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는 무엇으로 만드는가? (엡 2:19-22)

  • 잡초 잡초
  • 507
  • 0

첨부 1


- 설교 : 서정호 목사

하늘 에너지

자동차가 움직이려면 기름이 있어야 하듯 사람이 살아가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본래 하늘로부터 그 에너지를 공급받아 살게 되어 있었는데,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그 에너지의 통로가 끊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타는 목마름으로 가뭄에 물을 찾아 헤매듯이 그렇게 끊겨버린 에너지를 찾아 방황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그 에너지가 있나 하여 타인을 못살게 굴기도 하고, 무슨 제도를 만들어 보기도 하고, 과학을 발달시켜 최첨단 물건들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각종 사상과 이데올로기, 다양한 종교를 만들어 보지만 그 끝엔 언제나 허무함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끊어진 하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통로가 생겼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을 통해 우리는 다시 하늘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 에너지를 공급받는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에너지를 찾아 헛수고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하늘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는 사람은 아침에 들판에 베어 놓은 꽃과 같다. 이슬이 있을 동안에는 싱싱한 것 같지만 해가 뜨면 곧 말라버릴 것이다”(시90:6)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사랑의 최상급 표현으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예수님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의 죽음 이후에 부활 승천하신 후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표현으로 이 땅에 교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 땅에 우리 영암교회를 그 동안 지켜주시고 성장시켜주신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교회도 사람과 같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태어난 때가 있고, 어린아이 같은 시절이 있으며, 한 참 자라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하고 약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나이와 관계없이 교회의 영적 상황에 따라 견고함이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영암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담는 그릇이 되고 축복의 통로이며 구원의 방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일찍이 키엘 케고르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었다. 그런데 교회는 더 엄청난 일을 했다. 포도주를 물로 바꾸었다."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교회를 책망했습니다. 이 말을 받아 어떤 신학자는 "현대교회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포도주를 담았던 항아리마저 깨버렸다. 그래서 그 깨어진 항아리 조각들로 서로를 찌르고 서로를 괴롭히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깨어진 항아리 조각에 집사도 평신도도 찔렸고 목사도 찔려 피를 흘렸습니다. 교회에 깨어진 항아리들 때문에 사회도 역사도 찔려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옛날 아이들보다 키도 많이 커졌고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체력검사를 해보면 힘과 끈기가 모자랍니다. 체력만 떨어진 게 아니라 허약 체질이어서 비만과 알레르기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나아가 심신이 약해졌습니다. 조금만 문제에 부딪혀도 금방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한국교회 그 동안 성장은 해왔지만 역사를 이끌어갈 힘을 잃은 허약 체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현대교회들은 교회성장이라는 말보다는 교회건강이 그들의 비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두통 있다고 모가지 자르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이 씻은 물이 더럽다고 물을 버릴 때 아이와 함께 버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는 건져놓고 더러운 물만 버리는 것입니다. 교회가 많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복음도 예수도 함께 버릴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이아가라 폭포 곁에서 마실 물이 없어 갈증으로 죽은 사람이 있다고 나이야가라 폭포가 마른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연약성에도 불구하고 허물이 아직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엔 풍성한 축복이 있고 복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역사를 이 끌어갈 힘이 있고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줄 사랑이 이 교회 안에 아직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교회요 하나님이 직접 만든 공동체가 교회인데 왜 교회는 아직도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연약하다고 하는 것은 교회의 연약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거기에 연약한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흠이 많고 부족이 드러나는 이유는 나와 너 우리 모두가 아직도 부족하고 허물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이 연약성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가 거룩하기 때문이 아니고 부족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성령이 이곳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허물 많은 우리를 거룩하고 정결하고 깨끗하게 만들어 주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의 능력이 이곳에서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성도들에게 행복한 신앙생활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까?" 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질문에 대한 올바른 대답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면 성도는 성도다워지게 되는 것이고 예배는 예배다워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 모델을 발견하려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의 가장 완벽한 교회로는 에베소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에베소를 서신 중에 여왕이라 부릅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 2장 19절 이하를 통하여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중요한 선언이 있습니다.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갈 책임이 너희에게 있다. 건강한 교회를 만 들어갈 책임이 바로 너희에게 있다" 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영암교회에 분명한 비젼이 있습니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이 납니다.”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키우는 교회가 되고 싶은 것이 우리교회의 비젼입니다. “신앙생활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납니다.”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보는 것이 우리의 비젼입니다.

