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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 있는 사람의 삶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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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정석 목사

PLO라고 하는 팔레스틴 해방기구의 의장인 야셀 아라파트(Ysir Araft)가 지난 주 11일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팔레스틴의 독립투쟁을 상징하는 인물일 뿐 아니라
동시에 중동평화를 위하여 노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공로로 1994년 노벨 평화상 까지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실 PLO 의장으로서
30여년간 무장투쟁 방식의 해방운동을 주도한 인물입니다.
그러다보니 피도 많이 흘렸습니다.

여러분이 다 기억하실른지는 모르겠지만 1972년 9월 5일 새벽
이 PLO 하부 조직인 '검은 9월단' 소속 테러리스트들은
당시 올림픽 개최국인 독일 뮌헨의 올림픽 선수촌 안에 있는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에 침입
이스라엘 선수 9명을 인질로 붙잡고는
이스라엘 감옥에 수감돼 있는 200여명의 테러리스트들의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잘 되지는 못하고 결국
테러리스트 5명과 인질 전원이 사망하는 올림픽 사상 최악의 얼룩을 내곤 막을 내렸습니다

사건은 이렇게 해서 막을 내렸지만 그 이후
아랍권 내에서 PLO와 야셀 아라파트 의장의 발언권은 커질 수 밖에 없었고
또한 국제사회에서도 이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세계는 점점 이들을 모방한 일들이 줄을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곧 테러입니다.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목소리를 높이고... 일을 저지르며... 심지어 사람을 인질로 잡아 협박하기만 하면
요구하는 조건은 거의 다 이루어진다는 해괴한 논리가 통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이라크 쿠르드족을 비롯하여 전세계 소수 민족들은 문제만 있으면 이것을 모방하여
테러리즘의 국제화시대, 테러리즘의 보편화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많은 나라들.. 특히 테러에 주 타킷이 되는 나라들은 테러의 피해를 막기 위해
앞을 다퉈 특수부대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독일의 GSG-9을 비롯해 선진국들의 강력한 대(對)테러 특수부대가 바로 그것입니다.

2년 뒤 이 야셀 아라파트는 PLO 의장 자격으로 유엔총회에 참석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항상 권총과 올리브 나무를 함께 들고 다닌다.
  내 손에서 올리브 나무 가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해달라(1974년).

무슨 말인가 하면... 국제 테러 집단의 두목이 전 세계를 상대로 협박을 한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가 아이러니칼 하게도 1994년 중동평화 정착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노벨평화상 까지 받게 되는데.. 이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정말 평화의 인물이며 중동 평화를 위해 그렇게 기여한 인물이라면
숨어다닐 필요도.. 피해 다닐 필요도 없었을 터인데..
그는 40년 정치생활 동안 식당에 가본 적이 단 한번 밖에 없었으며
1994년 망명생활을 끝내고 팔레스틴에 정착하기..까지 
한 곳에서 이틀 연속 머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술회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에 대한 평가도 완전히 상반되고.. 극과 극으로 평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팔레스틴의 독립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으므로 자국에서는 영웅이었지만
동시에 세계 속에서는 영웅이 아니라 테러리즘의 대부라는 딱지가 항상 따라 다녔습니다.

그가 그동안 했던 어록을 살펴보면 그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데
그의 어록을 잠시 살펴 보면 이렇습니다.

  우리 세대는 기다리는데 지쳤다.
  사막의 텐트 안에서 서서히 비참하게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
  적들을 무찌르고 죽는게 낫지 않겠는가(1969년)

  우리의 투쟁 목표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쟁과 승리다(1972년)

이렇게 일생을 투쟁의 삶을 살던 그가 지난주 눈을 감기는 감았지만
그의 장례식은 팔레스틴 땅에서 거행하지 못하고 이집트에서 거행하였습니다.

물론 그곳이 그가 태어나고 자라난 곳일 뿐만 아니라 대학을 다닌 곳이 이집트여서
이집트란 나라를 택하였다고도 생각되지만
온 국민이 있는 자국 팔레스틴에서 장례식을 거행하지 않은 것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간섭을 받지 않고 행사를 치를 수도 있다는 장점 뿐 아니라
만일 팔레스틴에서 장례를 했을 경우 장례식 기간 동안 일어날 수 있는 폭동 등이 염려되어
이집트가 선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이 야셀 아라파트와는 거의 정반대의 삶을 살았을 뿐 아니라
죽음과 그 장례식도 거의 정반대로 치룬 한 인물이 있는데.. 그는 마더 테레사입니다.

