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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 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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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목사 (벧엘감리교회)

스트라스보그의 타울러(Tauler of Strasbourg)는 14세기의 위대한 성자였습니다. 어느 날 거지 한 사람을 길에서 만났습니다. “형제여, 하나님께서 형제에게 좋은 날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자, “저는 한번도 나쁜 날을 가져 본적이 없습니다.” 하고 거지가 대답했습니다. 맹랑한 대답에 깜짝 놀란 타울러는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친구여, 하나님께서 친구에게 행복한 날 주시길 비네.” 하고 다시 인사하자, 그 거지는 또 대답했습니다. “저는 한번도 불행해 본적이 없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 말에 타울러는 난감해졌습니다. “아니, 한 번도 불행해본 적이 없다고? 자네, 그 말이 정말인가?”, “그렇고 말고요. 날이 좋을 때나 비가 올 때나 저는 하나님께 똑같이 감사 드립니다. 제가 먹을 것이 많을 때나 먹을 것이 없어서 굶을 때나 역시 하나님께 고맙게 생각하지요. 하나님의 뜻이 결국 저의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언제나 저를 기쁘게 만들지요. 그러므로 제가 한번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왜 불행하다고 말해야 합니까?” 타울러는 거지의 감사하는 모습에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유대인들의 감사와 송축을 담은 찬송시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감사예물을 드리면서 이 시편을 불렀습니다. 그들이 대열을 지어 성전 뜰로 행진할 때 앞에 선 자들이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가라” 고 외치면, 뒤따르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라” 고 화답하였습니다. 이 시편 100편은 ‘유빌라테’ 즉 ‘기쁨의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감사의 찬송이야말로 모든 시대에 걸쳐서 예배드림에 활력소가 됩니다. 이시간 우리 모두 ‘날 구원하신 주 감사’ 찬양을 드립시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 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헤쳐나온 풍랑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 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장미꽃 가시 감사 따스한 따스한 가정 희망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감사는 천륜이고 인륜입니다. 감사는 반드시 해야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에 비해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 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어떤 분이십니까?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본문의 시편기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를 나와 관계되어진 하나님으로 알 때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와 어떤 관계를 가지신 분이시기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까?

첫째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1970년대에 알렉스 헤일리가 쓴 ‘뿌리’ 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유명한 흑인 작가가 자신의 혈통적 가계의 뿌리를 찾기 위해 흑인 노예로 잡혀 왔던 아프리카로 조상을 찾아 나서는 내용입니다. 이 책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그 이유는 단순히 과거 찾기에 대한 향수를 부채질해서가 아니라 한 흑인 가정의 뿌리를 찾음으로써 그 가정의 인간성과 인생의 의미를 회복시켜 주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뿌리를 발견함으로써 인생의 의미를 알고 앞으로의 어떤 방향으로 살아갈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인간됨은 그 뿌리가 어디에 있느냐 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신앙도 뿌리를 알아야 신앙인의 자세가 바르게 정립될 수 있습니다. 나의 뿌리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 됨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 나를 시작하신 하나님! 나의 근원이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3절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를 KJV 번역은 ‘not we ourselves’ 라고 했습니다. 원어인 히브리어의 뜻과 같은데 이는 “우리를 만드신 이는 하나님이시오 결코 우리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마치 스스로 태어나 스스로 살아가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에 빠지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바른 태도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나는 그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늘 확인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날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니” 라고 신앙고백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를 영화롭게 해드리는데 있음에 삶의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43장 21절을 통하여 “이 백성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함이라” 고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해 감사해야 할 이유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분이시며 그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함에 있노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서머나의 감독 폴리캅은 주후 155년 경 로마 총독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당합니다. "예수가 왕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로마 황제가 왕임을 고백하라" 는 강요를 당했습니다. 그때 폴리캅은 이렇게 대답하며 불태워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는 86년 동안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섬겨 왔소. 그리고 그 분은 나에게 한 번도 잘못하신 일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 분을 부인하며 모독할 수가 있겠소. 그리스도는 나의 왕이요." 신바람의 황수관 박사는 하나님의 왕 되심을 증거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은 가난하고 불행하게 자랐으나 의과대학의 교수가 된 것은 자신을 다스리시는 왕 되신 하나님의 은혜였노라고 감사하며 삽니다. 여러분은 왕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감사하며 살아갑니까? 우리의 운명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 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왕 되시는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도 우리를 높여주실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왕 노릇하게 하시리라고 요한 계시록 20장 4절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에도 “우리는 그의 것이니” 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 되시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소유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사야 43장 1절을 통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 행할 때에 타지도 않을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고 말씀하시며 자기의 소유된 백성들을 완전하게 책임져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에도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 되신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를 기르시는 목자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한번은 유명한 인사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유명한 배우가 참석한지라 사람들이 그에게 멋진 솜씨를 보여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는 시편 23편을 낭낭한 목소리로 멋지게 낭송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훌륭한 솜씨에 감탄하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목사님께도 한마디 해주시기를 부탁했습니다. 목사님도 시편23편을 암송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의 목소리는 그리 좋지 못했고 또 멋지게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암송이 모두 끝났을 때에 사람들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습니다. 배우는 목사님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그저 시편 23편을 알고있을 뿐인데, 목사님은 그 안에 계신 목자를 알고 계시는군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과 어떤 관계라고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고백해야 할 여호와가 나를 기르시며 인도하시는 목자 되심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3절 하반 절에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길러주십니다. 또한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십니다. 사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의 인도함을 받느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더욱이 의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인생의 길을 누구의 인도함을 받으시렵니까? 우리를 길러주시는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전문가중의 전문가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의 삶을 살도록 하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시편 기자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그 앞에 나아갈 지어다’ 라고 찬양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 되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기에 우리는 그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또한 우리는 그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는 기르시는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이러한 관계를 통해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사람입니다. 때로 인생을 살다보면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고 깨닫는다면 어떤 환경 가운데서라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감사한 것은 목자 되시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의 인도하심을 믿었기에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윌리암 로오는 "엄숙한 부르심"이라는 글에서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성자가 누구인지 알기를 원하십니까? 그는 기도를 제일 많이 하고 금식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선과 구제를 제일 많이 하고 절제와 공의에 있어서 가장 탁월한 사람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성자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와 불평은 할수록 커집니다. 감사도 할수록 커지고 불평도 할수록 커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보답하려는 마음에서 감사가 더욱 커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의 창조주요, 왕이시오, 목자이신 하나님께 최대의 것으로 무한 감사를 드리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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