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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것, 다 벗어버리고! (히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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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성완석 목사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서 12장 1~2절 말씀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 벌써 10월입니다. 복된 10월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많은 열매맺는 10월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월에는 힘들어도 믿음으로 웃으며 삽시다! 힘들어도 화내지 맙시다! 우리 입술에서 좋은 말만 나오는 한 달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사합시다. “복된 10월이 되세요! 많은 열매맺는 10월이 되세요! 믿음으로 웃으며 삽시다! 힘들어도 화내지 맙시다! 우리 입술에서 좋은 말만하며 삽시다!” 아멘!

  우리 모두는 경주자 들입니다. 이제 막 출발한 사람도 있고, 반 이상이나 달려버린 사람도 있고, 거의 골인 지점에 가까워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 인생의 시간이 얼마가 남았든지 간에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보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달려 갈 것인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의 믿음은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혼자만 복을 받은 것이 아니에요.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가 동일한 약속을 받았고, 3대에 걸쳐 믿음이 이어졌고, 대대로 복을 받은 것입니다. 디모데를 보세요.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신앙을 이어받아 3대까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소원도 그렇습니다. 부부가 함께 축복의 길 걸어가고,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과는 달리 부부가 사는 길에도 해결해야 할 힘겨운 문제들이 많고, 자녀 때문에 기뻐하고 감사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가정보다는 자녀 때문에 근심하고, 염려하고, 애타하는 일들이 많더라는 것이지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에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는 물론이고, 자녀와 후손까지 잘 되는 축복의 원리를 다시 한번 깨닫고, 축복을 갈망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시 인사합시다. "잘 달려갑시다" "승리의 영광을 누립시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인생의 달려가고 있는 길을 점검하고, 교훈받아, 남은 인생 더욱 가치있는 승리의 길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두가 이기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져도, 있어도 피곤한 인생살이 속에서 이런 축복이 오늘 복된 자리,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충만,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394 1.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모든 싸움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3.주를 앙모하는 자 달려가 달려가 피곤치 않네 천성 문을 향하여 면류관을 얻도록 달려가 달려가 독수리같이 (후렴)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힘겨운 인생살이 속에서도 주님이 영육간에 새 힘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를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들과 문제들을 넘어서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먼저 "벗어버리고" 그렇습니다. 누구나 인생 살면서 갖추기를 원합니다. 없는 것보다는 있으면 좋습니다. 갖추면 편리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인생의 경주에서 나의 가진 것이 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노인과 바다"로 잘 알려진 헤밍웨이는 감동적인 걸작을 남긴 위대한 문학가입니다. 헤밍웨이의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오직 예수만 알고 사는 믿음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믿음 생활을 했는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노벨상을 받게되고, 사람들에게 유명인사가 되니까 영적 생활에 금이 간 것입니다. 어머니가 불러 야단을 칩니다. "너 그렇게 하면 망한다. 세상에서는 성공할지 몰라도 하나님앞에서는 안 된다" 안 듣습니다. 그 속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공한 작가, 노벨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어떻게 끝난 지 아십니까?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어느 산에서 권총을 머리에 대고 쏘아서 스스로 자살하고 맙니다. 많은 것 누렸는데, 가져 보았는데 인생의 허무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인생을 끝냈더라는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질 때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은혜 주실 때 헛되이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고,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자녀가 잘 되는 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를 얽매이게 하고, 주저앉게 하고, 힘들게 하는 것은 환경이나 현실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더라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내 생각이, 내 시각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어느 백화점에는 엘리베이터가 너무 느리게 움직여서 고객들이 불평이 많았습니다. 지배인은 이 문제를 엔지니어인 자문위원회에 문의했고 자문위원회는 6명의 기술자를 동원해서 분석하고 연구해서 속도 증가에 필요한 힘을 계산해서 일주일만에 대책을 내놓았는데, 문제는 예산이 엄청나게 많이 든다는 거예요.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예산 때문에 걱정에 빠졌습니다. 이 소식을 백화점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듣고 하는 말이 "5만원만 주시면 이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더니 커다란 거울을 사다가 엘리베이터 안에다 걸어놨어요. 전에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그 상자 속에서 무료하게 서 있노라니까 지루하고 느리게 느꼈는데 거울을 달아 놓으니까 얼굴도 보고, 넥타이도 고쳐 매고, 머리도 다시 만지고, 어떤 여자 분들은 립스틱도 바르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덜커덩! "어! 벌써 다 왔네." 그 후로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요새 말로 하면 "심리학적 차원의 해결"을 한 거예요. 

