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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주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학 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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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상훈 목사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때는 다리오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오늘은 종교개혁 제 487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쯔빙글리가 한번은 스위스의 베른에 있는 어느 큰 성당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 성당의 안쪽 유리창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된 화려한 그림이 한 폭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이러한 내용이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방앗간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수로가 길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수로의 맨 꼭대기에서 하나님은 생명수를 쏟아 붓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사람들은 그 수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쏟아 부으시는 생명수를 마시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수로의 중간 부분에는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 좌우편에서 교황과 신부는 그 수도꼭지를 통해서 생명수의 흐름을 조절하고 있었습니다.
쯔빙글리는 그 그림을 보는 순간 그 내용이 비성경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그림을 본 따서 목판에 하나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의 다른 내용은 모두 같습니다. 단지 그는 수로의 중간에 있는 수도꼭지를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쏟아 부으시는 풍성한 생명수를 사람들이 땅에서 그대로 직접 받아 마시도록 그려 넣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쯔빙글리가 그린  그림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부르짖었던 취지는 간단합니다. 천주교에 의해서 변질된 비성경적인 요소들을 교회 안에서 제거하고 초대 교회 때의 순수한 신앙으로 되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개혁을 부르짖었던 사람들은 여러 명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종교개혁을 말할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인물은 마틴 루터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자신이 가르치던 비텐베르그 대학의 정문 게시판에 그 당시 천주교에 의해서 그릇 행해지고 있던 잘못된 점을 95개조로 조목조목 나누어서 항의하는 글을 게시했습니다. 그리고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종교개혁의 불길은 전 유럽에 거세게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로 태동된 것이 바로 우리 개신교입니다. 그래서 개신교는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 기념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는 천주교 신부들이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면서 오히려 그것 때문에 추잡한 행동을 하는 것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하기를 차라리 그럴 바에야 결혼을 해서 건전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을 수행해 가는 동안에 천주교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았습니다. 하루는 그가 너무 힘들어서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아내가 상복을 입고서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루터는 깜짝 놀라서 그의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여보, 누가 죽었소? 왜 상복으로 갈아입었소?"
그러자 그의 아내는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루터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되물었습니다.
"아니,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이 돌아가시다니 그 무슨 말이요?"
그러자 루터의 아내는 이렇게 반문을 했습니다.
"당신 말대로 하나님이 영원토록 살아 계신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는 당신이 어떻게 이토록 낙심에 빠져 있을 수 있답니까?"

마틴 루터는 그 말을 듣고서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지금도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신앙을 바로 잡고서 하나의 신앙고백적인 노래를 직접 작사하고 작곡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찬송가 384장입니다.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루터는 힘들 때마다 이 찬송을 힘차게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으로 담대하게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뜻깊은 종교개혁 주일을 맞이해서 오늘 본문 13절에 나오는 말씀을 제목으로 삼고,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잠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간단하게 세 대지로 나누어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14∼15절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입니다.

오늘 본문 12절 말씀입니다.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남은바 모든 백성이 그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청종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백성이 다 여호와를 경외하매."

