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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선택에 담긴 지혜 (삼상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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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황요한 목사

요즘처럼 건강에 대하여 관심이 높았던 적도 없을 만큼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김없이 건강문제가 화제가 되곤 합니다. ‘비타민을 알면 건강이 보인다’ 는 한 교수의 책으로 인하여 요즘은 식사시간 도중에도 희고 기다란 타원 모양의 비타민제를 섭취하는 분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평안의 가정들에게도 행복 비타민을 듬뿍 섭취하기를 소원합니다. 특별히 믿음의 삶을 사는 여러분들에게는 말씀의 비타민도 충만하게 섭취되기를 축원합니다. 신앙의 길을 가는 이들이 영양실조가 걸려서는 안 되겠기에 말입니다. 지난 주에는 어느 집사님이 기도원에 다녀오시면서 문자메시지를 저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목사님, 역시 목사님 말씀이 제일이예요.....’ 그날 저는 행복 비타민을 갑절이나 듬뿍 먹은 기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여호와의 선택에 담긴 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무엘상 16장 6절에서 7절의 짧은 내용이지만, 그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깊이는 대단히 깊습니다. ‘그들이 오매...’라고 6절은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집을 방문하여 제사를 청했던 사무엘 제사장의 요구에 응하여 이새는 아들들을 모두 소집 했습니다. 물론 제사를 드리는 가족들도 왜 이렇게 갑자기 사무엘 선지자가 오셔서 제사를 드리는지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 후 뿔에 기름을 채워서 말째인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때에도 이새나 그 자녀들조차 이유를 몰랐고 심지어는 다윗 자신도 왜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에게 기름을 부었는지 잘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를 두고 성서신학자 들은 가족들의 이해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선지자께서 당신의 생도로 삼으시려고 기름을 부으시나보다"라고 말입니다. 실제로 선지자 밑에서 함께 기거를 하며 훈련을 받았던 생도들이 있었음을 열왕기하 2장15절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새는 모든 아들들을 불렀고 제사를 마친 후 사무엘은 사울 다음의 이스라엘 왕을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명령 곧 기름을 붓는 대단히 엄숙하고 중요한 사명을 시작하려고 이새의 아들들을 소개받기 시작했습니다. 첫째인 엘리압을 소개 받자마자 사무엘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 6절을 보면,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그 앞에 있도다."하며 직감적으로 기름 부을 자를 찾았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첫 눈에 반한 사무엘 선지자가 그에게 기름을 부으려고 했더니 깜짝 놀란 것은 엘리압이나 이새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또 다시 사울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충고하셨습니다.

사실 준수한 용모와 훤칠한 신장을 보아서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되었던 사울은 10장 23절의 언급처럼 외형적으로는 손색이 없엇습니다.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 이렇게 사울은 선택이 되었고 백성들도 순수하게 동의하였기에 그의 기름 부음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사울 왕 이후 두 번째 왕을 세우는 일을 사무엘에게 맡기신 하나님께서는 엘리압을 보고 직감적으로 ‘바로 이 사람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 가정에 보낸 것은 이 사람 때문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무엘에게 "아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이새의 자녀들에 대한 숫자적 혼선에 대하여 짚고 넘어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일곱명의 아들을 다 소개한 후에 ‘더 이상 없느냐?’는 물음에 말째가 들에서 양을 치고 있다고 함으로써 이새의 아들이 모두 8명임을 암시하는 본문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새의 가정을 보다 자세하게 소개한 역대상 2장 13절 이후의 기록에 보면, 그의 자녀들은 모두 7남 2녀이며 이름까지 자세히 소개 되어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어느 내용이 정확한 기록인지, 8명의 아들이 맞는지 아니면 7명이 맞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고심해 왔습니다. 한편 역대상 27장 18절에 보면, 다윗의 형이라고 소개된 엘리후는 오늘 본문이나 역대상 2장에도 소개 되어져 있지 않은 이름이기에 일부 학자들은 엘리후를 포함하여 8명일 것이라고 추론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셋째 아들 삼마를 역대상에서는 시므아로 소개하고 있어서, 첫째아들 엘리압도 엘리후라는 다른이름으로 불리고 있엇다는 이론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의견일치를 보고 있습니다. 결국 이새의 아들은 여덟이었으나, 사무엘 선지자가 제사를 드리는 이 싯점에서는 한 명의 아들을 잃은 후였기에 본문은 다윗을 여덟째로, 역대상은 일곱째로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 첫째부터 아버지가 소개를 합니다. 큰 아들 나와라. 엘리압이 나왔습니다. 이 아들은 몇 살 이구요, 이 아들은 특징이 어떻구요. 아마 아버지가 선지자 사무엘에게 소개를 했을 것입니다. 처음 소개를 받자 마자 사무엘의 마음에 아주 박동이 심각했습니다. 바로 이 아들입니다. 마음에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사무엘의 생각과 여호와의 생각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사실 사무엘, 하나님께서 가장 인정하시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 사무엘의 직감적인 이 판단을 우리가 자주 해 왔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직감적으로 느껴서 일을 할 때가 많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일에 오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바로 내가...

