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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빚진 자라 (롬 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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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익로 목사

1985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에게 주는“올해의 교사(National Teacher of the Year)”로 선정된 테리 도저(Terry Dozier)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월남에서 독일남자와 월남 여자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독일의 나치 정보원으로 일하다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어머니는 그 쇼크로 인하여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아직 어린 테리와 오빠는 외가 쪽 친척에 의해 중국 식당에 팔려갔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 고생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 때, 그녀는 미국 군사 고문관에게 발견되어 양녀가 되어 미국에 왔습니다.

기독교 신자가 된 테리는“내가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미국 사회 덕분이다. 나는 하나님과 미국에 빚을 졌으니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빚을 갚는 가장 좋은 길이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가 되었으며, 교육에 정열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1985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교사에게 주는“올해의 교사(National Teacher of the Year)”로 선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말하기를“열심은 전염됩니다. 학생들은 나에게 역사만을 배우지 않고 사회를 위한 열심 또한 배웠습니다. 많은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볼 때 나는 다소나마 하나님과 미국에 빚을 갚고 있다는 위로를 받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바울 사도는“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사업가가 아니었습니다. 부양해야할 가족이 있는 사람도 아닌 독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무슨 빚이 그렇게 많았을까요?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는 빚은 일반적인 물질의 빚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두도 느끼고 깨닫고 본받아야할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볼 때 바울사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빚을 지고 있습니다. 혹 어떤 분은“그래 우리 집에도 빚이 많아, 어서 갚아야 할 텐데 걱정이야!”라고 하실 분이 있을 테고, 어떤 분은“무슨 소리야? 우리 집에는 빚 없어, 도리어 이자로 수입을 올리고 있는데, 빚이라니!”라고 하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빚이 아니라 테리 도저(Terry Dozier)라는 사람처럼 우리는 모두 영혼의 빚,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어떠한 빚일까요?

1. 우리는 모두 사랑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내려주신 사랑의 양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대자연을 값없이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밝은 햇빛, 맑은 물, 맑은 공기, 밟는 땅을 값없이 주셨습니다. 더욱 큰 사랑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프레데릭 레에만 목사는 이렇게 시를 쓰고 곡을 붙였습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하나님 크신 사랑은 측량 다 못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찬양하세

레에만 목사는 아주 가난한 시골 교회만 전전했기 때문에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레에만 목사가 치즈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때 그의 부인이 점심 도시락 안에 “바다가 먹물이고 하늘이 두루마리인들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적으랴.”라고 적혀 있는 시 한 구절을 넣어주었습니다. 이 시를 읽고 감동을 받아 쓴 찬송이 우리들이 많이 부르는 404장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 사랑을 받아 누리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크나큰 빚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빚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빚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하나님께 나의 사랑을 드리면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요한복음 14:15에“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경의 계명을 정성껏 지키면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 됩니다. 사랑의 특성은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를 다 들어주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요구사항이신 계명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만일 우리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다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빚은 더욱 늘어만 갈 것입니다.

둘째, 요한복음 21:15에는“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내 양을 먹이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해 최선을 다해 감당할 때 이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 됩니다. 교회의 장로, 권사, 안수 집사는 교회의 기둥으로 신앙생활에 있어서 충성된 모습으로 성도들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집사는 변함없는 신앙과 봉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사는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진리의 말씀을 입술과 삶을 통해 가르쳐야 합니다. 입술의 교육만으로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가대는 영감이 넘치는 찬양으로 하나님의 성호를 높이며 성도들에게 감동을 끼쳐야 합니다. 구역장은 부지런히 구역원들의 신앙을 돌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크신 사랑의 빚을 갚는 것이 됩니다.

어떤 청년이 백화점 왕 존 와나메이커에게 찾아와 일거리를 하나 달라고 청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마땅한 일거리가 없다고 처음엔 거절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청년은 무엇이든 좋으니까 좀 시켜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와나메이커는 할 수 없이“정 일을 하려면 이 유리를 닦으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유리창을 닦기로 일을 시작했는데, 얼마나 정성스럽고 충성스럽게 일을 했던지, 유리 닦는 청소부에서 시작한 이 청년이 나중에는 그 백화점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충성된 사람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 2:10)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그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할 때 우리에게는 축복이 넘쳐날 것입니다.