  같은 환경 속에서도 마음이 크면 훨씬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각이 큰 사람, 생각이 넓은 사람은 같은 여건 속에서도 훨씬 큰 일을 합니다. 보는 눈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어떤 한사람이 길을 가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한편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 사람이 본래 큰 슈퍼마켓을 경영했는데, 사기를 당해 가지고 다 날려 버리고 빚에 시달리게 됩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어렵습니다. 직장을 구하러 다니는데 일거리가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길을 가면서 자신을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을 만나면서 십초만에, 자신의 생각이, 말이 십초만에 바뀌게 되는데, 휠체어에 앉아있는 분이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지요?" 자세히 보니까 두발이 없어요. 두발이 없는 분이 휠체어에 앉아서 이런 인사를 하더라는 거예요. "아니, 발이 없어 휠체어에 앉은 분이 날씨 좋은 건 또 뭐냐?"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저 사람에 비하면 나는 무엇이냐?" 충격을 받은 거예요. 집에 돌아와서 화장실에 있는 큰 거울에다가 "구두가 없어서 불편하거든 구두 신을 필요가 없는 사람을 생각하라." 생각이 바꾸어지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죄의 길을 가고, 저주의 길을 가느냐? 순종의 길을 가고, 축복의 길을 가느냐? 이것도 보는 눈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눈이 바꾸어지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더 넓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로 향하지 아니하고, 주님 예비하신 축복의 길, 형통의 길로 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혹 잃어버린 것 있습니까? 되찾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영육간에 부요한 축복도 되찾고, 순수했던 믿음도 되찾고, 뜨거운 가슴들도 되찾고, 기도의 능력도 되찾고, 건강도 되찾고, 헌신의 기쁨과 풍성한 감사도 되찾고, 가정과 일터도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에 웃는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복된 열매를 나와 후손들에게 거두시기를 축원합니다. 피곤하고 힘겨운 인생살이 속에서도 이런 축복이 오늘 복된 자리,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충만,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제일 기본이 되는 것은 초점을 잘 맞추는 거예요. 그래야 선명하게 잘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에 내 생각을 맞추어야 후회하지 않는 인생 살게 되고, 만족한 삶 살게 됩니다. 우리의 눈이 바꾸어지는 축복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이 더 넓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죄로 향하지 아니하고, 주님 예비하신 축복의 길, 형통의 길로 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세에는 악한 영들과 미혹의 영들이 크게 역사하는데 잘 분별하는 은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흔들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견고하여서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가정이 주님이 늘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복된 가정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일을 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평안히 쉴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잠을 잘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지금 절망스러운 환경과,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낙심스러운 여건에 처해 있을지라도 마음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면, 보는 눈을 바꾸면 새로운 길이 보입니다. 길이 열립니다.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가져오던 경험의 틀, 자기라고 하는 시각의 틀에서 벗어나야 새로운 길이 열리고, 형통한 축복이 임합니다. "네가 지금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고 있느냐? 네 보는 눈을 바꾸어라! 네 생각을 바꾸어라! 네 마음을 바꾸어라!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 주님이 열어 주시리라! 형통케 하실 것이라!"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생각부터 실패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죄악 된 것이라면,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는 길이라면 시초부터 차단해 버려야 합니다. 이사야 55: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방향이 바뀌는 것이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신생아는 태어나면서 자기의 생명줄과 마찬가지인 탯줄을 잘라야 합니다. 영양을 공급받고, 생명을 공급받던 줄이지만 잘라야합니다. 이것이 사는 길이에요. 사람에게는 회귀 본능이 있습니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본능입니다. 지난 습관이나 생각을 무우 자르듯이 싹둑 자르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신앙 생활은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지난 것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합니다. 정신이 좀 이상한 사람은 벗을 때, 입을 때를 잘 구분 못해요. 길에서도 옷을 벗는 사람이 있고, 여름에 털 코트를 입고 다니기도 합니다. 벗을 것 있다면 미련없이 벗어버려야 믿음이 자랍니다. 뒤돌아보지 마세요. 미련 갖지 마세요. 끊을 것 있다면 과감하게 끊어 버리세요. 무엇인가 매여 있으면 역사를 보지 못해요. 벗어버릴 것 벗어버리고, 정리할 것 정리해야 믿음이 자라고, 믿음의 역사와 증거를 보게 되는 거예요. 이사야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과거의 실수, 실패, 아픈 상처들 다 잊어버리세요. 마귀는 우리에게 자꾸 과거를 돌아보라고 합니다. 지난 일에 얽매이게 합니다. 죄책감,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풀어 버리지 못하게 해요. 오래 갖고있게 합니다. 우리를 과거에 매이게 하고, 작은 것 때문에 큰 것 손해보게 합니다. 작은 일에 집착하게 하는 것은 마귀가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나 성령님은 미래를 바라보게 합니다. 소망을 가지게 하고, 새 힘을 얻게 합니다. 잊어버릴 것은 다 잊어버리세요. 억울하고 분한 생각은 털어 버리세요. 물질의 손해를 보았던지, 억울하고 분한 일을 겪었던지, 다 털어 버리세요. 다 잊어버리세요. 새롭게 시작하세요. 하나님이 되 찾게 하십니다. 회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어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무겁게 살지 마세요. 방향만 바꾸면 됩니다. 주님이 씻어 주십니다. 주님 가까이 하고, 교회를 가까이 하고, 말씀 가까이 하세요. 멀어지면 사탄이 틈을 타서 불행의 길로 인도합니다. 특별히 가정이 믿음으로 통일되야 합니다. 아직 안 믿는 식구 있다면 간절히 매 달리세요. 주님 열매를 주실 것입니다. 같이합니다. "벗을 것 벗어버립시다. 큰 결심합시다. 믿음에 성공자가 됩시다. 3대까지 책임집시다" 아멘! 

