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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정금 같은 신앙 (고전 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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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며칠 전에 대치지역 교역자 모임이 있었습니다. 서울교회 이종윤목사님의 강의가 충격적이었습니다. 자기 목회하면서 소원이 무엇인가? 참으로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사람을 일년에 한 명씩 얻는 것이랍니다. 그러면 자신이 13년을 목회했으니 13명을 얻었는가? 만약 그랬더라면 서울교회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탄식의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일 년에 한 명조차도 헌신한 사람을 만들지 못했다는 가슴 아픈 고백입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스스로에게 반문을 했습니다. 그럼 나는 어떤가? 청담동 시절은 그냥 두고라도 여기 대치동에 와서 지난 5년 동안 몇 명이나 참으로 헌신한 사람을 만들었던가? 별안간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는 걸 금할 수 없었습니다. 듣는 여러분은 어떤가요?

세상은 많은 사람으로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몇 사람의 참된 일꾼이 그렇게 하는 겁니다. 교회는 참으로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 몇 명만 있어도 달라집니다. 교회만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가정이 달라집니다. 직장이 달라집니다. 나라가 달라집니다. 다른 모든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줍니다. 그 몇 사람 때문에 전과는 다른 더 나은 세상이 됩니다.

1. 무엇에 헌신하는가

이런 말을 들어도 사람들 마음에는 헌신에 대한 소원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미친 사람일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자기의 삶은 어디로 가느냐는 겁니다. 헌신이라고 하면 모두다 교회에 바치고 초라한 모습으로 전도나 하러 다니는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부럽기는커녕 불쌍해 보이지요. 하나님께 헌신하면 오히려 비참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돈 벌고 잘 사는 것이지요. TV를 켜면 매일 그런 게 나와요. 할리우드 흑인스타 윌 스미스가 시간이 없어서 개에게 러닝머신을 사줬다는 겁니다. 여러 마리인데 하나 치료하는 값만 한 번에 2천불 청구됩니다. 일년에 옷 사 입는 것만도 10만 불이 넘는답니다. 의자하나에 2천불 숟가락 하나에 천불 뭐 그런 식이지요.

모두가 대접 받고 큰 소리치고 돈 물 쓰듯 쓰고 하는 일을 어떻게 하는지 열심히 찾지요. 그런데 그 윌 스미스가 대 저택을 2백만 불에 샀는데 그 앞에 다른 유명인사가 살던 집입니다. 그 사람은 또 그 앞의 사람에게서 샀지요. 그들이 지금 다 어디 있나요? 몰라요. 병들어 죽었겠지요. 그러면 그들의 부가 다 어디로 갔나요? 그렇게 되는 겁니다.

책방에 가보면 온통 돈벌고 사람 다루는 법,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고 행복하게 사는 법에 관한 책들이 쌓여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인생이란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앉아서 행복하게 살려고 합니다. 앞에 나온 윌 스미스가 그렇습니다. 그의 앞에 다른 유명인사가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자신에게 헌신하고 있어요.

모두가 자신에게 헌신하고 있습니다. 왜 수고합니까? 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뛰어다니나요? 그렇게 경쟁하며 싸웁니까? 모두가 자기 자신을 유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유익하게 합니까? 윌 스미스가 천년만년 살려고 집을 샀지요? 그러나 그 집에 본래 살던 사람처럼 그도 결국에는 사라지고 말아요.

심지어 교회 나오는 것도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도 다 자기에게 유익이 가게 하려는 겁니다. 문제는 어떻게 유익이 되느냐 입니다. 윌 스미스가 영화 출연해 돈버는 것처럼 각자 자기 직장에서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해요. 약해서 결국 죽을 자신에게 헌신 한다면 무슨 힘이 있겠어요. 상황이 조금만 바뀌고 병만 들어도 끝나는 거지요.

헌신을 하려면 좀 더 영원한 가치가 있는 데다 해야지요. 만약 하나님께 그런다면 달라집니다. 각자가 자기 직업을 충실히 하지만 마치 성전을 짓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해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했어요. 다윗은 왕 노릇 그만 두고 그런 게 아닙니다. 요셉도 다니엘도 그러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달라지는 겁니다. 목적이 자기 자신이 아니에요. 하나님 뜻입니다. 크리프 리챠드는 영국 팝송 가수입니다. 예수 믿고 나서 찬송만 부른 게 아닙니다. 물론 음란한 노래 어둡고 부정적인 노래는 안 했지요. 오히려 밝고 깨끗하게 살도록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어요. 모두에게 존경을 받고 부자가 되었고 작위까지 받았어요.

2. 헌신된 사람의 능력

그분이 예수 믿기 전과 후가 무엇이 다른가요? 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노래했어요. 그러니 얼마나 범위가 작습니까? 조금 있으면 늙고 병들어 죽을 보통 사람을 위해 힘을 다했어요. 그 보통 사람이 무슨 힘을 주겠습니까? 아무리 노력해 보았자 결국에는 죽음으로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와 함께 영원히 지옥으로 떨어지는데요.

그러니 혹시 유명해지고 돈을 벌어도 아무런 힘이 없는 거예요. 그것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주지 못해요. 공연이 줄어들까, 제대로 할까 걱정하는 것 같지요? 실제 걱정은 영혼의 문제에요. 영혼이 죄 때문에 늘 두려워하니까 불안한 겁니다. 사람들의 불안은 예수 믿고 죄용서 받기 전에는 그리고 믿음을 갖기 전에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 믿고 나니까, 그것도 적당히가 아니라 확실히 믿으니까 달라집니다. 작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헌신하는 게 목적이에요. 그러니 크고 멀리 보게 되지요. 하나님 자녀가 되니 엄청난 영적인 힘을 갖게 됩니다. 일이 잘되건 못되건 최대관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일은 저절로 힘을 얻고 잘되는 겁니다.

