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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비무환의 신앙 (벧전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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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요셉 목사

[1] 만물의 마지막
   
영원한 하루는 없습니다. 하루가 시작되면 또 그 하루는 반드시 끝납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모든 생물도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라는 말씀은 개체적이고 개인적인 종말뿐만 아니라 우주적인 종말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온 세상의 피조물이 동시에 끝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는 그 날이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 만물은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그 날에 만물이 끝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오염되고 더러워진 쓰레기를 완전히 치워버릴 우주적인 대청소를 계획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4장 29절에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곧 심판주이신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해도 죽고 달도 죽고 별들도 죽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오염된 세상, 더럽혀지고 병든 이 하늘과 이 땅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쓰레기 인간에 불과한 불신자와 악령들은 심판하셔서 지옥 불에 던져 넣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지옥에 갑니다. 가기 싫어도 가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병든 이 땅에 살게 하실 수가 없으셔서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신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2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보이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하십니다.
벌써 2000년 전에, 사도 요한에게는 영적으로 환상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이 찬란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것도 보였는데,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신부가 신랑을 위해 단장한 것 같은 아름다운 세계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곳은 바로 여러분과 제가 들어갈 세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이 가까워 온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베드로 때보다 지금은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십니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베드로후서 3장 10절에도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날을 알 수는 없지만, 현재의 모든 징조를 보면, 매우 가까워진 것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12장 4절에, 말세에 사람들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누빌 줄을 그 때에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지금은 초음속 비행기와 초고속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 고속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좋은 것도 많이 얻을 수 있지만, 악하고 사악한 것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급속히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영혼을 혼미케 하고 영혼을 오염시키는 홍수 속에 우리는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옛날에 다니엘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것을 벌써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빨리 왕래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지식이 더하여져서 달나라를 정복할 것도 알았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에서 5절을 보면, 성령님께서 바울에게도 말세를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 말씀 하나 하나에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의 삶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혹 주님의 재림이 조금 늦어진다 해도, 만물의 종말이 늦어진다 해도, 개인의 종말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유비무환의 신앙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종말이 내일일지 모레일지 우리는 모릅니다. 주님께서 오셔도 주님 앞에 서게 되고, 내가 죽어도 주님 앞에 서게 되는데, 그 날 부끄러움 없이 주님 품에 안겨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열 처녀 중에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해서 신랑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실 날을 준비하며 사는 자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도 복이고 오신 후에도 복이지만, 준비하지 않고 사는 자는 주님께서 오시는 날이 심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신랑되시는 주님께서 언제 오셔도, 종말이 언제 와도 기쁨으로 주님 품에 뛰어들어가 안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유비무환의 신앙자세로 살아야 하는지를 본문을 통해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2] 유비무환의 신앙자세

1. 정신을 차리고 살아라

따라합시다. "정신을 차리고 살아라."  이 말씀을 헬라어로 표현하면 '술 취한 상태로 살지 말고 술이 깬 맑은 정신으로 살아라.'입니다.
항상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맑은 영을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30장 15절에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우리 앞에는 언제나 두 길이 열려 있다."
우리는 매일 매시 항상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은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사람을 기쁘게 하랴 "는 선택기준을 가지고 항상 우리 모두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 '정신을 차리라.'는 말씀에는 흐릿한 정신으로 살지 말고 또렷또렷한 정신으로 살라는 뜻이 있습니다.

흐릿한 것은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야 살수가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신앙 생활도 흐릿해지고 예배생활도 흐릿해 질 수가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믿음 생활을 합시다. 우리가 남은 인생 길을 맑은 정신으로 반듯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 주님께서 오실 때 얼마나 떳떳하겠습니까? 그러나 술 취한 정신으로 흐릿하게 나아가면 난처할 것입니다.

