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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각만 해도 좋은교회 (살후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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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영태 목사 (2004. 11. 14)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요 감사할일입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마을마다 골목마다 교회가 서있는 곳은 없습니다. 이번에도 필리핀에 가 보았지만 교회를 찾는다는 것이 그리 쉽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새벽5시에 인천공항에 내렸는데 공항버스를 타고서울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내내 십자가를 볼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사랑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생각만 해도 좋은 교회가 소개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지만 교회라고 할 때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의 데살로니가 교회는 데살로니가의 믿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생각만 해도 좋은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사람들, 생각만 해도 축복해 주고 싶은 사람들, 생각만 해도 감사한 마음이 드는 사람들, 그들이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서두부터 축복입니다. 1-2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당시 교회의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아시아 유럽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이 세운교회가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세운 모든 교회가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교회는 성장하지를 않습니다. 어느 교회는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교회는 교인들끼리 분쟁을 하고 있습니다. 생각하면 근심이 요 걱정인 교회가 하나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축복 해주고 싶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축복해주고 싶어 하는 교회 복된 교회 아닙니까?

우리교회는 청주시내에 9개의 교회를 세우고 미국에 교회를 하나 세웠습니다. 여러분은 어떤지 몰라도 저는 한주간도 이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은 날들이 없습니다. 심방을 가도 용암동으로 가면 7번째 개척한 포도원교회를 생각하게 되고 분평동으로 가면 9번째 교회인 분평 청북교회를 생각하게 되고요. 율량동으로 가면 5번째 개척한 주중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청주시내 어느 곳을 가도 우리가 개척한 교회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교회를 생각할 때 정말 기분 좋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생각하면서 오늘 성경본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 바울의 기분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정말 축복해 주고 싶은 교회가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 울어나는 교회가 있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축복합니다. 은혜와 평강이 하나님께로부터 너희에게 임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거저 주는 선물입니다.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성경에 이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은혜로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이 이 은혜로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은혜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사렙다 과부가 이 은혜로 기근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생도의 아내가 이 은혜로 빚을 다 갚고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이 은혜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이 은혜로 자리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에게 이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평강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길 내가 너희에게 평강을 주노라 하시면서 그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평화를 노래하지요.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 세상이 줄 수 없는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 평안 평안을 네게 주노라” 세상이 주는 평화는 조건과 환경이 따릅니다. 그러기에 조건 이 나빠지면 환경이 안 좋으면 평화도 깨어집니다. 그래서 조건으로 맺어진 가정은 그 조건이 깨지면 가정도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맺어진 가정은 조건을 넘어 섭니다. 조건이 달라져도 환경이 바뀌어도 평안이 깨지지 않습니다. 주님 주시는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주에 우리교단의 총회장을 지내신 목사님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살아온 삶이 너무 멋지고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1941년생입니다. 63세시지요. 그런데 폐암에 걸렸습니다. 너무나 건강에 자신을 가지고 사신분이기 때문에 매우 충격적입니다. 너무 암세포가 퍼져서 손을 댈 수가 없습니다. 주변에서 쉬셔야 한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자신의 병을 알고 있는 목사님이 스스로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소문내기를 다 나았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사셨습니다. 이전보다 더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호탕하게 웃고 짜증내는 일도 없고 식사도 잘하시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다 낳은 줄로 알았습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주일도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월요일 자기시신을 전남 대 병원에 기증하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이처럼 태연 할 수 있는 것입니까? 모든 사람이 죽음 앞에 두려워하고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너무나 태연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나님주시는 평강이 있었습니다.

