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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경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복받은 자입니다! (시 8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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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성완석 목사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편 84편 4~5절 말씀

  지난 한 주간 변화많은 환경 속에서도 주님이 우리의 걸음걸이를 붙들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이런 일을 당할 수가 있을까? 생각할 만큼 어려운 지경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어떻게 변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달라질지라도, 나는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붙들고 살겠습니다! 이것이 나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평생 사는 동안 주님의 품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생각을 바꾸면 소망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을 생각하면 새 길이 보입니다. 예레미야 선지는 고백하기를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여러 가지 문제들, 가로막힌 장애물들... 아무리 살펴보아도 소망이 없더라는 거예요. 낙심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애3:19-22) 생각을 바꾸니까 주님 예비하신 길이 분명히 있는 것이 믿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세요. 믿음의 눈을 열어서 환경 너머에 있는, 주님이 예비해 두신 그 길이 보여지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고백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의 성전을 통해서 받는 축복과 은혜를 일일이 손꼽을 수가 없어요. 주의 전에 거하고, 주님의 품에 거하는 복이 최고의 복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의 전인 교회를 사모하게 되고, 믿음 있으니까 성전이 좋은 것입니다. 주님은 주의 몸된 교회를 통하여 은혜를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치료하여 주십니다. 오늘도 모든 것 물리치고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405 나같은 죄인 살리신 

  오늘 시편의 첫 부분에 보면 "고라 자손의 시" 한 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귀히 여기는 사람들의 믿음으로 고백한 내용들인데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왔을 때 모세의 인도를 따라 나온 사람 가운데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이 있었는데, 이 네 사람이 특별히 불만을 가지고 당을 지어서 조직적으로 모세를 대항하게 됩니다. 불평의 내용은 "왜 우리가 당신의 지도를 따라야 하느냐? 왜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키고, 힘들게 하는 거냐?"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까? 육신의 판단으로, 육신의 눈으로 보니까, 그렇게 보이더라는 거예요. 모세만 보이고, 당장 어려움만 보이더라! 배후에서 역사하시고 이끌어 나가시는 하나님이 안 보인 거예요. 그래서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과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다 같이 모이게 했는데, 250명 정도가 모였는데, 자녀들도 다 자기 아버지를 따라가고, 남편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고라의 자손들은 안 따라 간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시험 들었다" "우리 남편이 잘 못 하고 있는 거다" 그래서 따라가지 않았는데, 그들이 바로 고라의 자손이었습니다. 따라갔던 자들은 다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 250명이 죽임을 당하는데, 고라의 자손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성전을 귀히 여겨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잘 섬긴 거예요. 이 고라 자손들이 성전에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는데 쓰임을 받기도 하고, 성막을 옮기고, 성막을 지키는 일에 쓰임 받으며 축복된 족속으로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4절 같이 봉독합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얼마나 주의 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던지 참새나 제비가 성전 처마에 보금자리를 두고 있는 것이 부럽다고 했겠습니까?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품에 안겨 사는 것이 최상의 행복이고, 참 만족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에 꼭 안겨서 사는 행복, 만족이 여러분에게 체험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환경이 어렵고 힘이 없어도, 성전을 가까이 하는 자는 위대한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도 어려서 아버지가 교통 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이혼을 다섯 번이나 했어요. 많은 상처 가운데, 어머니와 못 살고 할아버지와 살게 됩니다. 믿음의 할아버지가 주일학교로 인도하게 되고, 10살 때 세례를 받고, 11살에 빌리 그레함 목사가 인도하는 부흥회에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지금까지 교회 중심으로 사는데, 17년을 성가대를 했는데, 주지사가 되어도 성가대를 놓친 일이 한번도 없고, 대통령이 되어도 교회에 안 나가는 날이 하루도 없을 만큼 교회 중심으로 살았다는 거예요. 주의 전을 가까이 하는 것이 복이고, 하나님의 품에 안겨 사는 것이 최상의 행복입니다. 이런 은혜와 복이 체험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평양에 사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경성의 배재학당에 지원했을 때 아펜젤라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평양에서 경성까지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8백 리 정도 됩니다." "아니,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배우러 왔습니까?" 