친구 목사님 중 지용수라는 분이 있어요. 이 분 어머니가 새댁일 때 동네에 전도자가 와 설교를 했답니다. 듣다보니 예수님이 그 분을 통해서 자기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사람답게 살려면 예수를 믿어야겠다.” 결심을 하고나니 그렇게 마음이 설레고 기쁠 수 없어요. 그 날 밤 꿈에 마을 전체가 캄캄한데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자기 집을 비춥니다.

너무 좋아서 자다말고 마당에 나가 춤을 추었어요. “하나님이 우리 집을 구원하셨다.” 아침에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어머니, 저는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무슨 소리냐, 큰아버지께 맞아죽는다.” 큰 할아버지가 온 가문을 다 다스렸는데 호랑이처럼 무서운 분이었데요. 며느리는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곱게 단장을 한 채 큰할아버지께 절합니다.

“큰아버님 허락 받을 일이 있어 왔습니다.” “무슨 일이냐?” “허락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얘야 말을 해 보아라.” “저는 사람답게 살고 싶어 교회를 다니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뭐? 교회?”하고 호령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뜻밖에 대답이 나옵니다. “교회에 간다 했느냐?” “네 큰 아버님.” “다니려면 가다말다 하지 말고 제대로 다녀라.”

이미 마음을 정해 하나님을 모시면 이 작은 어린 아낙이 큰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완고하고 성질 사나운 노인을 고분고분하게 만듭니다. 신앙이 주는 영적 권능이 이처럼 대단합니다. 교회 다닌다고 다 된 건 아닙니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면 그렇게 됩니다. 그 크신 하나님을 위해 사니 내 일 가정 일은 저절로 됩니다.

당시 사람들이 성경을 감추고 교회에 갔답니다. 동네 사람들 중 믿는 사람이 적었거든요. 그러나 믿음을 가진 이 젊은 아낙은 성경을 버젓이 가슴에 품고 다녔답니다. 절대 감추지 않았어요. 그 가문이 복 받아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목사님은 창원에서 큰 교회를 하고요 형제들도 다 잘되고요 딸은 이태리가고 아들은 고시 패스했어요.

3. 삶의 우선순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은 허깨비를 위해 사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추구하고 그 뜻을 따라 살려하면 큰 존재가 됩니다. 영적으로 강해요. 웬만한 어려운 일에는 끄덕도 안 해요. 젊건 늙건 남자건 여자건 교회 처음 나왔건 마음을 하나님께로 정하면 그 순간 하나님 수준이 되는 겁니다. 신앙은 내면의 힘을 주고 모든 것이 질서를 잡게 만듭니다.

성경은 신자의 삶이 예수라는 터 위에 짓는 건축물이랍니다. 그 터가 힘을 줍니다. 세상 사람의 터는 무엇인가요? 믿는 것 말입니다. 자기 자신이지요. 자신을 위해 살아요. 돈이나 재능이나 사람을 믿는 것도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인간처럼 약한 존재도 없어요. 다 병들고 죽고 지옥 가지요. 거기 세워도 무너져요. 예수를 터로 삼으세요. 그를 믿으세요.

예수는 우리가 보고 믿을 수 있게 자신을 주신 하나님입니다. 그 위에 삶을 세우세요. 그를 위해서 살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망하는 길이예요. 금이나 은이나 나무나 풀이나 재료로 집을 짓는 겁니다. 마지막에 심판이 있지요? 하지만 작은 심판도 불시험도 자주 있어요. 예수 위에 좋은 재료로 지은 집은 끄덕 안 해요.

하나님께 헌신할수록 좋은 재료가 되고 영원합니다. 그 집은 튼튼하고 아름답습니다. 이종윤 목사님은 헌신된 장로님을 소개했어요. 교회가 지어질 때 건설회사 하는 그분은 교회건축이 마쳐질 때까지 회사 일을 부사장에게 맡겼답니다. 그리고 부부가 교회건축현장으로 출근했어요. 정말로 하나님께 드리는 평생의 선물을 서울교회로 정한 것입니다.

부인이 10층 이상 되는 옥상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용변통을 씻었어요. 안 그러면 건물 위에 용변을 봅니다. 아래에까지 내려 오려하지를 않아요. 그러면 하나님 교회에 오물이 덮이는 것이지요. 지나친 광신자 같지요? 이 장로님이 건축 헌금한 액수가 47억원이랍니다. 얼마나 부자입니까? 하나님께 헌신하니까 세상의 일은 차원이 달라지는 거예요.

한 번 밖에 없는 삶이요 얼마 되지도 않는 삶입니다. 들의 풀처럼 허약한 나를 위해서 살려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바쳐버리세요. 그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자신의 처소에서 빛을 발하세요. 그러면 사람이 달라집니다. 헌신하면 할수록 내면의 힘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별 것 아니라도 그 안에 우주가 다 들어있어요.

힘들 때, 한계에 부딪힐 때,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점검해보세요. 아니, 잘 나갈 때 더욱 그렇게 하세요. 나는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했는가? 이미 하나님은 우리 속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이 주인이 되게 하세요. 그러면 나는 세상에서 비교할 수 없이 큰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믿으세요. 정금 같은 신앙은 삶의 운선순위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철저한 헌신입니다.

QT를 위한 질문입니다. 설교원고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1. 왜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원하지 않나요?
2. 세상 사람들은 누구에게 헌신하나요?
3. 예수를 집의 터로 삼는 게 어떻게 하는 건가요?
4. 하나님께 헌신하면 뭐가 달라지나요?
5. 나를 위해 사는 삶과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삶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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