그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야셀 아라파트와는 달리 전쟁을 치루면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난 지역에 가서 전쟁을 중지시키려고 노력하면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이고
전쟁이 일어나 쓰러지고 죽어가는 사람을 돌보면서 노벨 평화상을 받은 인물입니다.

이 마데 테레사의 장례식은 그야말로 장관이었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소요나 폭동이 일어날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비가 오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조문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장례 집행위원회는
한 사람이 조문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1초 밖에 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1초라도 조문하기 위해 1km도 넘는 줄을 섰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군요...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마더 테레사의 삶을 보면 어쩌면 야셀 아라파트와는 정말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는 야셀 아라파트처럼 혁명단이나 테러단을 만들어 이끈 것이 아니라
사랑의 선교단체를 만들어 이끌었습니다.
그가 한 말 가운데 가슴을 찌르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있는 곳이면 달에라도 가겠습니다.

제가 왜 오늘 이런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역사의 중요한 사건과 현실을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달아야 하며
또 사건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하는 것 때문에 말씀드리는 것인데...
이것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아주 분명하게 제시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길이 아주 뚜렷합니다!!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또 어떤 길은 걷지 말아야 할지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이 길이 복된 길이다!!
  이렇게 살 때 그 삶은 복된 삶이다!!

저는 오늘 바로 그 복된 삶을... 복 있는 사람의 삶을 말씀드리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악인의 꾀를 좇으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이란 주석학자 델리취(F. J. Delitzsch)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 기준을 잃고 안정치 못한' 그런 악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삶이 엉망인 그래서 그의 삶을 보면 도덕도 없고 윤리도 없는
이런 악인의 꾀는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좇아봐야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 악인과 똑 같이 되겠지요..
정신도 삶도 엉망이 되고.. 도덕 윤리도 없이 살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말 것인데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 보면... 물론 삶이 힘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정상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지 아니하고 꾀를.. 잔꾀를 부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늘 꼼수를 두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거래를 해도 정상적으로 하지 않고... 말을 해도 바르게 하지 아니하며
뭔가 감추고 말하고... 뭔가 감추고 사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좀 손해를 보더라도 정도를 걸으라!!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왜 의인의 지혜... 바른 충고는 듣지 아니하고 잔꾀를 부리고 꼼수를 두며 살아가느냐..
복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 둘째는 죄인의 길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나 명령을 어기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처음에 말한 악인과는 다른 개념으로서 좀더 적극적인 죄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죄인의 길에 서는 사람들이 요즘은 참 많습니다.

세상이 악해져서 그런지 정말로.. 죄를 지으면서도 덤덤해 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죄를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영철씨의 살인사건도
바로 그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은 우리를 섬뜻하게 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살인을 멈출 생각이 없었다.
  언론에서는 사람을 많이 죽였다 하는데 제 입장에선 살인을 시작하는 단계였다.

계속 죄인의 길을 걷겠다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살인사건을 잠시 생각해 보면
김대두, 그는 17명을 살해했습니다.

밤샘 근무를 하고 집에 와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남편 얼굴에 파리가 앉는 것을 보고 아내가 파리를 잡으려다 남편 따귀를 때렸다 해서
화가 나 닥치는 대로 총을 쏘아 한마을 주민 56명을 죽인 사건 우순경

이렇게 개인적으로 끔찍한 죄를 지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늘 말씀처럼.. 그 끔찍한 죄에 가담하고 모의하고 실행에 옮긴..
죄의 길에 함께 선 사람들이 있었는데.. 소위 '지존파'라고 하는 일당입니다.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1994년 9월 19일, 살인공장 및 시체 소각장까지 차려놓고
연쇄 납치, 고문 살인, 소각이라고 하는 그 무시무시한 죄들을
그 어느 누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으면서 함께 감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막가는 인생이라고 해서 '막가파'라는 이름을 붙인 8명의 한 무리는
1996년 자기 차를 타고 다니는 돈 많은 사람들을 다 죽이기 시작합니다.

살인..뿐만이 아닙니다.