그때 안창호 선생님이 되묻기를 "선교사님! 미국에서 이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8만리 정도 됩니다." 그때 안창호 선생님이 말하기를 "아니,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와서 선교하는데 8백 리가 무엇이 멀다는 말입니까?" 여러분들의 주님을 향한 사랑이, 교회를 향한 사랑이 거리가 막을 수 없는 그런 사랑이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주의 전을 가까이 하는 곳에 회복의 길이 열립니다. 이혼하기 위해 별거 중인 부부가 있었는데, 서명하고 정식으로 법적으로 헤어지기 며칠 전, 남편의 마음 속에 큰 부담과 함께, 자식 낳고 살아온 10년 넘는 삶을 이렇게 끝내고 말아야 하는가? 마음이 너무 아프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교회에 나가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전에 나갔던 교회의 새벽기도에 나갔는데, 사람들 만나는 게 싫어서 다 빠져 나올 무렵에 가니까 한 두 사람만이 있더래요. 맨 앞으로 나가서 엎드려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져 나오며, 자기가 살아왔던 삶의 헛된 모습들이 보여지기 시작하고, 십자가에 예수님이 달리셔서 피를 뚝뚝 떨구고 계시는 예수님이 환상처럼 보이는 거예요. 왜요? 왜요? 그러다가 그는 스스로 대답하기를 "내 죄 때문이지요. 나도 알아요. 내 욕심, 내 고집, 내 이기심..." 지금까지 부부관계가 어려워진 것은 아내의 독특한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바라보면서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 제가 더 잘못했어요. 제가 더 잘못했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남편이 이런 기도를 하고 있었을 때 아내가 조금 후에 그 예배당에 들어온 거예요. 아내는 아내대로 마음에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그 교회에 나가 기도하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좀 늦게 온 거예요. 앞에서 훌쩍이고 통곡하는 남편이 "하나님 제가 더 잘못했어요. 제가 더 잘못했어요" 이 소리를 듣는 순간 아내의 마음이 무너져 내려요. 생각해보니까 남편뿐 아니라 자기도 잘못한 게 많거든요. 울며 기도하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남편이 기도하고 있는 앞으로 달려와서 "여보! 저예요" 두 사람은 함께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기도를 합니다. 나올 때는 둘이 손을 잡고 나온 거예요. 다시 해보자고, 하나님은 이 부부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의 십자가 앞에 무릎 꿇어 엎드리면 그곳에 회복의 길이 열립니다. 치유하시는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 사람이 길을 잃지 않고, 방황하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됩니다. 아버지 집에 가는 것이 최고의 영광이요, 그 집에 머물고 그 집에 사는 것이 최고의 행복입니다. 현대인들이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방황하고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은 바로 아버지 집을 떠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버지 집을 떠난 인간은 길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개인도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할 때만이 힘있고 능력 있는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것이니라" 오늘도 복된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은혜 베푸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성전을 사모하는 마음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항상"이란 말의 의미가 "아직도"라는 말도 됩니다. 지금 어렵지마는, 힘든 가운데 있지마는 최악의 상황이지마는 그래도 주를 찬송한다는 고백입니다. 형통할 때, 즐거울 때, 모든 일이 잘 풀려질 때 주를 찬송하기는 쉽지마는 어려울 때도 변함없는 믿음 갖기는 참 어렵습니다. 5절을 보세요.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힘을 얻는 자리입니다. 누구나 살다가 피곤과 지침과 탈진의 상태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같은 불의 사자 능력의 사자도 이제는 내 생명을 거두어 주세요. 만사가 귀찮습니다! 이럴 때가 있었습니다. 다윗도 반란과 배신을 당하고 도망자의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있었고, 모세도, 바울도, 베드로도 낙심스러울 때가 있었더라! 어찌할 수 없을 때, 주님만이 나에게 새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주의 전은 문제가 해결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전에서 하나님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 평안이 임하고 문제가 해결의 길이 보이더라! 매듭이 풀려지고, 갈등이 해결되어지고, 막혔던 길들이 열리게 되더라! 눈에 보이는 대로 믿는 사람 있고, 믿는 대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길에도 그러하고 지상교회에도 사람이 모인 곳이라 문제는 있습니다. 당면한 문제에 집착하다보면, 그 문제에 사로잡히게 되고, 더 이상은 보지를 못합니다. 현실은 자꾸만 커지고, 하나님은 자꾸 작아지는 거예요. 눈을 주님께로 옮기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나에게, 우리 가정에, 우리 일터에, 우리 교회에 주실 좋은 결말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바라보며 나가면 결국은 이깁니다. 어찌보면 현실은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믿을 것 없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든지, 환경이든지, 믿고 신뢰하는 마음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손을 대시면 환경도, 남편이나 자녀도,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도 얼마든지 달라지고 변화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여라도 과거에 안 되었으니까, 이런 생각의 포로가 되지 말아야합니다. 

