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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7가지 길 (시 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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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한규 목사

< 개척의 기쁨을 취하십시오 >

여호수아 17장에는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넓고 좋은 땅을 분배받은 요셉 자손들이 오히려 땅을 적게 준다고 불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같은 요셉 지파였던 최고 권력자 여호수아가 얼마나 난처했겠습니까? 그때 자기 지파의 요구대로 들어주면 12지파의 마음은 나누어지고 지파감정과 지역감정이 생기게 됩니다.

왜 지역감정이 생깁니까?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은 발전시키고 기타 지역은 낙후시키면 지역감정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에서는 그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지역발전을 희생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에게 “포장된 좋은 땅을 얻기보다는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지침입니까? 주어진 것이 적다면 더 달라고 바라지만 말고 스스로 앞길을 개척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내게 적게 주신 이유는 내가 능력이 있어서 스스로 앞길을 개척할 수 있기 때문에 적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게 주었다고 불평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땀을 흘리고 스스로 앞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어떤 자녀는 결혼할 때 부모에게 “왜 더 안 주느냐?”고 울고불고 합니다. 정말 은혜를 모르는 자식입니다. 사실 그때까지 키워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기에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은 노후를 준비해야 되지만 자녀는 앞날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더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오래도록 부모님께 앙심을 품는 자식은 하나님께서 결코 축복해주시지 않을 불효자식입니다.

저는 결혼할 때 부모님의 노후를 생각해서 부모님께 아무 것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 돈이 있으면 부모님이 마음껏 쓰시라고 생각했습니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교회생활을 하면서 제일 큰 기쁨이 헌금하는 기쁨입니다. 그렇게 헌금하면서 “나도 이렇게 도울 일이 있다. 나도 아직 힘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기쁨과 보람을 느끼시는데, 결혼한다고 그 기쁨을 다 뺏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결혼을 간소하게 하면 돈이 들 일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결혼하면 예식장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주례 목사님에게 양복 한 벌 해드리고, 7만 5천 원짜리 금반지 하나 해주고, 27만원 들여서 신혼여행 갔다 오고, 집이야 월세로 시작하면 됩니다. 건강한 젊은이가 월세도 못 벌겠습니까? 지금 생각하면 결혼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1원도 도움을 받지 않은 것이 백 번, 천 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새 교회 세습으로 말이 많습니다. 교회 개척이 힘든 때에 아버지 목사로서 아들 목사에게 좋은 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그래도 냉정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개인의 사유재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회부흥에는 담임목사의 역할도 크지만 좋은 성도의 도움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수많은 성도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재산입니다.

그런데 개인 재산처럼 생각해서 냉정을 잃고 아들 목사에게 물려주려고 하면 아들 목사라도 냉정을 찾고 말해야 합니다. “아버님! 제가 스스로 개척하겠습니다. 요새 얼마나 그 문제로 시끄럽습니까? 저는 아버님의 일생 목회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님의 저를 위한 마음만은 감사함으로 받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가 알아서 저의 앞날을 열어가겠습니다.”

그런데 둘 다 냉정을 잃어버리고 오히려 세습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작전을 짜고, 술수를 부리면 그런 삶에 무슨 행복과 보람과 축복이 있겠습니까? 사람은 중년에 성공하는 것만큼 노년에 안 망가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 섬겨줄수록 행복해집니다 >

젊어서 크게 시작하면 행복을 느끼는 용량도 커집니다. 그래서 웬만한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행복은 점차 멀어집니다. 반대로 작게 시작하면 행복을 느끼는 용량도 작아집니다. 그래서 작게 가져도 만족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은 훨씬 가까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적게 주셨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충분히 개척해서 잘 살 수 있기에 적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게 주신 것도 감사하면서 현재의 축복보다는 내일의 축복을 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 땀을 흘리면 행복은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살면서 실망과 침체를 예방하려면 ‘땀과 희생이 없는 바라는 인생’으로 살지 말고 ‘땀과 희생이 있는 섬기는 인생’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에도 바라기만 하면 수시로 실망하고 시험에 들고 영적 침체에 빠지지만, 섬기려고 하면 실망도 없고 시험도 없고 영적 웬만하면 영적 침체도 없습니다.

