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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를 받아 (롬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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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하나님을 만나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 변하여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고 합니다.

'변화를 받아'(메타모르푸스데)는 자신이 아닌 타자에 의해서 변화하며 일시적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꼭 그렇게 되어야 함을 나타냅니다. 우리의 인격 내부에 변화를 일으키는 힘인 성령에 의해 마음이 새롭게 계속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선린교회 김 명기성도의 간증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국민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 초까지는 그저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녔는데 2학년 초에 저희 학교 기독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임의 내용은 저에게 충격적인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손을 들어 찬양하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는 모습들이 제게는 너무도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맨 처음에는 좀 무서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다되어서 한 선생님으로 부터 한사랑 여름 수련회를 다녀오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가지 않으려 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수련회 장소인 대학생 선교회(C.C.C.)훈련원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찬양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밥을 먹은 후 7-8시 정도에 기도회를 시작하였는데 저는 그때 성령세례라는 것을 받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몸이 뜨거워지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제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같이 기도해주시던 선생님이 '너도 성령세례를 받았구나' 기뻐하셨습니다.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부터 예수께서 날 위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 사실을 마음으로 믿게 되었으며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영접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나에게 일어난 변화는 우선 저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변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세상적인 명예와 부귀를 소유하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라고 알았는데 지금은 주님을  전하는 것이 저의 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며 세상적으로 즐기던 노래와 못된 습관들도 버리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내려다보신다는 생각에 모든 행동을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저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저의 주인이시며 목표이시며 저의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예화 뱅크- 변화-선린교회 김 명기)

우리도 성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심령은  변화를 받아 새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변화 받은 심령의 삶을 통해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는 '이 세상 신' 혹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세대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적대 세력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세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 기준 등 시대정신도 포괄됩니다.

전에는 이러한 세대를 본받아 살아 왔을 지라도 이제는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인도에 오랫동안 의료선교로 나가있던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아낙네가 자기 아이를 업고 헐레벌떡 병원으로 들어와서는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더랍니다. 그래서 어디가 아픈가 하고 진찰을 해 보니깐 자기 병원에서는 도저히 안 되겠고 빨리 큰 병원으로 가야만 하는 상태이더랍니다. 그래서 빨리 큰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받지 않으면 아이의 생명이 위태로우니 서둘러서 도시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 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하는 말이 "그러면 그 사이에 우리 집 소는 어떻게 하느냐"고 되묻더라는 것입니다. 선교사님은 마음이 답답해서 "아니 아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인데 소가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소가 중합니까? 아이가 중합니까?" 하니 "당연히 소지요. 아이는 2-3년 후면 또 낳을 수 있지만 소는 일평생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도 사기가 어렵습니다."고 하더랍니다.

만약 우리는 이럴 때에 아이와 소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당연히 아이라고 하시겠지요. 하지만 그 나라 그 여인에게는 오히려 소가 더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보다도 지금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고 구조,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돌아보면 이런 사고방식이 만연하여 아이보다도 소를 선택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한가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소중한 아기의 생명도 소보다 못하게 여기는 것처럼, 우리의 영혼마저도 쉽게 세상에 내어주며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C. S. 루이스라고 하는 기독교 작가가 "악마의 편지"라는 책을 썼습니다. 영국의 어떤 노신사가 어느 날 도서실을 찾아갔습니다. 그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실에 들르는 습관이 있어서 그 날도 도서관에 갔던 것입니다. 여러 가지의 책 중에서 하나님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합니다. 책을 읽다가 보니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때에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노신사의 마음속에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점심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노신사는 순간 마음속으로 생각하려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잠시 누르고 식당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또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때에 악마는 마음속으로 다시 말하기 시작합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생각해? 우선 식사나 끝내" 식사를 다 끝내고 다시 어렴풋이 하나님의 생각이 나려고 합니다. 노신사는 사탄의 역사를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서 버스를 탑니다. 좌석에 앉아서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사람처럼, 아무런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지 않았던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고서 말입니다. 루이스는 이런 말을 하며 맺고 있습니다. "마치 자신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버스를 타고 가는 이 노신사 뒤에서 악마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우리도 전에는 이러한 세대에 휩쓸러 살아 왔을지라도 이제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 영광 제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말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깨끗이 닦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항상 분별할 수 있도록 자기 영혼을 깨끗이 유지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골방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주의 음성을 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샘터잡지에 실렸던 어떤 여성의 글입니다. 2남4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난 소녀가 고3이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사시던 할머니가 서울로 올라온 후 집안이 늘 시끄러워졌습니다. 할머니, 부모님 사이에 다툼이 많아지고 큰 소리로 싸움이 잦아졌습니다. 고3되어 한창 공부할 때에 너무 비관이 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학교에서 가족에게 보내는 유서 열다섯 통을 써서 가방에 넣어두고 그 길로 학교를 나와 동네 유원지 강물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나 깨어보니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었고 온 가족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이 소녀 책상에 일곱통의 편지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아빠, 엄마, 언니들 셋, 오빠, 어린 남동생 가지 모두가 쓴 편지입니다. 마지막에 어머니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엄마는 철자도 틀리기에 자녀들 앞에서 편지도 쓰지 않던 분입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일학년만도 못한 필체지만 긴 편지를 쓰신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온 가족의 내용은 같았습니다. 너를 이해한다, 너를 사랑한다.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우리 같이 이겨나가자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편지를 받은 지 15년이 지나 한 아이의 엄마가 된 후 이 딸은 그 때의 불효를 회개하면서 결심 합니다. 너무나 많이 늙어버린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그 때 내가 너무 어리석었고 정말 잘못했었노라고 용서를 빌고 싶다고 말입니다.