  물고기의 생태를 실험하기 위해서 한 연구원이 수족관에 피라미 몇 마리와 창꼬치 고기를 넣어 놓습니다. 덩치가 큰 창꼬치 고기는 신이 나서 피라미를 잡아먹습니다. 얼마 이후에 피라미와 창꼬치 고기 사이에 유리 칸막이를 해 놓습니다. 배가 고파 피라미를 향해 돌진 해 보지만 번번이 눈에 안 보이는 유리 칸막이에 머리만 박을 뿐 끝내 눈앞에 보면서도 잡아먹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 칸막이를 제거합니다. 피라미들이 창꼬치 고기 주변을 마음껏 헤엄쳐 다니는데 이제는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도 피라미를 잡아먹을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불행스럽게도 과거의 실패했던 경험이, 해도 안 되더라하는 부정적인 경험이 아무 것도 못하게 만든 거예요. 우리도 때로는 앞으로 우리에게 펼쳐질 미래보다, 과거의 쓴 경험, 아픈 기억들에 얽매여 그냥 주저앉아 버릴 때가 있습니다. 과거에 매이면 새로운 시작도, 역사도 없습니다. 주님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축복된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너무 지체되므로, 현실의 답답함이 너무 오래 계속 되므로, 변화가 나타나지 아니하고, 문제가 해결되지 아니하고, 역사가 지연되므로 낙심되거나 실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죽을 각오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축복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지체치 아니하리라""때가 되면 영광 보리라""때가 되면 이루리라""때가 되면 받으리라""생각한 것 이상으로 주시리라""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풍족하게 주실 것이다"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하신 약속 때문에 허락하시는 거예요. 믿음으로 사는 자도 순간적으로 실패하는 듯한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더 큰 축복을 얻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셨고 참 행복의 시작인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신 거예요. 믿음 생활은 구속이나 부담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무서운 생존 경쟁의 시대 속에서도, 불안하고 염려할 일 많은 인생살이 속에서도, 진실하게,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심으로 행복하게 사는 지름길을 찾으시기를 바랍니다. 참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안겨 주실 축복은 이미 예비되어 있어요. 하루하루를 새로운 날로 충실히 살고, 내일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준비하고 계획하며 살되 지나간 것 후회하거나 다가올 앞날 불안해하지 아니하고 하루하루를 주님 예비하신 그 길 따라 행복하게 사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여호와 나의 목자 내게 부족없네 푸르른 초장 위에 나의 몸 누이시네 선한 목자 오 나의 목자여 생수가 넘치는 곳 날 인도 하시네

  주안에 있는 사람은 범사에 복이 됩니다. 들어가도 나가도 복이 되고, 일어나도 넘어져도 복이 됩니다. 건강한 것도 복이고, 때로 병들어도 그것이 축복으로 바꾸어 질 줄로 믿습니다. 시84: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 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로다" 4000년 동안 그렇게도 무지(無知)하던 이 나라가, 귀신을 따라가며 우상 숭배하던 이 민족이 이렇게 위대한 문화인이 되고 지성인이 되고 경제적으로 짧은 시간에 이렇게 잘 살게 되고 민주주의를 하게 된 것,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교회를 통하여 왔습니다. 이 땅 위에 주의 교회가 방방곡곡에 세워지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셨어요. 교회는 은혜 받는 집이에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집이에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집이에요. 교회를 떠나는 것은 쉽게 비극을 가져오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주님 주시는 은혜받고, 능력 받아서, 집으로 가고, 일터로 가고, 세상으로 가서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한 번 살아 보세요. 하나님께서 만 배나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구원받는 것과 복을 받는 좋은 성도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예수만 바로 믿으면 구원은 얻습니다. 