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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흩어지는 교회가 됩시다 (행 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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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교회역사에 있어서 가장 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를 우리는 초대예루살렘교회에서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이땅에 남아있던 주님의 12명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세워진 예루살렘교회는 사도들과 성도들이 다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합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열심히 모이면 기도하고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흩어지면 열심히 전도를 합니다. 사도들의 능력있는 메시지와 성도들의 열심있는 전도로 인하여 초대교회 속에 계속적이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모이는 교회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12명이 모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지상을 떠나고 나서 그 12명의 제자들과 약 120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제자의 수가 삼천명이상되는 대형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4에 가서는 믿는 자의 수가 남자만 약 5천명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여자와 어린아이를 잡으면 최소한도 1만명이상되는 초대형교회가 세워졌습니다.이렇게 초대예루살렘교회는 사도행전 전반부에 보면 잘 모이는 교회로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일단 모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연 얼마나 모여야 합니까? 우리나라 교회의 경우에 모이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교회 분류를 한 통계를 제가 보았습니다.100명이하의 교회를 소형교회 101-300명 교회를 중소형교회, 301-700명까지를 중소형교회,701-1500명까지를 대형교회,1501명이상 교회를 초대형교회로 나눌때에 100명이하의 교회가 한국교회의 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교회 역사상 사장 급속적인 성장을 기록한 우리나라 교회의 경우를 감안하더라도 초대예루살렘 교회의 번식속도는 굉장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대예루살렘교회를 모이는 부흥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교회가 모이기를 원하십니다.예수님께서도 먼저 모이는 교회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도 이땅에 오셔서 먼저 모이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일단 교회는 모여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든 병든 사람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어린아이이든 모여야 합니다.
그러나 초대예루살렘교회로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갈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핵심 문제가 바로 사도행전 6장에 소개되는 구제의 문제였습니다. “모이는 교회”를 통하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문제로 교회가 싸우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모이면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사람이 모이면 싸우게 되고 모이게 되면 말들도 많아집니다. 이렇게 모이고 나서 해야 할 일은 흩어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모인 교회를 향해서 흩어지기를 원하셨습니다. 모이라고 하신 이유는 흩어지기 위함이었습니다.사도행전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이게 하신 이유는 바로 흩어지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언제 흩어지게 됩니까? 그리고 흩어진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무엇을 합니까?

1. 핍박을 통하여 초대교회가 흩어지게 하십니다.

1절에 보면 그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큰 핍박이 왔습니다. 왜 핍박이 왔을까요? 하나님께서 핍박을 허락하셨습니다.초대 예루살렘교회가 모이고 흩어지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초대예루살렘 교회를 핍박을 통하여 흩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흩어짐은 초대예루살렘교회의 7명의 안수집사 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 집사님이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면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교회를 핍박하는데 변화받기 이전의 바울이 앞장섰습니다. 핍박은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저주이고 고통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핍박과 고난을 통하여 교회가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흩어짐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제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짐으로 예루살렘을 포기하고 떠나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핍박을 통하여 초대교회가 예루살렘을 떠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예루살렘이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는 행1:8에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볼 것은 주님의 교회 예루살렘 교회가 주님께서 세상을 떠나 모여서 함께 기도하면서 엄청난 교회를 이루었을때 왜 자연스럽게 전도를 못했을까요?