우리는 ‘바람의 철학’으로 살지 말고 ‘섬김의 철학’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부관계에서도 우리의 할 일은 배우자에게 바라는 일이 아니라 섬기는 일입니다. 부자관계에서도 우리가 부모님에게 할 일은 바라는 일이 아니라 섬기는 일이고, 자녀들에게 할 일도 바라는 일이 아니라 섬기는 일이고, 이웃관계에서도 우리의 할 일은 바라는 일이 아니라 섬기는 일입니다. 삶을 철학을 바라는 데에 두면 상처만 커집니다. 그러나 삶의 철학을 섬기는 데에 두면 영혼이 풍성하게 됩니다.

< 침체를 극복하는 7가지 길 >

왜 사람들이 영적 침체에 빠지게 됩니까? 섬기는 의지보다는 바라는 본능 때문입니다. 그 본능이 있는 한 누구나 영적 침체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런 영적 침체의 순간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7가지 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해야 합니다.

본문 1절과 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이 세상에 사랑할 대상이 있는 것처럼 행복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편 기록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간절히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결코 영혼의 어둠이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날, 한때 열심히 신앙생활 하던 한 아빠에게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 하나님이 죽었어요?” 아빠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니?” 그러자 딸아이가 말했습니다. “요즈음은 아빠가 하나님과 한번도 얘기를 안 하시잖아요?” 그 말을 듣고 아빠가 마음이 찔려서 다시 기도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난날 하나님을 열심히 찾던 때가 생각나십니까? 그때의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도 문제 해결과 축복을 원하기 전에 하나님 그분을 가장 먼저 원해야 합니다. 그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을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길 때 하나님은 반드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주실 것이고 우리의 모든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2. 교회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이 시편 기록자는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이 시편 기록자가 어떤 사정으로 성전과 멀리 떨어져서 성전을 그리워하는 상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이 구절을 보면 그는 성전에서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고, 성전에서 열심히 봉사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했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성전에서 기쁨으로 봉사하다가 성전에 갈 수 없게 되니까 그가 가장 그리워했던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즐거운 성전생활이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의 최고의 즐거움은 교회생활을 열심히 할 때 주어집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는 잘 몰라도 그 생활을 떠나보면 “그때가 제일 즐거웠구나!” 하고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게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즐겁게 교회생활을 해도 어려움은 생깁니다. 그러면 본문 3절 말씀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갔나?” 하고 우리의 교회생활을 조롱합니다. 그런 조롱이 있고, 다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교회를 사모하고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나의 영혼의 가정으로 생각하고 최고의 사랑과 헌신을 가지고 즐겁게 교회생활을 할 때 우리의 고독과 허무와 침체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3. 자기를 끊임없이 격려해야 합니다.

본문 5절 말씀을 보면 이 시편 기록자는 “내 영혼아!”하고 자기 영혼을 향해 스스로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처럼 침체할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를 격려해야 합니다. “내가 이렇게 침체할 필요가 없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어서자!”

우리가 건강한 영혼이 되려면 무엇보다 자기와의 대화(Self Talk)를 잘해야 합니다. 자기와의 대화를 부정적으로 하면 부정적이고 불행한 인생이 되고, 자기와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하면 긍정적인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자기와의 대화에서 성공하면 인생도 성공하게 되고, 자기와의 대화에서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하게 됩니다.

지금도 사단은 끊임없이 기회만 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나쁜 말을 퍼뜨려 우리의 영혼을 침체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끊임없이 자신을 격려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격려하지 않으면 성공의 기회는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특별히 어려울 때마다 우리가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할 세 가지 말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이 땅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났잖아?”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무리 불행하게 산다고 해도 온통 얻은 것뿐입니다.

둘째,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이 많아!”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위축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현재 받은 것이 최상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축복과 감사거리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셋째, “모든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 하나도 하나님의 손길을 피해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우리 하나님을 신뢰하고 내일에 대한 기대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끊임없이 격려하며 살면 어려움은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고, 성숙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4.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본문 5절과 11절에서 이 시편 기록자는 자기를 격려하면서 어떻게 격려합니까? “네가 왜 낙망하고 불안해하는가? 하나님을 바라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을 쳐다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말은 영어로 “Put your hope in God!”라는 말로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왜 낙심합니까? 대개 환경을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유난히 ‘나’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처럼 자기의 형편과 주제와 꼬라지에 몰입하고 자기 죄를 바라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느새 희망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분은 희망을 영혼의 비타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모세는 80년의 준비기간을 가졌고, 예수님도 30년의 준비기간을 가지셨다가 3년간 사역을 하셨습니다. 현재 큰 성취를 이루지 못했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모습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다만 준비기간이 조금 긴 것일 뿐입니다. 이 준비기간이 끝나면 찬란한 미래가 펼쳐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한 방향이 막히면 다른 방향이 열리는 증거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습니까? 그 길이 더 좋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항상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5. 어려운 중에 찬송해야 합니다.

