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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러한 일꾼 (딤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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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일꾼이 쓰임 받고자 하는 이에게 요구되는 많은 조견들이 있스니다. 우리 헌법에는 딤전 3:1-7에 해당 한 자 라고 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으며(딤전3:2)

신령한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비행이 없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도덕적 인격이나 신앙생활에서 타인에게 흠 잡힐 데가 없어야 함을 나타냅니다.(딤전 3:2).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일부일처제와, 자기 아내에게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절제하며

'절제'(네팔리온)는 본래 '술 취하지 않은 상태'란 의미를 가지며 후에 '온전한', '신중한'등의 광범위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Earle).  술이나 다른 육적인 쾌락을 삼가하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함을 말합니다(Hervey).

  근신하며

근신하며(소프론)는 '건전한 정신의', '자제하는', '차분한'의 의미를 가집니다(딛1:8;2:2, 5). 갑작스런 충동으로 좌지우지 아니하고 매사에 분별력 있게 행동해야 합니다(discreet, JB).

  아담하며

아담하며(코스미온)는 질서 있는 예의바른 명예로운(respectable NIV)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사람의 행위에 있어서 도가 지나치지 않고 점잖으며 정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필로크세논)는 '나그네를 사랑하는'이란 뜻입니다(딛1: 8; 벧전 4:9).

당시에는 이와 같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미덕이었습니다(Earle).

  가르치기를 잘 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디다크티콘)는 수다스러운 혀로 달변 하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시켜 영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Earle, Calvin).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파로이노스) 아니하며는 술에 취함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구타하지 아니하며

이는 성질이 급하여 폭력을 즐겨 쓰는 행위뿐만 아니라 자기의 주장만 일삼는 언어의 폭력까지를 포함합니다.

  오직 관용하며

관용하며'(에피에이케)는 '호의적인', '친절한', '참을성 있는', '동정심 많은','관대한', '다정한'등의 의미를 갖습니다(Simpson). '친절한 분별력'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Matthew Arnold). 따라서 이 말은 성경의 가르침과 배치되지 않는다면 어떤 손해나 아픔이라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투지 아니하며

'관용'과 통하는 말이며, 자기주장만 내세우지 아니하고 타인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아니며

부정적인 태도로 치부하지 않으며(딤전3:8), 재물을 모으는 것을 생의 첫 번째 목표로 삼지 않는 자를 가리킵니다(Barnes).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지며 (딤전 3:4)

하나님께서 주신 자기 가정의 훌륭한 가장(家長)이 되어 자녀들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다스려'(프로이스타메논) 앞서서 행하는 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모든 일에 자녀들의 모범이 될 때에 자녀들은 신뢰를 가지고 부모를 공경하며 예의범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데 있어서 그 품위를 잃지 않고 자녀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에 힘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정함'(셈노테토스)은 '방탕'과 반대되는 말로서 행동이 정숙하고 기품과 규모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Calvin)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딤전 3:6)

'새로 입교한 자'(네오퓌톤) 는 '새롭게 씨를 뿌린'이란 뜻으로 최근에 개종하여 교회가 받아들인 자를 가리킵니다(Earle).

새로 입교한 자들에게 직분을 맡기지 말라고 한 이유는 새 신자에게 그와 같은 중직을 맡길 경우 오만과 야심에 곧장 휩쓸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한 마디로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라고 합니다.(딤전3:1)

초대 교회 당시에 일군이 되는 것은 온전한 헌신과 희생이 요구되었던 만큼 대단히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스런 일이 되었기에 '선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선한 일을 사모하면 신실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골 1:7)라 합니다.

지혜의 임금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하루는 성전 건축현장을 방문하고 일꾼들을 돌아보았다. "왜 당신은 여기서 일을 합니까? " 한  일꾼이 대답을 했다. "아 그야 뭐 배운 것도 없고 이럭저럭 살아가려니  죽지 못해서 하고 있지요." 얼마쯤 가다가 다른 일꾼에게 똑같이 물었다. 그 일꾼은"배운 도둑질이 일하는 것뿐이니 놀고먹을 수가  있나요, 그럭저럭 한 세월 보내는 것이죠" 왕은 얼마쯤 가다가 해진 옷을 입고 일 하는 청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왜 여기서 일을 하느냐구요? 정말 난 기뻐서 죽을 지경이지요 자, 보세요 나는 지금 하늘나라의 영광을 이 땅위에 드러내는 성전을 바로 이 손으로 돌을 쌓고 있지 않나요?