  벗을 것 벗어버리고 뭘 봐요?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 생활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치게 되는 몇 단계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믿지 않을 때는 예수 믿는 사람이 다 불쌍해 보이고 우스워 보입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서 내가 예수 믿고 보면, 왜 진작 예수를 믿지 않았던가 후회를 하게 되더라는 거예요. 그러다가 교회 생활에 익숙해지면 교회의 직분 받은 자를 우습게 보게 되고, 다른 사람의 허물과 흉이 자꾸 보이게 됩니다. 판단자가 되는 거예요. 이 단계를 넘어서면 눈이 변하여 내 허물과 잘못이 보이고,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붙들게 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라는 거예요. 목표가 분명하고 골인 지점을 확실히 아는 사람, 인생의 성패가 여기서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운동 선수는 승리하기 위해 혹독한 훈련을 합니다. 참고 견딥니다. 힘들어도, 고달파도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믿음 생활도 그렇습니다. 인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요셉은 잘 참아서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욥도 오래 참아서 성공한 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으나 오래 참음으로 그 약속을 현실로 받은 거예요. 그런데 목표가 분명하지 않으면 참기가 어려워요. 우리 신앙의 경주자 들에게도 분명한 목표와 함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기는 자, 승리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주님 바라봐야 합니다. 

  개 중에도 영리한 개는 주인이 허락하는 것과 허락하지 않는 것을 구분할 줄 압니다. 주인이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를 갖다 놓으면 처음에는 개가 날쌔게 뛰어가서 그것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때 주인이 안돼! 하고 소리를 치면 멈칫 하고 섭니다. 그때 주인이 고기를 빼앗아 가고, 이렇게 몇 번만 반복해서 훈련시키면 그 다음에는 고기를 갖다 놓아도 고기를 보기 전에 주인부터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주인이 먹으라고 하는지 안 된다고 하는지 그 뜻을 살피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되신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의미가 아닌가 싶어요.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느냐? 그 뜻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면 약속하신 복을 생활로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은 쉽게 변할 수 있는 거예요. 믿을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요. 인심입니다. 여론도 시간에 따라 변합니다. 변치 아니하시는 주님! 한결 같으신 주님! 살아계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바라보는 곳에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내가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안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약2:19에 보면 귀신들까지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압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기적을 보고 압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그들은 단순히 알뿐이에요. 진정한 믿음은 알고, 고개를 끄덕이고, 인정하는 것 이상입니다. 단순한 하나님의 존재를 알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내 생활에 주인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땅에 살면서 단순한 소원 성취를 위해 믿는 것은 어린 믿음입니다. 내 기도의 제목이 왜 이루어져야 합니까? 이것 통해서 더욱 주님 원하시는 삶, 주님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살기 위하여서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딜 가느냐,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중심이 바로 되고 순종의 열매가 있는 자에게는 모든 것에, 들어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창고와 손으로 하는 모든 일들이 복을 받는다고 하셨고 하늘의 보고를 열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처지를 아시고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그냥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때를 따라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 말씀하시고, 주님이 열어 주시는 대로 나는 따라 가며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 주님이 열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붙들어 주시면 되는 거예요. 오래 믿었지만 역사가 없는 믿음은 껍데기예요. 능력이 없는 믿음은 헛것입니다. 오랫동안 믿음 생활하면서도, 직분자로 살면서도 깊은 기도 한 번 못해 보는 것, 믿음으로 순종해서 역사를 체험해 보지 못한 삶은 억울한 삶이에요. 이런 체험, 확신 없으면 쉽게 흔들립니다. "기도해도 별수 없더라" "믿음으로 살아도 별 수 없더라" 내가 이런 가라지 되지 말아야 하거니와, 이런 너절한 사람들의 판단에 내가 희생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없는 사람들의 생각에, 말에 같이 동조해 버리면, 같이 휩쓸려 버리면, 나도 죽는 거예요. 