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추수감사주일] 차원 높은 감사 (골 3:15-17)

  • 잡초 잡초
  • 330
  • 0

첨부 1


- 설교 : 김이봉 목사

□ 차원 높은 감사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
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
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골로새서 3:15-17)

1.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남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 중에 사람에게만 감사하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곤충의 세계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저들은 본능으로만 살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요즘 애완동물을 키우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개나, 고양이나, 심지어 뱀을 키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꼬리를 흔들며 좋다고는 하지만,
주인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그것을 늘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사람으로서 갖는 제일 큰 덕목 중에 하나입니다. 만일 사람이 감사할 줄 모르고 산다면, 그런 사람을 짐승보다 못한 놈이라고 합니다.
개보다 못한 사람이라고도 합니다. 왜냐하면, 개는 자기를 사랑하는 주인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감사할 줄 모른다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반면 크게 성공은 못했어도,
남처럼 가진 것은 없어도,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감사(感謝)는 처음부터 생겨지는 마음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감사할 줄 모르고 자랍니다.
언제나 자기만을 위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차차 성장하는 과정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집니다.
즉, 감사하며 산다는 것은 그만큼 성숙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들어도 감사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성숙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2. 감사도 여러 차원의 감사가 있습니다.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누구로부터 도움을 받았거나,
  성공하였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
  성취하였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
  만사형통이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
  복권 같은데 당첨되었기에 감사하는 것,
이런 경우에 드리는 감사가 있습니다.
이것도 감사는 감사입니다.
우선 받은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나쁠 것이 없습니다. 받고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에 비하면 이런 감사도 감사입니다.

그러나 감사가 이렇게 받은 것이 있을 때만 드리는 것이라면 기독교 신앙인의 감사는 아닙니다. 그런 감사는 다른 종교에서도 부처님께 감사한다고 하고, 심지어 미신 섬기는 사람들도 이런 감사는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구하여 그것을 얻었다는 것으로만 감사의 이유를 찾는다면 아직도 감사의 근원이 삭막하기만 합니다.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은 기본적이면서도 초보적인 감사의 유형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러한 초보적인 감사도 제대로 못하며 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 초보적 감사가 무엇이겠습니까?
부모에 대한 효행입니다.
세상에 태어난 갓난 아이들이 누구나 자기를 돌보아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누구입니까? 부모님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초보적인 감사도 못하고 산다면, 사람 구실 못하는 인간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준 사람들은 부모님뿐만 아닙니다.
철없을 때는 자기 부모밖에 모릅니다.
그러나 차차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학교에 선생님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느 한 순간에 선생님이 준 영향 때문에 훌륭한 사람들이 된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좋은 책을 통하여 인생의 참 도리를 깨닫게 되어 자신을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적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이 성경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신앙인들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에 있어서 감사는 일반 사람들이 못 느끼는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입니다.

3. 가장 높은 감사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감사입니다.
본문 16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풍성히 거해야 차원 높은 감사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가지고도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마음을 주장하게 되면 범사에 감사 할 수 있게 됩니다. <범사에 감사>란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의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고 하였습니다.
열매가 없고/ 소출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겠다는 말은 신앙이 없으면 이해가 안 됩니다.
아마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당신 미쳤구만!" 아마 그렇게 말할 것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들이 교회 나가는 부인들에게 하는 말 중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당신 믿어도 적당하게 믿으라'는 말입니다.
광적으로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광신자들이 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럴 때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인격의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하고 너무나 감정적으로 치우치거나, 아니면 미신적으로 빠져들지 말라는 뜻일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얼른 보면 광신적 신앙인이라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은 신앙인에게는 언제나 감사가 따르는 생활이여야 함을 말합니다. 감사가 없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 없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 뿐입니다.
오늘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풍족한 물질의 소유만이 축복이 아니란 말입니다.
참된 축복은 <평강>과 <기쁨>입니다.
이 평강과 기쁨이 어디에서 부터 오는가 하면 하나님께로 온다는 사실입니다.
평강이란 말의 희브리어는 <살롬>이요 헬라어로는 <에이레네> 입니다. 살롬의 원천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아니면 우리에게 참된 평강과 기쁨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을 소유했을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욕망과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Lotto 복권으로 인생역전을 시도해 보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른 보면 가장 실제적으로 느껴질 평강과 기쁨의 보장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도리어 형제간에 의의가 상하고, 사람을 기피하는 우울증에 빠진 경우를 볼 때, 참된 살롬은 물질의 소유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 물, 햇빛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 신앙이 바른 신앙일 수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는 신앙인의 움직이는 행위입니다.
감사가 없이 산다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있는 환자와 같습니다. 신앙인이라면 감사의 행위가 항상 따라야 합니다.

여러분!
저는 군대생활 하면서 기갑부대 훈련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거대한 탱크부대가 이동할 때 보면 지축을 흔들어 버립니다.
엄청난 힘으로 돌진해 나가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탱크 앞에 철책선 같은 것은 거미줄처럼 무너집니다.
고지를 향해 파죽지세로 돌진해 들어가는 모습은 가이 흥분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용을 떨치는 탱크도 움직이지 못하게 되면 한낮 고철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가 없는 행위는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는 신앙생활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추수감사 주일로 지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거두어들이는 수확이 예년과 같지 않다고 해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할 줄 아는 행위가 따를 때,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차원 높은 감사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