 되어진 지혜의 사람으로 바울같은 전도자로서 우리 모두가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3. 믿음의 결과는 하나님께 맡깁니다.

5절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하였노라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이 믿음의 결과는 자신들의 노력과 지혜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면 주의 복음을 증거하면 그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3장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라고 합니다. 고린도교회가 있기까지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아볼로가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열매를 거두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서 복음을 증거한 자신에 대해서 바울은 어떤 입장입니까?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전3:7에서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랴”고 합니다. 전도자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사명대로 일하는 일꾼일 뿐입니다. 그 열매,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결과와 열매를 바라보지 말고 그냥 최선을 다해 맡은 것에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들 중에는 누군가 인도하고 전도하여서 복음을 믿고 구원받고 교회 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이 아내일 수도 있고 남편일수도 있습니다.또 어떤 장로님일수도 있고 집사님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도 하나님이시오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전도자나 증거자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그 사명을 감당한 하나님의 일꾼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할때 사람을 따라 행하시면 안됩니다. 나를 전도한 사람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나에게 세례를 준 목사님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하면 안됩니다. 그렇게 사람중심의 신앙생활을 할때 교회 속에서 파가 나위고 당이 나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철저하게 신앙의 주인,우리의 믿음의 역사와 열매는 우리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모든 영광을 받을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실 때 보면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파워전도자로서 가장 좋은 도전을 주는 바울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자연인이었을때 바울을 보았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믿어도 저 바울만큼은 안되”라고 말을 햇을 것입니다. 자연인이었을때 바울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앞장서서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초대교회 첫 순교자였던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당할 때 앞장 선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이 순교할때에도 그것을 마땅하게 여겼던 사람이었습니다. 행8:3에 보면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고 합니다. 여기 “잔멸”이라는 말은 짐승같은 야수적이고 병적인 잔혹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는 마치 생각없는 짐승처럼 그리스도인이라면 앞장서서 죽이고 잡고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행9장에 넘어가면 졸지에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뿐 아니라 행13장에 가면 안디옥에 교회에서 파송을 받아 전도자로서 선교사로서 열매를 맺습니다.

종종 우리가 전도할 때 범하는 실수가 한가기 있습니다.
사람을 우리의 생각과 기준으로 결과를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되고 이사람은 되고 우리의 생각으로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가끔 그런 것을 경험할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저 사람은 우리 이웃이지만 전도될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정지어서 전도하지 않았는데 어느날 보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전도하였습니다. 전도하면 누구보다도 반대하고 강하게 부정하던 사람이 전도되어진 것을 보면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를 믿음으로 맡기고 우리는 사명대로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전도왕 중에 고구마전도왕이신 김기동 집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이 작두도사를 전도한 이야기를 간증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전도를 하러 갔는데 작두도사의 집이었습니다. 그냥 가려다가 ‘저기도 한번 찔러볼까?“ 하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인사를 하니까 손님인줄 알고 기뻐맞았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아저씨  예수믿으세요“라고 전도했습니다.그러자 작두도사 입에서 쌍욕이 나오면서 내쫓았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나오면서 ”아저씨 그래도 믿어보세요! 너무 좋아요!“라고 말을 합니다. 그리고 며칠있다가 또 들릅니다. 이번에는 알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아예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아저씨 믿으세요 믿으면 참 좋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열받은 작두도사가 “당신 시청에 고발할거야 이건 영업방해야”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아저씨 그래도 믿어보세요.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또 며칠이 지나서 세 번째 방문합니다. 이번에는 ‘할렐루야’하고 방문합니다. 문을 열자마다 안에서 왕소금이 날아옵니다. 그러자 더 이상 무어라고 하지 않고 “아저씨 기도하고 있습니다”하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또 며칠 있다가 찾아갑니다. 그러자 작두도사가 애원을 합니다. “제발 돌아가세요”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7번 만에 작두도사와 대화의 시간을 갖게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자기 아들이 3년동안 누워있는데 아들만 고쳐주면 교회에 나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교회에 초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분이 교회에 나온지 첫 시간에 은혜를 받고 에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그 형님이 대구에서 목회를 하시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는 바로 예비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안목으로 볼때에는 그는 전도대상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전도자가 그냥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해서 전도하엿더니 하나님께서 결실을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씨를 뿌리고 나는 물을 주지만 결국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치는 말)

오늘 우리는 태신자를 작정합니다. 복음의 씨를 뿌리고 이제 우리가 물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정된 태신자는 우리가 마지막가을이 가는 11월 마지막 주일날 교회로 초청합니다. 들판의 오곡백과가 열매맺는 이 가을에 주님께서 희어져 추수하는 들판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예비된 주님의 사람들을 결실하여 영광돌리기를 하나님은 기대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파워있는 전도자 바울처럼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 가을에 우리모두가 아름다운 전도의 열매를 다 맺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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