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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두 제사 (창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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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예용범 목사

아주 오랜 옛날 한 형제의 각기 다른 두 제사가 있었습니다.
이 모습에서 같은 모양과 다른 모양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한 형제의 각기 다른 두 제사, 두 모습, 무엇을 가리킬까요?
세월이 흘러도 꼭 있을 예배와 상이한 예배자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1) 공통된 점

  창 4:3-4 “세월이 지난 간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야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비록 같은 제사일지라도
비록 같은 예물일지라도
여기에는 간과할 수 있는 작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 작은 차이가
가인은 거부당하는 제사자요 제사가 되었고,
아벨은 열납 받으시는 제사자요 제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를 닮아야 합니까?
우리들은 무엇을 닮아야 할까요?

이 두 사람의  제사에 공통된 것은 무엇일까요?
① 여호와께 제사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모든 것이 시작되던 시절인지라 제사에도 모범이나 전례가 없던 때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연 숭상이 아닌 분명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누구에게 하나님을 배웠을까요?
누구에게 제사법을 배웠을까요?
먼 곳의 스승이 아닌 가정의 부모인 아담, 하와에게 배웠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정교육의 절대적 필요성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술판이 빌어진다면 그 가정은 술꾼 양성소가 됩니다.
싸움판이 벌어진다면 그 가정은 싸움꾼 양성소가 될 것입니다.
온 가족이 예배한다면 그 가정은 교회당이 됩니다.

영국의 명재상이었던 글래드스턴은, 「나에게 예배석이 대영제국의 수상석보다 더 존귀하다」고 했습니다.
물론 가정교육의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가정! 좋은 집에 사는 것보다 예배자리가 존귀한 가정이야 말로 진정으로 좋은 가정이 됩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누구든 언제든 예배대상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보수 신앙에서는 예배와 예식을 구별합니다.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경배 목적은 예배,
◦ 사람을 위하는 각종 순서는 예식,
그래서 결혼예식이라고 하지 결혼예배라고 하질 않습니다.


또한 우리네 헌법은,
예배당에는 개인의 공덕을 찬양하거나 어느 개인을 찬양하는 일등은 일체 금지 시키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 4:10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리라 하였느니라”

② 예물을 드렸습니다.
가인은 농사짓는 자이기에 곡식으로 드리고,
아벨은 양치는 자이기에 동물로 드린 것 참 좋은 모습입니다.

현대의 도시인들은 헌금이나 헌품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시 훌륭한 신앙모습입니다.

전 세계의 교회 중 우리나라의 성도들처럼 헌금이나 헌품을 많이 하는 성도들은 없습니다.
◦ 동남아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드리질 못하고,
◦ 유럽이나 미국은 풍요로우면서도 크게 드리질 못합니다.

여기에는 민족성과 개인성품도 포함되지만, 실상은 신앙문제가 으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네를 보십시오.
잘 믿을수록 철저한 헌금생활을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부흥은 기도의 덕분이라면
한국경제의 부흥은 그 성도들의 헌금덕분이라고 하는 연구사례가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2) 다른 점

이제 다른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생김과 성격이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① 인격이 다릅니다.
가인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무엇인가요?

  창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하나님의 경고는 확실했습니다.
그는 아우 아벨을 쳐 죽였습니다.

누구에게 대한 분노입니까?
동생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분노의 표시입니다.
왜요?
하나님께 제사는 했지만,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믿음과 인격이 없었고 생활도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우리를 경악시켰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옥중 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소년기에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처음으로 징역을 살게 된 것은 이웃집 누나의 기타를 훔친 죄였습니다.
이때 이웃집 누나와 합의를 이루었기에 나무 십자가를 붙들고 기도했답니다.
「나 좀 감옥에서 나오게 하소서...」
그러나 출소는 되지 않고 징역을 살게 되자 나무 십자가를 꺾어 버리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그 반발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죽이게 됐다고 했습니다.

유영철에게서 참 신앙을 볼 수 있습니까?
참 신앙은 위기 때에만 기도하기 보담 앞서 기타를 훔치지 않아야 했습니다.
설령 연약해서 그러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다음에는 깊이 회개하는 모습이 있어야 되었습니다.

예배당에 있다고 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다 진정한 예배자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부는 가인의 인격부터 거부하시고 마침내 제사까지 거부하셨던 것입니다.

  창 4: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② 예물이 다릅니다.
아까는 예물드림이 같다고 했다가 이제는 다르다고 하니 무슨 뜻인가요?

예물 드림의 행위는 같으나
예물 드림의 마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님께도 이와 같은 일을 목격하셨습니다.
부자가 드린 예물보다 가난한 과부가 전 재산인 두렙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과부를 칭찬하시지 않았습니까?

보십시오.
가인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었습니다만,
아벨에게는 「첫」새끼, 「기름」등이 있었습니다.
중심과 진실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작은 차이가 실제는 큰 차이인 것입니다.
◦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의 차이요
◦ 하나님에 대한 사랑고백의 차이요
◦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의 차이입니다.

결국 이 마음, 이 예물, 이 모습이 하나님께로부터 아벨 인격 자신과 예물까지 열납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서 오히려 말하느니라”

3) 우리의 예배

그렇다면 우리들의 예배는 어떤가요?
① 인격이 있고 생활이 있는 예배인가요?
아니면 형식과 절차만 있는 예배인가요?

② 믿음으로 드리고 있나요?
아니면 신념으로 드리고 있나요?

③ 하나님께 드리고 있나요?
자신을 만족케 하고자 하나요?

④ 나는 가인인가요?
    아벨인가요?
정녕 둘 중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인격) 진정(삶)의 예배이고 이런 예배자는 찾아 주십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에티오피아 내시 간다게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그는 먼 땅에서 오직 예배하고자 예루살렘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아주셨습니다.

  행 8:28-29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 글을 읽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가라”

다윗도 천 번의 번제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찾아주셨습니다.

다 아벨과 같은 예배자인 것입니다.

4) 믿음의 제사

하나님이 받으시고 찾으시는 인격과 예배는 믿음의 예배자
믿음의 예배입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이 믿음은
① 계시를 따릅니다.
특별히 내 느낌이나 주변 환경이나 여건을 따르면 안 됩니다.
유행은 더더욱 안 됩니다.
오늘날 예배가 쇼가 된 것을 아십니까?
사람의 느낌을 좋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도록 가장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웅장한 곳이 아니더라도
◦ 주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라면 두세 사람이 모였다 할찌라도 그곳에 함께 계십니다.

◦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십자가 외에는 없습니다.
자꾸만 인위적인 베데스다 못가를 찾지 마십시오.

② 삶의 열매가 증명되어야 합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잘 나가는 학원 운영자입니다.

모원장님은 모 교회의 집사랍니다.
그러면서 변하지 않는 인격과 삶을 삽니다.

그분의 얘기인즉
그래도 않나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면서 다른 선생님을 교회로 끌지만

결국 주님께 인도는 못하고 오히려 책잡히고 있습니다.

  결  론)

하나님은 늘 달아보시고 살펴보십니다.
경외는 그 눈을 두려워하고
그 판단을 의식한 모양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아벨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인격과 삶이 예물 되어 증거 받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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