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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딤후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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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오늘은 제 목회여정에서 경험했던 축복들을 여러분께 소개함으로 설교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1991년 공릉동, 지금 공릉역 앞에 있는 공능교회에 부목사로 시무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습니다만 담임목사님은 김정현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때 경기도에 있는 양평교회가 어려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4년 6개월 동안 담임목사님이 목회를 하셨는데 장로님들과 마음이 잘 안 맞아서 계속 갈등하시다가 400여명이 좀 넘게 모이는 그 교회에서 150명의 교인을 데리고 나가서 그 교회와 가까운 곳으로 가서 교회를 개척하셨습니다. 그때가 1991년 11월 마지막 주였는데 교회가 그렇게 분립되고 나니까 그 다음 주가 12월 첫째 주일인데 설교할 분이 없는 것입니다. 부목사들과 교역자들이 다 따라나가서 교역자가 한 명도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급하게 연락을 한 것이 공릉교회 김 목사님이었습니다.왜냐하면, 김 목사님이 양평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아니까 부목사님 중에서 한 분을 설교하러 보내 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12월 첫 주부터 설교하러 양평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주일 낮 예배에 설교하고 점심을 먹고 좀 쉬었다가 저녁예배까지 인도해 주고 저는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한 3주정도 지났는데 한 번은 저희 담임목사님이 절 부르시더니 양평교회에서 다른 목회자를 찾다가 그냥 이 목사가 좋겠다고, 이영무 목사를 담임목사로 오라고 그러는데 이 목사 생각이 어떠냐고 그러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생각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에 당황해서 "기도하고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 소문이 돌았습니다. 공릉교회 집사님 한 분이 오더니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은 양평교회를 잘 아시는 분인데, "양평교회 그 교회는 절대 가시면 안됩니다." 그래서 제가 왜 안되냐고 물었더니 "그 교회는 유명한 교회예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교회에 나도 좀 가면 안되냐" 고 그랬더니 그 교회는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같이 착한 사람이 그리로 가면 뼈도 못 추리고 나올 거예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가고 싶은 맘이 없어지더라고요. 아이도 어려서 학교도 또 옮겨야 되고, 저도 김 목사님 밑에서 아직 2년 밖에 되지 않았기에 더 배워야 되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 때 나이가 33살이니까 그렇게 나이도 많지 않았고 해서 그 문제를 안고 기도하는데 몇 일 후에 양평교회 장로님들이 또 오셨습니다. 하늘산 기도원에 가서 난생 처음으로 금식까지 하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목사님, 우리 교회에 꼭 오셔야겠습니다" 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 문제를 안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을 주셨습니다. '아, 교회가 지금 비어있고 설교자가 없는데, 이거 가야되지 않느냐, 목사가 어디 좋은 교회 나쁜 교회를 찾아 갈 수 있겠느냐, 오늘 갔다가 내일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목사가 설교할 곳이 있으면 가야지' 하는 생각이 제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감동으로 주셨습니다. 제가 그래서 가겠다고 의사를 표했더니 우리 김정현 목사님이 아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이 목사, 그 교회에 가서 목회 할 수 있겠나? 그 교회는 아주 유명한 교회인데" 하시더니 양평교회 장로님들을 다 부르시는 겁니다. 그러더니 각서를 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각서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이영무 목사를 평생 잘 모시겠다. 은퇴할 때까지 양평교회에서 내쫓지 않고 잘 모시겠다" 라는 내용의 각서였습니다. "그리고, 이영무 목사가 뭘 하든지 목회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 각서를 쓰게 한 뒤 장로님들에게 다 싸인을 하게 했습니다. 싸인을 하고 난 뒤 복사를 해서 저를 한 장 주고 목사님이 한 부 가지고 계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 후에 제가 양평교회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 교회에서 설교한지 한 달만에 부임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부임하던 그 날이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송구영신예배를 드리고 하룻밤 자고 나니까, 그때가 또 1992년 첫날 신년주일입니다. 그래서 주일예배를 또 인도했습니다.