손으로 쌓는 벽돌 한 장이 이 위대한 성전의 작디작은 부분일 지언 정 큰 일을 이룬다는 것은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자 와 그렇지 못한 자의 엄청난 차이를 나타냅니다.(벽돌공의 자세)

매일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소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15층 아파트 계단을 다섯 번씩 오르내렸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6km의 로드웍과 6백번의 퍼팅연습 소녀는 모든 꿈을 일단 유보하고 운동에만 전념했습니다. 8년 후 소녀는 '골프의 신데넬라'로 불리며 세인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이 소녀의 이름은 박세리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바로 그 선수입니다. 그녀의 우승소감은 "우승의 원동력은 끊임없는 훈련이다. 오늘의 우승은 혹독한 연습의 열매다" 였는데 신실한 훈련의 결과에 대하여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미국 하워드 장군은 신앙이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는데, 그가 서부 해안 지구 사령관을 맡게 되자 그의 친구들은 수요일 저녁에 그의 영전을 축하하는 환송 만찬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곳에 초대장을 보냈고 대통령까지 축하 전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들은 장군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모든 준비를 다 끝내 놓고 맨 마지막에 그에게 알리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난 후 그들은 장군에게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장군은 선약이 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하게 되었네. 사실은 수요일 밤에 다른 약속을 미리 해두었네.""하지만 이 사람아, 이 날은 미국에서 가장 저명한 인사들이 참석할 테니 다른 약속을 취소하게." "나는 기독교인이며 교회 신도중 한 사람이네. 내가 교회와 일체가 되었을 때 수요일 밤 기도회 시간에는 꼭 주님을 만나겠다고 약속했다네. 세상에서 이만큼 중요한 약속을 깨뜨리게 할 자는 없네."하는 수 없이 친구들은 만찬회를 하루 연기하여 목요일 밤에 개최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장군을 존경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그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이었습니다. 장군은 기도의 비밀을 알았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을 감동시키는 능력을 받았습니다.(약속된 기도시간)

  선한 일을 사모하면 겸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벧전 5:6) 합니다.

주후 4세기경 콘스탄틴 황제의 모친 헬레나 여사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유대 땅 베들레헴에 탄생교회를 세웠습니다. 돌로 단단히 지은 이 예배당의 내부는 모자이크로 아름답게 수놓은 성화가 있고 강단 밑에는 바로 예수께서 탄생하신 곳이라고 대리석에 별표를 그려 표시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역사적인 교회가 들어가는 문은 하나밖에 없으며 그나마 매우 작고 낮아서 들어가는 사람이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통과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성지순례를 위해 이 교회에 들르는 사람들은 이토록 불편하게 만들어진 문을 보며 그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안내자는 설명하기를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곳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겸손해야 합니다. 그 겸손을 강조하기 위하여 들어가는 문을 작고 낮게 만든 것입니다. 누구나 이 교회에 들어가려면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 겸손한 자세를 취해야만 들어 갈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겸손의 표상으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앞에서 겸손하지 못하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가 계신 곳으로 들어갈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천국은 겸손한 자만이 들어가는 곳이요 무릎으로 기어서 올라가는 곳이며 기도와 겸손으로 들어가야 하는 곳입니다. 마음이 겸손하며 낮으면 낮을수록 거기에는 많은 것이 담기는 법입니다.

