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양떼를 향한 목자의 심정 (렘 23:1~6)

  • 잡초 잡초
  • 814
  • 0

첨부 1


- 설교 : 곽주환 목사

해외에서 여행을 다닐 때에 늘 신경 쓰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여권이다. 만일 여권을 잃어버린다면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어느 농촌의 할머니가 해외여행을 떠났다. 가이드가 여권을 소중히 잘 간직하라는 말을 듣고 할머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베개 밑에 두는 습관이 있었다. 호텔에 머물렀을 때에 여권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잘 둔다고 베개 밑에 두고 다음 날 아침에 그 호텔을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였다고 한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고 한다. 어디에 있는 줄 알면서도 잠시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한다.
잃어버리는 아픔이 우리에게 있다. 죽음을 통해서 사랑하는 가족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사랑하는 친구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실수로 인하여 돈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건강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잃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누가복음 15장에 세 가지의 비유가 기록되어있다. 첫째는 양이 백마리가 있는데 아흔 아홉 마리는 우리에 있고,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렸다. 목자는 그 한 마리의 양을 찾아서 떠난다.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두 번째 비유는 어떤 여자에게 열 드라크마가 있었는데 하나를 잃어버렸다. 등불을 켜고 잃어버린 하나의 드라크마를 찾으려 애를 쓴다. 세 번째 비유는 탕자의 비유이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갖고서 도시로 나가 모든 것을 탕진한다. 아버지는 물질로 인하여 아들 하나를 잃었다. 잃어버린 아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이다. 세 비유의 공통점은 잃어버렸다. 그리고 찾았다. 너무 기뻐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주님의 마음을 발견한다. 목자의 심정을 발견한다. 목자는 잃어버린 자를 찾는 것이 목자의 심정이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떠나는 목자의 심정을 생각해 보라. 참으로 이상하다. 우리 교회에 수 천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린다. 예배드리러 온 성도들을 보면서 기뻐하기 보다는 오늘 누가 오지 않았는가? 무슨 일이 있어서 못 왔는가? 못 온 사람들을 향하여 마음이 쏠린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가?

사순절 새벽기도회로 많은 성도들이 함께 모였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이 찬양이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강단에 서기 전에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전할 기도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기도하고 눈을 뜨니 "목사님 급히 전화 주세요. 000집사. 전화번호 -----"가 적혀 있었다. 이 메모를 보는 순간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혹시 이 집사가 약이라도 먹고 자살하려고 망설이는 중에 목사님에게 기도라도 받고 싶은가? 아니면 어디에서 뛰어 내리기 전에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그런가? 분명히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서 급히 전화한 것이 분명하리라는 상상을 하였다. 새벽기도를 무슨 정신으로 인도했는지 모른다. 어느 지역에서 찬양을 했는데 당황해서 기도 잘했다고 칭찬할 정도이었다. 설교도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모른다. 통성기도를 시작하게 한 후에 뛰어서 사무실로 향하였다. 하나님께 잠시만 그의 마음을 잡아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급히 서재로 들어가다가 그만 벽에 부딪혀 안경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캄캄한 새벽에 별을 보았다.

안경이 부러진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화를 즉시 걸었더니 집사님이 받는다. "집사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다급하게 물었다. 그 집사님의 대답은 "목사님 우리 아들이 밤새 사고를 쳐서 경찰서에 와 있어요. 혹시 경찰서에 목사님이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해서 전화했는데, 다행히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잘 해결되었어요."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온 몸에 맥이 풀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다행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부러진 안경이 책상위에 흩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왠지 마음이 흐뭇했다. 그래도 나의 마음에는 양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구나. 왠지 내 자신이 대견스럽게 느껴졌다. 안경 깨진 새벽이었지만 목자의 마음을 발견한 새벽이기도 하였다.

목자의 심정은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릴까봐 한 사람이라도 믿음을 빼앗기게 될까봐. 안타까운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목자의 심정이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본문의 말씀을 읽는 중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여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양 떼를 잃어버리는 목자에게 주시는 하나님 경고의 말씀이다. 동시에 목자의 심정이 여기에 표현되어 있다. 잃어버리면 안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잃어버린 사람들을 찾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잃어버린 사람은 아닌가?
혹시 우리의 마음이 빼앗긴 곳은 없는가? 어떤 사람이 운동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주일에 교회에 오는 것 보다 친구들과 모여서 볼을 차고 운동하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운동에 그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주님의 심정은 그 빼앗긴 마음을 다시 찾고 싶어 하신다. 어떤 사람은 등산을 좋아한다. 주일이면 일찌감치 산을 향하여 간다. 산에 마음을 빼앗긴다. 빼앗긴 마음을 주님을 다시 되찾고 싶어 하신다. 어떤 사람은 가족을 너무 좋아한다. 물론 가정을 사랑하고, 가정이 무엇보다도 귀하다. 주일에는 식구들과 함께 있어야지 내가 혼자 어떻게 교회에 가느냐? 물론 어려움이 있기는 하겠지만 가정에 마음을 빼앗긴다. 마음을 잃어버린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자존심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이 있다. 누구와 말다툼을 한다. 그 사람이 보기 싫어서 교회에 오느니 않 오느니 하면서 주일을 지키지 못한다. 자기의 마음을 자존심에 빼앗겼다. 자기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면 안 된다. 우리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어떤 가정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부인이 고스톱을 좋아하기 시작한다. 재미삼아 친구들끼리 친 고스톱의 판이 커지기 시작한다. 찜질방에서 고스톱을 친다. 아이의 운동회가 있는 날에도 노름하느라 엄마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는다. 결국에는 구치소까지 가는 신세가 된다. 억지로 시댁에는 들키지 않았다. 남편이 계속해서 고치고 잘 살아 보려고 한다. 구치소에서 출감하여 손을 씻고 열심히 살아 보려고 한다. 온 세상이 화투처럼 보인다. 붉게 물든 단풍 잎을 보면 열자리가 생각이 나고, 지나가다가 머리가 벗어진 사람들을 보면 빛나는 팔광이 생각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부인은 집에 있지만 노름판에 팔려버리고 말았다. 노름판에 부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가정이 온전할 수 있겠는가?

