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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세바를 본받아 양육합시다 (왕하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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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요람 왕의 딸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의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도적하여 내고 저와 그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여 죽임을 당치 않게 한지라 요아스가 저와 함께 여호와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왕하 11:2,3)

여호세바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로 여호람의 딸이자 아하시야의 누이로서 대하 22:11에는 여호사브앗으로 나옵니다.

여호세바는 아달랴의 살인이 시작되었을 때 아하시야의 아들 중에 한 명인 요아스를 죽음을 각오하고 왕궁에서 훔쳐내어 유모와 함께 성전에 있는 침실에 숨겼습니다. 그리하여 목숨을 건진 요아스를 6년 동안 양육하였습니다. 아달랴가 한차례 성전을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대하 24:7)요아스와 그 유모가 성전에서 6년 동안 숨어 살 수 있도록 여호세바가 최선을 다한 것은 다윗의 씨를 보존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였고 이일에 여호세바가 도구로 쓰임 받았다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교육하고 선교하며 봉사하는 교회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되 이 달은 여호세바를 본받아 양육하는 달입니다.

  죽임에서 구하며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그의 어머니 이세벨처럼 우상을 섬겼으며 이세벨이 잔인하게 많은 선지자를 죽이고 연약한 백성들을 괴롭힌 것처럼 그녀도 잔인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예후에게 죽은 후 복수심이 가득하고 왕권에 욕심이 생겨서 왕족을 다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아달랴는 그의 어머니 이세벨이 바알이라고 하는 우상을 이스라엘에 퍼트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로 죄를 짓게 한 후 이스라엘도 벌을 받고 자기 남편인 아합 왕과 자신과 자녀들도 심판을 받아서 비참한 죽음을 당하였는데 깨닫지 못하고 같은 죄를 짓습니다. 유다의 왕비로 바알을 섬기고 자기의 아들 아하시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예후에게 죽었는데 회개하지 않고 더 큰 악을 품고 왕족을 다 죽이고 자기가 6년 동안 왕 노릇하였습니다. 왕자인 요아스가 6년 동안이나 숨어서 살아야 했다는 것은 아달랴가 왕의 씨를 멸하기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극악하게 애써왔는가를 보여줍니다. 아달랴는 완벽하게 악을 행하고 자기가 다윗의 혈통을 완전히 끊고 자기 대를 이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달랴가 왕위에 오를 만한 모든 정적들을 제거시키려고 한 시도는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가 침실에 숨겨저 6년 동안 몰래 양육됨으로 실패하였습니다.

여호세바는 대세가 아달랴로 기울었는데 목숨을 내 걸고 무섭고 잔인한 대 학살 현장, 시퍼런 칼이 왔다 갔다 하는 무서운 공포 속에서 다윗의 혈통인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왕자 요아스를 구출해 내어 성전으로 옮겨 6년 동안 숨겨서 키웠습니다.

아달랴가 행한 처사는 여호와 하나님과 더불어 싸우는 극악한 죄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윗 왕통을 계속하여 유지시키려는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삼하 7:16) 네 집과 네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왕조는 거의 뿌리까지 잘라졌으며 꺼져가는 등불이 전기 소켓에 조금 남은 정도였습니다.

요아스는 다윗의 왕통을 이어야 할 자인데 그가 죽는다는 것은 다윗의 왕통이 끊어진다는 것이고 이는 하나님의 언약이 파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요아스가 아달랴의 눈을 피해 성전에서 6년 동안 양육 받았던 사실은 단순히 한 생명이 구원받아 보호 되었다는 이상의 의미가 함께 합니다.

사탄은 아달랴를 통해서 다윗의 왕통인 요아스를 죽여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시켜 버리려는 어마어마한 흉계를 꾸몄습니다.

