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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사자굴 (단 6: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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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창인 목사

본문 내용에 나오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요, 아주 성실한 사람이요 사람 됨됨이 충성스러운 사람입니다. 본래 유다의 귀족이었던 그가 하루아침에 몰락하여 전쟁포로가 되었지만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 할 정도로 성공하였습니다. 그런데 출세에 뒤쳐진 토박이들이 너무 속이 아프고 또 질투심 때문에 다니엘을 모함하기 시작합니다. 왕에게 가서 하는 말이 "왕이여 우리가 왕을 신처럼 생각하고 섬기는데 왕 외에 또는 우리들의 신들 외에 다른 신께 절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부터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다른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잡아다가 사자 굴에 집어넣어야만 합니다."라고 건의를 드렸습니다. 왕은 이에 동의를 하고 조서에 어인을 찍어 반포하였습니다. 이제는 변경될 수 없는 법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이 사실을 알고도 전보다 더 열심히 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을 노려보던 참소자들에게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결국 믿음을 지키려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할 때 사자 굴은 죽음의 굴이요 고난의 굴로 생각했겠지만, 다니엘에게는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기념의 굴이 되었고 축복의 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성도와 사자 굴"이라 정했습니다. 이 사자 굴이 어떤 교훈을 주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I. 임재의 현장 (19-23)

사자 굴은 망하는 굴, 죽음의 굴이 아니라 하나님이 임하여 계시는 임재의 현장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무서운 굴이라도 하나님이 계시면 그 곳은 천국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모두가 사막과 돌밭이었습니다. 모래만 되어도 좋겠는데 도무지 쓸모 없는 돌밭이었습니다. 그 곳에 성지순례를 다녀오게 되면 그 길을 알 수 있지만 죽음의 길 그대로입니다. 이것은 살라고 보낸 것이 아니라, 죽으라고 보낸 것 같습니다. 그 광야 길은 돈이 있어도 쌀 한 톨을 살수가 없고 금이 있어도 물 한 모금 구할 수 없는 광야의 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니 그 말씀을 의지하여 광야 길을 갑니다. 그랬더니, 하늘이 열려 매일 양식이 쏟아져 내립니다. 반석에서 물이 솟아오릅니다. 백성들이 진을 치고 그 진 중앙에 성막을 만들어 놓으면 불기둥이 활활 타오릅니다. 원수들이 감히 가까이 올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며 백성들은 용기를 얻었습니다. 항상 희망을 가지고 평안한 마음을 갖고 가나안으로 갈 수가 있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임재 속에 백성들은 평안히 쉬면서 희망을 갖고 광야 길을 걸어갑니다. 불기둥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바뀌어 햇빛을 가리워 더위를 막아줍니다. 구름기둥이 떠오를 때마다 백성들은 출발을 하였고 저기 하나님이 앞장서 가시는구나!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아무리 막막하고 힘든 길이라 할지라도 순간 순간 하나님의 임재를 발견한 백성들은 용기와 평안과 희망을 가지고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계신 곳은 비록 광야일지라도 축복의 장소입니다. 하늘이 열리고 반석이 갈라지고 만나와 생수의 축복이 쏟아집니다. 본문의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유대 나라의 귀족출신, 즉 귀족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태어날 때부터 복이라는 복은 다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몰락한 다니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살아갈 때 얼마나 천대를 받았을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일본의 속국이 되어 살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악랄하고 못 할 짓을 많이 당했는지. 지금도 일본사람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고 일본 놈이라고 해야 속이 시원할 정도입니다. 일본 순사라 하면 그 당시 얼마나 벌벌 떨면서 살았습니까? 나라 잃은 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욱이 다니엘은 포로로 바벨론까지 잡혀갔으니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다니엘을 보십시오. 하루아침에 타고 난 복을 잃어버리고 몰락합니다. 운명을 가늠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에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성실히 살아갔습니다. 오히려 힘든 상황일수록 성실하게 사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업을 할 때 간혹 실패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포기하지 말고 실패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 가운데 길이 열리고 방법이 생깁니다.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하고 절망하면 가능성은 더 희박해 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실했더니 다니엘은 왕의 눈에 띈 것입니다. 왕궁으로 데리고 가서 3년 동안 공부를 시켜 주었더니 박사가 되었습니다. 왕이 일을 시켜 보니 얼마나 일을 잘 하는지, 나중에는 총리가 되어 제 2인자의 자리까지 올라갔습니다. 세상 만사가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 뜻대로 되는 일도 많지만 안 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성실히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니엘은 이러한 삶의 태도로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자리까지 진출 할 수 있었습니다. 한가지 더 생각하면, 다니엘은 권세의 자리에서 세도를 부리지 않고 기도하면서 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도를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부귀영화를 다 주었지만 그는 그 부귀영화에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데도 불구하고 환난이 닥쳐왔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무리들이 다니엘을 참소하고 기도의 현장에서 체포한 다음 사자 굴에 집어넣은 것입니다. 이제는 왕도 의지할 바가 못되고 부귀영화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한 분 하나님만 믿었습니다. 다니엘이 평소에 왕을 믿고 재물을 믿고 살았다면, 절망에 빠져 자진했을 것입니다. 권세와 재물을 가지고도 할 수 없는 일이 있으니 말입니다. 다행히 하나님을 믿고 살았기에 영영 풀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모든 운명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내가 할 일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는 태도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제 다니엘은 죽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 하나님의 보내주신 천사가 미리 내려와서 사자의 입을 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두가 죽을 줄 알았던 죽음의 현장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념 할 수 있는 현장이 된 것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이 죽음의 굴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직접 확인하는 은혜의 현장이 된 것입니다. 천사와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친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세상 만사가 다 내 뜻대로 되는 줄로 여기지 마시고 내 뜻이 전부인양 자만하지도 마십시오. 그래서 되는 일도 있지만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물론 어려운 상황일수록 성실한 삶의 태도가 요구됩니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잘 되던 잘못되던 항상 기도하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의 뒤에는 오히려 고난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도 잠시입니다. 하나님은 안전장치를 미리 해 놓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해 배워야 하겠습니다.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하심 이니라고 히스기야 왕은 간증을 하였습니다(사38:17). 사자 굴 같은 고난의 현장이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현장으로 바뀌는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니엘의 사자 굴은 하나님 임재의 현장이었습니다.

