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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초막절을 지키라 (신 16: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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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덕 목사

모든 것이 편리한 오늘날 현대인의 생활은
인간에게 전에는 불가능했던 많은 것을 가능케 해줍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인간은
그 이전에 조상들이 누렸던 어떤 부분을 상실하고 맙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도시 교회가 얼마나 신앙생활 하기가 편리해졌는가 하면
반면에 잃어가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감사의 생활입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 년에 삼차씩 절기를 지키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하는지 <다음 주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본문말씀에 나오는 초막절 절기를 통해 그 이유를 깨닫는 귀한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초막절 절기는 어떤 절기입니까?

성경시대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은
수 천년의 길고도 험난한 고난을 겪어 오면서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신앙을 상실치 않고 지속적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신앙을 지켜오고 또한 그것을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일은
일년을 주기로 이어지는 명절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유대인들의 명절로서는 성경에서 삼대명절이라고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유월절, 오순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유대인들의 명절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축제이기보다는
그러한 즐거움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하는 축제의 근거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의 명절은 선조들이 경험하였던
여호와 신앙의 중요한 요소들을 다시금 재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명절을 지켜오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선조들이 지켜온 신앙을
자신들의 삶으로 이어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들에게 명절은 하나의 축제이기 이전에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재확인하는 과정이며
또한 자신들이 실제적으로 그러한 역사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명절 중 초막절은
일년동안 땀 흘려 가꾼 농작물을 거두어들인 후에 지키는 명절이라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가 지키고 있는 추수감사절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13절에 [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칠일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 라고 합니다.
소출을 수장한다고 해서 출23:16절에는
초막절을 '수장절'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출애굽기의 이 구절은 초막절이 지켜지는 시기와 계절을 <년종>
곧 일년의 끝 부분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출34:22에서 언급된 '가을'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 '가을'이라고 번역된 히브리 말은 <테쿠파트 하 샤나> 라 해서 그 의미가 '그 해의 바뀜'(the turn of the year)이라는 뜻입니다.
초막절은 한 해의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감사의 축제로 총결산하고
새로운 신년을 맞이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럼 초막절을 지키되 어떻게 지키라고 하며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초막을 짓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초막절의 의식입니다.
여기에서의 초막이란 임시로 허름하게 만든 간이 움막입니다.
유대인의 경전인 '미쉬나'에 의하면,
초막을 만드는 일에 특별히 중요한 것은 초막의 지붕인데
초막 안에 누우면 천장을 통하여 하늘의 달과 별들이 보여야 합니다
느8장에 기록된 대로
감람나무, 버드나무, 종려나무나 화석류 나무 가지로 짓고
지붕은 얼기설기 달과 별도 보이게 지었습니다
이것은 초막이 완벽한 거처가 아니라
무엇인가 불완전한 거처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반면에 초막의 사면 벽은 완벽하게 밀폐시켜도 무방하므로
튼튼한 천으로 벽을 둘러 만듭니다.
초막 내부에는 초막절의 즐거움을 표현키 위하여 여러 가지 장식을 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초막절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초막을 짓기 시작하는데, 가장인 아버지와 자녀들이 서로 도와가며 함께 어울려 초막 짓는 즐거움을 나누게 됩니다.
오늘날에는 도시 사람들이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므로
초막을 짓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아파트 옥상이나 뜰에 짓고,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회당 안에다 짓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에선 아름다운 초막뽑기 경연대회를 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초막을 어떻게 짓느냐? 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14절에
[ 절기를 지킬 때에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 합니다.
그러니 추수하여 너희 끼리만 좋아하지 말고
성중에 있는 모든 사람과 함께 나눠라 는 말이지요.
여기서 두 가지 꼭 기억해야 합니다.
1) 너와 네 자녀입니다.
여호와의 절기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고 합니다.