2. 근신하여 기도하라

또 마지막 때를 기쁨으로 떳떳하게 맞이하려면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합시다. "근신하여 기도하라."
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생명줄입니다. 기도가 끊어지면 믿음이 끊어지게 됩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숨을 쉬지 않아서입니다. 호흡을 하면 사는데, 호흡을 하지 않으니 죽는 것입니다. 호흡이 끊어진 것, 그것은 죽은 것입니다.
기도하기가 싫은 사람은 죽어가는 사람입니다. 혹 새벽기도 하기가 싫고 기도하기가 싫거든 '아, 나는 죽어가는구나.'라고 깨닫고,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살리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막 끓어오르는 사람은 생명이 풍성한 사람이고, 기도가 부담되는 사람은 사는 것이 부담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예뻐하셔서 가까이 하십니다.
신명기 4장 7절에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뻐하시는 모습,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인 기도하는 모습을 지니고 살면 얼마나 좋습니까?
또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에게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시드니 순복음 교회의 한 장로님은 항상 기도하실 때, "하나님, 하늘 문을 활짝 열어 제끼시고 은혜를 주세요…."라고 기도를 하셔서 제가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정말 하늘 문을 열어 젖히시고 은혜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 황막하고 힘들어도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하늘의 샘이 터지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생수를 주시기 때문에 기도의 사람이 있는 현장은 늘 생수의 강이 흐르면 그 현장이 기름지고 옥토 밭이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 생수에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죽어도 죽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가물어 잎이 떨어져도 가물지 않고 잎이 청청하고, 다른 사람들은 열매를 맺지 못할 때도 열매를 맺으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1867년도에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았습니다. 국방에 도움도 되지 않고, 지키기도 힘든 쓸모 없는 얼음 덩어리에 불과한 땅이라며 720만 불, 100억 원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그 땅을 산 후에 조사를 해 보니, 세상에! 그 안에 가스, 기름, 엄청난 금은 보배와 지하자원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사방팔방으로 길을 내어 지하자원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그 땅만 팔지 않았어도 저렇게 어렵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720만 불에 알래스카를 판 러시아가 지금도 가슴을 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가슴을 치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권세를 잠재우고 사장시키는 자는 알래스카를 판 러시아보다 더 어리석습니다. 있는 권세도 사용하지 않고 쓸모 없이 여기다가는 크게 가슴을 치는 때가 오고야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 할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유업자로서 하늘의 영권과 땅의 물권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기도로 이 권세를 활용하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 능력을 받습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일이 안 되어

지난 6월 청주 집회 때에 한 목사님께 들은 간증입니다
10년 전에 개척교회를 시작했답니다. 6개월이 지나도 새벽기도에 나오는 사람은 사모님 한 사람뿐이었답니다. 그러니 설교하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루는 사모님이 몸살이 났답니다.  "여보, 오늘은 도저히 못 가겠어요. 혼자 가세요."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 설교를 하지,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설교를 하겠습니까? 무거운 마음으로 목사님 혼자 교회에 들어서는데, 마음에 감동이 왔습니다.
'돈도 없는데 전기세라도 아끼라.'
그래서 불도 켜지 않고 엎드려 기도하는데, 말씀을 준비해 놓은 것이 있으니 그 말씀이 막 나왔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하면서 한참 기도하는데, '쾅' 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란 목사님이 불을 켰습니다.
잔뜩 취한 한 술꾼이 교회가 자기 집인 줄 알고 겉옷을 다 벗고 속옷만 입고 잠을 자다가 술 취하지 말라는 소리에 놀라 그만 의자에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술꾼이 자신을 살펴보니, 옷을 다 벗어 놓고 교회에서 잠을 잤지, 게다가 소변까지 봐서 교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 들켰으니 큰일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그 사람이 "아이고, 용서해 주세요. 용서만 해 주시면 …."하며 막 빌었습니다.
"교회만 나오면 용서해 주겠습니다."
"예, 나오지요. 교회에 나오지요."  "그러면 주민등록증을 주시오."
그런 술꾼이라도 가정에서는 세력이 대단했던지, 다음 주일에 가족을 데리고 교회에 왔습니다. 목사님은 그 가정이 혹시라도 떨어져 나갈까 봐 새벽기도를 마친 후에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 집에 가서 대문 앞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이 가정을 축복하시고 구원해 주세요. 이 가족들이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  그 부르짖은 기도로 결국 그분이 장로님이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어려워도 기도하는 곳에는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큰 일만 위해서 기도하지 마시고 작은 일도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시간에 하나님께서는 지혜도 주십니다.
이 어려운 때에도 기도하면 미래가 열리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미래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열심히 사랑하라

