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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02 04:33

신앙생활의 열매 (요 15: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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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 성덕 목사

요15:8절 [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
신앙생활에는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이 열매는 바로 제자가 되어 전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존 스탓트> 목사는[ [ 전도하지 않는 죄 ] 란 책에서
[전도 없는 종교보다 차라리 종교 없는 전도를 우리는 더 좋아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 중에서
전도의 동기부여와 원리를 깨닫는 귀한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신 배경을 살펴보면 두 가지 배경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1. 본문말씀의 배경을 말해보세요.

1)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을
'포도원' 또한 '포도나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는 유대민족의 표상이요 상징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5:7절에
[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합니다.
예레미야는 렘2:21절에
[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 라고 합니다. 호세아는 호10:1절에 [ 이스라엘은 열매맺는 무성한 포도나무 ] 라고 합니다.
시편 기자도 시80:8절에
[ 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열방을 쫓아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옮겨 심었다 ] 노래합니다
그래서인지 역사 중에 나타났던 마카비 왕조 때의 화폐 문장은 포도나무였습니다. 또 성전의 영광 중의 하나는
성소의 정면에 있는 큰 황금 포도나무였습니다.
그래서 돈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그 포도나무에 새로운 금으로 포도송이를 만들어 붙이기 위해서
금을 헌물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포도나무는 유다의 상징이요, 표상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구약적 포도나무를 배경으로 하여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사5:4절에
[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가리켜 '헛된 포도나무'라고 탄식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타락해 버린 이스라엘의 상태를 대조시켜서
자신을 '참 포도나무'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포도나무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2>
이러한 구약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2) 포도나무 비유의 설교는 예수님의 고별 설교라는 점입니다.
이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내일이면 제자들이 다 자신의 곁을 떠날 것을 염두에 두신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절로 열매 맺지만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 고
경고의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 포도나무 비유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그리고 오늘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포도나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나무에서 열매를 기대하셨으나
포도나무였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원하셨던 것을 성취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절 [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 고 합니다.
여기 "참"이란 그림에 대조되는 실물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로만 포도나무지
포도나무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포도나무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절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는 말같이
예수님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유기적 관계를 통하여
예수님과 성도와의 신비적 연합 즉 생명의 관계임을 말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과 생명의 관계임을 말합니다.
내 속에 예수 생명이 약동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특징은 바로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하나님을 농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농부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열매 맺는데 있습니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과실을 기대하신다는 내용이
요한복음 15장에만 8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3>
더 많은 과실을 맺는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포도나무의 존재의 목적입니다.
포도나무는 목재나 아니면 다른 미관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열매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이것은 비유적 표현입니다.
과실의 목적은 바로 8절 말씀같이
[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
이것이 포도나무를 재배하는 농부이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포도나무의 과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다운 제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8절에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존재 목적이요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제자는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학생, 선생>의 관계가 아닙니다.
스승의 정신, 스승의 철학, 스승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자란 스승의 화신(化身)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은 아무나 제자를 삼지도 않았고
한번 제자가 되면 그 스승을 닮기 위해, 스승처럼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자랑스럽게 스승처럼 살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는 <스승을 닮은 작은 스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자가 되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 모두 각자가 [작은 예수]가 되어서
우리를 보면, 나를 보면 예수님을 본 것처럼 느껴지고
예수님을 드러내고, 예수님의 향내를 풍기는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농부 되신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는 포도나무 가지가 되기 위하여
2절을 보면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고 합니다.
깨끗케 한다는 말은 전지 즉 가지치기한다는 거예요.
열매를 맺기 위해서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도록 병든 가지들을 제거하여 깨끗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훈련을 통해, 때로는 시련과 실패를 통해서,
때로는 원치 않는 질병을 통해서 못된 가지들을 잘라 내어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순수케 하십니다.
열매맺지 못하는 가지, 어떤 신자를 말합니까? <4>
바로 변화되지 아니하는 교인을 말합니다.
나아가 전도 못하는 신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바로 제자로 불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다운 제자
신앙생활에 열매가 있는 제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열매를 많이 맺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열매를 맺으려면 4절 말씀대로 <내 안에 거하라 >즉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을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더 강조하기 위하여 반의적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다 ]
이 말은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절로 열매 맺는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 바로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가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가지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에요.
참포도나무 되신 주님께 붙어있기만 하면,
능력이 주님께로부터 주어지고, 때를 따라 은혜를 공급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맛을 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 맛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의 원리입니다.
내가 먼저 주 안에서 예수 생명을 공급받아
예수 생명이 어떤 것인가를 맛 본 자만이 다른 사람에게 말 할 수 있습니다.