믿음의 생명력은 끝나는 거예요. 손해보는 인생 살지 말아야 합니다. 후회하는 인생 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주님 바라보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시는 형통한 삶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배춧잎을 갉아먹고 살던 벌레는 자라는 동안에 배춧잎이 그렇게 넓어 보였고, 배춧잎이 운동장이었어요. 벌레가 고치가 되고, 나비가 되어 배추밭을 날아다니다 보니, 배춧잎이 그렇게 좁게 보일 수가 없더라! 넓은 들판도 보고, 이웃동네에도 가보니, 보는 것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더라! 배춧잎을 갉아먹을 때의 생각과, 나비가 되어 온 동네를 날아다니게 되었을 때의 생각이 같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높이가 달라지면 보는 것이 달라지고, 보는 것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지더라!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자신 속에 갇혀 살 때는 자신밖에 모르고, 자기 생각에 갇혀서, 자기주장만 하면서 살면서도 다른 것을 보지 못하더라! 좀 크게 볼 수 있어야 되요. 번데기 속에서 벗어나서 하늘을 날아 보아야합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 되고 나서, 늘 자기 고향에서 목동으로 살 때를 잊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지금까지 인도하신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았어요. 그래서 더 주님께 사랑받으며 산 거예요. 지난날의 은혜에도 감사하고, 주님이 나에게 주실 내일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만 보는 사람은 조급하고, 그래서 원망과 불평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은, 오늘이 비록 힘들어도 좀 불편해도 낙심하지 않아요. 원망하지 않아요. 더 좋은 내일이 올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만 보는 사람과 숲을 보는 사람은 틀릴 수밖에 없어요. 부분이 아닌, 토막이 아닌 전체를 볼 수 있어야 되요. 때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이해가 안될 때 있을지 몰라요. 내 생각에는 안 맞을지 몰라요.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나고 나면 이해가 됩니다. 때로 목사의 생각이 이해가 안될 때 있을지 몰라요. 이것 한 가지만 생각하십시오. 목사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 어떻게 하는 것이 교회가 유익할 것인가? 이것을 보려고 애를 쓰고, 목사는 늘 전체를 보려고 애쓴다는 것! 개개인이 100% 마음에 맞을 수가 없는 거예요. 때로 안 맞아도 맞추어 나가고, 믿음으로 순종해 나가고, 그러면서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 가게 되는 거예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 밑에서 판단하고 흔들기는 쉬워요. 엉뚱한 곳에 힘을 낭비하지 말아야 되요. 엉뚱한 것 때문에 힘을 낭비하고, 신경을 쓰고 나면 교회가 유익이 없더라! 판단자나 흔드는 자가 아닌 주님 바라보며 잘 인내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재물이 우리 교회에 더 많아져 가기를 축원합니다.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오늘 힘들어도 주님 주실 내일을 보세요. 오늘 어려워도 주님 주실 영광을 보세요. 오늘 실패했어도 주님 주실 축복을 보세요. 우리 가정에도, 우리교회에도 주님 좋은 것들로 갚아 주실 때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시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주님 바라보고 사는 자에게 하늘의 신령한 것도 주시거니와 땅의 것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가장 잘 믿는 것은 어린아이처럼 믿는 것이에요. 어린아이는 엄마 품을 떠나면 죽는 줄 알아요. 엄마 손을 꼭 잡고, 엄마의 품에 안겨 만족하듯이 우리도 하나님 품을 떠나면 죽는 줄 알고, 하나님 품에 안겨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길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그 길이 외로울 수도 있고, 박수를 받지 못하는 길일수도 있습니다. 자기의 길에 우뚝 서서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 멋있는 사람이오, 인생의 성공자입니다. 알렉산더는 30세에 온 세계를 점령했으나 33세에 열병으로 죽었고, 나폴레옹은 20세에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세에 장군이 되어 곳곳을 점령하고, 35세에 프랑스 황제가 됩니다. 그러나 워털루 전쟁에 실패하고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승리자는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세상의 성공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거예요. 주안에 있는 자만이 영원한 승리의 사람이 되어지고, 주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자만이 끝까지 승리자로 남게 됩니다. 지금 남을 판단하고, 남의 길을 바라 볼 시간이 없어요. 나의 길 걸어가기에도 시간이 아쉬운 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경주를 잘 감당하기 위해 벗을 것 벗어버리고, 주님 바라보며 승리의 삶, 형통한 삶, 되는 삶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1. 이제 내가 살아도 주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3. 성령충만 능력받아 주의 일하고 사랑으로 이웃에게 복음 전하네 주가 주신 면류관 받아쓰고서 할렐루야 영원토록 왕 노릇하네 후렴)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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