정신이 똑바로 박혀있지 않고 늘 비정상적으로 사고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살인 간음 도둑질 방화 테러.. 이런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정상적인 가정들이 파괴되며... 그러다보면
사회의 근간과 기강도 흔들릴 수도 있는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다음 셋째는 오만한 자리에 앉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오만한 사람이란 앞에서 말한 악인이나 죄인보다도 완전히 등급이 높은
그런 죄인으로서의 오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죄인이 가는 길에서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가 할 정도로서의 오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은 그런 삶을 사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에게 대항하며 살아가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나 은총을 무시한지는 벌써 오래 되었고
하나님의 심판도 이젠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지옥가는 것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가장 무서운 사람들.. 가장 무서운 죄인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이제 그들은 악인의 꾀를 좇거나... 죄인의 길에 서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자리를 펴고 앉았습니다.
뭔가를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제 뭔가를 하려는 것은 뭘 훔치고.. 누굴 죽이고.. 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며... 사탄 마귀를 찬양하는 일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거룩한 진리를 폄하하여 농담으로 여기며
하나님을 조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하지만... 있습니다!!
아합이나 이세벨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겉모양은 사람이지만 속은 사탄으로 가득찬 사람들이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악했고... 말하는 것이 악했으며... 행동하는 것이 악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오만 방자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인데... 오늘 말씀은..
그런 사람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고..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2절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말씀.. 여호와의 명령을 주야로 묵상하여
그것을 머릿 속엔 넣고... 마음 판엔 아로 새기고...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야'(晝夜)라고 하는 것은 '낮과 밤'이라는 말로서
'항상' 여호와의 율법.. 여호와의 말씀.. 여호와의 명령을 묵상하고 살아가다 보면
악인의 꾀를 좇는 일이나.. 죄인의 길에서는 일... 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인 고로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것이 가능하기 위하여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즐거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먹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고... 노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는 것 보다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하는 것이 그렇게 즐겁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고
죄인이나 악인이나 오만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읽는 시간이 즐겁고.. 율법을 듣는 시간도 즐겁고.. 율법을 암송하는 시간도 즐겁고...
여하튼 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해야..만이!!.. 그것이 자기를 죄에서 지킬 뿐만 아니라...
바른 사람.. 온전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래서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그 이후 그의 삶에는 어떤 은혜 어떤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까?
오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3절입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한 폭의 그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혜와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악인의 꾀를 좇거나 죄인이 길에 서거나 오만한 자리에 앉는 사람은 꿈도 꾸지 못할
그런 은혜와 축복입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이 모든 말씀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렇게 다시 정의할 수 있겠는데
좇지 않아야 할 것은 좇지 않을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
같이 가야 할 길이 아니면 같이 가지 않을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
앉지 않아야 할 자리라면 앉지 않을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길에는 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손짓하는 것도 많고.. 기웃거려 보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간혹 여기 저기 앉아보고 싶은 자리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말 지혜로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나를 파멸로 이끄는 꾀며 길이며 자리인지... 그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감히 떨쳐 버릴 것은 버리고... 내가 가야 할 길을 걸어갈 줄 아는 지혜와 용기
바로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표현하는 복, 특히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복이라는 개념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바라크]라고 말하는 복입니다.
이 [바라크]는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축복하시거나
당신의 신적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복을 내려줄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이 [바라크]는 사람들의 선행, 즉 사람들의 착함 악함 이것과는 상관없이 주시는
말하자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하시고.. 일방적으로 베푸시는 복을 의미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하나의 복이 있는데 그것은 [아쉐레]라는 단어로서
[바라크]와는 달리 인간의 착함 악함에 관련되어 주시는
즉 인간의 생각, 인간의 의지, 인간의 결단, 인간의 행위와 관련하여 주시는
그런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말하며.. 어떻게 행동하느냐..따라
복을 받을 수 있느냐 받을 수 없느냐 하는 복을 말하는데
오늘 본문에 기록된 복 있는 사람은.. 이라고 한 이 복이라는 개념이 어떤 단어인가 하면
두 번째 설명한 [아쉐레]라는 복으로서..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주시는 복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주시는 복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은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길을 선택하고.. 어떤 삶을 선택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나의 인생에 하나님이 주실 그 복!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그 풍성한 복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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