사실 가지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나무에 붙어 있으면 든든할 뿐만이 아니라 열매를 맺습니다.
이 원리를 깨달은 자는 예수님께 붙어 있습니다.

파도가 얼마나 강한지 보세요
도에 큰배도 깨어지고, 바위도 깨지고, 집도 무너집니다.
그런데 바위를 깨는 파도가 약해 보이는 해초는 부러뜨리지 못한다는 거예요. 다른 이유 없습니다.
해초가 줄기에 붙어 있고 그 줄기는 뿌리를 깊게 박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붙어 있는 것이 모든 축복의 시작입니다. 행복한 생활의 시작이에요.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우리의 뿌리를 박고, 주님께만 소망을 두는 자는
어려운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깨어지지 않고, 승리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포도나무 비유는 <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배반을 염두에 두시고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5절에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

우리는 항상 기본이 약하고, 기본을 무시하고, 기본을 떠납니다.
기본이 무엇입니까?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듯이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다 몰랐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밖혀 죽으신 후 뿔뿔이 다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3년 동안 예수님 따라다녔던 일이 바로 헛수고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죄가 무엇입니까? 실수도 죄가 아니에요. 실패도 죄가 아니에요. 주 안에 거하지 않는 것, 주님을 떠나 사는 것, 이것이 죽을죄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이 물리쳐 주실 수 없는 어려움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큰 질병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은 없어요.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하나님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어요. 어떤 닫힌 문이라도 하나님이 열 수 없는 문은 없어요.
얽히고 꼬인 매듭이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하나님이 풀지 못할 일은 없는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제일 무서운 죄가 무엇이냐? 믿음 없이 사는 죄입니다.
주님 붙들지 않는 죄예요.
주님 떠나서 내가 주인 되어 사는 거예요.
[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없느니라 ]
영어성경에는 Nothing - 될 듯 될 듯 하면서 안된다.

사과 농사를 짓는 어느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커다란 꿈을 가지고 많은 돈을 투자해서 사과밭을 가꾸었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열심히 일했는데
3년 동안 계속 수확이 좋지 못했습니다.
꽃이 피고 열매가 착과될 때는 야 올해는 풍년이구나 싶은데
첫 해는 폭풍이 불어와 사과가 모두 떨어지고,
둘째 해에는 벌레가 먹었고,
셋째 해에는 홍수가 나서 사과 농사가 잘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낙심하여 교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이럴 수가 있나? <6>
하나님은 자신과 함께 하지 않으신다는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그 집사님은 자신이 사과나무가 되었습니다.
사과나무가 된 자신을 통해
잎이 무성하며 꽃이 피며 탐스런 사과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의 속이 아파 뒤틀며 몸부림 치자
잎사귀가 떨어지고 탐스러운 열매가 모두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놀라 꿈에서 깬 집사님은 이 꿈을 통해 사과농사가 안되는 것이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을 범하고,
영농자금으로 쓴다고 십일조도 하지 않았던
자신의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주님 중심으로 서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그 해부터 사과 농사가 잘 되었다는 간증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저는 이 성경구절을 대할 때마다 이런 부흥성가가 기억나요
[ 물을 떠난 고기가 혹시 산다 하여도 예수 떠난 심정은 사는 법이 없어요 ]
[ 예수 없는 사업은 성공 같애 실패요 예수 있는 사업은 만사 유익합니다 ]

사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절로 열매를 맺지요
절로 열매 맺는다는 말이 무슨 말이겠습니까?

