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불 꺼지지 않게 하라 ③ (레 6:8-13)

  • 잡초 잡초
  • 600
  • 0

첨부 1


- 설교 : 박재신 목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명하여 이르라 번제의 규례는 이러 하니라 번제물은 단 윗 석쇠 위에 아침까지 두고 단의 불로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단 위에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 사를 지며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

  불을 꺼지지 않게 하라는 말씀으로 세 번째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한국 교회는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부흥의 불길이 점점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구약 제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제단에 불을 타오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속 타오르게 해야할 불이 무엇입니까?
  한국 교회에 꺼져가는 제단위의 불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찾아서 다시 활활 타오르게 하여야합니다.

  ① 예배 모임의 불입니다.
  성령이 충만했던 초대교회는 모이는 불이 있었습니다. 행 2:46절에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히 10:25절에 보면 주님의 재림 즉 종말이 가까이 올수록 모이는 불이 식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일입니다.
  성도는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단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의 교회가 급속하게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던 이유 중에 하나가 모이는 일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가 주일 예배 뿐 아니라 새벽, 철야,  금식, 산상기도 등 모이기를 힘썼기 때문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를 수 있었습니다.
  1903년 8월, R.A. 하디를 비롯한 일곱 명의 선교사들이 북한의 원산에 모여 한 주간 동안 성경공부와 기도의 시간을 가진 것이 부흥회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인 1904년에도 원산에서 오늘날의 부흥회와 같은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이 열렸습니다. 이러한 부흥회는 전국으로 점점 확산돼 나갔습니다.
  1906년 8월에 여러 교파의 선교사들이 평양에 모여 한 주간 동안 R.A 하디 선교사를 강사로 기도와  성경공부를 하는 부흥회를 가졌습니다. 이때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 일과 성경공부에 몰두하였던지 얼마나 성경공부에 몰두했던지 교제시간이나 휴식 시간도 갖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모임의 열정이 식으면 부흥의 불길은 꺼지고 맙니다.
  구약성경에서 교회라는 말은 카할입니다. 회중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카할이 신약성경에서 헬라어 “에클레시아”로 번역됩니다. 뜻은 밖으로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모임 공동체입니다. 모여야 교회가 됩니다. 모이지 않으면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모이는 곳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마 18:20절에 보면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모이는 횟수를 줄이면 안 됩니다. 신앙이 성장하면 교회에 모이는 횟수가 자연적으로 증가합니다. 모이는 불을 타오르게 합시다. 모일 때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② 충성과 헌신의 불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 사람들은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려 합니다. 몸으로 봉사하는 일을 싫어합니다. 헌신적인 봉사나 희생적인 충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시대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계 2:10절에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라고 했습니다.
  죽도록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헌신의 불이 꺼져 가면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서 헌신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발전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사르밧 과부 얘기가 나옵니다. 3년이 넘는 가뭄에 양식이 라고는 한 줌의 밀가루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에게 한줌의 밀가루는 마지막 양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에게 엘리야 선지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가 가진 마지막 양식을 요구하게 했습니다. 여인은 엘리야의 요구에 기꺼이 응하여 자신과 아들의 최후 양식을 아낌없이 바칩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밀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기름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고 가뭄이 끝나서 열매를 거둘 때 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한줌의 밀가루가 아닙니다. 그녀의 믿음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비록 가난했지만 믿음에 있어서는 부자였고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뭄이 다 지나기까지 그가 포기했던 마지막 양식을 계속 먹을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헌신은 마지막 양식을 바치는 것입니다.
 