순식간에 엄천난 사람들로 모이는 교회로 부흥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대예루살렘교회는 서로 매일 모여서 교제합니다. 서로 함께 떡을 떼고 서로 교제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소유를 팔아서 필요를 따라 나눌 정도로 사랑이 충만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때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와 바로 여기가 천국이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면서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면서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지 않자 핍박을 통하여 고난을 통하여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안가면 가도록 강제적으로 떠나시게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에 아브라함을 고향을 떠나 가나안의 순례의 삶을 떠나도록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해 순례하도록 떠나시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는 영원한 순례자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어느 한곳에 머물지 말라 어느 한곳에 집착하지 말라 그곳에 머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때때로 우리가 한곳에 머무르면서 내가 우상이됩니다. 자식이 우상이 되고 기업이 우상이되고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붙잡고 살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로 우리가 모였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모인 우리를 향하여 은혜를 받고 말씀을 받고 주님의 뜻을 알았다면 흩어지는 교회가 되기를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여기 예루살렘교회 중에서 누가 흩어졌습니까? 사도 외에는 다 흩어졌습니다. 지금으로 말을 하면 교역자를 제외하면 다 흩어졌습니다.이제 흩어진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에게는 더 이상 의지할 만한 지도자가 없었습니다. 지도자가 없으면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자기들의 사명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속에서 은혜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았고 내가 죄에서 구원받은 사실을 새롭게 깨달음으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까? 이제 그 받은 은혜로 받은 사랑과 믿음을 갖고 세상으로 흩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20:21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여 보낸 것같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을 택하여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초대교회의 사도들처럼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귀한 존재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많은 도시 중에서 우리를 흩어지게 하셔서 이곳 강릉에 있게 하셨을까요?
제가 서울에 가서 동기목사님들을 만나거나 아는 분들을 만나서 강릉에 산다고 하면 ‘아주 좋은 곳에 사십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자연적인 멋으로 따진다면 제주도 빼놓고는 강릉이 제일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도시를 볼때 문화가 발달할수록 자연이 발달할수록 영적으로는 후진도시입니다. 문화가 발달할수록 인간문명이 우상이 됩니다. 자연이 발달할수록 자연물이 우상이 됩니다. 이곳 강릉의 경우에 그 어느도시보다도 우상숭배가 심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곳에 온지 4년째이지만 단오제가 열리는 때만 오면 개인적으로 마음이 우울합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남들은 단오제가 열리는 이 도시를 찾아오는데 다른 곳으로 피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왜 이런 곳에 내가 살아야 하는가? 싫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게 하신 분은 내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이 도시가 전도하기에는 악조건들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삶의 위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여기 사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려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이곳에 사는 것입니다. 지금 사는 이곳에서 복음을 위하여 삶을 사는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흩어지는 교회를 통하여 예비된 사람이 구원받습니다.

4절에 보면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
여기 보면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흩어져서 두루다니면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표적인 지역이 사마리아였습니다. 그래서 5절에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대단한 선택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와는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솔로몬이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어집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지역입니다. 그런데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나라가 침략하여 나라가 무너지면서 이방사람과 결국 정을 통하여 결혼하고 우상을 숨기게 됩니다 남유다 사람들이 신앙의 정조를 지키는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라가 회복되고 나서는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은 신앙의 변절자로 사람취급을 하지 않앗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사마리아땅으로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은 용서할 수 없는 사람까지 용서하고 복음은 막힘담을 허물어버리는 강력한 평화의 도구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에 사마리아는 복음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생각으로는 사마리아는 안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성도들을 흩어서 사마리아까지 가게하였고 사마리아에 복음으로 전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가기 싫은 곳까지 가게 하십니다. 우리는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비록 자존심이 상할 수 있고 마음 속에 인간적으로 허락하지 않는 나의 생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넘어 복음을 위하여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여기 사마리아 전도에 도구가 되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초대예루살렘교회의 안수집사이셨던 빌립이었습니다. 우리가 명심할 것은 교회 속의 집사님들이 해야 할 본질적인 사명이 무엇입니까? 물론 조직 교회에서 내적으로는 구제를 담당하고 헌금을 집행하고 봉사하는 일들을 해야 합니다.그러나 흩어져서 해야 할 일 은 바로 전도입니다. 여기 빌립 집사님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 순종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할 것은 주님께서는 교회 내에서 헌금계수하고 구제하는 일보다 더 원하시는 일이 바로 전도하는 일이었습니다. 빌립은 교회의 평신도들이 먼저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우선순위임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흩어져서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예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흩어져서 전도하는 빌립이 성령을 따라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예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그런데 그 예비된 사람은 인간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행8장9-13절에 보면 시몬을 전도하는 내용이 소개됩니다.여기 시몬이라는 사람은 사마리아에서 마술을 행하여 성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자라고 인정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빌립을 통하여 시몬을 전도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도전하였을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서 시몬을 구원하십니다. 지금 우리시대에 시몬은 무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당이 구원받았습니다. 흩어져 전도할때에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이 구원받는 열매를 하나님께서 맺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 이하에도 보면 예비된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어가라사대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하십니다. 그 길은 광야였습니다. 27절에 일어나 가서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다가 빌립을 만나게 됩니다. 전혜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 내시가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은 알았지만 성경 속의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여기 성경을 읽고도 깨닫지 못하는 내시에게 성경의 예수님을 가르쳐 전도합니다. 내시가 빌립의 전도를 받으면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전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종할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통로인 우리를 통해서 복음이 흘러가도록 예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때로 그 사람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빌립이 일어나 가서 보니 하나님의 일이 그곳에 있었는데 마술사를 구원받게 하시고 이방나라의 내시를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오늘 내가 대면하는 그 한 사람을 우연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께서 지상의 수많은 사람 들중에서 그 사람을 나에게 만나게 하여주셨을까요? 혹시 나는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순종하고 있습니까? 나의 순종을 통하여 사람을 구원하게 하시는 뜻이 있음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해마다 태신자초청 행사를 하면서 열매맺는 새신자를 보면 너무 목회의 새힘을 얻고 너무 마음이 좋습니다. 마치 아기를 해산하고 좋아하는 부모의 심정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시겟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의 통로가 되시기를 기뻐하십니다.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받는 도구로 사용되시기를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3.흩어져 전도할때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6-7절에 보십시오.
여기 복음을 전할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2가지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우선 7절에 보면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지르며 나가고”합니다.여기 복음을 전하엿더니 귀신들이 나갔습니다. 다음에는 복음을 전할때에 7절 하반절에 보면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낫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에 성령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우리가 볼 수 있는 때가 바로 복음을 전할때입니다. 성령님은 복음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복음을 증거하는 곳에 강력하게 역사하여 주십니다. 성령님이 복음을 증거하는 함께 하실때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거가 귀신이 물러갑니다.