아달랴는 독재 정치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철권정치로 억압함으로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통치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안심하고 있을 때 그를 넘어뜨리기 위하여 성전 안에서 고이 자라고 있는 어린 왕자가 있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사단의 흉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도 계속되었습니다(마 2:13-23). 사단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에 못 박아 죽이고 무덤에 넣기까지 로마 군인 헤롯왕 대 제사장과 바리새인을 단합시켜 무서운 힘을 발휘하여 가룟 유다로 배신케 함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고 완전히 승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흘 후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부활시킴으로 사단의 머리를 때려 부수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사탄은 교회를 넘어뜨리고 뿌리까지 흔들며 성도들의 신앙과 가정과 사업에 이런 공격을 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피로 사신 언약의 자녀들에게도(고전 10:16;11:25; 히 13:20) 사단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에서 성도들을 끊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때마다 필요한 사람들을 통하여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이러한 사랑을 입은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하며 위기에 처한 이들을 구원하며 양육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를 대표할 만한 영웅으로 오자서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초나라 평왕의 충신으로 못난 왕과 간신의 흉계에 걸려 목숨을 잃은 오사의 둘째 아들입니다. 밑이 구린 평왕은 자서마저 제거하기 위하여 그를 잡아 주는 사람에겐 5만 석의 곡식을 주고 오늘날 장관에 해당하는 상대부 벼슬을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오자서에게 경천위지의 재주가 있고 날개가 달렸다고 할지라도 살아남을 수없는 위기입니다. 이런 오자서가 요행으로 소관이라는 국경 검문소를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안심은 금물입니다. 초나라를 완전히 벗어나려면 눈앞에 놓인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입니다. 갈대밭에 숨어서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는 한 어부의 도움으로 강을 무사히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자서는 자기의 생명을 구해 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차고 있던 전가의 보도를 어옹에게 끌러 주었습니다. 어부는 한사코 받기를 거절하면서 내 듣건대 당신을 잡아 바치면 초나라 임금이 5만 석의 곡식과 상대부의 벼슬을 시켜 준다고 합디다. 그 엄청난 상급도 초개같이 여기고 당신을 도강시켜 주었는데 어찌 이 따위 칼을 받겠소라고 말합니다. 자서가 어부 노인을 떠나면서 만약 뒤쫓아 오는 군사가 있거들랑 이 몸의 종적을 누설하지 말아 주시오라고 한마디 당부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어부는 난 순수한 마음으로 그대를 구했는데 그대는 아직 나를 믿지 못하니 만약 그대가 붙들리면 당장 나를 의심하지 않겠소. 내 당장 이 자리에서 그대의 의심을 풀어 주리다라고 하더니 곧장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뒷날의 일입니다. 자서는 오나라의 왕 합려에게 발탁되어 초나라를 쑥밭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깨끗이 복수합니다. 이어서 그는 망명생활을 할 때 자기를 괴롭힌 정나라마저 징벌하기 위하여 군대를 그리로 향했습니다. 약소국 정나라로서는 국가 존망의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에 정 정공은 만약 오자서를 자기 나라에서 물러가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나라를 그 사람과 함께 다스리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어느 날입니다. 정나라에 초라한 어부 한 사람이 나타나 오자서의 군대를 물리치겠다고 장담합니다. 옛날 악저 땅에서 오자서를 구출해 주고 죽은 어부의 아들입니다. 그는 오자서를 찾아 가서 지난날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를 봐서라도 정나라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이에 남다른 의리의 사나이 오자서는 즉각 군사를 거느리고 정나라에서 철수했고 어부의 아들은 정나라에서 준 사방 백리 땅의 주인으로 살았다고 하는데, 오늘날 진이라는 지방과 유라는 지방 사이에 있는 장인 촌이 바로 그곳이라고 합니다.(예화뱅크)

아브람은 롯이 전쟁의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서 기른 삼백 십팔 인을 데리고 롯을 구출하려고 출발하였습니다. 당시 그돌라오멜의 동맹군은 막강한 군대요 정예 부대로서 승리로 인해 사기가 충천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그들과 싸웠던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브람은 롯을 구하고 타인을 돕는 일에 신속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전심 전력을 다해 싸워서 마침내 승리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람은 노략당한 모든 사람과 재물을 회수하였습니다. 아브람은 혈족인 롯을 구출했고 롯으로 인해 구해 줄 의무가 없는 다른 포로들도 구하였습니다.(창14장)