  신년예배를 인도하고  난 후 제 마음 속에 몇 가지 과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예배를 인도하면서 보니까 교인들 얼굴이 밝지 않은 것입니다. 장로님들하고 목사님하고 싸우면 고래 싸움에 누가 등이 터집니까? 새우등이 터지지 않습니까? 교인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니 교인들 얼굴이 밝을 리가 없지요. 교인싸움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여러분 다 아시지 않습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말입니다. 한 쪽에서 소리 지르면 한 쪽에서는 또 가만히 있습니까? 마이크를 잡고 싸우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참 비극적인 일이지요. 그러니 교인들 마음이 너무 상해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처를 치료해 주는 일이 제게 큰 과제였습니다.

  또 한가지는 빈 좌석이 너무 많았습니다. 한 150명이 나가고 나니까 빈 좌석이 많은데 그 빈 좌석이 보기 싫은 것입니다. 그 빈 좌석을 볼 때마다 교인들은 한 숨을 더 쉽니다. 왜요? 역사가 오래된 교회를 보니까 교인들은 늘 앉는 자리에만 앉거든요. 그 교회도 그때가 벌써 84년 된 교회니까 앉는 자리가 다정해져 있지요. 권사님들은 꼭 앉는 자리에만 앉습니다. 어떤 권사님은 어느 날 늦게 와서 보니까 자리에 누가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막 신경질을 내면서 앉더라고요. '내 자리에 네가 왜 건방지게 앉느냐? 내가 은혜 받은 자린데' 하고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까 옆에 앉던 깁 집사, 박 집사가 없거든요. 왜? 다 따라 나갔거든요. 그러니 그것을 보면서 교인들이 한 숨을 쉬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지역사회에서 교회를 향한 비난이 뭐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만 이야기해야할 교회가 싸움질이나 하고 갈라지고 그게 무슨 교회냐' 하고 말입니다. 이런 지역사회의 이미지를 회복시켜야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이런 여러 가지의 과제가 있었습니다.


