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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한 분노의 배경 (삼상 17: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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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재식 목사

☞본문:31 ○어떤 사람이 다윗이 한 말을 듣고 그것을 사울에게 전하였으므로 사울이 다윗을 부른지라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그로 말미암아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하니 33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으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34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35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36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37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심리학에서 말하기를  어떤 일에 대하여 분노가 치밀 때, 이것이 개인적인 분노인가, 나 개인과는 별 상관없지만 공적인 분노거리인가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인 일에 대한 분노는 삭힐 줄 알아야 하고, 인륜, 도덕,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행위에 대한 분노는 적극적으로, 적절히 표출할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분노는 삭힐수록 덕이 됩니다. 그러나 삭힐 수 있는 능력이 내 속에 없는데 분노를 품고 살면 홧병으로 이어져 아주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데 한국인들이 특히 이 홧병에 시달리고 있는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분노가 아닌 인륜, 도덕, 대의명분에 어긋날 때 내는 분노를 공분(公憤), 혹은 의분(義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거나,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짐에 대해 분노하는 것을 거룩한 분노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공분 혹은 의분 그리고 거룩한 분노가 무조건 좋은 것인가?라고 말할 때 이에 대답은 No입니다.

이런 분노가 어떻게 표출 되느냐?에 따라서 좋다 좋지 않다를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분일지라도, 그 표출방법이 개인적인 생각을 따라서 나타나면 이것은 의분일 수 없고, 거룩한 분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국내에 여러 가지 일로 데모를 많이 하는데 보면 대부분 명분은 국가를 위하고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는데 그 표출되는 행동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국가질서를 문란케 하고,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행동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보면 교회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가졌지만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서 폭력적이고, 무질서하고, 도로를 장악해서 큰소리치며 기도회를 여는등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결코 거룩한 분노에 해당될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에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비결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것을 참지 아니하는 거룩한 분노 때문이라 말씀드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것을 보고, 감히 우상을 섬기고 사는 나라의 장수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일에 대해서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고, 그 분노를 행동으로 나타내어 인간적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대적, 그 거대한 골리앗을 일격에 무너뜨려 살아계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모든 사람으로 알게 하므로 모욕을 받은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골리앗을 행하여 나아갈 때 자기감정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영웅심리나, 우쭐거림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직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이 모욕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으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무기나, 자기의 용맹이나, 자기의 힘을 믿고 나아간 것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능력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결국 다윗의 승리는 신앙의 승리였고,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그렇게 거룩한 분노와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게 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사울왕을 비롯하여 그 수많은 이스라엘의 군사들은 그런 분노와 그런 믿음의 행동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어린 소년 다윗만이 그런 분노와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혹 아직 어리니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처럼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랬을거야! 지가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면 그럴 수 없었을 거야!

혹은 저야 부양할 가족이 있어! 여우같은 마누라가 있어! 토깽이 같은 자식이 있어! 지 한몸 죽으면 그만이니 그러는거지! 먹여 살려야 할 가족들이 있어봐! 그렇게 나설 수 있는가?

이럴지 모르겠지만, 그의 배경을 살펴보면, 결코 그런 것은 이유가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1.다윗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에 책임을 다하는 생활을 하였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려고 할 때 사울왕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너는 안 된다. 저 블레셋 사람과 싸움이 안 된다. 너는 소년이고,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이기 때문이다”(33)

이때 다윗은 사울왕에게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 있는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나이다”(34-35)

다윗은 아버지의 양떼를 맡아 칠 때에 게으름 피지 않았고, 자기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며 얼마나 충실하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아버지가 맡겨준 양을 치는 일에 그는 목숨을 걸었고, 양을 사나운 사자나 곰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게으름 피지 않았고, 혹 사자나 곰 같은 맹수가 양새끼라도 물고 갈라치면 그는 목숨을 걸고 따라가서 맹수의 입을 벌려서라도 맹수의 입에 있는 새끼를 구하여 냈습니다.

