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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짖어 기도합시다(2) (렘 3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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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상현 목사

아브라함 링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노동자였습니다. 어머니는 성경을 링컨에게 읽어 주고 자기도 읽으면서 신앙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홉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와 누나의 말을 잘 듣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유언을 했습니다. 그 후에 계모가 아이들을 셋이나 데리고 들어 왔습니다. 새로 들어온 어머니도 링컨을 성경으로 가르치며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링컨의 전기를 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링컨이 위대한 사람으로 될 만한 조건을 하나님은 한 가지도 주지 않았다. 다만 링컨에게 빈곤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를 주었다.”

이것이 링컨이 위대하게 된 유일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프랑스여, 위대한 어머니를 가지게 하라. 그리하면 위대한 자녀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위대한 어머니, 그것은 한 국가가 소유한 재물 가운데 최대의 보배이다.”

감리교(Methodist)의 어머니로 알려진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요한 웨슬레가 다섯 살 때, 국어 교과서를 가르친 것이 아니라 창세기를 펴놓고 글자 하나 하나를 가르쳤고, 문자를 가르쳤고, 성경을 가르쳐서 세 가지를 한꺼번에 공부시켰습니다. 열일곱 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수산나는 그 자녀들을 혼자 다 키우면서 저녁마다 한 명씩 데리고 성경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들 중 찰스 웨슬레와 요한 웨슬레 때문에 프랑스처럼 유혈 혁명도 나지 않고 영국에 영적 부흥이 일어난 것을 역사가를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선지자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등 훌륭한 어머니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디는“내가 성취한 것 가운데 위대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나의 어머니의 덕택이고 은혜이다.”라는 말 했습니다.

신앙이 좋은 아버지와 어머니, 기도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하여 신앙의 명가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기도는 해바라기꽃과 같습니다. 아침에 동쪽을 향하여 몸을 돌리는 해바라기는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떠오를 해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점심 때가 되고 저녁 노을이 질 때 까지 해바라기는 계속 해를 향해 움직입니다.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되어도 해바라기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언젠간 이 어둠이 지나고 다시 해가 틀림없이 뜰 것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캄캄한 밤에도 해바라기는 쉬지 않고 계속 자신의 몸을 해가 뜰 동쪽으로 움직입니다.

우리의 기도 또한 해바라기와 같이 언제나 하나님만을 향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둠이 몰려 왔을 때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낙망하고 실망하여도 하나님만을 믿고 신뢰하는 우리는 이 어둠은 잠시뿐이며 언젠가는 다시 우리를 비출 해가 다시 뜰 것이라 굳게 믿고 인내하여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99% 믿고 따르는 100만 명의 군대보다 100% 믿고 따르는 단 한 사람을 하나님은 들어서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런 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기도는 "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대신 "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끊임없이 사모하고 갈망하는 마음의 상태가 곧 기도이기 때문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누구에게나 실천 가능한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주에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1. 일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2.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3. 고쳐 낫게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계속하여 우리에게 기도를 명하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4. 회복시켜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7절에“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은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70년간의 길고 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해 주시며 행복하고 잘살았던 처음처럼 회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에 보면 아버지와 집을 떠난 둘째 아들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게 될 유산을 미리 받은 둘째아들은 어느 날 재산은 다 정리하여 집을 떠났습니다.

13절에 보면“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 방탕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돈이 떨어졌습니다. 돼지가 먹다 버린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아먹고 길거리에서 잠자는 거지중의 상거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그를 받아주었다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백번천번 돌아와도 아버지가“너는 내 자식이 아니다.”“나는 너 같은 자식을 둔 일이 없다.”며 받아 주기 않는다면 그는 돌아와도 거지이며 버림받은 자식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돌아오면 받아 주시고 다시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본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본문 7절에 하나님은 돌아오게 하시며, 돌아온 사람들을 처음처럼 세워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믿기 전 죄의 포로로 살았습니다. 질병과 고통의 사슬에 묶인 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를 돌아오게 해주셨고 우리의 결박과 사슬을 풀어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죄와 고통과 절망과 좌절과 패배감으로부터 자유케 하시며,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자들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러므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모든 결박 푸셨도다
  나의 결박 푸셨도다 나는 자유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 열광 하나님께 나는 자유해” 아멘

5. 죄악을 사하여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8절에“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불신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신에게 분향하고 제사를 드리다가 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너희가 내게 범한 모든 죄악을 사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죄악을 사한다는 것은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용서받은 후의 삶입니다. 죄사함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합니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면 안됩니다. 취미 때문에, 사업 때문에, 돈버는 것 때문에, 세상 즐거움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 때문에 주님을 소홀히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향해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부르짖어야 합니다.

시편 100편 1절에“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라고 했고, 시편 105편 1절에도“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6.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9절에“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성이 받은 복과 평강 때문에 이방인들이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29편 11절에“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라고 했고, 이사야 26장 12절에 보면“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들은 평강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나라는 평화를 하나님에게서 찾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근세에 이르러 그들은 하나님에게서 평화를 찾지 않고 UN이나 미국 그리고 협상을 통해 찾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 어디서 어떤 사태가 돌발할지 예측을 못하는 것입니다.