  저는 신년주일예배를 마치고 제 마음 속에 기도하면서 이런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하나님 앞에 의지하고 기도하자! 내 무슨 힘으로 목회를 하겠느냐!' 하고 말입니다. 제 나이가 33살에서 막 하루가 지나 34살이었는데 그 교회에 가니까 장로님이 장로가 된지 이미 30년이 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장로만 30년을 하신 분이고 나는 나이가 34살입니다. 그러니 목회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제 힘으로 못하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하자!' 그래서 먼저 새벽집회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40일 새벽집회를 한 해에 세 번했습니다. 거기에다가 10일 더해서 130일을 했습니다.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네요. 그런데, 교인들이 기도하는 훈련이 안되어서 잘 안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권사님들은 기도하라고 세운 것이 권사인데 기도도 안 하는 권사는 잡사보다도 못하다" 고 하면서 새벽기도 때에 권사님들 출석을 불렀습니다. 무슨 권사님, 무슨 권사님 하고 출석을 불렀습니다. 그러니 안 나올 재주가 없지요. 그렇게 창피를 주는데 말입니다. 교인들이 열심히 나와서 기도하면서 서서히 교회의 상처가 아물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교회가 안정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새신자가 한 명 두 명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새벽기도가 참 효과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성경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장로님들 집사님들 다 나와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자고 해서 크로스웨이를 시작했는데 100명이 넘게 등록을 했습니다. 그 인원들이 다 저와 함께 1년 동안 크로스웨이를 공부했습니다. 크로스웨이는 주로 섬김과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거든요. 우리가 섬기지 못하고 서로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이런 아픔이 있는 것 아니냐고 하면서 우리는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입니다. 경로잔치를 열어드리고 효도관광을 시켜 드리고, 환경 미화원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옷을 선물하였습니다. 그리고 경로대학을 시작했는데 지금은 경로대학이 발전해서 한 150명의 지역사회 노인 분들이 매주 오셔서 경로대학에 참여하고 식사를 하시고 참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가십니다. 어떤 분은 2시간 전부터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오시고 새벽같이 오셔서 기다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렇게 지역사회를 위해서 봉사를 할 수 있는 길을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뭔가 부족한 것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게 뭐였을까요? 전도입니다. 전도를 해야되는데 어떻게 전도를 하면 좋은가 하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빈자리를 채워야 되는데 말입니다. 그 때, 금요일 심야기도회를 준비하려고 기도하고 있는데 제 마음 속에 이런 감동이 들어왔습니다. '만약에 양평 군민 1000여명을 초청해서 우리가 한 날 한 시에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에 결심을 하고 심야기도회 때에 의논도 하지 않고 선포를 해버렸습니다. "7월 첫 주일이 우리 교회의 84 주년 창립 주일인데 우리가 양평 군민 1000명을 초청해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립시다!" 라고 했더니 아무도 '아멘!' 을 하지 않았습니다. 왜 아멘을 하지 않았느냐하고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80년 역사 속에 이 교회에 1000명이 모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500명 이상도 모인 적이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인 것이었던 것입니다. 예배당도 커봐야 300명이 들어가는 예배당에 어떻게 1000명이 모이느냐!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할 수 없지만 능력있으신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할 수 없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느니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이 말씀을 교인들에게 소개하면서 우리가 해야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그제야 겨우 "아멘!"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초청잔치를 준비했습니다. 어떻게 준비했을까요? 교인들에게 작정을 시켰습니다. 먼저 장로님들은 몇 명을 작정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1000명이 오려면 장로님들은 적어도 30명을 작정해야된다고 했습니다. 왜일까요? 장로님 한 분이 당선되려면 적어도 그 교회에 세례교인 30명 이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30명을 책임지라고 했습니다. 권사님들은 20명을 작정하고 집사님들은 10명, 평신도들은 5명씩 작정했습니다. 참 순종을 잘 하셨습니다. 그 분들이 다 작정을 하고 명단을 내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안됩니다. 전도훈련을 시켜야 됩니다. 제직들을, 구역장들을 나오라고 했더니 한 100여명이 나왔습니다. 그 분들을 대상으로 이슬비 전도 교육을 이틀동안 열심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예쁜 카드를 가지고 나가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소설가나 교수나 목사님들이나 훌륭한 분들이 우리 마음에 양식이 되는 글들을 이렇게 써서 무료로 우리 교회가 보내 드리는데 주소만 적어 주시면 그냥 보내 드립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주소를 조 잘 적어줍니까. 교인들이 그것들을 5장, 10장, 20장, 이렇게 열심히 받아 가지고서 왔습니다. 그리고는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전도를 다 한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가 시작인데 말입니다. 하여튼 그래도 좋습니다. 교인들이 그렇게 주소를 받아서 이슬비 전도 편지를 써서 핑크색 봉투에 넣어서 주소를 쓴 다음 우표를 붙여서 주일날 저녁에 강단 위에 쌓아 놓으니까 보통 800통에서 1000통이 쓰여있었습니다. 쌓여진 그 편지들을 위해서 통성 기도를 하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송하는 거예요. 그 당시에 양평읍에 인구가 19,500명밖에 안 됐습니다. 20,000명이라고 잡아도 한 가정에 4명이면 5,000세대입니다. 5,000세대 중에서도 1,000 가정에 이 편지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달 동안 말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상상을 해보십시오. 핑크빛 편지 그러면 벌써 양평교회가 보낸 편지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거기에다가 거리에 나가서 노방전도를 하고, 이천에 가서 도자기 1,000개를 선물로 준비해서 포장을 하고, 또 그것도 모자라서 현수막을 달고, 그리고 그 전 날 마지막 토요일에는 전교인이 동네돌기를 했습니다. 장로님들은 현수막을 들고, 피켓을 들고, 권사님들은 북을 치고 집사님들은 전도지를 들고 온 양평읍 동네를 다 돌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초청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7월 첫 주일 새벽 기도회를 제가 인도하고 제 방에 돌아와서 설교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1부 예배가 7시입니다. 그 때 제 마음 속에 언뜻 걱정이 들더라구요. 제 정신이 들더라구요. '아이고, 내가 미쳤나? 내가 뭘 하고 있나? 만약에 1,000명을 초청한다고 선물까지 다 준비해 놓았는데, 연예인도 초청하고 간증할 탤런트까지 초청해 놓았는데 300명도 안 오면 창피해서 어떡하나 이거 목사가...' 그러면서 번뜩 생각드는 것이 우리 선배 목사는 부임해서 가자마자 초청주일을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와서 선물도 많이 주고 돈도 많이 썼는데 그 다음 주일에 아무도 안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쫓겨났답니다. 이 생각이 번뜩 드는 것입니다. '내가 미쳤지! 그냥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가면 될 것을 왜 여기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그래 가지고서 내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경험도 없는 것이...' 하고 생각 하니 큰일 났더라구요. 그래서 어떡합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떡하면 좋습니까? 떨리네요, 떨려' 하고 기도했습니다. 처음이니까 떨리는 것이 당연하죠. 도대체 몇 명이 올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속에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사무엘상 26장 25절 말씀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사울왕이 다윗에게 주었던 말씀인데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는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이 말씀을 주시는데 이제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1부 예배에 나갔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인도하는데 다른 때보다는 교인들이 좀 더 온 것같이 보였습니다. 느낌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야, 조금 났다. 다행이다!' 하고 겨우 안도감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2부 예배가 9시인데 2부 예배 때 보니 자리가 꽉 차서 자리가 없는 거예요. 3부 예배 때 보니까 메어 터지는 것이었습니다. 교육관 식당 뭐 방이란 방은 다 비디오를 연결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는 양평교회에 에어컨이란 한 대도 없었습니다. 선풍기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 7월 첫 주 무더운 날씨에 어디서 그렇게 사람들이 밀려오는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양평교회가 계단 위에 있었는데 그 계단을 서로 손을 잡고 올라오는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부, 2부, 3부, 4부 예배를 그렇게 다 마쳤는데 그 날 와서 예배에 참석한 인원이 1,450명이었습니다. 다른데 가서 얘기하면 박수도 치는데 말입니다. 참, 박수 받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네요. 그렇죠? 그러니, 교인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 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기고 얼굴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 후로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날 등록 한 분이 100명이 넘었습니다. 그 다음 주에 20명, 10명...매주 마다 계속 등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마치 하늘에서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막 쏟아 부어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문제가 있던 집사님들, 교인들도 다같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한해에 등록한 숫자가 모두 270명이었습니다. 교회가 그 때부터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1년에 두 번씩 초청잔치를 했고 전도하는 일을 열심히 하게 됐습니다. 교인들이 자신감을 얻었으니까, 그래서 260명이 300명, 400명, 500명, 그때 제 생각에 600명만 되면 욕심내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그 다음에는 600명, 또 그 다음에는 럭키 세븐이라고 700명만 되면 이제 욕심내지 말아야지 했는데 또 700명이 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800명, 900명까지 교회가 매년 성장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재정도 얼마나 축복을 받는지 제가 부임할 때, 그 교회 1년 예산이 2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결산을 한 달 남겨 두고 목사님이 개척해 나가시면서 헌금을 많이 내는 집사들만 데리고 나갔거든요. 장사하는 분들 말입니다. 그러니까, 헌금이 줄어서 1억 9천밖에 결산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장로님들이 어떻게 예산을 줄일 수 있겠느냐고 회의해서 2억 1천만 원을 예산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해 연말 결산이 2억 8천이었습니다. 1년마다 3억, 4억, 5억, 6억, 7억, 8억, 9억, 10억까지 재정에 엄청나게도 놀랍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인이 500명에서 560여명쯤 모일 때 교회가 너무 낡고 작고, 또 오래된 건물이라서 허물어질 위험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건축을 갑자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는 돈이 3,000만원 밖에 없었는데, 설계비로 있던 3,000만원 다 치르고 그냥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작정했습니다. 그런데, 1,200평 건물 30억 원짜리 공사를 1년 반만에 다 마쳤습니다. 건축을 하면서도 계속 초청잔치를 하고 계속 교회는 부흥되어 갔습니다.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빚이 약 10억 원이 남았는데 입당한 뒤 3년 후 그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리고 또 주차장이 필요하다고 교회 옆 곧 양평 중심가의 땅 1,000평을 샀습니다. 제가 떠난 후에 1,000평을 또 샀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교회는 땅만 3,700평입니다. 그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양평군에서도 제일 교세가 크고 가장 급성장한 교회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건축을 하면서, 전도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는 제 생애에 다시금 경험하기 어려운 놀라운 축복을 부어주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제 목회 생애에 큰 기쁨이요 축복이었고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자발적인 순종과 희생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전도에 대해서만은 분명한 확신이 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저는 자신합니다. 저는 이 확신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는 천하보다도 귀한 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이기 때문에 주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보니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뭐라고 표현했습니까? 누가복음 19장 10절에 보니까,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자녀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주님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소원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이 70명의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그들을 파송합니다. 그들이 전도하고 돌아왔을 때,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셨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기뻐하셨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여기 딱 한군데에만 있습니다. 제자들이 전도하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이 너무너무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입버릇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주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십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오. 집을 나갔던 둘째 아들이 돌아오니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합니까? "너는 죽었다가 되살아났고 잃었다가 되찾은 아들이다" 고 하면서 살찐 소를 잡아다가 잔치를 베풀고, 풍악을 울리고, 새 옷을 입히고, 새 가락지를 끼우고, 새 신발을 신기면서 얼마나 부모가 기뻐합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땅의 불신자들은 다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입니다. 그래서 목자가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밤새도록 헤매다가 그 양을 찾아 가지고 어깨에다가 둘러매고 오면서 동네사람들을 다 깨워 잔치를 베풀지 않습니까? 어디 양 한 마리 가격과 잔치를 치르는 가격이 비교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바로 이 목자의 마음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은 영혼구원이고 전도에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제가 가지는 확신은 전도는 교회와 성도에게 가장 축복이 되는 일입니다.