이 말은 너희가 너희 자손에게 꼭 가르쳐 주어야 할 절기라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부모가 자녀와 함께 초막절을 지키면서
초막의 지붕으로 쳐다보이는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면서
유대민족은 별을 보고 살아 온 민족임을 교육합니다.
낮에 해를 보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살아 온 민족이 아니라
애굽의 바로의 박해로부터
근세사의 히틀러의 박해까지 3300년간 자유롭게 활동한 것이 아니라
별이 비치는 밤에만 그들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보호해준 하나님께 감사하는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절기에 초막에 거하면서 그들의 자녀들에게
자기의 조상들에게 베푼 역사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케 하고 민족혼을 일깨우는 교육을 시도합니다.

2) 14절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라 고 합니다.
초막절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절기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수문앞 광장에서 큰 부흥회가 열렸을
저들이 초막절을 지키지 못한 것을 깨닫고 성대히 초막절 절기를 지킬 때 느8:10절에 [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

이와 같이 초막절에는 미리 준비하지 못한 자들이나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자들과 함께 명절을 즐겁게 지킬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할 일이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초막절을 지키는데 있어서 주요 관습 한가지가 있는데
레23:39절에
초막절 첫날 네 가지 종류의 나무를 손에 들고 흔들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추수를 완전히 마친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 절기임을 말합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에 거하라고 합니까?
감사절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초막절은 <4>
모든 이웃들과 더불어 감사를 나누는 즐거운 축제임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즐거움과는 다른 방향에서 불편한 초막으로 나가
칠일간을 지내라는 성경의 규정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요?
감사절의 의미와 초막에서의 생활은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가나안 땅에서 정착하여 사는 오늘의 안정된 삶을
보다 더 선명하게 조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레23:43절에서는 초막절 기간동안 초막으로 나가야하는 이유를
출애굽기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에 거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막으로 나가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다음의 세 가지 교훈이 담겨져 있다고 하겠습니다.
1) 과거에서 오늘을 조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초막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힘들고 어려웠었던 과거로 되돌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사막 한 가운데에서
가나안을 바라보며 그곳으로의 입국을 소망하였습니다.
그들의 믿음과 소망대로 가나안에 입국하여 정착된 생활을 하며
토지의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나안 입국의 감격을 점차 식어지고,
그 대신 가나안의 이런 저런 불편한 점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감사절인 초막절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초막에서 지냈던 광야생활로 되돌아가
오늘을 조명하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초막절은 그냥 햇과일과 열매를 많이 먹으며
기뻐하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7일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믿음을 회복하는 영적 각성의 기간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믿음을 회복하는 기간이요,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충성을 새롭게 다짐하는 기간이며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는 사랑을 실천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감사와 언약의 갱신이라고 합니다.
2) 하나님의 극대화(maximum)로 되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초막으로 나아가는 것은 광야에서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임재와 보호와 인도하심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막에서의 생활은 분명히 불편하고 불완전한 생활입니다.
그러나 그런 생활 속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이 늘 그들의 진 곁에 있었으며,
아침마다 만나가 내리시고, 때로는 메추라기를 몰아 오기도 하셨습니다. 물 없는 광야에서는 바위를 쳐 물이 솟아나게 함으로 <5>
광야의 갈증을 해결해 주시기도 하셨고
사막이라는 불가항력적인 자연 환경 앞에서 인간은 극소화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극대화가 되셨습니다.
강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력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고,
자연스럽게 인간의 극대화가 대두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하나님은 극소화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초막으로 나아감은 뒤바뀐 신앙의 우선 순위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과정을 위함인 것입니다.

3) 상실한 소망을 되찾자는 것입니다.
광야의 초막이 의미하는 것은 잃어버린 소망으로 되돌아감을 의미합니다.
광야를 방랑하는 기간동안 이스라엘은 비록 초막에 거하였지만
가나안을 향하여 나아가는 희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고 모든 것이 불편한 생활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목적지가 있었습니다.