II. 승리의 현장 (24-27)

24절을 보면 왕이 걱정이 되어 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침에 사자 굴로 달려 왔습니다.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치 못하였느냐?" 다니엘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천사를 먼저 보내셔서 사자의 입을 봉하였나이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하니 왕이 기뻐하여 어서 다니엘을 끌어올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참소를 하던 자들과 그 가족들을 모두 사자 굴에 넣으라고 명하였습니다. 다니엘을 괴롭히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 살아 날뿐 아니라 원수들이 제거되는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완전 승리의 순간입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 나왔지만 원수들이 제자리에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 얼마나 꺼림칙했겠습니까? 다니엘을 모함하던 원수들이 죽음을 당하고 하나님을 믿는 다니엘이 구원 얻는 승리의 순간입니다. 사자 굴이 원수를 멸하는 승리의 굴이 된 것입니다.

지금부터 100여년 전에 영국 런던시 시장을 지냈고 성자라고 하는 칭호를 받은 성 요한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성자가 아닙니다. 한창 청년 때에 목사님께 허락 받고 청년회 회원들 10여명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으로 탐험을 갔습니다. 100여년 전 이야기인지라 그때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사막을 탐험한 적이 아무도 없었다고 할 때입니다. 그래서 온갖 것을 준비해 가지고 목사님께 기도를 받은 후 그곳으로 떠났습니다. 사막 길을 가고 또 가고 가는데 끝이 없는 모래밭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신기한 장관이 앞에서 전개됩니다. 선인장 숲을 만난 것입니다. 선인장은 세계적으로 종류가 2천여 가지가 되고, 제일 큰 것은 40미터, 작은 것은 사람의 손가락 만한 것도 있습니다. 이런 선인장이 숲을 이뤄 가지고 30리, 50리를 꽃피울 때를 만나면 세상에 돈주고도 볼 수 없는 장관을 구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청년들이 그러한 선인장 숲을 만난 것입니다. 요한이 앞장을 서고 그 뒤로 회원들이 따라 가는데, 선인장 속에는 굶주린 사자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자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먹을 것들이 자기를 향해 오는 것입니다. 숨어 있던 사자가 갑자기 달려듭니다. 맨 앞장 선 요한을 덮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는 사이 뒤에 따라 오던 회원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는 듯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나 숨어 버렸습니다. 역시 사람은 믿을 것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야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고 맹세하기를 그 몇 번이었습니까? 막상 어려움이 닥치고 보니 제 살길만 찾기에 바쁩니다.