어떤 분이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그 교회에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물리학자를 소개받았습니다. 물리학자는 마침 교회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름난 물리학자인데 교회 청소를 하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안에 계신 그분이 청소하게 하십니다." 방문객은 다시 물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물리학자가 되셨습니까?" 그는 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안에 계신 그분이 나로 물리학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자기보다 하나님을 내세우는 철저함 앞에 방문객은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과, 도이취의 종교 개혁자 루터는 평생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신학적 이론으로나, 정신적 태도로나 서로 가까운 처지였다. 그들의 유일한 접촉은 그들의 공통된 친구를 통해서 성립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둘 사이를 악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칼빈의 성만찬 논문에 루터의 견해를 비판한 것이 있다고, 루터에게 지적해 말했다. 그러자 루터는 비상한 관대성을 가지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금후에 칼빈이 우리에 대하여 더 잘 생각해 줄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 간에, 지금도 그는 우리들이 그에 대하여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이 말을들은 칼빈은 너무나 감격하여 그 친구 파렐(Farel. G.)에게  "우리가 이런(루터의) 겸손에도 감동할 줄모른 다면, 우리는 확실히 돌로 만든 사람일 것 입니다. 나 자신은 이 말에서 깊은 감동을 받고 있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은 뒤에 루터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는데, 그때 루터에 대하여 <나의 지극히 존경하는 아버지>라고 부른바가 있다 합니다. 실로 사람을 감격 감동케 하는 것으로는, 겸손과 사랑 이상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나이 많은 루터가, 나이어린 칼빈에 대하여 취한 겸손이야말로, 신자 누구나가 배울 겸손입니다. (감동케하는 겸손-예화뱅크)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우리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우리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십자가의 짐은 무거우나 우리에게 영광의 길입니다.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듭니다.(겸손하게 십자가를 지라-예화뱅크)

  선한 일을 사모 하면 충성합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어렸을 때 우편 배달부 노릇을 했습니다. 하루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강물이 불어 강 건너 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링컨은 우편물을 모자에 담은 채 두 손을 번쩍 들고 간신히 물을 건너 우편물을 배달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링컨은 충직하다는 렛데르가 붙어다녔다고 합니다. 링컨의 충성심은 훗날 위대한 인물이 되는 바탕이 되었고, 그 높은 인류애의 첫 계단은 역시 충성이었다고 합니다.

교회 음악의 대가라고 불리는 작곡가 바하는 라이프치히에 있는 성 토마스 교회의 오르개니스트로 일하고 있으면서 주일마다 부르는 성가대의 노래를 새로 작곡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가 작곡한 노래들은 출판되지도 못했고 별도의 작곡료를 받은 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주일 사명감과 신앙으로 꾸준하게 그 일을 계속합니다. 그러나 훗날 바하의 음악 세계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보수도 없이 매주일 작곡했던 그 곡들이 기초가 되었다 합니다. 바하가 만든 265개의 오르간 곡과 263개의 합창곡과 162개의 피아노 곡, 그리고 그 외에도 수백 개의 오르간 곡들은 그가 날마다, 주일마다 꾸준히 작곡했던 성실과 신실성이 낳은 작품들이었다 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합니다.

서양역사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Alexander) 대왕의 전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전쟁에 패하여 도망을 가게 되었습니다. 왕이 전쟁에 패하고 도망을 가야 하니 얼마나 가련한 신세가 되었겠습니가? 그때 다른 군사들은 슬금슬금 자기 살 곳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도망을 가면서 말안장에 무거운 짐을 실어 사병 하나에게 끌고 가게 했습니다. 얼마 후에 알렉산더 대왕이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전쟁에 크게 승리하여 나라를 되찾고 부귀영화를 다시 회복했을 때 왕은 그 병사를 불렀습니다. 왕은 그 병사를 칭찬하고 그 병사가 짊어지고 왔던 짐을 전부 병사에게 주었습니다. 그 짐은 금덩이가 담긴 짐이었다. 끝까지 충성한 자에게는 보상이 있는 법입니다.

유명한 거장 화가인 미켈란젤로가 씨스티나 채플의 천장 벽화, (천지창조, 인간타락, 노아 이야기) 프레스코를 거의 완성할 때 1524년경의 일이었습니다. 작품은 이제 끝난 것으로 보여 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천장을 향해서 마지막 손질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도왔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젠 끝나지 않으셨습니까?"  "자네 눈에는 끝난 것으로 보이는가?  내 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네" 그리고 몇 달을 더, 그는 계속해서 이 작품에 매달렸습니다. 마침내 작업은 완전히 마쳐진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작업 도구를 치우지 않고 계속 천장을 응시하면서 그 장소를 맴도는 것입니다.  또 다시 제자가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이제는 정말 다 끝나지 않았습니까? 그때 미켈란젤로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다고 합니다. "내 눈에는 끝났는데 주님 보시기에는 어떨지 모르지"

우리의 모든 일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 가가 더 중요 합니다.

일꾼은 선한 일을 사모 한다 함이라 합니다.

신실하고 겸손하며 충성하는 가운데 선한 일을 사모하는 모두가 되고 이러한 일꾼을 선택하여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부흥 발전을 위하여 협력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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