본문 말씀은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가장 기본적인 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부름 받은 하나님의 권속(백성, 자녀)으로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19).

교회를 신약 전문 용어로 에클레시아(ekklesia)라고 부릅니다. '에크'는 밖으로, '클레시아'는 불러낸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밖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퉁이 돌이 되시며 믿음의 기초요 삶의 반석이 되신다(20).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건축물과 같습니다. 모든 건축물에 기초 공사가 중요하듯이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모든 성도가 유기체와 같이 서로 연결이 되어 큰 성전을 이루어 간다(21).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위치와 역할이 중요합니다. 각자의 직분과 임무는 하나님의 결정이므로 모든 성도가 주께 하듯이 각자의 역할을 감당해 나갈 때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세상에 우리가 왜 태어났는가? 왜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야 되는 것인가? 출세하고 성공하고 돈 벌어 좀 더 편리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이 땅에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성전을 함께 지어가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이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우리가 어떻게 섬겼느냐? 이 교회를 얼마만큼 건강하게 만들었느냐. 이 교회를 통하여 우리가 얼마만큼 행복한 삶을 누리면서 살았느냐? 하는 것이 천국에 섰을 때에 심판의 바로메타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에 건강한 교회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 행복한 교회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 구절 2장 12절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오늘 본문은 그렇게 이어져 갑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라" 그랬습니다. 천국의 외국인이 아니라는 말은 여러분이 교회의 손님이 아니라 천국의 주인공이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교회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손님은 권리가 없고 책임도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관광객이나 천국의 구경꾼이 아닙니다. 이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고,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을 구경을 하는 구경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말씀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유했습니다. 천국의 좋은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미국에 가있는 우리 교민들이 영주권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 모르고 중국에 있는 동포들 가운데에 우리의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애를 쓰는지 모릅니다. 신약 성경이 기록될 당시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는 것은 대단한 권세였습니다. 온갖 희생을 하고서라도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로마 시민권을 얻기만 하면 대단한 권세를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민권자는 로마 제국 내에서만 보호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나라에 있습니다. 이 시민권을 가지 게 되면 금생과 내생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천국의 시민권을 얻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막대한 돈을 바친 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엄청난 공적을 쌓은 것도 아니고 태어날 때 천국 백성의 자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우리는 죄 중에 태어나 죄를 먹고 마시며 죄 가운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내가 구원 받았고 천국의 시민이 되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뿐이겠습니까?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황제의 피를 받아서 이 땅에 태어나야 만이 황제의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우리는 아무 자격도 없고 공로도 없이 하나님의 가족이 된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 니라"(요1:12-13).

우리는 하나님과 한 식탁에 앉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천국 문에서 배외하다가 멀리 방관자로 서 있다가 영원한 지옥을 향하여 멸망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천국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주워 먹을 수 있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천국의 시민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3:20) 우리 주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셔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천국의 일꾼이 되었다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선언 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신앙인이 행복한 교회를 이룬다

주님께서 이 교회에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께서 유대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이방인 교회의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천국의 시민이 된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너희들을 통하여 나는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를 원한다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 교회를 가장 아름다운 교회, 가장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일까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의 체계가 건강할 때에 이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교회를 통하여 행복을 나누어 가질 때에 주님 전에 찾아 나올 때마다 행복을 사 가지고 돌아갈 때에 여러분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살아갈 때에 이 교회는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사람이 만나서 좋은 교회를 건설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 하나 건강하고 나하나 행복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몸 된 교회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이 건강한 신앙인, 행복한 신앙인이 될 때에 우리 교회는 행복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감독만 좋아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화배우만 좋아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 아닙니다. 촬영기사나 조명기사만 좋아서 되는 게 아니고 손에 손을 붙들고 마음이 모아지고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할 때에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것이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부유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고 잘난 사람, 똑똑한 사람, 많이 모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 지역에 상처 난 사람들, 문제 많은 사람들이 우리교회 찾아 나올 때마다 치유 받는 교회가 좋은 교회인줄로 믿습니다.