인간은 소망을 먹고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소망을 가지고 있을 때 삶의 활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 가나안에 입국하여 정착한 것은
그 동안 꿈꾸어 왔던 소망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가나안 정착이 결코 소망의 전부는 아닙니다.
그것은 새로운 소망을 위한 한 단계에 불과한 것입니다.
가나안 이후는 가나안 이전보다 훨씬 더 높은 차원의 소망을 소유해야 합니다. 초막으로 나아감은 미래의 소망으로 불타올랐던 과거 그때를 되돌아보면서 오늘의 새로운 소망을 되찾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 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지니라 ] 고 합니다.
왜 온전히 즐거워 하라고 합니까?
15절 하반절 [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 할지니라 ]
예수님 당시 초막절 절기를 지킬 때
첫 날부터 제사장은 금주전자에 실로암 연못의 물을 길어와
제단 앞에 있는 그릇에 붓습니다.
동시에 다른 주전자에 있는 포도주를 그릇에 부으면
포도주 썩인 물이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가는 예식을 가집니다.
이 예식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6>
원래 비가 부족한 지역이므로 내년에도 하늘 문을 열고 많은 비를 내려 풍성한 결실이 있어 포도주가 주는 기쁨을 누릴 것을 기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를 기다린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것을 미래적인 감사라고 합니다.
비록 금년 농사가 피농되었다 할지라도 내년에 더 풍성한 결실이 있을 줄 믿습니다.
비록 금년에는 시험에 떨어졌다 할지라도
새 힘과 용기 주셔서 내년에 더 좋은 대학 합격할 줄 믿습니다.
비록 직장에서 퇴직을 당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더 좋은 사업을 주실 줄 믿습니다.
비로 나는 이렇게 못배워 무지하게 살았다 할지라도
우리 자식만큼은 하나님이 빼어난 민족으로 삼아주실 줄 믿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바로 원점에서 드려지는 미래적인 감사입니다.
연세대 교수로 재직하다
민주화 운동 인사로 유신 정권 때 감옥에 들어가 실직하여
10년만에 복직하여 학장이 되신 <김찬국 교수>란 분이 있습니다.
10년만에 복직하여 첫 월급을 추수감사헌금으로 드리며 하는 말이
[ 인간은 참 간사하고 무지하지요
매달 꼬박 꼬박 봉급 탈 때는 감사한 줄 모르다가
10년만에 월급 봉투를 받아들고 하나님께 감사를 하는 존재이거든요 ]
그리고 또 하는 말이
하나님 내년에도 이렇게 드려질 수 있는 복을 주옵소서 ]
그렇습니다. 지난 날의 좌절과 실망, 실패의 삶들보다
앞으로 소망의 날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손길
바로 하나님 백성의 진정한 감사인 것입니다.
일본의 내촌감삼은
[ 하나님께서 만일 인간을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 그리고 배신이나 죽음으로 저주하시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그리고 성경을 읽어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막힌 귀로,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도록
메마른 심정으로 저주하실 것이다 ]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축복받은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비록 북풍한설 찬바람 같은 모진 세월이었지마는
이 엄동설한이 지나면 따뜻한 봄날이 올 것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내일의 가족들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절기를 지킬 때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16-17절 [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
1) 택하신 곳에서 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초막절은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입니다.
여호와의 절기란 하나님께 속한 명절이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절기 때는 하나님이 택하신 곳으로 가야하는데
이 택하신 곳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요한복음 7장에서 초막절을 맞이하여
먼저 그의 형제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려 보내고,
자신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초막절을 지키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추수 감사절기에 모든 교인들은 하나님이 계신 교회에 와서
감사예배를 드릴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주지해야 합니다.

2) 감사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
초막절은 일년 내내 농사를 잘 짓도록 비와 햇빛을 주시고 도와주신
하나님의 복과 은혜에 감사하는 추수 감사절기입니다.
