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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절한 기대 (빌 1: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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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상복 목사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었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 모두가 마음에 소원이 있고 기대를 갖고 삽니다. 특히 요새는 빨리 경제가 회복되고 안정되었으면 하는 소원이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대학 입시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이번 수능시험만은 확실하게 내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다’ 하고 부모님들도 ‘우리의 자녀들이 원하는 대학에 갔으면’ 하는 소원과 기대가 있습니다. 또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 ‘좀 안정된 삶이 있었으면 좋겠다. 너무 갈등과 분열이 심하니 지도자들이 좀 통합적 사고를 가졌으면 좋겠다. 이 나라가 어느 정당의 나라가 아니라 온 국민의 나라이니 어느 정당이든지 국민을 좀 생각했으면 좋겠다.’ 전체적으로 이런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환우들은 빨리 병이 나아서 주일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앞으로 6개월 동안 나머지 공사가 완공되어 온전히 교회를 하나님께 바쳤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소원들이 과연 이루어질지는 우리가 아무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경제가 불안할 수도 있고 경제가 다시 일어나서 한강의 기적을 두 번째 일으킨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 건강할 수도 있고 병들 수도 있습니다. 원하는 대학에 갈 수도 있고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의 가슴 속에도 두 가지 강력한 소원과 기대가 있습니다. 첫째는 어떻게 하든지 자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가든지 자유인으로 살든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고난이 있든지 기쁨이 있든지, 어떤 형편에서도 자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일생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꼭 유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기대와 소원이 여러분과 저의 기대와 소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사도바울은 자기를 통해서 예수님이 전해진다면 언제나 기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무슨 이유에서든지, 방법과 환경과 여건을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만 전파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17절 이하에 보면, 어떤 사람들은 사도바울을 고생시키려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빌립보서는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질투의 대상인 사도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사이에 자기도 사도가 되어 바울 대신 교인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질투에서 동기가 유발되었습니다. 동기가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도바울은 18절에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고 합니다. 사도바울의 소원과 기도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기 원합니다.

  이번 추석동안 저는 태국의 파타야에서 열린 “2004 로잔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1,800여 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참석했습니다. 한국에서도 20명 정도가 참석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33개 그룹으로 나누어져서 각자의 최대 관심거리인 복음전하는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그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의 목적은 한가지였습니다. ‘세계화 상황에서 사도바울의 가슴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신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 예수의 증인이 되라”는 지상명령은 오늘 여러분과 저에게도 주고 계십니다.

  이 대회에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고 있는 분들도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감옥에 갔다 온 분들, 매 맞은 분들, 교회가 불에 타버린 분들 등 핍박 받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19세기 동안 예수님 때문에 죽임 당한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20세기 1백 년 동안에 1900년 동안에 죽은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 때문에 잡혀 들어가거나, 집에 폭탄이 터지거나, 교회가 불타 사람이 죽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도 어떻게 하든지 복음을 전하려 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전인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지를 논의하고 경제, 정의, 건강, 농업, 기아문제, 인도적인 구제문제 등을 토론했습니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 어린이들, 상처 받고 소외된 사람들, 은폐된 사람들, 미전도 종족, 장애자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지, 비전통적인 가족들에게 - 예를 들어 한 부모 가족이나 이혼한 분들에게 - 어떻게 복음을 전해서 새 삶을 살게 해 줄 지, 그리고 대도시의 복음화, 자비량 선교, 시장선교, 기도와 전도, 교회변화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무슬림 국가와 같은 경우 공개적으로 예배를 못 드리니까 가정교회, 셀 교회 등을 만들어 어떻게 하든지 편하게 예배드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방법, 또는 주중 교회를 만들어 주말에 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지도 생각한 것입니다. 음악, 미술, 무용, 문학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어린이 전도, 청소년 전도, 언론과 현대기술을 활용한 전도도 연구하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번 대회에서 메가보이스(Megavoice)란 것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작은 플라스틱으로 된 신용카드같이 생긴 것인데, 그 안에는 예수에 대한 설명, 영원한 생명, 찬송 등이 두 시간 분량이 들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것은 120시간 분량의 메시지가 녹음되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사람들에게 주어 복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누르기만 하면 소리가 나고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발달한 현대 과학을 이용해서 정글에 사는 사람들이나 책을 읽지 못하는 40억 인구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든지 무슬림 국가든지 어디에서나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소원이 바로 사도바울의 소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영원한 문제가 풀리고, 남은 인생이 달라지고,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것을 이렇게 소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토요일 밤에 발표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돌과 나무와 해와 달을 보고 물을 떠놓고 절하며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 믿는 우상숭배의 삶을 살았었는데, 120년 전에 예수님이 한국을 찾아오셨습니다!”(Jesus Christ came to Korea). 그런데 그 다음날 여러 사람이 절 찾아와서 "당신이 Jesus Christ came to Korea! 라고 말했을 때 당신의 얼굴에 빛이 확~ 하고 났습니다"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제 빛이 아닙니다. 저는 빛이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제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빛을 발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건강하나 병드나,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어떤 형편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의 간절한 기도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지, 어떤 환경에서든지,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기를 원하는 그 로잔대회 참석자들이 가졌던 그 마음이 사도바울의 마음입니다. 저는 오늘 이 아침에 이 마음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것은 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합니다. 바울은 19절에서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안다”고 하였습니다. 즉 자기가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지만 빌립보 교인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주고 성령께서 도와주시면 자기가 감옥에서 나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은 내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에게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의 삶의 한계를 깨뜨려주실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이 소원이었고 기도였고 희망이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바울은 20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시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하며 성령의 도움을 구한다면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고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입니다. 11월 7일 이웃초청의 날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 누구를 초청할 지 생각나게 하시고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받은 축복과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도 여러분 때문에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도바울은 삶과 죽음을 초월해서 복음을 전하려 했습니다. 21절에서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살아도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죽어도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육신으로 살아 있으면 복음을 전할 수 있고, 복음을 전하면 사역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여러분도 각자 “하나님이여, 나를 사용해 주셔서 내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이 전파되고 사역의 열매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위해 살수 있을 것입니다. 살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도 축복이요, 죽어도 영원히 고통도 죽음도 외로움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으므로 그것은 더 큰 유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질병이나 아픔을 통해서도 누군가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심지어 죽음에 직면해서도 마지막 유언으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가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끝으로 사도바울은 24~26절에서 “살아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24절에서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도움을 끼치고 싶다는 것입니까? 먼저 성도들의 신앙 발전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나 죽으나 예수님을 전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그 헌신 때문에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의 신앙 발전에 꼭 도움이 되길 원합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25절에서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안다”고 하였습니다. 즉 사도바울이 석방되어 빌립보교회에 갈 때 빌립보 교인들이 사도바울 때문에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만나기를 좋아하고 기뻐합니까? 아니면 여러분을 피합니까? 여러분의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자 하는 헌신된 결단과 태도와 삶이 있다면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과 기쁨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하시고, 나를 통해 사람들에게 유익과 기쁨이 나타나도록 나를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사도바울의 이 소원과 기대가 여러분과 저의 기대와 소원이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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