미국 CNN방송이나 영국의 BBC방송이 하루도 빠짐없이 동향을 뉴스에 담아 보도하는 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은 이트(도시)라는 말과 샬롬(평화)이라는 말이 합성해서 된 이름입니다. 그 뜻은“평화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름과는 정반대로 그동안 20번이나 주인이 바뀌었고, 그 중 10번이나 완전 폐허가 된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오늘날도 끊임없이 폭탄테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세계가 이곳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4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회교도 지역, 기독교 지역, 유대인 지역, 아르메니안 지역입니다. 특히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좁은 땅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평화가 깨질지, 언제 총성이 울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에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들고 땅에서 솟아나는 평강은 바람 불면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시들지도, 날아가지도, 꺼지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겐 그 평강과 그 평화가 필요한 것입니다.

찬송가 469장은 코넬과 쿠퍼가 작사 작곡한 찬송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 맘 속에 솟아난 이 평화는 깊이 묻히인 보배로다.

나의 보화를 캐내어 가져갈자 그 누구랴 안심일세.

이 땅 위에 험한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있나

우리 모두다 예수를 친구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는 그곳이 낙원입니다. 총소리가 울리면 엄마는 놀라지만 아이는 놀라지 않습니다. 비가 쏟아져도 엄마는 뛰지만 아이는 뛸 필요가 없습니다. 배가 고파 울면, 엄마가 먹을 것을 챙기기 때문에 아이는 먹을 것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이유는 엄마가 다 해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는 평화는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주십니다. 평화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이곳 저곳을 기웃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심령과 가정과 교회와 나라에 이 평화, 이 평안, 이 평강을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7. 소리가 다시 들리게 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10-11절에“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고 황폐한 그 거리에 다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 신부의 소리,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는 소리가 들리게 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적막하고 고요했던 예루살렘이 회복되면서 북적대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늙으면 어디 조용한데 가서 여유있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잘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젊을 땐 산 속도 좋고 바닷가도 좋고 사람 없는 계곡도 상관이 없지만, 나이 들고 늙으면 사람 소리도 들리고 자동차 소리도 들리는 곳이 좋습니다.  늙을수록 외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사는 집에는 사람 소리가 들려야 정상입니다.

전쟁에 져서 폐허가 된 예루살렘, 사람소리, 짐승소리가 끊어졌습니다. 웃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노랫소리가 끊긴 지 7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거리에 다시 사람이 왕래하고 웃는 소리, 떠드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젊은이들의 함성이 터지게 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여호와의 집에서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찬송소리, 기도소리, 감사의 말은 믿음과 비례합니다. 찬송소리가 없고, 기도소리가 없고, 감사의 말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히브리어로 찬송을“할랄”이라고 합니다. 할랄은 본래 소리에서 기원한 말입니다. 찬송은 소리를 내서 부르는 것입니다. 기도도 내 소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도 말로 표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적막한 가정에 찬송 소리가 들리게 해야 합니다. 폐허 같은 내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해야 합니다. 교회에 기도소리, 찬송소리가 그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1절에“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니라”고 했고, 10절에 보면“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했고, 12절에 보면“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도“나 여호와가 말하노라”고 했고, 17, 20, 23, 25절에서도“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했습니다.

구약 예언서의 중요한 요점을 우리에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구약시대 예언의 절차는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예언을 받은 예언자들이 백성들에게 예언의 말씀을 대언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예언자들이 사용한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여호와의 말씀이 나에게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주실 때마다“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같이 말씀하신 것을 예언자들은 그대로 받아서 대언했던 것입니다.

말씀을 받은 예언자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더하거나 덜하면 안 됩니다. 그대로 원형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라고 했고, 19절에 보면“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들은 백성들은 들은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소금 장수네 집에 나귀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주인을 따라 늘 등에 무거운 소금을 싣고 다니며 불평, 불만이 많은 나귀였습니다. 어느 날 소금을 싣고 개울을 건너다 실수로 넘어졌는데 소금이 물어 녹아 짐이 가벼워졌습니다. 나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 후로 나귀는 종종 넘어져 짐을 가볍게 하곤 했습니다. 나귀의 얕은꾀를 알아차린 주인이 괘씸하게 생각하고 하루는 꽁꽁 뭉친 솜을 잔뜩 실었습니다. 나귀는 여느 때처럼 미끄러지는 척하고 물에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등에 실은 솜뭉치는 천근만근 더 무거워졌습니다. 주인은 무거워 쩔쩔매는 나귀에게 "니 꾀에 니가 넘어졌지"라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부르짖어 기도 합시다. 말씀대로 순종합시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봅시다. 손을 들어 주님의 옷자락을 잡읍시다. 입을 열어 주의 이름을 부릅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리라.”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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