교회는 무엇으로 만드는가?

교회는 본질적으로 건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서 구성되고 존재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으며 하나님은 그들(교회) 에게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일차적인 존재이유는 "사람들"이며 존재의 궁극적 목적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심어주고 그 생명이 자라게 하여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헨드릭 크래머(Hendrick Kraemer)라는 신학자는 교회의 본질적 주체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서 "냉동된 자산"이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사람들"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정립하고 그들의 "냉동된 자산"을 일깨워 "활동하는 자산"으로 변화시킬 때 교회는 비로소 그 사회에 진리의 빛을 비추며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으로 만드는가? 존 러스키라는 사람의 책에 보면 교회 건축의 7가지 요소가 나옵니다. 철근, 시멘트, 나무, 흙, 기와, 벽돌이 아니고 교회를 건축하는 데는 진리가 있어야 되고 아름다움과 애정이 있어야 되고 희생과 순종이 있어야 되고 땀과 꿈이 있어야 됩니다. 설계자와 건축가의 인격이 합쳐져서 건축물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순종과 땀과 희생의 피를 섞어서 교회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건축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믿음과 꿈을 담아서 이 교회를 만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건축은 그 시대의 역사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들이 조잡한 건축물이라면 그 시대에 조잡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살았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부실한 공사가 그 시대에 만들어졌다면 그 시대의 가치관이나 정신체계가 부실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만들어진 건축물이 진실하고 아름다웠다면 그 시대가 그만큼 진실하고 아름다웠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었다고 한다면 여기 참석한 여러분 모두가 건강한 신앙인이 될 때에 이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되었다면 여기 있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때에 우리 교회는 행복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희생의 터 위에서 세워지고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난민들이 세운 교회는 언제나 부흥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교회는 천국이 아니요 병원입니다. 너에게도 아픔이 있고 나에게도 아픔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늘의 천사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성인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여기에 치유의 역사가 지금 이 순간에 도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 내에 치유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중환자들도 여기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교회는 건강하고 행복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던 해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예수의 어머니 와 아버지는 예수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람을 붙들고, 저 사람을 붙들고 동분서주 해 보았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예수를 어디에서 찾았습니까? 성전에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과학 물질문명에서 잃어버린 예수, 분주한 세상살이에서 잃어버린 예수, 신앙의 방황 속에서 잃어버린 예수, 인생의 방황 속에서 잃어버린 예수, 그 예수를 영암교회에 가면 찾을 수 있고 잃어버린 구원의 감격, 행복한 신앙생활, 삶의 기쁨과 환희를 영암교회에 가면 찾을 수 있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영암교회에 가면 구원의 감격을 회복할 수 있고 인생의 환희를 회복할 수 있고 인생의 축제를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교회에서 건강한 교회의 모델, 행복한 교회의 모델을 발견할 수 있는 복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영암교회는 우리 교회가 가지고 있는 타성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교회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영적인 해이와 적극성 부족을 극복하고 활성화시켜야 할 책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우리 영암교회는 지금까지 걸어왔던 문턱을 넘어서서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영적 잠재력을 드러내기 위해 믿음의 힘을 한군데로 모으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며,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 신앙적인 열심과 열정, 그리고 적극성이 드러나도록 만드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강한 리더십이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교회 발전과 부흥을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지도력이며 교회를 영적으로 새롭게 하여 신앙적 부흥을 이루고자 지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강한 리더십이란 항존직을 포함한 직분자들의 신앙적 책임감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강한 리더십이란 궁극적으로 개인의 믿음 성장과 합당한 헌신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발전하고 모두가 하늘나라에 가서 칭찬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적인 성장과 하늘의 상급, 그리고 희망과 미래, 성경적 섬김과 은혜의 회복이 있는 교회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동역자 된 여러분의 기도와 협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이것이 지도자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고 여러 교우들과 영암교회를 위한 것이기에 주어진 책무를 다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교회를 맡겨 주신 거룩한 뜻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 교회를 사랑하시고 우리 영암교회 성도들을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영암교회에 귀감이 되는 과거와 희망찬 미래를 주셨습니다. 여러분들과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 주심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