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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 (살후 1:1~5 , 시 119:6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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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2004년11월14일 설교)
 
  인생을 살다 보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을 당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 경우 당당하게 맞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모든 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하다가 끝내 실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누구나 다 어려움은 겪게 마련입니다. 다만 누구나 겪는 그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때문에 믿음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경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기 상황을 오히려 기회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하면서 그들의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그가 왜 그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까? 그 까닭은 환난과 핍박 중에도 그들의 믿음이 더욱 자랐기 때문이며 또한 서로 열심히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곧 그 믿음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할 것 같으면 믿음을 잃기 쉽고 교회를 떠나기 쉽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오히려 그 믿음이 더 자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소식을 들은 그로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겨우 삼 주 동안 데살로니가에서 활동했습니다. 불과 삼 주 동안의 활동이었지만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 경건한 헬라인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시켜서 그 일행을 해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뢰아로 피했고 베뢰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거기까지 따라온 유대인들 때문에 아덴으로, 그리고 고린도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여간 불과 삼 주 동안의 선교 활동으로 교회가 생겼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로 그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궁금하게 생각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 디모데가 가지고 온 소식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물론 좋지 못한 소식도 있었지만...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서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또한 모든 교회들에게 자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전반적인 상황은 그다지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당국의 탄압과 유대인들의 공격이 날로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가운데 잘못된 재림 신앙 때문에 일하지 않고 놀고 먹으려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또 사도 바울에 대한 여러 가지 오해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이 두 번째 편지를 통해서 그들이 환난과 핍박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오히려 그 믿음이 더 자랐다는 사실에 대해서 크게 칭찬하고 또 격려했습니다.

  여기서 먼저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할지라도 환난과 핍박이 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그 믿음 때문에 고난을 면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더 심한 고난을 당할 수 있습니다. 주님도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요한복음 16장 33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고난을 면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그 주님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고난을 이기게 될 것임을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때문에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믿음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시험이 닥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험을 잘 참고 견딜 것 같으면 믿음은 더욱 굳세게 될 것입니다. 결국 화가 복이 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노예로 팔려간 요셉은 그토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결국 그는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고 또한 그의 온 가족을 살려내게 되지 않았습니까? 믿음은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결코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들에 핀 꽃 한 송이도 거친 비바람을 견디고 비로소 아름다운 꽃을 피우지 않습니까? 거친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꺾어지거나 넘어질 것 같으면 결코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굳게 서서 자라갈 때 비로소 자랑할만한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더욱 기쁘게 생각한 까닭은 그들이 서로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자랄 것 같으면 열매를 맺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사랑의 열매가 없을 것 같으면 그것은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과연 무엇입니까? 주님이 죄인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을 믿는 것이 참 믿음이 아닙니까? 그 주님이 당부하신 이웃 사랑의 계명을 어떻게 어길 수 있습니까? 오직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길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그것도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 8절 말씀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자랐으며,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고, 또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누가 뭐하고 해도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면 언제나 그런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픔과 고통을 성도들이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모자란 것을 서로 채워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미리부터 체험할 수 있어야 비로소 참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성 프란시스코가 원장인 어느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수도원 생활 중에 금식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는 수도사가 한 명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수도사가 배고픔을 참지 못한 나머지 몰래 주방에 들어가 죽을 훔쳐 먹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성 프란시스코가 마침 그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 수도사는 몹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규율을 어겼기 때문에 수도원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 프란시스코가 아무 말 없이 그에게 다가가서 수저를 들고 그와 함께 그 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는 각자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끝으로 사도 바울은 그들이 환난과 핍박을 잘 참고 이긴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믿음 때문에 당하는 모욕이 있고, 멸시가 있으며, 따돌림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무척이나 괴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단지 고통만 안겨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일찍이 시편 기자가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시편 119편 67절, 71절 말씀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이 닥칠 때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고난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뜻을 깨달아 알게 될 때 우리는 그 어떤 고난이라도 참고 이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고난이 닥치면 그 고난 자체를 보지 말고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찍이 욥도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욥기 23장 8절부터 10절까지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가 없구나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아! 하나님의 뜻이 있었구나. 나를 강하게 하시고 나를 담대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그릇이 되게 하시려고 하셨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될 때가 있습니다. 욥은 엄청난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갑절이나 많은 복을 받았다고 성경이 증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시련이 올 때 그 시련을 극복하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환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은 힘들고 고달프지만 지나고 나면 더 큰 복을 베푸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환난과 핍박은 믿음을 더욱 자라게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환난과 핍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고 굳건하게 설 수 있게 합니다. 오직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믿음을 잘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교회와 그 지체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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