선지자 학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리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했습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자연히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간에 우리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전도서를 기록하고 난 뒤에 전12:13에서 이 두 가지를 사람의 본분이라고 결론내렸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목소리"와 "선지자 학개의 말"을 나란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 학개가 선포하는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선지자 학개가 선포하는 말씀을 듣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수 있었고 또 하나님을 경외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 학개가 선포한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학개에게 천사의 입이라도 있어서 말씀을 청산유수와 같이 설득력 있게 잘 전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학개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의 내용이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듣기에 유익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습니다.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보내셨음을 인함이라."
하나님께서 학개를 선지자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지자 학개가 선포한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수 있었고,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복이 임하고 살길이 열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습니까? 왜 그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습니까?
역대기서 기자는 역대기의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대하36:16∼17의 말씀입니다.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들을 비웃고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고 인간의 말로 들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아 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서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 해 전에 경마장에서 승부를 조작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때 관련된 사람들이 모두 구속을 받았습니다. 힘껏 달리고 있는 말들을 어떻게 원하는 대로 통제해서 승부를 조작할 수 있었는지 의아심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해답은 간단했습니다. 예컨대 경주에서 흰색 말이 이기도록 계락을 짰다고 합시다. 그러면 한 주전부터 집중적으로 그 말만 보살피는 것입니다. 흰색 말에게 풍성한 사료를 줍니다. 그리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반대로 다른 말들은 사료를 적게 줍니다. 밤에 일부러 잠도 적게 재웁니다. 그러면 한 주 뒤에 있는 경주에서는 영락없이 그 흰색 말이 이기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이 롬7장에서 기록한 대로 우리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법과 육신의 법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 선포하는 말씀이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라.' 그러나 육신의 법은 다릅니다. '자기야 선지자니까, 자기야 목사니까 저런 설교를 하지. 어떻게 우리 삶의 형편도 모르고 저렇게 시대에 동떨어진 설교를 할까?' 그러면서 우리의 귀를 막아 버리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법이 육신의 법을 이기도록 만들 수가 있습니까? 방법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더 많은 사료를 주면 됩니다.
'그래 맞아.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 선포한 말씀이니까, 내가 듣기에 힘들고 지키기에 어렵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에 청종해서 절대적으로 순종해야지.' 그러면 살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5절과 7절에서 반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그러면서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체적으로 그들의 소위가 어떠했는지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들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방치해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각자가 자기들의 집에는 빨랐습니다. 자기들의  집을 짓고, 자기들의 집을 꾸미는 일에는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에게 한재가 임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한재라는 단어와 황무라는 단어는 같은 철자로 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그들도 한재를 당해 황무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가 선포한 말씀을 통해서 자기들의 소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심정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면서 스스로 겸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종교개혁이라고 할 때 개혁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자기의 소위가 잘못되었으면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바로 개혁입니다. 이 시간 우리의 소위를 살펴 보십시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들 자신은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은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서, 우리들은 각기 자기의 집에 빠르지 않습니까?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삶의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우리 중심의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돌이켜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도 마음가짐의 변화, 삶의 태도의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지자 학개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약속을 주셨습니까?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I am with you." 이는 곧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이러한 약속은 학개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듣기 좋도록 자기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해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가 여호와의 명을 의지하여 백성에게 고하여 가로되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우리는 사41:10의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삶의 모든 두려운 생각들을 극복해 낼 수가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못된 무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붙들어주시고 그들을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31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을 대적하며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 모든 못된 무리들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는 자들을 욕되게 하실 것입니다. 수치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이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은 참으로 큰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모든 일에 형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다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생각해 보십시다. 어머니가 집안 청소를 합니다. 그때 네 살 짜리 딸아이가 자기의 어머니를 거들겠다고 빗자루를 들고서 마루를 이리 저리 쓰는 시늉을 합니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면서 대견스러운 듯이 칭찬해 줍니다.
"야, 우리 딸이 청소를 참 잘하네. 집 안이 훤해졌네."
그러나 실제로는 누가 청소를 하는 것입니까? 어머니가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딸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무거운 의자를 옮기려고 합니다. 네 살 짜리 아들이 자기가 옮기겠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그 의자를 건네주었습니다. 아들은 놀랍게도 그 의자를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누가 그 의자를 드는 것입니까? 아들은 의자에 손만 대고 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힘을 주어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아들이 대견스러운 듯이 칭찬해 줍니다.
"야, 우리 아들 힘이 장사일세. 이 무거운 의자를 번쩍 들었구만!"
그러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힘들지 않고 쉽게 그 일을 해 낼 수 있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가 있습니다. 범사에 형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합시다. 하나님을 경외합시다. 그리할 때 임마누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삶의 모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범사에 형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임마누엘의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이스라엘 벡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입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의 마음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마음과 남은바 모든 백성의 마음을 흥분시키시매 그들이 와서 만군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의 전 역사를 하였으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흥분시키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뜨거운 마음이 되어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학1:8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물론 환경이 바뀌어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건이 좋아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능하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고서, 담대하게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대장정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15절 말씀입니다.

"때는 다리오왕 이년 유월 이십사일이었더라."

하나님께서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최초로 말씀을 주셨던 때가 언제였습니까? 학1:1의 말씀입니다.

"다리오왕 이년 유월 곧 그 달 초하루에."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학개 선지자가 말씀을 선포한 지 약 3주 정도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즉시 함께 일어나서 성전 건축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그 3주 동안도 그들은 성전 건축에 필요한 도구나 연장, 재료들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아울러 누구는 무슨 일을 하고, 누구는 무슨 일을 하는 등의 계획을 수립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을 한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월력으로 6월은 우리의 월력으로는 9월에 해당합니다. 추수를 앞두고 있을 때입니다. 육신적으로는 매우 바쁠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육신의 일에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곧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삶의 최우선을 두었습니다. 이렇듯 그들에게는 마음가짐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삶의 태도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개혁의 의미입니다.

생각을 해보십시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어 잘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까? 그들의 육신적 안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곧 하나님의 성전 건축의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1963년 미국의 Mary Kay Ash라는 여자가 자그마한 회사를 하나 설립했습니다. "여성의 삶을 풍요롭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서 자기의 이름을 따서 "메리 케이 코즈메틱스"라는 화장품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늘 세 가지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섬길 것, 둘째,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소중히 여길 것, 셋째, 하나님이 맡겨 주신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충실할 것이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내 100대 우수 기업 가운데 하나에 속합니다. 그의 회사에 있는 종업원의 수만도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엄청나게 큰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그는 몇해 전에 세상을 떴습니다만, 그는 남자로 따지면 과거의 존 록펠러나 오늘날의 빌게이츠에 해당될 만큼 훌륭한 CEO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한 번은 미국의 CBS방송국에서 진행하는 "60 Minutes," 곧 60분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사회자가 그에게 좀 짓궂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은 입만 열면 늘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심으로 성공했다고 말하면서 다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야심을 위해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너무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때 메리 케이 여사는 조용히 웃으면서도 단호하게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거꾸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하나님을 이용해서 내 목적을 달성하겠다고 생각 한 적이 없습니다. 그 반대로 언제나 하나님이 저를 이용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해 나가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께서 그를 기뻐하지 않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언제나 그와 함께 하시면서 그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게 성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이용해서 우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용하셔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기를 바라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해 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통해서 큰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이것을 사람의 말로 듣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읍시다. 오늘도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청종하고, 또 하나님을 경외하십시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믿고 우리 모두가 마음과 뜻을 같이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어 나갑시다.

성전 건축은 물질의 문제가 아닙니다. 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과 여건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흥분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앞서 가시면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마음과 뜻을 같이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성전 건축의 일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 누리에 충만하게 드러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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