셋째, 사랑의 빚을 갚는 길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의 말씀에“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셨습니다. 사랑하되 사랑할 가치가 없는 사람,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 저주할 수밖에 없는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사랑의 빚을 갚는 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나 자격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폭넓은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각오나 다짐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내 마음을 주관하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랑의 빚을 잘 갚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랑과 은혜와 복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는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는 본문의 내용입니다. 바울사도는 복음에 대하여 말하기를“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로마서 1:14-15)고 했습니다. 복음이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입니까? 복음을 가장 간결하게 설명한 성경말씀은 요한복음 3:16의 말씀인“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들, 영원한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아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하나님이 계시는 본향 하늘나라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힙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 고귀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바울사도는“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에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바울사도는 이 빚을 갚기 위해 복음증거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지중해 연안을 세 차례나 순회하면서 모진 핍박을 감내하며 복음을 전했고, 곳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바울사도 자신이 복음으로 인해 겪은 고난을 기록하기를“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린도전서 11:23-28)고 했습니다.
이러한 극한 고난을 받으면서 바울은 또 말하기를“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18)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한 바울사도는 로마에서 네로에 의해 단두대에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바울사도만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도요한을 제외한 모두가 순교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안디옥 교회 감독인 익나티우스는 트라얀 황제 때 짐승의 이빨에 순교했습니다. 그는 로마로 잡혀가면서 소아시아 여러 교회와 서머나 교회 감독이요 동역자인 친구 폴리갑에게 보내는 편지에서“그대들은 나를 위하여 타협하지 말라. 내가 놓이기를 바라지 말라. 나는 밀알이 되고 짐승의 이빨에 가루가 되어 하나님의 깨끗한 빵이 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형벌 당하기를 원하노라. 그리스도를 소유할 수 있다면 십자가 위에서 짐승의 이빨에 뼈가 가루가 되어 손과 발이 잘리더라도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겠노라. 나에게는 오직 그리스도가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생명의 복음은 온 세계에 퍼져나갔으며, 암흑의 땅 대한민국에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누구의 방해도 없이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드릴 수 있기 까지는 어두움의 권세들의 모진 핍박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피를 흘려야 헸습니다. 그 증거가 한강변 절두산 공원에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기독교 역사는 땀과 눈물과 피의 역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생명의 구원이 이룩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복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사랑의 빚을 갚고자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러나 어두움의 권세인 사탄은 모진 핍박으로 방해했습니다. 로마 황재의 명령으로 권력을 동원한 기독교 박해는 10대에 걸쳐 약 2백년간 계속되었습니다. 셀 수 없는 성도들이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까지 신앙을 지킨 까닭이 무엇입니까?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로마 근교 카타콤이라는 지하 동굴에서 두더지처럼 살아가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다가 그곳에서 죽어 장사지낸바 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삶은 잠깐이요, 예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과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앞서 살아간 성도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에 의한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평화와 자유를 누리게 된 데에는 수많은 우방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피를 뿌린 결과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부가 부산까지 밀려갔을 때,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고자 우리나라를 도왔던 미국의 젊은이들이 38,000여명이나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그때 의복 담요, 밀가루, 옥수수 가루, 분유 등 구호물자를 보내주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에는 이미 고인이 되었을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60연대까지 우리나라의 정부예산 80%를 미국이 원조해 주었습니다.

지금우리 사회는 누구나 마음껏 배울 수 있습니다. 교육열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세계무대의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복음의 빚 진자들이 이 복음의 빚을 갚으려는 일념으로, 캄캄한 암흑의 땅 대한민국에 복음을 들고 왔기 때문입니다. 누구 한 사람 반겨주는 이 없는 이방 땅에 복음의 빚을 갚고자 찾아왔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우리나라의 최초의 학교인 배제학교를 세운 아펜젤러 선교사, 연세대학교를 설립자 언더우드 선교사, 이화여대를 설립한 스크랜톤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음으로 양으로 이분들의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후손들이 계속 이 사랑의 빚, 복음의 빚 안에서 배우며 자라가고 있습니다.

어제 한 신문에는 감명을 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120년 전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호레이스 그랜트 언더우드 가의 4대손인 원한광(호레이스 H 언더우드)연세대학교 명예교수의 마지막 강연이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있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한국에 네 가지 선물을 전해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기독교, 근대식 의료기관, 교육시설, 경제적 도움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4대에 걸쳐 복음의 빚을 갚고 이제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이처럼 복음의 빚 진자들입니다. 빚은 갚아야 합니다. 내가 입지 못해도, 쓸 것 쓰지 못해도, 빚은 갚아야 합니다. 갚지 않으면 신용불량자가 됩니다. 복음의 빚도 마찬가지입니다. 갚아야 합니다. 이 빚 갚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신용불량자란 판정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복음전도로부터 시작됩니다.

로마서 10:13-15의 말씀에“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하셨습니다. 복음증거는 생명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하시기를“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디모데후서 4:1-2)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의 빚을 갚으려고 애쓰고 힘쓰는 사람을 사랑하시며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십니다. 중국에 전도를 열심히 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부자였는데 별명이‘송전도’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도를 많이 하고 예수를 잘 믿던 사람이 젊은 나이에 그만 3남매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저렇게 예수를 잘 믿고 전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 왜 빨리 죽을까?”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의 자녀 3남매가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맏딸 송경량은 중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손문의 아내가 되었고, 그의 아들 송자문은 경제학자로서 중국의 경제 장관이 되었고, 막내딸인 송미령은 장개석 총통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송전도의 3남매가 한때 중국 전 영토를 다 통치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현세와 내세에 큰 복과 상급을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토록 무덥던 여름도 다 지나고 어느덧 결실의 계절 가을이 되었습니다. 열매를 맺힌 들판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에는 기쁨이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은 교회나 개인의 모습을 바라보시고 한없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반면 쭉정이만 가득한 들판이라면 하나님의 실망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열매 맺는 나무를 향해 말씀하시기를“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한복음 15:8,7)하셨습니다.

복음증거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입니다. 복음증거는 이웃 영혼을 살리는 가장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복음증거는 내 영혼과 내 가정과 후손이 하나님의 복을 받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들이 1월부터 작정하고 기도하며 준비한“더불어 한길 축제(즉 새 생명 축제, 대각성 집회)”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며, 기뻐하실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을 일입니다. 이 역사에 기꺼이 동참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빚, 복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복음의 빚을 갚고자 다짐하는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복주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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