  여러분, 전도하는 교회는 날마다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의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보람과 긍지와 자부심이 있습니다. 당당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교회는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이런 당당함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전도하는 교회는 늘 축제분위기입니다. 잔칫집과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렇게 바자회를 하니까 기분이 좋습니까? 나쁩니까? 좋지요. 벌써 예배가 끝나면 빨리 가서 전도 사먹고 호박죽도 사먹어야지 하는 이런 마음도 들 것입니다. 잔치라는 것은 즐거운 것입니다. 여러분, 새신자가 늘 들어올 때 교회는 영적인 잔칫집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자녀가 없던 집에 옥동자를 낳았을 때의 그 기쁨이 바로 교회의 기쁨인 것입니다. 전도하는 교회는 그런 기쁨이 있습니다. 교인들이 다른데 신경 쓸 틈이 없습니다. 남을 질투하고 시기하고, 싸우고, 당파를 나누는 틈이 없습니다. 전도하고 양육하고 제자삼고 성경 공부하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데도 시간이 없는데 남 욕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전도하는 교회는 축복 받는 교회입니다. 그 교회의 전도하는 성도도 가장 보람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하늘에 상급을 쌓는다고 했습니다. 전도자는 예수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뭐라고 하셨습니까? 제자들이 전도를 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하니까, "너희가 귀신들린 자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의 생명 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고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전도자의 이름은 바로 하늘에 기록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전도의 세 번째 여행에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 뭐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내가 전도하는 너희들이 바로 나의 소망이요 기쁨이요 자랑의 면류관이요 예수님 앞에 칭찬 받을 조건" 이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교인들은 늘 기대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전도하는 교회와 전도하는 성도를 가장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성도는 모든 성도들의 사명이요 직무입니다.

