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초막에서 감사하라 (레 23:39-44)

  • 잡초 잡초
  • 252
  • 0

첨부 1


- 설교 : 이익로 목사

만발한 벚꽃을 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던 때가 어제 같은데 어느새 그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발에 밟히고 있습니다. 예배당 주변에 떨어진 낙엽들을 볼 때마다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보내온 이메일의 글이 자꾸 생각났습니다.“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나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가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은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가겠습니다.

그렇습니다. 후회를 남기지 않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계산대 앞에 서야하는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을 위해 우리들이 꼭 간직해야할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이사야 1:2-3). 호소할 곳 없으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향하여 호소하셨습니다.

은혜를 깨달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입니다. 우리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있어야 합니다. 없으면 안 됩니다. 감사한 마음이 사라지고 원망과 불평이 가득하다면 그것은 타락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세속에 미혹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디모데후서 3:1-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악한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또한 무디어진 심령을 일깨워주시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제도를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유월절과 초실절 그리고 초막절이라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것이며, 초실절은 맥추감사절을 가리킵니다. 초막절은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추수감사절을 가리킵니다. 이 세 절기는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너는 무교절을 지키되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 그 기한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라 이는 네가 아빕월에 애굽에서 나왔음이니라...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추애굽기 34:18, 2-23)라고 하셨습니다.

Ⅰ. 초막절을 지키도록 하신 까닭이 무엇일까요?

1.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초막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 동안 머물며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43년간 노예로 살다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해방된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본문에“너희는 칠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위기 23:42-43)하셨습니다. 이 절기를 지키되 “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레위기 23:41)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노예는 살아있으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노예는 움직이며 말하는 농기구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유를 얻었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면서 그들은 초막을 임시거처로 삼았습니다. 마침내 젓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정착을 했습니다. 비로소 인간다운 자유를 얻었습니다. 내 땅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내 집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땀 흘려 일한 소득을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마음대로 쓸 수가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이 은혜는 잊으면 안 됩니다. 잊어서도 안 됩니다. 자자손손 지켜야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더라면 후손인 그들도 노예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크신 은혜를 자자손손 기억하며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초막에 거하는 초막절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되어 초막에 거했던 때 즉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가을이 되면 이 초막절을 지키라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에서의 해방과 초막절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받아 해방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악과 멸망에서 구원받은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누구입니까? 우리들의 지난날의 모습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기를“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에베소서 2:1-6)하셨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이

우리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우리들이 장차 영원히 거할 가나안 복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머물러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크신 은혜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감사해야 합니다.

2. 주신소득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말씀하시기를“너희가 토지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날에도 안식하고 제 팔일에도 안식할 것이요...너희는 매년에 칠일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칠월에 이를 지킬지니라.”(레위기 23:39,41)하셨습니다.
또한 신명기 16:16-17에도“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하셨습니다. 모든 소산을 거둔 후 하나님께 감사의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올해는 나라의 경제사정이 좋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어제 대통령과 일반시민들이 대화한 내용이 신문에 보도되었습니다. 그 내용 가운데, 한 가정주부는 아기돌인데 돌잔치는 엄두도 못 내고 2천 원짜리 빵 한 개와 초한자루를 사서 돌을 축하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식당을 경영하는 어느 분은 밤9시가 되도록 손님이 없다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십만 원하던 신발을 단돈 만원에 팔려 해도 사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때를 우리 모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감사는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형편이 좋든 나쁘던 간에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초막절 즉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두 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오늘 본문을 통해 말씀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미국의 조상인 청교도들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영국 웨일즈 남쪽 지방에 프리머스라는 아름다운 항구가 있습니다. 그 항구 등대가 있는 곳 높은 언덕에 돌비가 하나 있습니다. 그 돌비의 비문에 “여기서 믿음의 선조 순례자 101명이 떠나다. 1620년 9월 2일”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이 돌비가 오늘날 이 지구상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조상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난 것을 기념하는 돌비입니다.