본문 5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사실 찬송은 기쁠 때보다 어려울 때 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무서운 불안, 염려, 근심, 걱정, 낙심, 절망도 감사하고 찬송하는 모습을 보면 다 도망갑니다. 결국 감사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이고, 찬송의 횟수가 축복의 횟수입니다. 사람은 감사하고 찬송하는 만큼 행복한 영혼이 됩니다.

가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가정이 파탄이 나고, 불치병에 걸리고, 직장과 일터가 없고, 아이는 성적이 밑바닥이면 감사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런 기가 막힌 상황도 감사와 찬송으로 승화시키면 하나님께서는 크게 감동하시고 미래의 역전 인생을 반드시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6. 주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 이 구절에서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은 이 시편 기록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생생하게 체험했던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곳에서 은혜 받던 때를 기억하며 그는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사람에게는 나쁜 기억도 있고, 좋은 기억도 있습니다. 나쁜 기억은 우리를 침체에 빠지게 하지만 좋은 기억은 우리에게 희망을 줍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일은 하나님의 은혜 받던 때를 회상하는 일입니다. 그 은혜 받던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힘이 나는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무수한 고난과 상처를 받았지만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사도 바울에게 그런 힘과 용기와 끈기를 주었을까요? 저는 두 가지 체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다메섹 도상의 주님을 만난 체험이고, 또 하나는 삼층천에 올라간 체험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은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올라간 체험을 기록했습니다. 그 체험은 사람의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체험이었는데, 그 체험을 말하면 자랑으로 들릴 것 같고 사람들이 지나치게 받아들일 것 같아서 그 체험을 14년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체험이 있었기에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용기를 가지고 일어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좋은 기억이 사람을 일으키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금년 5월 초, 저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꿈을 꿨습니다.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는 체험을 할 때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저도 제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생생했고, 마치 현실 같았습니다. 너무 엄청난 장면이라서 그 얘기는 도저히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 내용을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을 말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약간 맛이 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마 영원히 그 말을 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때의 그 체험이 저에게 얼마나 큰 용기와 희망을 주는지 모릅니다. 때로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그렇게 넉넉해집니다.

사람에게 좋은 기억과 체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환경에 힘들어도 은혜가 크면 얼마든지 그 환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은혜를 추구해서 은혜 받은 좋은 기억을 많이 남겨야 합니다.

7.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십시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이 시편 기록자는 자기를 격려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다가 결국 하나님께 기도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좌절하고, 은혜를 체험하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자주 용기를 잃습니까? 그 가장 큰 이유는 기도를 너무 적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순전히 우리의 기도 부족 때문입니다.

불행한 영혼은 비판을 좋아하지만 행복한 영혼은 기도를 좋아합니다. 남을 비판할 만한 충분한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스스로를 돌아보고 우리의 삶 속에 기도가 얼마나 메말라 있었는가를 생각한다면 너무 수치스러워서 비판하는 말은 우리의 입술에서 연기처럼 사라질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진통입니다. 그 진통이 없이 진정한 하나님의 축복을 해산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기도할 때만큼 우리가 축복받을 때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루에 다만 10분이라도 꾸준히 기도해도 우리의 삶은 엄청나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의 축복을 경험하면서 점차 기도 시간을 늘려 가면 우리의 믿음은 산을 움직이는 믿음이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가끔 밤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왜 기도하셨습니까? 전능하신 예수님도 기도가 필요했기에 기도하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향하여 손짓하시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사실 영적 침체는 “이제 기도하라! 더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그 음성을 듣고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의 그림자는 사라지고 영적 키는 부쩍 자라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7가지의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방법을 들었습니다. 이 방법을 생활화하여 항상 은혜 가운데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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