  전도하는 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전도는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것이지 우리 보통 교인들은 그런 전도하고는 상관없어. 전도는 내 할 일이 아니야. 나는 그냥 주일 예배 드리고, 십일조 드리고, 성가대나 교사나 구역장이나 주방봉사나 한 가지만 해도 훌륭한 교인이지, 뭐 전도까지 해야되나?" 하는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존 스토트' 가 쓴 책을 보면 그 제목이 "전도하지 않는 죄"입니다. 우리가 다른 모든 일을 감당하더라도 하나님의 명령인 전도의 사명을 내가 수행하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 불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순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모든 교인들에게 예외 없이 맡긴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보면 예수님의 유언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서 "너희" 는 누굴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12제자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120문도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이 해당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된 우리들은 가서 제자를 삼고 전도해야될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4장 19절에 예수님은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니"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를 다 어부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은 이 어부의 역할을 포기하십니까? 왜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5절에도 전도는 모든 성도의 사명이요 직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아멘. 오늘 본문은 바울 사도가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우리 모두는 전도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전도는 바로 내 직무라는 것입니다. 피해갈 수 없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하는 착각 하나가 있습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는 교인들은 뭔가 좀 비정상적인 교인이라는 생각입니다. '좀 성격이 이상하다던가, 뭐 할 일도 없이 맨 날 논다던가, 집안도 안 바쁜가, 직장도 없나? 저렇게 전도만 하고 돌아다니게?' 이렇게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전도도 안하고 예배만 드리고 그리고 가는 사람들은 아주 멋있는 정상적인 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집사가 된지 10년이 되어도 한 명도 전도해보지 못한 사람, 그 모습이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내가 믿는 신앙 고백으로 이웃에게 증거하고 전파하는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정상적인 교인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교인이 이상한 교인이지 전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정상적인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모든 성도의 사명이고 직무입니다. 이것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네 번째로, 전도는 하면 됩니다.