그리고 마지막 때에는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앞의 성도의 자세는 기도하는 것이고, 사람 앞의 자세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에 가족, 친구, 교우, 이웃을 붙여 주신 것은 미워하라고 붙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라고 붙여 주셨습니다. 마귀 짓 하는 사람, 가룟 유다 같은 사람이야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영혼은 사랑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순간적으로 상황에 실수한 사람은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그 실수를 덮어 주셨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오늘 본문에 말씀하십니다.
잠언 10장 12절에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면 모든 사람이 밉게 보이지 않고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입니다.

  제 여동생이 얼마나 까다롭고 깔끔했는지, 우리 집 애들이 자라날 때  그 애들이 오줌이라도 싸면 냄새가 난다고, 더럽다고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아이를 둘 낳고 나더니 얼마나 변했는지 제가 놀랐습니다.
저의 아버지 생신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와 제가 이야기를 하고 앉아 있었는데, 동생의 남편이 자기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이리 와 보세요." " 왜 그러세요?"
" 얘가 놀았던 자리에 뭐가 있는데, 물인지 오줌인지 모르겠네. 어서 와 보세요."
"맛을 보세요. 맛을 보면 물인지 오줌인지 알지요."
세상에! 남의 아이 오줌이나 자기 아이 오줌이나 오줌은 다 같습니다. 그런데 자기 아들의 오줌이라고 그 맛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차이입니다.
셰익스피어가 말했습니다. "사랑은 장님이 되는 것이다."
미움은 현미경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나는 현미경으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현미경으로 보면 물도 마실 수 없습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음식도 먹지 못합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얼마나 더러운지 모릅니다. 벌레, 박테리아, 바이러스 …. 더러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러운 것이 있는 것을 모르니까 먹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미경으로 보면 사랑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가리워 줍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우리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차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예쁘고, 사람이 볼 때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4. 대접하기를 원망없이 하라

그리고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어려운 이웃을 정성껏 대접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대접을 잘 하다가 천사를 대접했습니다. 롯이 대접하기를 좋아하다가 천사를 대접해서 살았습니다. 대접하지 않았으면 죽었을 텐데, 천사를 대접하다가 소돔 고모라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5. 각각 은사대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

그 다음 말씀을 보세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
따라합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자."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청지기입니다.
내 시간, 내 힘, 내 돈, 내 실력으로 사는 사람은 청지기가 아닙니다. 한 마디 말을 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처럼 하고, 봉사를 하고 도움을 주어도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면, 나는 없어지고 나는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신앙 고백적 자세로 선한 관리자로서 살아야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보시고, '야! 쟤는 나를 위해 사는구나. 내 영광을 위해 사는구나.'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하나님께서 무엇을 아끼시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오실 때 얼마나 큰 상을 주시겠습니까?
그러나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자식이 부모님을 위해 살면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자식이 자기 자신만을 챙기면 그 부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여러분과 저는 마지막 남은 때를 주님을 위해 사는 청지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결 론

여러분과 저의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아직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시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덤으로 사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이 덤으로 사는 남은 때를 오늘 주신 말씀대로 정신을 차려서 맑은 정신으로 살고, 깨어서 기도하며 살고, 사랑하며 살아갑시다. 그리고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드립시다.  이렇게 유비무환의 신앙으로 사는 여러분에게 주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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