7절에 보니 [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할 때 이뤄지면 바로 절로 되는 것 아닙니까?
절로 된다는 것은 내 힘으로가 아니라 저절로 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저절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포도나무 비유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사실을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다는 그림 언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바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이란 표현 같이
바로 말씀에 붙둘려 있을 때, 즉 말씀 충만할 때입니다.
히브리 언어에서는 말씀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의미가 독특합니다. 첫째 말씀 속에는 힘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떤 에너지와 파워가 있다는 뜻이다.
두 번째 그러기 때문에 말씀에는 어떤 영향력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말씀은 POWER! 힘입니다. 능력입니다. <7>
잘못된 길에서, 타락과 불의의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헛된 것에 중독이 되어 살아갑니다.
하루라도 술을 안 마시면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증도 있고, 쇼핑을 안 하면 무엇인가 허전하고, 안정이 되지 않는 쇼핑 중독증,
컴퓨터 앞에 앉아 있거나 PC방을 들락거려야 안정되는
컴퓨터 사이버 중독증도 있고, 약물 중독도 있습니다.
스스로 조절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습관이라고 생각하지마는 습관이 아니라 전문가들은 뇌 질환으로 봅니다. 우리 나라 청소년들 가운데 10% 이상이 사이버 중독증이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될 정도라고 합니다.
헛된 것에 붙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헛된 것을 떨쳐버릴 수 있는 힘이 생겨날 줄 믿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붙들려지면 그 말씀이 나의 가는 길을 형통하게 해 줄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 중요한 기도의 교훈이 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듯이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예수의 생명의 공급을 받는 자입니다.
그 생명의 풍성함을 어떻게 받느냐? 하면 바로 기도입니다.
그래서 [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합니다.
무엇을 원하느냐? 가 문제지요.
제가 목회하면서 마음이 아픈 것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오늘날 교인들이 기도하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다 나를 위해서 뭔가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보세요.
'주님 제가 지금 감기 걸렸으니까 낫게 해 주세요.'
'제가 또 지금 무슨 어려움이 있으니까 고쳐 주세요.'
'집이 좁으니까 넓은데 얻게 해 주세요.'
'집이 안 팔리니까 팔리게 해 주세요.'
'우리 아들이 공부 못 하지만 좋은 대학 들어가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는 그래도 괜찮습니다.
만약 축구 감독이 크리스챤이라고 합시다.
자기편 선수가 골을 한 골 뻥 차 넣으면 감독이 앉아서 뭐 합니까?
'아, 주님 감사합니다.' 그러잖아요?
그러면 상대방 감독도 앉아 가지고
'아, 주님, 이럴수 있습니까?' 그러잖아요?
그러니 양쪽에서 감독들이 하나님께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어떤 기도를 들어주시겠어요?
이게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게 아닙니다. <8>
잃어버린 영혼들을 보며 지금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는데
형제라고 하면서 친구라고 하면서
우리는 지금 뭐 더 넓은 집, 더 낳은 것, 더 편하게.
주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게 우리를 이 땅에 두시고
빛이 되라, 소금이 되라, 그들에게 전도를 해라 그렇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다른 곳에 우리 마음들을 두고있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다른 게 아닙니다. 영혼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도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기도가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열매를 많이 맺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제자라는 것 무엇으로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까?
8절 [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
바로 신앙생활의 열매를 통해 우리가 제자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반드시 두 가지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1) 성령의 열매가 생활 속에 나타나야 합니다.
갈5:22-23절
[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
이 열매가 성령을 받은 증거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바로 성품의 열매입니다.
예수 믿고 성품 안 변하면 그것은 마치 열매 없는 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의 열매는 바로 전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리스도 안에 사니까 너무 너무 즐겁습니다. 항상 즐겁습니다."
이런 말을 두고 어떤 목사님은 다른 얘기를 해요.
[ 그것은 아직 어린아이 수준의 얘기다.
주님을 믿고 나면 여러 가지로 우리 마음 속에 괴로움이 있다.
그건 뭐냐하면 우리에게 갈증이 있는데
주님을 섬기고 싶은 만큼 섬기지 못해서 괴롭고
영혼들에게 전도를 하고 싶은데도
마음대로 전도를 잘 못하는 자신이 괴롭다 ] 는 것입니다.

제가 봤던 영화 중에 <9>
참 감명 깊은 영화가 '쉰들러리스트'라고 하는 것인데,
한 독일인이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학살할 때 그 사람들을 많이 구출했는데,
그런데 그 영화 끝 장면에서 뭐가 제일 감동되었냐면
[ 더 살릴 수 있었는데, 내 차를 팔고 집을 팔았더라면 더 살릴 수 있었는데 ] 그러면서 우는걸 보면서 참 마음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을까요?
내가 내 삶에 조금만 돈을 덜 투자하고 영혼들을 위해 투자했더라면
내가 좀더 내 자신에 매여있지 않고 주님의 일에 더 열심히 했더라면 이보다 더 잘 섬길 수 있었을 텐데
내 형제를 구원할 수 있었을텐데
이런 갈증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꼭 남의 물건을 도적질해서 죄를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더 가까이 섬기면 섬길수록 아주 작은 것에도
우리 마음에 가책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양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양심을 버리면, 양심이 화인 맞으면
그 신앙생활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화인을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테스트 해 보세요.
기도 못한 것이 죄송하고
전도 못한 것이 죄송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이 죄송하면
그래도 양심이 살아있는 거예요.
이것마저 못 느낀다면 양심이 죽은 것입니다.

< 결론 >
8절 [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
전도의 동기 부여는 전도는 신앙생황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전도의 원리는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절로 열매 맺듯이
내가 예수님께 붙어 있으면 예수 생명이 주는 은혜를 맛보게 되고
은혜의 맛을 본 사람은 절로 열매 맺게 되어 있습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수 믿고 변화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 닮아가는 삶입니다.
2) 제자로서의 삶입니다.
제자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삶
바로 나 같은 제자 만드는 삶, 전도하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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