오늘 이 사무엘이 이 엘리압을 보면서 직감적으로 바로 이 사람이구나. 판단하고 기름을 부으려고 했던 이 사무엘을 여러번 자신이라고 적용을 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주님의 일을 하실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일하셨습니까? 어떤 기준을 가지고 행동하셨습니까? 어떤 기준을 가지고 말씀하셨습니까? 내 직감은 못 속여. 그래도 내가 주님의 일에 몇 년인데, 그러면서 대부분 자기의 경험과 자기의 판단에 의지해서 주님의 일을 해 오셨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실패였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그 말씀이 다시 사무엘의 판단을 주님께서 경고하시면서 사울의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 라고 충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 못된 직감이나 인상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그칠 수도 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7절의 후반에는 아주 중요한 우리 주님의 말씀이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7절 후반의 이 말씀에는 사무엘상, 하 전체 성경의 키워드가 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기준해서 사무엘 상, 하를 해석하지 않고는 정상적이고 온전한 해석을 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의 생각, 어느 신문에 보니까 만평이 그려져 있는데, 광수생각, 그래서 히트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생각을 아주 파격적으로 바꾸는 아주 신선한 만평이었습니다. 엘리야의 생각, 엘리사의 생각, 집사 아무개의 생각, 권사 아무개의 생각, 장로 아무개의 생각, 더 나아가서는 목사 아무개의 생각, 오늘 하나님의 종 사무엘의 생각,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그리고 말씀합니다. 내 생각을 조금 들어봐라. 내 생각은 이렇다. 그리고 하나님의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말씀은 히브리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 기준해서 번역한 것입니다. 이번 시내산 선교회 회원들이 70인역이 번역되었던, 알렉산드리아를 방문했었습니다.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저는 그냥 밖에서 구경만 하고 가시라고, 그래서 왜 그런가 하고 제가 얼른 판단을 해 보니까 입장료를 절약하려고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런데 넘어갈 사람이 아니잖아요. 얼른 판단하고 가이드를 불렀어요. 저 안에는 왜 안 들어가느냐? 이런 저런 변명을 해요. 당신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인줄 아느냐? 저 보이는 성을 구경하려고, 밖에서 사진이나 찍으려고 간 줄 아느냐? 얼마나 들어도 좋으니까 들어가라. 그러니까 비싸다고 그래요. 그래서 들어가 보니까 비싸지도 않아요. 아주 저렴했어요. 가이드는 아주 제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어요.

사실 리더쉽이라고 하는 것은 그럴 때 발휘가 되는 거예요. 그렇지 못 했으면 성지순례 선교회원들은 그냥 겉모양만 보고 갈 뻔 했어요.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건물에 들어가서 방이 70개가 있는데, 거기 이스라엘 최고의 학자들이 방 한칸 씩 차지하고, 히브리 성경으로 된 성경을 그 당시에 국제 공용어였던 헬라어로 번역을 해서 70명이 전부 번역을 해서 정확하게 말하면 72명입니다. 그들이 자기들이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와서 대조해서 맞추어서 틀림없는 번역된 헬라어 성경이 탄생을 했습니다. 그것이 70인역입니다. 히브리 성경이 최초로 번역된 그 유서 깊은, 감격스러운 그 현장을 우리가 들어가 보았습니다.

그 70인역이 말씀하는 그 내용을 우리 성경이 그래도 번역을 했어요.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말씀의 핵심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하나님의 안목으로, 하나님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라고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원문에는 그 뜻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눈으로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으로 보신다.

사람은 눈에 띄는 것으로 판단해요. 잘 한다, 못 한다를 눈에 띄는 것으로 경력이 좋고, 학력이 좋고, 그런 것을 가지고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중심으로 보신다는 거예요. 70인역은 우리 성경에 번역된 것처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신다라고 함으로써 조금 더 자세하게 의미를 담아서 번역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성경 우리가 사무엘상 13장 14절에 보면 여호와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으라고 사무엘에게 주님께서 선택의 기준을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마음에 맞는 사람, 나중에 다윗을 선택한 후에 하나님은 다윗을 향해서 이 사람은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라고 평가 하신 줄 믿습니다.