부모님과 가족에 대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중요 합니다. 그러나 더욱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여야 합니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코메디언이요 가수였던 로오더(Lauder)라는 사람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게 되었는데 그 상황에서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그 친구가 어떻게 하여 그렇게 생활에 흔들림 없이 잘 견디어 가고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로오더가 말했습니다. "나 같은 경우를 당하면 사람들은 대개 술주정뱅이가 되든가,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든가, 아니면 하나님께로 향하든가 셋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게 된다네." 그는 자신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열었고 치유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환경의 비극을 신앙의 승리로 변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가 마음을 새롭게 한 자세인 줄 믿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로 향하는 마음이 은헤받은 마음이요 새롭게 된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말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뒷발길질을 잘 하겠네. 이 말은 순해서 뒷발길질을 하지 않겠네.’하는 것을 공부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가 막히게 잘 맞추었는데, 한 번은 큰 말을 보고 조금 늦게 배운 사람이 “아, 요건 뒷발길질을 아주 잘 하겠네. 이 말은 아주 조심해야겠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배운 사람이 그 말의 뒤에 가서 엉덩이를 탁탁 쳤습니다.

그러니까 뒷발길질을 잘 하겠다고 말한 사람이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빨리 비켜. 큰일나.” 그래도 먼저 배운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말의 엉덩이를 계속 때리는데, 말이 발길질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왜 발길질을 하지 않지? 생긴 것은 뒷발길질을 잘하게 생겼는데.” 그때 먼저 배운 사람이 말했습니다. “자네 판단이 맞아. 이 말은 뒷발길질을 잘하게 생긴 말이야. 그러나 자네는 앞 다리를 보지 않았어. 앞 다리를 보게. 앞 다리의 무릎이 부어 있지? 지금 이 말은 앞 다리가 아파서 발길질을 할 수 없네. 말이 뒷발길질을 할 때는 힘의 중심이 앞 다리에 있다는 것을 알지? 앞발에 힘을 주고 뒷다리로 차는데 앞발에 힘을 줄 수 없으니 발길질을 할 수가 없다네. 자네가 본 것은 뒷다리뿐이야. 나는 앞 다리도 보았지.” 이것이 분별력의 차이입니다. 사람을 보아도 겉만 보면 안 됩니다. 속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 사람의 앞면만 보면 안 됩니다. 뒷면도 보아야 됩니다.

이러한 세상 분별력도 필요 하나 더욱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하여야 합니다,

미국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남북 전쟁을 할 때인데 처음에는 남북전쟁이 그렇게 길어지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었는데 막상 전쟁이 붙고 보니까 전쟁이 길어진다 말이에요. 자 이렇게 되고 보니까 하루에도 수백 명씩 같은 동족끼리 싸우면서 죽어 가는데 마음이 너무도 괴롭습니다. 그래서 집무실에서 하나님 앞에 두 시간씩 세 시간씩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기도할 때에 대통령이 기도하니까 이제 장관들도 문 앞에서 기도합니다. 기도 끝나고 대통령이 나올 때에 송구한 마음으로 장관들이 각하 저희도 이 문 밖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나는 내가 하나님 앞에 서 있는가가 걱정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지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 일을 거스르는지 따르고 있는지 그것이 걱정이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중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 마음 자세가 성도의 마음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와서 내 편이 되어 달라고 하는 것도 중요하고 필요하나 보다 더 내가 하나님 편에 가서 하나님 뜻을 따라가게 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하나님 뜻을 우리가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따라 갈 때가 많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잡으러 온 제사장의 하속의 귀를 짜르는 것이 주님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으나 주님은 다시 그 귀를 고쳐 주십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성령의 은혜의 단비로 심령이 변화되는 길입니다.

사막지대에서 선교하시는 한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불모지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사님의 사모님께서 부엌 바로 뒤에 아름다운 꽃이 한 송이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를 자세히 살폈더니, 사모님이 설거지 할 때마다 뒤뜰의 똑같은 장소에다가 물을 뿌렸는데, 바로 그 자리에 어느 사이에 토양이 바뀌었고, 그 곳에 날라던 씨앗이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게 된 것이었습니다.

메마른 사막에 물을 뿌릴 때 토양이 변하고 토양이 변하니 꽃이 피듯이 사막과 같이 메마른 심령에 성령의 은혜의 단비가 임할 때 심령이 변하고 꽃피고 열매 맺는 역사가 임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신 말씀대로 변화되어 열매 맺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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