  모두 따라해 봅시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전도는 하면 됩니다. 그러나 안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려고 노력하고 기도하고 나가면 전도할 대상자가 있게 하십니다. 기도하면 그 영혼들을 떠오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안 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전도를 안 하는 분들일수록 못하는 핑계가 많습니다. "목사님, 아, 지금이 어디 전도할 때입니까? 아, 지금 노방 전도해 가지고 올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렇게 늘 핑계를 대고, 때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 읽은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때를 가리지 말고 전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말씀 1-2절입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심판자 되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너희 엄히 명하노니 너희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기회를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조건을 다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석에 보면, 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라는 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말씀을 전하고 싶던지 전하고 싶지 않던지 너는 복음을 전해야 된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에 나가 군인이 총을 쏘고 싶다고 총을 쏘고, 쏘기 싫다고 안 쏩니까? 쏘기 싫어도 나라를 위해서 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군인의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은 내가 전도하기 싫다고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될 의무요 사명이란 말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에 보면, 이 글을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라고 표현합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우리는 당연히 순종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전도서 11장 4절에 보니까,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고 말씀합니다. 씨를 뿌려야 되는데 맨 날 날씨 탓만 합니다. "하이고, 오늘은 비가 와서 못하고, 오늘은 또 너무 더워서 못하고..." 라고 맨 날 날씨 탓만 하는 사람은 농사를 평생가도 못 짓습니다. 그런 것을 따지지 말고 씨를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거두게 하시는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11장 6절에  보니까,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 손을 거두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손을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일에는 중단이 없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날마다 전도를 했다고 그랬습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 보니까,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했습니다. 집에 있든지 성전에 있든지 어디에 있든지 전도를 중단하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때가 좋던지 나쁘던지 기회가 좋던지 나쁘던지 늘 전도해야됩니다. 우리 영신교회 교인들은 일년 365일 늘 전도의 귀한 사명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적인 말씀이지만 우리가 왜 전도해야 될까요?