어느 교회 다니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이 되느냐 하는 것은 교회마다 다르더라는 거예요.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구원받으려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좋은 교인이 되려고, 더욱 복된 삶을 살려고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것 없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새롭게 하고, 위대한 일에 쓰임받게 하고, 꼭 필요한 사람되게 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소가 송아지를 낳으면 일분도 안 되어서 새끼가 일어나서 어미의 젖을 찾아가고 바로 젖을 먹습니다. 짐승들은 누가 도와 주지 않아도 다 그래요. 사람은 태어나면 어머니를 못 찾고, 젖을 못 찾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죽습니다. 어머니가 안아주어야 하고, 먹여 주어야 하고, 재워주어야 하고, 어머니의 손길 없이는 못 살아요. 짐승과 달라요.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듯이 우리는 위로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살수가 없어요. 양은 목자가 지켜주고 먹여주고 인도해 주어야 하듯이 사람이 자기 힘으로 사는 것 같아도, 스스로는 못 살아요. 목자의 음성을 들으며 목자와 함께 살아가는 그 양에게 행복이 있는 것이고 안전이 있는 것입니다. 셰익스피어는 시골에서 제대로 공부도 못하였고, 런던에 가서는 이름 없는 배우로 길거리에서 살기도 했는데, 걸작들이 어디서 나왔느냐? 한번도 주일을 거르지 않고 교회를 나갔던 신앙에서 나온 것입니다. 지혜가 생기고, 아이디어가 생기고, 작품에 대한 놀라운 구상이 생겨서 그의 작품 하나 하나가 세계적인 걸작이 된 거예요. 아무리 어렵고 불행해도 아버지 집에 나와 말씀을 듣는 곳에 길이 열립니다. 가정이 삽니다. 기업이 일어납니다. 앞날이 열립니다. 모든 새 힘이 아버지를 통해 주어지는 줄 믿습니다. 바른 믿음에는 상급이 있고, 바른 믿음에는 보상이 있습니다. 바른 믿음에는 응답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나님, 이 고난의 길에 함께만 해 주시옵소서! 이 고난의 길에 같이만 해 주시옵소서! 한 시대에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 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생활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기쁨을 맛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 내가 지쳤습니다. 내가 외롭습니다. 내가 힘듭니다. 이 큰일을 왜 혼자 감당해야 합니까?" 지치고 힘들 때마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주의 음성 들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 말씀의 능력이 살아있는 교회 되어지고! 말씀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어있는 교회 되기를 힘쓰고 있습니다. 특별한 것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특별한 프로그램이 사람을 살리는 것 아니에요. 주의 전에서 말씀으로 은혜를 주시고, 말씀으로 문제를 해결하시고, 말씀으로 인생의 해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주의 말씀이 모든 것 좌우합니다. 몇 명 안 되는 유대인들이 아랍의 수억을 갖고 놀아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말씀의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눈이 열려서, 세계의 정치를 지배하고, 경제를 지배하고, 과학을 지배하는 힘있는 민족이 된 거예요. 미국 대통령은 오늘날도 말씀 위에 선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능력 있는 삶 살고! 건강하고 힘있는 삶 살게 되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되는 거에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해서 이 시대를 이기는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복된 주의 전에 나왔으니, 성령의 능력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서 모든 위험과 고난 앞에 물러서지 아니하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생활 속에 오늘도 들은 복된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는 체험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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