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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추구하는 자인가? (롬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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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재명 목사

여러분에게는 삶의 원칙이 있습니까?
지금은 고인이 되신 예수원의 토레이 신부에게는 하나의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할 수 있거든 나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언제나 중요한 결정을 미루어 왔고 나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으면 언제나 말하기를 삼가 왔다”는 것입니다. 토레이 신부는 자신의 마음이 자신의 삶이 성령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성령의 인도함을 느끼며 살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삶의 원칙은 하나님과 모든 사람 앞에서 인정받을 만한 경건 된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삶들을 이끌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

첫째: 편애가 없이 공정하신 하나님의 심판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니 했습니다.
행한대로입니다. 심은대로입니다. 뿌린대로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에게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공정한 심판에는 차별이 없으십니다. 편견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11절에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 적어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두 가지 잘못된 자만심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2:4에 나오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도 유대민족에 대하 특별한 인자와 관용과 인내를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망해도 자신들은 하나님의 선민이기에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이방의 나라들은 가차 없이 때려서 멸망시키지만 유대인은 때려서라도 어루만져 주시고 또 이방인들은 회개할 기회를 주지 않고 멸망을 시키지만 유대인들은 한없이 참아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결국은 구원해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회개치 아니한 마음에 끌려 있으면서 택한 자신들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거나 절대 구원받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장로교 목사이기에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그리고 역사하심을 신뢰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 복음적 자부심은 그만 행함을 가볍게 여겨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는 것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적 교리 안에 파묻혀 적당히 죄 짓는 것을 망설임 없이 행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책임이 있는가는 외면해 버립니다. 여전히 죄를 지으면서도 택한 백성으로서의 특권만을 이야기 한다면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행위는 믿음의 열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 믿음은 행함을 요구합니다. 참 믿음은 적당히 죄 짓는 것을 용납하진 않습니다.

마 7장 16절에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얻을 수 없다” 주님은 강조하셨습니다.
마7:21절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22절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고 항변하자
23절에 “그때에 내가 너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니라” 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착각하며 생각한 거짓 믿음과 신념들이 세례요한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완전히 박살 나 버렸습니다. 선민사상으로 하는 저들의 교리는 완벽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불법이자 외식이었던 것입니다.

마23:27절에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하도다” 했습니다.

각 사람에게 보응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당신은 감사하십니까? 걱정되십니까?

계2,3장에 보니 소아시아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내가 네 마음을 아노니” 이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라는 말씀입니다. 지금은 적당히 세상에 무너져 있으며 죄에 아무런 저항을 못한다면 위로의 날이 끝나고 심판의 날에 우리는 분명 달리 울 것입니다.

둘째: 영생과 노(怒)와 분(忿)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아닌 학식이 있는 자와 무식한 사람이 아닙니다.
7절,8절에 보니 하나님의 심판에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는 것과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먼저 무엇을 구하는 자인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영생을 선물로 받는 자들이 구하는 것은 참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존귀를 구함과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라 했습니다. 참고 선을 행하여라는 것은 하나님의 적극적 요구입니다. 단순히 착해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선의 동기가 분명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삶의 목표는 내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어야 합니다. 삶의 목표에 내 울타리를 넘어선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존귀를 구하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존귀는 하나님의 명예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믿는 다 하면서도 행함에서 삶에서 하나님의 명예가 짓밟히고 있다면 이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명예와 이름을 더럽히는 골리앗을 참아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존귀를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삶이자 내가 존귀 히 되는 복이 됩니다.
그 다음에는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썩지 않는 것과 썩는 것을 잘 구분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하늘의 것을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목표로 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 보화를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썩는 것을 구하는 자는 죽은 소망 안에 사는 자입니다. 반대로 썩지 않을 것을 구하는 자는 산 소망 안에 사는 자임을 아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노와 분으로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2장8절에 보니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이 있을 것이다 하셨습니다. 당을 짓는 다는 말은 끼리끼리 노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는 것은 좋아하나 비판이 많고 판단이 많습니다. 논쟁을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전혀 계산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이 옳은 가를 논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다는 것에 있습니다. 살리는데 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데 논의를 합니다.

9절10절에 무엇을 행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결과들이 있으니 9절에는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란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이라 합니다. 10절에는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인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영광에 동참하는 자가 될 것이고 주님이 존귀하심같이 존귀히 되며 하늘의 평안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무엇을 추구하십니까?

사람이 참고 선을 행하며 살아야 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만약 이 땅에서가 끝이거나 영적 존재가 아니라면 선을 행하거나 참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고 싶은데로 욕망이 이끄는 데로 살다가 죽으면 됩니다.

운동경기장에서 페어플레이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다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운동장 안에서만 끝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라운드 밖으로 나와서 평가를 받을 때가 있기 때문에 페어플레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끝날 것처럼 사는 자인가? 아니면 이 땅을 넘어 하늘에서 사는 자처럼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으십니까?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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