“무화과나무 잎이 마르고 포도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식물이 없어도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송아지 없어도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난 구원의 하나님을 인해 기뻐하리라” 할수 있는 이유는 그 마음에 평강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평강이 하늘로부터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바울이 이 은혜 와 이 평강으로 축복 하였습니다. 이렇게 축복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3-4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그 이유가 세 가지 입니다. 하나는 믿음이 자라는 것이고 다음은 사랑이 풍성한 것이고 또 하나는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인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니 너무 감사하고 축복해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체면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도 아닙니다. 가끔 어느 교회 행사에 가보면 축사를 합니다. 그런데 축사하는 분들이 온갖 미사어구를 사용하여 축사를 하는 모습을 봅니다.  실은 그런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바울의 감사나 칭찬을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말씀 속에 “당연함은” 말씀이 있지요. 칭찬받기에 당연하고 축복받기에 당연 하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칭찬을 받으려면 믿음이 자라야합니다. 믿음이 어리면 흔들립니다. 위험이 닥쳐도 흔들리고 환난이 와도 흔들리고 속이상해도 흔들리고 자존심이 꺽여도 흔들리고 믿음이 약한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이 다 달라 들어서 흔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빨리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아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데 옆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에 가느다란 소나무가 하나 있어요, 아이들이 신나게 놀다가 한번씩 소나무를 붙들고 마구 흔들어 댑니다. 그런데 보세요. 느티나무를 흔드는 아이는 하나도 없어요. 한 녀석이 발로 탁 차보다가 제발이 더 아프니까 그 다음에는 건들지도 않아요. 잘 들으세요. 마귀가 여러분의 믿음을 다 알아요, 아직 철부지 믿음인지 성숙된 믿음인지, 믿음이 성숙되면 마귀가 건들지도 않습니다. 건들었다가 창피만 당할 터인데 왜 건듭니까? 그러나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은 흔들어 댑니다. 뽑힐 때까지 흔드는 거예요. 여러분의 믿음이 자라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사랑이 풍성 했습니다. 사랑이 풍성했다는 말은 사랑이 자랐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자기만 사랑하던 사람이 가족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만 사랑하던 사람이 일가친척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일가친척만 사랑하던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던 사람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이지요. 주님의 장성 한 분량에까지 자란 사람이지요. 그런데 여기 또 주목할 말씀 이 있습니다. 저들이 사랑하는데 다 각기 사랑함이 풍성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보면 단체로는 잘합니다. 교회 돈으로 봉사한다. 열심히 쫓아다닙니다. 여전도회가 무엇을 해도 열심입니다. 그런데 막상 각자 주머니에서 돈을 걷어서 봉사하자 하면 인색해 집니다.

교인을 데리고 선교지에 갔던 목사님이 어제 교회에 와서 들려 준 이야기입니다. 선교지 교회헌당 예배가 있어서 교인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헌당 예배를 드리고 보니 예배당은 있는데 교역자 사택이 움막같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선교지에 왔으니 온 사람들이 조금씩 헌금이라도 해서 사택을 좀 고쳐주면 좋겠다. 해서 헌금을 했습니다.  목사님 생각은 30명이 왔으니 5만원씩만 해도 150만원은 되겠다. 했는데 헌금을 계수해보니 25만원이 나왔습니다.

목사님이 10만원 했으니 다른 사람이 단 돈 만원도 못한 것입니다. 돈이 없는가 보다 이해를 하고 그다음 쇼핑을 하러 갔습니다. 없는 돈이 어디서 생겼는지 물건들을 사는데 목사님이 민망해서 밖으로 나왔답니다. 세상이 그런데 오늘 교회가 칭찬을 받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체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각기 한사람 한 사람이 사랑을 그렇게 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칭찬이요 축복이요 감사입니다.

끝으로 이들의 인내입니다. 그런 일들을 한번으로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감당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겠습니까? 예수님 올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오고 핍박이 와도 그들의 수고는 중단 하지 않습니다. 구역장 일년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가대 교사로 자원했다가 일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물며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봉사 하는 일이야 어떻겠습니까? 저는 숨어서 봉사하는 우리교인들을 자랑합니다.

독거노인들을 돌보고 머리 깍아 주고 목욕시켜주고 노인대학에서 여러 가지 수고를 하고 주방에서 봉사하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변함이 없습니다. 누가 힘이 안 드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기에 교회를 사랑하기에 저들은 오늘도 앞치마를 두릅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 기쁨 속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봉사의 자리로 나가는 여러분 칭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울은 그렇게 친히 자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좋은 교회 생각만 해도 좋은 교인되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주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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