여러분 귀신의 역사를 믿습니까까?
예수님때나 사도행전의 초대교회 때나 지금이나 귀신들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가장 많이 하신 일이 바로 귀신을 쫓아내시는 일이었습니다. 귀신들은 사람들에게 붙어서 괴롭힙니다. 귀신이 역사하여서 마음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마음의 병을 주기도 합니다. 또 몸에 붙어서 병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신에 의해서 마음을 조종당하고 몸을 조정당하면서 인간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일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교회에서 청년시절에 귀신들린 사람과 대면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 중고등부에 후배의 어머니가 귀신이 들렸습니다. 귀신이 들린 그 어머니는 괴성을 지르면서 거리를 다니기도 하엿고 옷을 마구 벗고 난동을 부리기도 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붙잡으려고 하면 얼마나 힘이 센지 최소한 서너명이 달라붙어야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귀신들이 어머니를 붙잡아서 목사님 사택의 빈방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목사님 사택에 들어오면 아주 얌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 매일 저녁마다 교회당에 불러다 놓고 다함께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였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하였습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마구 난동을 부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10여일 시간을 갖자 귀신이 나갔습니다. 깨끗하게 귀신에서 고침받고 나서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서 정상적인 삶을 잘 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여서 기도할 때 돌아가면서 귀신들린 그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귀신이 아는지 노목사님이 기도하면 달랐습니다. 혼자서 막 지절거리다가도 목사님이 안수기도를 하면 꼼짝못하고 굴복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분을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도 같이 기도하엿는데 그때 두려운 것은 만약에 내가 기도할때에 저 귀신들린 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나? 은근히 겁이 났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앗습니다.

실제로 성경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전도할때입니다. 바울이 전도할때에 성령님께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에 돌아다니면서 마술하던 어떤 사람이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아들도 이 일을 행하였습니다. 그때 악귀가 대답하엿습니다.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그리고 나서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귀신들이 무엇을 무서워합니까? 십자가의 사람들을 제일 무서워합니다.복음을 담대하게 증거할 때 귀신이 물러갑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전도의 실천을 통해서 귀신이 물러가는 증거가 있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증거하엿더니 성령님께서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낫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전도할때에 병이 낫는 역사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 것은 치유의 역사가 가장 많인 일어나는 현장이 언제입니까?
바로 전도할때입니다. 4복음서에 많은 치유의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언제 그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까? 예수님께서 전도하실때에 병이 낫는 역사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에 많은 병을 고치는 역사가 언제 일어납니까? 3장에 보면 요한과 베드로가 성전미문에 있던 앉은뱅이를 고쳐줍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선포하엿습니다. 복음을 증거하자 치유가 일어납니다. 바로 이 치유의 역사가 사실은 전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빌립도 그렇습니다. 빌립은 초대예루살렘교회의 평신도 안수집사입니다. 이전에 그는 이적과 기적을 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음을 증거하자 성령님의 능력이 그를 통하여 활발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성령님의 능력이 언제 우리의 눈에 보여집니까?
바로 복음을 증거할때입니다. 여러분 신앙은 체험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붙잡고 사는 체험이 있어야 말씀의 능력을 믿습니다. 기도하고 응답받은 체험이 있을때 더욱 기도합니다.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믿음대로 행할 때 우리에게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복음의 능력 성령님의 능력을 언제 알 수 있습니까? 복음을 그대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거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때 성령님의 능력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신 분들이 더욱 구합니다.
특별히 복음과 함께 짝을 이루서 성령님은 지금도 우리들 속에서 역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복음을 증거하는 열정과 소원과 실천이 있는 분들을 보면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성령님은 능력으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있는 곳에 우리가 흩어져서 복음을 증거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예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구원하게 하십니다. 주님의 복음을 증거할 때 성령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줄 믿습니다. 우리모두 복음의 통로가 되어서 기쁨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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