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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과 우리는 한 팀입니다. (마 12: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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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만 목사

전 주일에 우리는 다사랑교회와 운동을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우리가 같은 팀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같은 팀이었기에 우리 여자성도님과 어린이들이 목청껏 소리 높여 응원하였습니다. 같은 팀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격려하면서 함께 열심히 게임에 임하였습니다. 같은 팀이란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편이 아니면 반대편입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다른 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모은 것은 흩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중간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다 예수님 편입니다.
어린이들은 놀이를 할 때 누구 편이 되느냐 매우 민감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땐~찌를 할 때 긴장합니다. ‘나는 이 오빠하고 같은 편하고 싶은데…, 나는 이 누나와 함께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 원하는 사람과 같은 편이 되면 마치 이기기나 한 듯이 신이 납니다.

우리는 땐~지를 아주 잘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편을 아주 잘 먹은 사람들입니다. 아니 우리가 땐~지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손을 붙들어 주셔서 예수님과 같은 편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같은 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포도나무의 가지라는 것은 같은 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같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팀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한 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있는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떠난 우리는 살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 없이는 못 살아, 당신 없이는 못 살아”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예수님이 없으면 우리는 못 사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없이 살 수 있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습니다. 그리고 반대하며 예수님이 모은 것은 흩어 버립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반대자요 훼방자입니다. 또한 이들은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용서를 받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훼방은 하나님 혹은 인간을 적대시하는 불순한 언어를 말합니다. 즉 명예 훼손, 푸념, 욕설 등의 보편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들은 진정으로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회심 이전에 자신에 모습에 대해서 “나는 훼방자이였습니다. 포행자이였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죄를 용서 받았고 그 후에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죄는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죄든지 하나님께 나와 진정으로 회개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용서 받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용서 받지 못하는 죄가 무엇입니까?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입니다. 성령님을 훼방하는 것은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는 이 세상에서도 용서를 못 받고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를 못 받습니다. 여러분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가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가 무엇입니까?
성령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이루어 놓으신 구속사역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용시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계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이루어 놓으신 구속 사역을 한 사람 한 사라에게 적용시키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지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를 훼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지 않은 사람은 성령님의 역사를 훼방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모으는 자를 헤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타인을 예수 믿지 못하도록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것이 바로 성령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화를 내시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예수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에 반대적 입장이기에 성령님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사람의 죄는 용서 받지 못할 죄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를 주라 시인하였기에 우리는 용서받지 못하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모으기를 힘쓰는 사람들이기에 성령님을 훼방하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의 고백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입술로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

여러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냐?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입술로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였다면 성령님이 역사하신 것이고 나는 구원받은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들은 입술로 예수님을 거절합니다. 말로 성령님을 거역합니다. 그 사람은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오는 세상 가운데서도 죄를 용서함을 받지 못합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분이 계십니까? 혹시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지 못한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우리의 입술로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저를 따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님 나는 당신을 믿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사흘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에 오셔서 나를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완전한 예수님 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과 같은 팀입니다. 여러분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살아도 예수님을 살고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는 예수님의 팀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팀원이 되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  생활이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팀원이 되어서 주님과 함께 걸어가시고 계신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과 같은 편으로서 좋은 열매들을 맺고 있습니까? 나무는 좋은데 실과가 좋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가 나쁘면 실과도 좋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는 좋은데 나쁜 실과를 맺는다면 비정상적인 나무가 아니겠습니까? 돌연변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말합니다. “예수님은 좋은데 예수 믿는 사람은 싫다”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은 우리가 반성해야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우리는 받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우리가 예수를 주라 시인하게 하시는 것뿐 아니라 오늘도 우리에게 역사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살도록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예수님 팀의 코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스포츠에서 코치 말을 잘 들으면 바른 폼을 배울 수 있습니다. 코치 말을 잘 들으면 빨리 배울 수 있고 좋은 팀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인나인을 타도 좋은 코치에게 배운 사람은 좀 다릅니다. 테니스도 레슨을 받으면 폼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은 그냥 치기 때문에 폼이 아주 엉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님께 민감해야 합니다. 베니 힌 목사님은 성령님께 민감하였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서 “성령님 안녕하셔요?”라고 인사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성령님 안녕하세요?”라는 책을 섰습니다. 순간 순간 살면서 성령님이 근심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께 민감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세상의 악한 것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여기 컵에 물을 꽉 부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컵에 물이 꽉 차이지 못하면 공기라든가 다른 것이 담길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성령의 충만하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의 팀으로서의 삶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미국에 한 알콜 중독자가 재활을 위해서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잘 치료를 받아서 이제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을 딱 나서는데 그의 시야에 술집들이 쫙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고친 병인데…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지만 자꾸 자꾸 술집으로 몸이 걸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술집 옆에 밀크 뷔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유를 아주 가득 먹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랬더니 술 생각이 났을까요?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세상의 생각들이 우리를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좋은 팀원이 될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예수님 팀이 언제나 승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팀이 되신 것을 감사합시다. 우리가 한 팀인 것을 감사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온전히 그 예수님과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을 훼방하는 자가 아니라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께 민감하며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성령님은 우리의 훌륭한 코치이십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우리는 막강한 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 팀의 막강한 멤버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꿈을 갖고 오늘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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