  예수님을 통해서 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을 보니까,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 아니고는 구원받을 이름이 없습니다. 석가모니의 이름으로 구원이 없습니다. 맹자와 공자의 이름으로 구원이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는 구원받을 영혼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왜 전도해야 될까요? 예수님의 은혜로 내가 죽을 자리에서 건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우리는 전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이 불쌍하게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나도 그 일에 동참해야 되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에 아주 유명한 교수가 있었는데 그 분은 제임스 심슨 교수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의학자였습니다.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그 교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생애에서 가장 뜻깊은 발견이 있었다면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러자, 심슨 교수는 사실 그때 환자를 고통이 없이 수술할 수 있는 마취제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제를 발견한 의학계의 혁명자요 위대한 발견가였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은 교수님이 아마 자기가 발견한 마취제의 발견을 이야기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심슨 교수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보게, 나의 생애의 가장 큰 발견은 말이야, 첫째는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두 번째는 바로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내가 깨달은 거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사실을 내가 깨닫게 된 거야" 라고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입니다. 그러기에 내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불신 영혼들 그들이 복음을 거부하던 영접하던 그들에게도 예수의 이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복음을 가지고 나가서 증거 해야 될 사명 있는 것입니다.

  요즘 '담 안의 전도자'라고 불리는 전주 교도소에 '김진태 씨' 라고 있습니다. 이 분은 92년 사형 언도를 받은 사형수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교도소를 찾아온 목사님을 통해서 복음을 듣게 됩니다. 처음에는 전혀 복음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듣고 그날밤 잠을 자는데 사형장으로 자기가 끌려갔는데, 자기 목에 걸려야 될 이 밧줄이 자기 목이 아니라 예수님에 목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 목에 밧줄이 걸려서 하늘로 끌려 올라가는 그런 꿈을 꾸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의 그 엄청난 죄 때문에 예수님이 이런 고통을 내 대신 받으시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얼마나 회개하고 엉엉 울었는지 사흘밤낮을 울었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는 예수님을 정식으로 영접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기쁨이 찾아오고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거듭난 인생을 삽니다. 이제는 만나는 자기 감방 안에 있는 교도소 제소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사형수이기 때문에 두 달 동안만 한 감방에 있다가 다른 감방으로 옮기고 또 그렇게 두 달 후 방을 계속 옮깁니다. 그 두 달 동안 그는 열심히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고 또 옮기면 새로운 곳에서 보는 사람마다 전도하고 또 전도하여서 이제 벌써 10년째 전도하는데 무려 620명을 전도해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고 주위의 친지들과 목사님들이 탄원서를 내어서 그 분이 사형수에서 무기수로 2002년 12월 30일 감형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김진태 씨' 는 전도하고 있습니다. 왜 전도하느냐? 덤으로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죽었어야할 인생이 예수님의 은혜로 영혼이 살고 육신이 살고 보니까 너무 감사해서 견딜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는 가운데 쓴 그분의 쓴 시중에 '덤'이라는 시가 신문에 소개되었습니다.


  열 번 백 번 죽어도 싼 큰 죄인인데
  주님께서는 바라는 것 하나 없이
  용서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법을 어겼으니
  법대로 죽으라 했는데
  주님께서는 저보고 다시 살라 하십니다.

  아픔과 슬픔만 드렸는데
  다시 한번 시작해 보라고
  생명의 문 열어 주셨습니다.

  이 은혜 어찌 갚아야 하나요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나요.
  가진 것 없어 드릴 것이 없는데

  덤으로 주신 삶
  이제 나를 죽이며
  이 생명 다하는 그 날 까지
  주님만을 사랑하며 살렵니다.

  - 이천 삼년 첫날 진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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