2.다윗은 항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다윗이 양을 지키면서 사나운 맹수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항상 당신의 백성들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믿고 살았습니다.

다윗은 항상 능력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했고, 양을 치면서 아버지의 양이 사나운 짐승에게 물려갈 때 그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사나운 짐승과 싸웠고, 그 양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나아가니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에서도 곰의 입에서도 자기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항상 체험하고 살았으니 골리앗과 싸울 때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므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간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는 그 용기가 우발적인 용기가 아니라, 평소의 그의 생활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살았기 때문에 나온 용기였습니다.

그는 이미 생활 속에서 함께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체험했으니, 하나님의 모욕하는 골리앗을 그 짐승들 중에 하나처럼 될 줄(36)로 믿고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37)

우리는 다윗의 유명한 시, 시편23편을 통해 다윗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함이 얼마나 확실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몇 년 전에 이 시는 경상도와 전라도 버전으로도 나와 우리에게 더욱 흥미있고 다정하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경상도 버전으로

  여호와는 내 목자아이가  내사마 답답할끼 없따 아이가

  시퍼런 풀꾸디 내 디비지고  선-한 또랑까로 낼로 이끄신데이...

  내 정신 챙기시사 올케 살아라 카심은  다 하나님 이름 때문이라 안카나!

  니 죽을뻔한 꼴짜구니 컴커만데서도  간띠가 부어가 댕길수 있음은

  그 빽이 진짜로 장난이 아인기라!  주의 몽디-와 짝때기가 낼로  지키시고

  내 라이벌 직일놈 문-디 앞에서  낼로 팔팔 키워주시네 고마

  내 인생이 억쑤로 복잡따 캐싸도  하나님이 만날 지키 줄끼니까

  내사 우짜든가 고 여풀때기에 마 탁! 붙어가  죽어도 안 떠날란다.


우리 구미등대교회는 지난 날 성전을 건축하려고 할 때,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하였으며, 목사가 무모한 행동을 한다고, 구미등대교회 형편으로는 안 된다고 할 때 저는 화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우습게 여기고, 성도들의 기도의 능력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목사를 비난하고, 헛소문을 퍼뜨리고, 교회를 떠나갈 때 우리 모두는 거룩한 분노를 품고, 더욱 열심히 기도하며, 성전건축을 시작함으로 악한 영들과 거룩한 전쟁을 시작하였지요. 누가 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이 불가능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10억짜리 땅 사고, 건축 시작한지 3개월 20일 만에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하여 드리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능력은 믿고 구하는 자에게 함께 하심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우리가 거룩한 분노를 품고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쉬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줄 믿고 돈을 축적하지 않고, 선교사업에 전념하므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불신자들이 믿는 여러분들을 무시하고, 우습게 여길 때 거룩한 분노를 품고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담대히 나아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다시 거룩한 분노를 품고 믿음으로 성전건축을 할 때처럼 나아가서 꼭 증거해 보여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거룩한 분노를 품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 물질적인 복을 받아,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재물을 소유하신 부자이신 하나님을 증거해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경영하는 공장이나, 가게나, 사업이 마치 다윗의 물맷돌같이 작은 것일지라도, 골리앗과 같은 큰 기업과 경쟁하여 이기고, 더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있도록 거룩한 분노를 품고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인간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나아가면 이사야의 예언처럼 이방의 재물이 몰려올 줄 믿습니다.

여러분! 내가 일하는 현장에 하나님 함께 하시는 줄 믿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능력주실 줄 믿고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최선을 다하세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내 일에 나의 능력을 믿지 말고, 세상적인 어떤 것에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이 일어남을 체험하고, 그 체험이 골리앗과 같은 큰 대적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대항 할 용기가 생깁니다.

여러분!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무시하고, 가진 것 없다고 없신여기는 자들을 보며 거룩한 분노를 품으세요. 그리고 내 생활 속에 하나님의 역사 일어나도록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부지런히 일하고, 기도 더욱 빡시게 하여 부자이신 하나님을 보여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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