따라서 초막절에는 풍성한 곡물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곡물을 거두는 일에는
감격과 감사가 주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대부분 지역은 비가 적고 토양이 척박하기 그지없습니다. 연중 강우량이 100mm정도밖에 안되고 흙은 고운 밀가루와 같기 때문에 바람만 불면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비가 적기 때문에 비 대신 이슬로 농사를 짓습니다.
이슬이 내리는 날 수가 약 150일 전후가 되기 때문에
많게는 18cm 가량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곡식을 추수할 때는 감격의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26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그래서 추수 때에는 이런 악조건 속에서 아름다운 결실을 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격과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8>
하나님을 만물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마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감사절이 영어로는 'Thanksgiving Day'라고 하는 데
'감사'라는 말과 '드린다'는 말의 복합어입니다.
정말 감사하려면 감사하는 마음과 정성을 다해 드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드리되 ①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② 힘을 다해 드리고 ③ 즐거움으로 드려야 합니다
문제는 오늘 도시교회 교인들은 농사 짓는 것도 아니고
또한 I.M.F 이후 최저의 경제사정인데 감사드릴 것이 뭐 있노?
그렇기 때문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절기를 지키라고 합니다.
그것은 광야생활 하던 때에 초막 생활하던 그때와 한 번 비교해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꼭 농사를 짓지 아니한다 해도
우리에게 주신 여호와의 복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7절 [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 - 어떤 것이 있습니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4대 감사제목'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제목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첫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개, 소, 당나귀로 태어나지 않고
인격과 이성을 갖춘 존재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둘째는 그리스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는 철학, 정치, 예술, 학문이 살아 숨쉬는
문명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셋째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훌륭한 스승을 만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변변한 글 한 줄 남기지 않았으나
플라톤으로 인해 위대한 철학자로 부상했습니다.
넷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에게는
참정권이 주어지지 않을 정도로 봉건적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사의 제목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쌓이고 불평하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쌓입니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는 감사하면서도
"영원한 생명"을 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만큼 믿음이 생기고, 감사하는 만큼 기쁨이 생기며,
감사하는 만큼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만큼 능력을 가지게 되고,
감사하는 사람이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복을 주실 믿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 불행할 때 감사하면 불행이 끝나고
형통할 때 감사하면 형통이 연장된다]고 말했습니다.
감사한다고 당장 환경이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할 때, 우리 자신이 바뀝니다.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집니다.
인생과 환경을 보는 시각이 달라집니다.
감사의 계절에 감사를 표현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 주일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오늘 초막절 절기를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의 신앙적 결심을 고백할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7일간 초막에 거하면서 가을 추수 감사절 행사를 합니다.
하나님의 절기인 추수 감사절을 통해 일년간 하나님이 주신 큰복에 감사합니다.
자연(自然) 속에서 주신 복뿐만 아니라
역사(歷史) 속에서 이스라엘 조상들을 지켜 보호하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役事)들을 기억하고
가장들은 이러한 사실들을 자녀들에게 교육합니다.
감사절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뿐만 아니라 공수로 나아오지 말고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드려야 합니다.
이 절기에는 반드시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며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이번 추수 감사절도 이런 의미 있는 절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그 지글락이 이렇게 말한다.
[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번도 만나 보지 못했다. ] 고 하면서
이래서 감사는 행복의 원천인 동시에 행복의 열매가 된다.
여기 감사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소개합니다.
1) 큰 것에 감동하고 놀라기보다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를 발견한다.
2) 먼 미래에 일어날 일보다는 지금 이곳에서 감사를 찾아낸다.
3) 기적적인 일에 감사하기보다 매일의 일상에 감사하며 산다.
4) 감사를 계속하다보면 불평과 불만이 치료되는 것을 경험한다.
5) 감사는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한 사람이 된다.
6) 감사하는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지며 모든 사람들이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뀐다.
7) 감사하는 순간 행복을 느끼게 된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만방에 선포하는 감사의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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