  헌신된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를 쓰십니다.
  앤드류 카네기가 회장으로 있는 철강회사‘유나이트 스틸사’에 한 청년이 노무자로 고용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챨스 슈와브"입니다. 그 사람의 학벌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카네기의 후계자가 되어 미국에서 가장 큰 철강회사의 회장이 된 것입니다.
  온 세계가 다 놀랐습니다.
  사실 그는 회사의 청소부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정원만 쓸어도 될 텐데 공장 안까지 말끔히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카네기가 출근해보면 그는 항상 먼저 와 있었고, 또 모든 직원이 퇴근한 후에도 언제나 일을 깨끗이 마무리해놓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카네기의 비서로 승진하였다가, 결국에는 미국 최고의 철강 회사인 유나이트 스틸사의 사장이 된 것입니다.
  헌신하는 사람에게 축복이 옵니다.
  자기 잇속만 챙기고 욕심만 채리고 남을 위해 헌신할줄 모르는 사람에게 결코 복이 임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후랭크 시리우바 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1903년 4명의 공산주의자가 연구를 시작하더니, 1917년에는 40,000명의 공산주의자가 생겨 소련을 공산주의 혁명으로 뒤집어엎었다.  그로부터 약 70년 후 세계 약15억의 인구가 공산주의 밑에서 신음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2000년 동안의 긴 세월에 기독교는 뭘하고 있었는가?”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를 위해 헌신한 것 보다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위해 헌신한 것이 못하다는 것입니다.
  군인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구두를 잘 닦고 훈장을 달고, 길을 가다가 상관을 만나면 깍듯이 경례 잘한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진정한 군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예절이 바르고 신사 같다 할지라도, 전쟁터에 나가 자기 목숨을 바칠 수 없는 한 그는 군인이 아니요, 장교가 아닌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크리스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는 완전한 신사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희생하고, 헌신을 요구할 때에 헌신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과 희생의 불길이 식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③ 선교의 불입니다.
  선교는 필수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입니다. 선교는 주님오실때까지 쉬지 않고 해야합니다. 왜냐면 선교가 완성되어야 주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마 24:14절에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라고 했습니다. 당장에 큰 열매가 없어도 우리는 선교의 불을 계속 피워야 합니다.
  어떤 분이 목사님의 설교는 언제나 선교로 결론을 맺는다고 말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상에 있는 동안에 해야할 일이 바로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선교는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주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아담을 부르신 것도 선교 때문이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도 선교 때문입니다. 
  모세를 부르신 것도 선교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성령님을 이땅에 보내신 것도 선교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선교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전도의 불, 선교의 불이 꺼진 교회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선교의 불이 꺼지면 세상은 어두워집니다. 
   
  ④ 사랑의 불입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마 24:12절에 보면 말세의 징조중에 하나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라고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제단에서는 사랑의 불이 끊임없이 불이 타올라야 합니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강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제단에서 꺼지지 않게 하여야 하는 불이 바로 사랑의 불입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요일 4:11-1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여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요한 사도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안에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 것은 틀린 말입니다. 불은 뜨겁습니다. 이것은 열심을 의미합니다. 그러기에 불을 꺼뜨리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항상 타오르게 하여야 할 불은 사랑의 불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사랑의 문제입니다.
  돈의 문제도 아니고 권력의 문제도 압니다. 정치나 외교문제도 아닙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미국 작가 잭 캔필드가 쓴 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직장여성이 저녁 귀가 길에 다른 차를 들이 받았습니다. 두 차의 앞뒤 범퍼가 크게 망가졌습니다. 그녀의 차는 출고된 지 며칠 밖에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넉넉하지 못한 살림 탓에 남편을 졸라 겨우 마련한 차였습니다. 이를 남편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한단 말인가? 억장이 무너지는듯했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처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 등록증을 꺼내기 위해 차 안에 있는 큰 봉투를 열었습니다. 그 때 종이쪽지 하나가 봉투에서 떨어졌습니다.
  거기에는 큼지막한 필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사고가 날 경우에 이것을 잊지 말아요.내가 사랑하는 건 차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걸!"

  그렇습니다.
  요일 4:18절에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사랑이 있다면 상처 받은 마음들이 나의 사랑을 통해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 있다면 서로를 감싸주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로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어느 도시에 있는 빵 가게에 벌써 이십분 째 물건을 안사고 진열된 빵들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참다못해 말을 걸었습니다.
  "손님, 어떤 빵을 찾고 계십니까?"
  그러자 청년은 “유통기한을 봤어요. 혹시 유통기한이 지난 빵을 진열하지 않았나 해서요”
  빵가게 주인은 "몇 개는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지만 안심하고 드셔도 좋을 빵만 있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 청년은 언뜻 보기에도 지저분했습니다. 오랫동안 씻지 않았는지 몸에선 이상한 냄새가 났지만 주인은 그런 청년을 내쫓지 않았습니다. 자정 무렵이 되자 청년은 조심스레 빵 하나를 집어 진열대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곤 시계가 열두 시를 막 넘어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 빵을 들고 계산대로 가져가더니 갑자기 밖으로 뛰어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힘이 없는지 얼마 못 가 털썩 주저앉는 청년의 어깨 위로 잠시 후 누군가의 손이 다가왔습니다. 돌아보니 놀랍게도 편의점 주인이었습니다. 당황한 청년은 들고 있던 빵을 서둘러 내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못해 훔쳤습니다. 이 빵은 자정이 넘었기 때문에 유통기한이 지난 거예요."
  그러자 편의점 주인은 주머니에서 우유를 꺼내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사랑에는 유통 기한이 없다네 이것과 함께 천천히 먹게나."
  그렇습니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사랑은 영원합니다. 고전 13:13절에서 “믿음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왜 사랑이 제일입니까? 그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믿음도 천국이 오면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소망도 그 나라가 이루어지면 더 이상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천국에까지 유효합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아야합니다.
  요일 4:20-21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생 텍쥐페리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서로 마주보고 싸우지 말고 같은 방향을 함께 봅시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앙의 불길을 바라봅시다. 열정이 있는 신앙 빛이 있는 신앙 그래서 사랑의 불꽃을 타오르게 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