저는 일본의 여류 작가 중에 "미우라 아야꼬"를 좋아합니다. 아주 멋진 여자입니다. 이 여자의 남편은 자기 보다 나이가 적었습니다. 이 부부가 얼마나 금실이 좋은지 서로가 "없으면 못산다"하는 부부였습니다. 이 여자가 쓴 수필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부부가 함께 깊고 아름다운 계곡에 산책을 갔을 때 가령, 곰이 나타나서 "내가 배가 고파서 한 사람을 잡아먹어야겠다"고 덤빈다면 어떻게 할건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때 아야꼬는 말하기를 "내가 곰의 입에서 잡아먹힐 테니 그 사이에 당신은 빨리 도망가세요"라고 할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남편 뒤에 숨었다가 남편을 잡아먹는 사이에 도망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솔직한 대답을 했습니다. 책상에 앉아서야 열번이고 백번이고 대신 죽겠다고 아름다운 글을 얼마든지 쓸수도 있겠지만 막상 그런 일이 닥치면 자기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할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런 솔직한 글이 좋습니다.

요한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사자에게 잡히게된 요한이 정신을 못 차릴 상황이 되었지만 요한이 다니엘의 사자 굴이 생각났습니다. 사자 굴에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의 입을 막아주신 하나님, 이 사자의 입을 천사를 통해서 막아 주시옵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사자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쫓아 주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청년회원들은 안전하게 교회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돌아왔을 때 요한이 목사님의 허락을 받고 교인 앞에서 간증을 하였습니다. 간증의 결론은 두 가지 입니다. 사자가 나타났을 때 사자는 "내가 간다. 준비해라 조심해라" 라는 예고도 없이 달려들더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고나 불행은 예고 없이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예고 없는 사고를 얼마든지 당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사자와 하나님의 아들이 싸울 때 하나님은 사자편이 아니라, 자기의 아들편이라는 것입니다. 승리는 하나님의 아들, 딸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믿는 자에게도 환난이나 고난이 오지만 승리는 항상 믿음의 자녀들에게 있다는 것을 간증했습니다. 이런 체험으로 요한의 믿음이 더욱 좋아져서 나중에는 성자라는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지금 다니엘이 사자와 더불어 싸우고 있습니다. 사자에게 잡혀 죽느냐 그렇지 않으면 사느냐로 싸우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원수들이 사자 굴 밖에서 다니엘이 죽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사자의 편이 아니라 다니엘의 편이었습니다. 원수들의 편이 아니라 다니엘의 편이었습니다. 그러니 승리는 당연히 다니엘의 몫입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에게 임재하여 계시기 때문에 어떤 싸움에서도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사자 굴은 승리의 현장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까닭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III. 형통의 현장 (28-)

28절을 보게되면,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시대와 바사 사람 고레스 왕의 시대에 형통하였더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놀라운 축복이 하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너의 본토 아비와 친척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가족과 고향과 재산과 지금까지 다져놓은 기반을 등지고 낯설고 먼 곳으로 떠나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은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을 내가 축복하겠다"는 말씀 한마디를 믿고 떠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편이 되어서 아브라함을 괴롭히는 사람을 하나님이 쳐부수고, 아브라함을 도와주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복 주셨습니다.

한 번은 큰 흉년을 만나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애굽 왕에게 자기 아내를 빼앗기고 맙니다. 난감한 일입니다. 큰일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에 하나님은 애굽 왕 바로에게 나타나 사라에게 손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혼줄을 내주었습니다. 온밤이 지나도록 애굽 왕은 사라를 가까이 하지도 못했습니다. 아무리 왕이라 하더라도 아브라함의 것에 손 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이것이 곧 형통입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일이 풀리기를 시작합니다. 바벨론 시대 즉 느부갓네살 왕 때 총리가 되었으나 메데나라가 일어나서 바벨론은 망하고 메대파사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문은 다니엘이 고레스왕 때에도 형통했다고 밝혔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왕이 바뀌었지만, 다니엘은 형통했습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아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추방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별이 떨어지는 장성들도 많습니다. 아무리 날고기는 사람이라도 정권이 바뀌고 대통령이 바뀌면 그 자리를 지키기가 매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정권뿐만 아니라,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총리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해주셨기 까닭입니다. 왕들이 목격했습니다. 다니엘의 총명함을 그리고 하나님이 배후에서 지켜주시는 것을 여러 번 그리고 분명히 보았습니다. 다니엘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다니엘은 형통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다니엘의 형통함과 같은 형통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통의 현장이 형통의 현장으로 바뀌는 은혜의 체험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을 드립니다. 다니엘의 사자 굴은 절망과 죽음의 현장이었으나 그 고난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습니다. 생각 밖의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리고 패배를 당하는 사자 굴 같았으나 오히려 완전 승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전화위복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자 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시대가 바뀌어도 형통하였습니다. 사자 굴은 형통의 첩경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축복의 현장이 여러분의 현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 곧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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