  숨겨 돌보며

  저와 유모를 침실에 숨겨라고 합니다. 이는 사랑으로 돌보되 위로와 격려가 함께 했다고 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힘과 용기를 주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여인이 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부인이었던 엘레나 루즈벨트 여사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녀는 20세에 결혼을  하여 11년 동안 6명의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 중에 한  아이가 죽었을 때. 한 친구가 찾아와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나에게는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또 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다섯이나 남아 있어.”그녀가 20세 때 결혼한 남자가 바로 루즈벨트입니다. 그는 젊고, 패기 있고, 장래성 있는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관절염에 걸려 다리가 말라 버리는 불행에 직면케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쇠붙이를 다리에 대고 다리를 고정시킨 채 휠체어를 타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루즈벨트가  엘레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내가 불구자자 되었는데  그래도 당신은 날 사랑하오.”그러자 엘레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내가 그동안 당신의 다리만 사랑한 줄 알았나요. 내가 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인격과 당신의 삶이예요. 이 말은 다리 불구가 된 뒤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루즈벨트에게 새로운 용기를 었습니다. 결국 그는 1932년 다리 불구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이래 1936년에 재선. 1940년에 3선. 1944년에 4선까지 되어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4선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불구의 남편에게 용기와 희망과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던 엘레나. 그녀야말로 어려움 가운데 처한 사람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줄 알았던 가장 훌륭한 본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워싱턴 처칠 수상은 후배들과 수행원들을 잘 격려해 주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한 번은 자기의 후배  중국회의원이 된 사람 하나가 국회에서 처녀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하는 연설이라 얼마나 두렵고 떨리겠습니까. 그래서 말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처칠은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쪽지를 건네주었습니다. 연설 도중에 이 사람이 메모를 받았습니다. 그 메모의 맨 밑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너는 해낼 것이다. 처칠.” 이 격려로 그는 용기백배하여. 연설을 성공적으로 끝낼 수가 있었습니다.

믿을 만한 한 사람의 격려가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우리도 위로하며 격려하며 양육의 사명을 감당 합시다.

  여호와의 전에 두고

요아스는 여호와의 전에서 제사장 여호야다의 교훈을 받아 여호와 신앙을 수호하도록 양육 받았습니다(왕하12:2-6).

신앙적인 양육은 무엇보다도 중요 합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나실인으로 성정에서 자라 하나님의 위대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디모데는 어렸을 때부터 경건한 가정에서 자라며 성경 말씀으로 교육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어려서부터 배운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말씀하며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배우고 확신한 일이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확신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은 대로 순종하여 행함으로써 세상의 악한 세력들에게 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을 따라 행함으로써 악한 세력의 공격을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길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첫번째 시험은 사십 일 동안 금식한 예수께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는 유혹이었습니다. 밥의 문제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없이 밥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돌들로 떡 덩이를 만들라는 마귀의 유혹은 예수의 메시야직 수행보다 배고픔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먼저 채우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야 사역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준엄한 선포를 하셨습니다.

두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보호해 줄 것인즉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이는 명예에 대한 헛된 욕망을 자극하는 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릴 때 천사들이 그 발을 보호해 준다면, 예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유명해질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 가운데 하나인 명예욕으로 예수를 유혹하였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마귀의 유혹은 예수 자신이 그러한 메시야적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메시야 되심을 증명해 보이라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는 자기 능력의 과시를 통해서 증명될 수 있는 직분이 아닙니다. 메시야는 왕이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짊어져야 할 종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과시를 통한 명예의 획득은 비메시야적인 일입니다. 마귀는 교묘하게 인간의 심성을 부추겨서 예수로 하여금 비메시야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십니다.

세번째 시험은 세상 의 모든 부귀영화를 줄 터이니 마귀 자신에게 경배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영적인 시험에 속합니다. 경배 받으실 분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경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마귀의 궤계에 대하여 단호하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결코 없습니다.

죽임에서 구하며 숨겨 돌보며 여호와의 전에 두고 양육한 여호세바처럼 양육의 사명을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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