16세기에 마틴 루터를 중심으로 일어난 종교개혁의 불길은 영국에 이르러 전역을 향해 번져갔습니다. 이로 인해 영국 왕실은 구교인 카톨릭의 아성을 지키기 위해 개혁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부패한 카톨릭에 항거하여 청렴한 생활을 표방하는 개혁자들을 제임스 왕은“청교도”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101명은 길이 27m 무게 180톤의 작은 목선“매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11월 9일 미국 매사추세츠 케이프만(보스턴)에 도착했습니다. 그해 겨울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인디언들의 습격으로 인해 다음해 3월초에는 50여명 가량이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노인과 아이들과 환자를 제외하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5-6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봄이 되어 영국에서 가져온 곡식을 심었으나 싹이 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떤 인디언이 옥수수와 호박씨를 주었습니다. 농사짓는 법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들은 사냥과 고기잡이로 살아가면서 첫 수확을 하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인디언들은 칠면조를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이들의 수확은 넓지 않은 밭에서 얻은 옥수수와 호박, 대합조개 조금과 인디언들이 가져다준 두 마리의 칠면조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해에 얻은 소득은 많지 않았지만 그것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다음해에 학교를 세웠고, 3년째 되는 해에 그들이 거할 집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유래가 되어 미국인들은 지금도 추수감사절에는 옥수수와 칠면조를 먹으며 이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나라가 미국입니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것이 1776년 7월 4일 입니다. 올해로 228년이 됩니다. 300년이 안된 나라가 세계최강국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배후에는 범사에 감사했던 조상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풍성하게 받은 후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중에서도 있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것이 기독교신앙입니다. 감사의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소록도에는 나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습니다. 김천에도 있습니다. 그 지역에 그들의 교회가 있습니다. 그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과 봉사와 충성은 건강한 사람들이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합니다. 양계를 해서 얻은 소득으로 건강한 사람들이 출석하는 교회에 선교비를 보냅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건물의 입구에 이런 푯말이 써 있습니다.“잃어버린 것을 원망하지 말고 남은 것으로 감사하자.”이처럼 넘치는 은혜를 깨닫고 고난 중에라도 오히려 감사하는 깊은 신앙의 사람들입니다. 충북 음성 꽃동네 입구의 입석에는“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입니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더 갖지 못한 욕심에 찬 마음의 눈에는 감사의 조건이 보이지 않는 법입니다.

하나님은 종종 어려움을 통해 그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신앙을 저울질하십니다. 감사의 분량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표시”라고 웨슬리는 말했습니다.

Ⅱ. 감사함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1. 감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3)하셨습니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시편 69:30-31)하셨습니다.


2. 감사하면 기도의 응답이 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하셨습니다. 감사함은 기도 응답의 조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감사하면 물질의 복을 받게 됩니다.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린도후서 9:6-8)하셨습니다. 감사하므로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농부가 논밭에 곡식을 심는 것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농부는 이른 봄 논밭에 씨앗을 뿌립니다. 씨를 뿌리되 결코 그것을 낭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을이 되면 더 많은 수확하게 된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함은 이처럼 심은 대로 거두는 자연의 이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은 받은 복으로 또 다른 선한 일을 위해 힘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말라기 3:10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하셨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말라기 3:8-9)하셨습니다.
록펠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요 세계적인 대부호였습니다. 한번은 시카고 대학 예배당 헌당식을 마치자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에 “부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는 말에 그는 즉각 네 가지로 대답을 했습니다.

첫째,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거지라는 별명을 들으며 자라난 나는 최초의 십일조로 50센트를 드렸습니다. 그 후 나는 지금까지 단 1센트의 십일조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십일조 헌금을 계산하기 위해 채용된 직원이 40명입니다.
둘째, 교회에 와서는 앞자리에 앉으십시오. 예배시간에 앞자리에 앉아야 정신이 집중되어 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에서 맡기는 일은 무엇이든지 순종하십시오. 교회의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맡긴 일에 충성할 때 복 받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넷째,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십시오. 이는 목회자를 위함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자신의 영이 상처를 입어 영적으로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4. 감사하면 행복하게 됩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행복하기 위한 조건 다섯 가지를 말했습니다. 먹고 입고 살기에 조금은 부족한 듯한 재산,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부족한 외모, 자신이 생각하는 것의 반밖에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 남과 겨루어 한 사람은 이겨도 두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연설했을 때 듣는 사람의 반 정도만 박수를 치는 말솜씨라고 했습니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을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함에서 찾고 있습니다. 100%만족이란 없습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에 대해, 그것이라도 있음을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도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이 곧 행복입니다.

가이드 포스트지에“아메리카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청교도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는 중 절반 이상이 죽고 생명을 건진 무리들이 낯선 땅 신대륙, 아무것도 없었던 그 황량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습니다.“그들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들이 낯선 땅의 환경만 보고 불평하고 절망에 빠졌더라면 그들은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찾았다는 기쁨과 감격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었기에 그들이 생활할 수 있었다고 사회학자들은 말합니다.

청교도들이 1620년 메사추세주의 케이프 가드 만에 도착했는데 육지에 내리기전 케이프 가드만 선상에서 역사적인 메이플라워 서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God).
둘째,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by the grace of God).
셋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for the glory of God).
넷째, 하나님의 존전에서(in the presence of God)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대륙에 온 목적과 의미를 함께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 앞에 서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신앙고백이었던 것입니다.

플리머스의 부리얼 언덕에 세워져 있는 플리머스 회관 현관에는“너희 조상들이 어려움 속에서 성취한 것들을 비겁하게 포기하지 말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인의 좌우명이 되어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인들은 그들의 화폐인 달러마다“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한다(in God we trust)”라는 글귀를 써 넣었습니다.

감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한시도 그 은혜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득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마땅히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성도를 보시고 더없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성도를 보시고 기뻐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성도에게 사람의 승리와 풍요로움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며 살아가는 성도에게 건강과 행복의 은총을 허락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는 축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