에스겔 34장의 말씀을 보라. 하나님께서 목자에게 요구하시는 내용이 있다.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라.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내라. 잃어버린 자를 찾으라.” 목자의 심정은 잃어버린 자를 찾는 마음이다. 빼앗긴 마음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욕심에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유혹에 빼앗기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의 마음을 빼앗기고, 우리 마음 데로 살아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에는 죽는 것이다. 결국에는 망하는 것이다. 결과가 좋을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지 않고 잃어버린 자가 되지 않겠는가? 본문은 명확하게 말씀한다. 흩어지지 말라. 잘 모이라는 말씀이다. 오늘 스스로 진단해 보자. 내가 모이는 자리에 가고 싶지 않으면 나의 마음이 다른 곳에 빼앗긴 것이다. 주일이면 예배를 드린다. 예배드리는 자리에 내가 기쁜 마음으로 가고 싶어야지 억지로 간다면 그 마음이 다른 곳에 빼앗기기 쉬워진다.

달력의 주일 표시는 모두 빨강색으로 되어 있다. 빨강색은 가던 길을 멈추라는 신호이다. 정지하라는 신호이다. 살면서 이렇게 저렇게 빼앗긴 우리 마음의 자리를 다시 찾아보는 것이다. 나의 마음이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뒤를 쳐다 본다고 한다. 내가 너무 빨리 달리느라고 나의 영혼이 나를 따라 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뒤를 쳐다 본다고 한다. 우리도 너무 바쁘게 살고, 재미있게 살다가 보니 나의 영적인 생활은 소홀하게 생각하고, 나의 출세에, 돈을 모으는 일에, 재미있게 사는 일에 나의 마음이 빼앗기지는 않았는지 내 자신을 잘 살펴봐야 한다.

내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모이는 자리에 기쁜 마음으로 있어야 한다. 99마리의 양이 함께 모인 자리에 같이 있어야 한다. 따로 떨어져 나가면 길을 잃게 된다. 방황하게 된다. 목자의 심정은 잘 모여 있을 때에 마음이 평안하다. 한 사람이라도 따로 떨어져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99마리의 양이 잘 모여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목자는 떨어진 한 마리의 양,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 함께 모이기를 기뻐하자. 함께 모이는 자리를 소중하게 여기자. 에스겔 말씀에 양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함께 모여 우리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살자. 인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한참 학생들이 모여서 데모할 때가 있었다.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서울대학교에 같이 모여서 데모를 하는데 전경들과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몸싸움에 밀리기 시작했다. 점점 뒤로 밀렸다. 이를 본 학생회장이 학생들을 향하여 “그대로 가라. 밀리지 말고 그래도 가라.” 그대로 가라고 하는 말을 학생들이 “고대로 가라”는 말로 들었다. 그대로가 고대로 가라는 말로 바뀌었다. 온 학생들이 고려대학교로 갔다고 한다. 인도자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우리의 마음이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리가 잃어버린 양이 되지 않으려면 목자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따라갈 때에 우리는 잃어버린 양이 되지 않는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살자.
목자의 심정은 잃어버리지 않고 함께 모여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이 마음이 바로 우리의 목자되신 주님의 심정이다. 동시에 이 부족한 종의 심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성전을 한참 짓고 있다. 우리의 마음이 조금도 흩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교회에 않 나온다든지 떠난 다는 말은 하지 말자. 우리의 마음을 모으자. 우리의 열심을 모으자. 우리의 기도를 모으자. 우리의 땀을 모으자. 우리의 눈물을 모으자. 우리의 정성을 모으자. 우리의 헌신을 모아서 주의 성전 지어보자. 장로님은 장로님들이 힘을 잘 모으고, 각 사역팀은 사역팀 별로 힘을 잘 모으고, 성가대면 성가대원들이 힘을 잘 모으고, 각 기관이면 기관별로 힘을 잘 모아서 주의 거룩한 일을 이루어 드리자. 이것이 바로 양떼를 향한 목자의 심정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목자되신 주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양떼가 되기를 바란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