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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을 비우면 경건이 보인다 (딤전 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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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광민 목사

웨슬리 목사님은 경건생활을 위하여 7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너는 항상 기도하는가? ②너는 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가? ③너는 모든 경우에 감사하는가? ④너는 욕심을 내는 것이 없는가? ⑤너는 두려워하는 것이 없는가? ⑥너는 중심에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는가? ⑦너는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경건은 신앙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경건(유세베이아)은 요세프스에 의하면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이며 하나님께서 바라고 계시는 생활 방식”입니다. 경건은 영어로는 “godliness"인데, 하나님의 풍성과 인격을 닮는 삶을 뜻합니다. 오늘은 봉독한 디모데전서 6장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여 <마음을 비우면 경건이 보인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겠습니다.

1. 말씀과 경건은 함께 가야 한다.

본문은 말씀과 경건이 함께 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물론 본문의 3-5절은 예수님의 말씀과 경건의 교훈에 착념치 않는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 성도들 중에는 다른 교훈을 말하는 분들이 없음으로 오늘의 주제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오늘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경건에 착념하여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자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말씀과 경건은 함께 가야 합니다. 3절에 보면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않는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위에서 두 요소, 말씀과 경건은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로서 함께 가야 하는 것입니다.

경건 없는 말씀은 위험합니다. 그것은 4절에서 암시하듯이 오직 변론과 언쟁을 일으키고 결국은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을 가져올 뿐입니다. 또한 말씀이 없는 경건도 위험합니다. 그것도 5절이 암시하듯이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수단)로 사용하게 될 뿐입니다. 경건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 없는 경건은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쓰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경건은 함께 가야 합니다.

2. 욕심을 버려야 경건해진다.

본문 6-10절의 말씀의 주제는 욕심을 버리면 경건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려야 경건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경건이 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욕심이 죄를 짓게 하고, 인간성을 파괴하여 추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욕심 대문에 추해진 사람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재화의 근본”이라는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동리에 오랫동안 함께 이웃에 살아온 두 집이 있었습니다. 그 두 집은 성만 다르지 형제처럼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편 집 암탉이 서편집 둥지에 가서 알을 낳는 것을 보았다고 어린 아이가 말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기네 닭이 이웃집에 가서 알을 낳고 내리면서 꼬꼬댁 꼬꼬댁 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동편집 부인이 서편집에 가서 알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편집 부인은 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알을 주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부터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욕을 하고 싸우다가 드디어 몸싸움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남편들도 자신들의 아내에게 동정이 쏠리면서 거들다가 자신들도 싸움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두 집은 서로 분을 삭이지 못하고 억울하다고 고소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끝이 나지 않고 1년, 2년, 3년이 지나도 끝이 나질 않았습니다.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참 분주한 여름철에도 일하다가 말고 재판소에 출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재판 비용으로 인하여 양가의 가계는 기울어져 갔습니다. 마침내 동편집 부인이 서편집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바람이 심하게 불어와 자기의 집에도 불이 붙어 삽시간에 두 집을 태워버렸습니다. 그제야 두 집은 잿더미를 바라보고 한탄하면서 크게 후회하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01년 5월의 이야기입니다. 60년대 재벌 가운데 하나였던 모 그룹의 전 회장 부부가 장남을 상대로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서울지법 서부지원에 냈습니다. 전 회장 B씨는 “셋째 아들에게 건물 한 채를 물려주려고 하자 큰 아들이 폭언을 하고 협박을 하여 신변에 위협을 느낀다”며 “장남이 100m 이내로 접근하거나 전화하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난 B씨는 이미 장남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막내에게 주려는 건물까지 독차지 하려고 아버지를 협박하고 폭언까지 하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추한 일입니까? 욕심 때문에 형제 우애를 깨고 아버지에게 협박을 하고 폭언까지 하였으니 얼마나 추한 모습을 보였습니까? 모두 욕심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성도들은 욕심을 버리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3.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라

6-8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십시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아멘. 자족의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존재입니다. 1978년 부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산 초량동에 76세 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아들 둘, 딸 둘을 길렀습니다. 교육도 다 시키고 결혼도 시켜 모두 잘 살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도 큰 아들 집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병에 들었습니다. 회복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임종은 다가오고 자녀들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자녀들에게 억울해서 못 죽겠다고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길게 한 숨을 내쉬며 “내가 너희 4형제 키우느라고 죽을 고생을 했다. 다른 소원은 다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아 억울해서 못 죽겠다”고 말하면서 다이아모드반지를 하나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로 태어나서 평생 다이아몬드 반지를 한번 끼어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자녀들이 밖으로 나와 의논을 했습니다. 얼마짜리를 해드릴 것인가 의논하다가 큰 며느리의 제안으로 얼마 전에 350만원을 주고 산 이웃집 아주머니의 반지를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큰 며느리는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며칠간 반지를 빌렸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는 자녀들이 힘을 모아서 산 것처럼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고 진짜인가를 물으면서 아주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더니 반지를 입에 넣고 꿀꺽 삼켜 버렸습니다. 그리고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자녀들에게 "이제 안심이다 저승 갈 때 반지 끼고 가게 됐다“고 말하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자녀들은 난처했습니다. 돌아가신 것은 돌아가신 것이고 반지 걱정에 제대로 울지도 못했습니다. 돈을 아끼려다 350만원을 날리게 되었으니 큰 걱정이었습니다. 큰 아들은 해부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작은 딸은 엄마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형제들은 옥신각신 하다가 화장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이아몬드반지를 찾기는 하였으나 너무 많이 손상이 되어 형제들은 할 수 없이 350만원을 모아 변상했다고 합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가족이 몰락하고 재산을 잃는 아픔 속에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자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어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 1:20-22).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취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자족해야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4. 건전한 물질관을 가지라

9-10절의 말씀을 봉독하십시다. “부하려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하는 것, 부하려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물론 성경은 부자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직 더러운 부자와 자기 밖에 모르는 부자를 공격합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①열심히 벌어라 ②열심히 저축하라 ③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라. 아주 멋있는 교훈의 말씀입니다. 무조건 부자를 배척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더러운 부자가 많습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개처럼 벌려고 하면 안 됩니다. 큰돈을 못 벌더라도 사람답게 벌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만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청년이 일본의 유명한 경제학자인 사쿠야마씨를 찾아와 부자가 되는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쿠야마씨는 아주 간단하게 “오줌을 눌 때 한 쪽 발을 들고 누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선생님, 그건 개나 하는 짓 아닙니까?” 그러나 사쿠야마씨는 “그렇지, 청년, 사람다운 짓만 하고는 부자가 될 수 없다네”라고 하였답니다. 세상에는 더러운 부자가 많을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부자는 싫어하십니다.

또한 세상에는 자기 밖에 모르는 부자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부자는 싫어하십니다. 가난한 나사로를 돌보지 않고 자신의 향락만 추구하던 부자를 공격하신 비유의 말씀이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린 부자가 지옥에 떨어져 목말라 하는 이야기를 통해 자기밖에 모르는 부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즈음 나라에서는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의견이 갈라져 있습니다. 성장정책을 우선 펼쳐야 나눌 것도 있다는 이론도 있습니다. 또한 나누는 것을 미루다가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되었으니 하루빨리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러한 혼란은 자기밖에 모르는 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하루 속히 건전한 물질관을 갖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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