능력이 맞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학력이 높은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때때로 약점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때때로 죄의 문제로 과거의 경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중심에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중심으로 순종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시는 줄 믿습니다.

교회는 흠 없는 사람이 찾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다윗도 흠이 많이 있는 사람이예요. 아마 요즘 같으면 다윗이 청문회 나가면 국무총리도 안 될 것입니다. 과거에 잘 못한 것이 있는데, 그거 청문회 나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저는 우리나라가 청문회 제도가 생긴 이후에 가장 아까운 사람 한 사람을 놓쳤는데, 그 중에 한 분이 이대 총장을 지내셨던 장상 총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너무나 아까운 인물을 우리는 잃었습니다. 그 바보 같은 국회의원들 때문에 한국 최초의 여성 국무총리가 나올 뻔 했고,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 지도자가 나올 뻔 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러 가지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합니다. 교회에서 주님의 일 할 때 보면 똑똑한 사람이 일을 잘 합니다. 많이 배운 사람이 일을 잘 합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42년 목회 하시는 동안 제가 쭉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때는 똑똑한 사람을 시키지 않으시고, 많이 배운 사람을 시키지 않으시고, 아버님께서 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젊은 제가 볼 때에 답답했어요. ‘아버님, 이번 일에는 이 집사를 시키셔야 하는데, 이번 일에는 김집사를 시키셔야 하는데,...’ 근데 아버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제가 28년 목회를 하는 이 시점에서 생각을 해 보면 아버님의 기준이 맞았습니다. 교회는 많이 배운 사람이 일 하는 데가 아니고, 똑똑한 사람이 일하는 데가 아닙니다.

제가 목회를 해 보니까 제 목회의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입니까? 순종하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목회에 도움이 되서 아론과 훌이 되고, 하나님의 교회의 일꾼이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드리는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바보 같이 생각되는가 봐요. 목사님한테 대들지도 않고 순종만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몇몇 있는 것으로 알고 잇습니다. 성도여러분, 정말 우리 교회 장로님들이 바보일까요? 그 분들은 이론이 없어 긴 말을 안하고 말을 할 줄 몰라서 안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연회나 총회에 나가면 일부 장로 회원중에는 감독님이나 목사님들을 우습게 아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만, 그런 분이 시무하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물어보면 모두가 손사래입니다. 송구스러운 표현이지만 누가 모셔간다면 프리미엄까지 얺어 줄테니 제발 모셔가라는 것입니다. 알고보면 불행한 일입니다. 성도여러분, 말꾼보다는 일꾼이 필요한 곳이 하나님의 교회인줄로 믿습니다. 그분들이 이렇게 순종의 길을 걷기까지 얼마나 말씀으로 다듬어지고 절제하며 달려왔는지 아시는지요? 그들의 밀알같은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평안의교회가 존재하는 줄로 믿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아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외모가 준수하고 키가 어깨하나는 더높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이냐는 것입니다. 사울의 경우를 생각해 보라는 것이지요. 과거를 통해서 교훈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되풀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은 많은 것들이 선택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4장은 이스라엘이 전쟁에 앞서서 언약궤를 가져다 놓으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법궤를 전쟁터까지 끌고 왔지만 실패했습니다.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지만, 그들의 중심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법궤를 가져다 놓는다고, 승리한다면 이것은 심각한 신앙의 문제가 생깁니다. 실패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8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왕정을 선택해야 이 나라가 강건해 지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왕을 세웠습니다. 준수한 사람, 키 큰 사람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이제 16장에 와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사무엘에게 선택권을 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운명이 사무엘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와서 ‘이 사람이다.’라고 판단을 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미래지향적인 기준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 직감으로 일을 해 왔었습니까? 지금까지 우리 경험을 가지고 일을 해 왔으니까 내 판단은 틀림 없다고 여러분의 기준, 여러분의 판단을 가지고 일을 해 오셨습니까? 그것 때문에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많이 그르쳐 왔습니까? 여러분의 그 고집 때문에 주의 종의 마음을 얼마나 힘들게 하셨나요? 또 저는 주의 종의 입장에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서 저를 포함해서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얼마나 또 불편하게 해 드렸습니까?

이제 우리는 철저하게 회개하여야합니다. 우리 중심의 가치관에서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As God Sees....." 이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아야합니다. 이젠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평안의 성도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백성다워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담긴 지혜를 오늘 우리의 삶에 적용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직감과 안목에 의존했던 삶들을 내려놓고 철저하게 이 시간 하나님의 뜻으로 새롭게 거듭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자를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으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을 찾으시는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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