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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 곳을 택하여 그 땅을 고치리라 (대하 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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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조병우 목사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내 백성이 비록 불행 가운데 있다하더라도 내게 기도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할 뿐 아니라 이 땅을 고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이미 이 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으로 여기 영영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 있으리라 했습니다. 솔로몬이 한 평생 동안 자신의 삶에서 가장 복된 시간이 있었다면 바로 하나님을 만났던 기브온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을 고치는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내가 이미 네 기도를 듣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고치는 방식은 바로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기도를 통해서 인생을 고치고 세상을 고치시는 분입니다. 기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고침의 수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고침을 받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기도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고침을 받은 사람들은 기도에 자리에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내려가거라 이 백성이 부패하였구나 그런즉 내가 그들에게 진노를 내려 이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패했다고 말씀하신 이스라엘, 하나님이 진노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이스라엘을 위해서 모세는 기도하기를 "하나님 이 백성을 광야에서 진멸하려고 애굽에서 인도하셨습니까 주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옵소서,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너희 자손에게 이 땅을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성전을 주신 것은 기도의 집으로 주신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전은 이 세상을 치유하는 자리로 구별하신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 내 백성이 어떤 불행을 당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고치시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에게 주신 가장 귀한 은혜는 기도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인생에게 많은 은혜와 복을 예비해 두셨지만 구하는 자가 그 은혜와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필요를 아시지마는 그 필요를 구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공중의 새도 하나님이 먹이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도 먹이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님은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경에 한나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치유받은 사람입니다. (삼상 1:20)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삼상 1:27)"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한나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고 말하면서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기도를 통해서 인생의 삶의 조건들을 고치시는 분입니다.(에스더)

1950년 6월 25일날 6.25사변이 터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아군과 적군 그리고 유엔군까지 합쳐 1,420,000명이 죽었습니다. 민간인이 373,599명이 죽었습니다. 행방 불명이 된 사람이 303,212명이나 됩니다. 몇 주도 못되어서 부산까지 내몰려서 희망이 거의 사라질 때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한국의 교회 대표들이여 이 주간이 우리 민족의 생사가 결정되는 중요한 주간입니다. 모든 교회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부산의 모든 교회가 꿇어 엎드려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당시에 쫓겨간 교회 대표들은 부산의 한 교회에 모여서 목을 놓고 하나님 앞에 죄를 자복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 한국 참전 결정을 위한 UN총회가 뉴욕에서 있었습니다. 다른 데서는 모두 통과되었습니다만 마지막 관문인 UN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통과가 남아 있었습니다. 한 나라라도 비토하면 그 거부권에 의해서 그 많은 국가들이 의논하고 결정한 것이 무효가 됩니다. 다른 데는 다 가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이 소련의 거부권이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당시 소련 외상 비신스키라는 사람이 UN 총회에 참석을 했었는데 상임이사국이 결정하는 그 마지막 회의에 참석을 안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자기 개인 일을 하다 늦어서 회의 끝나고 간신히 도착했다는 설도 있고요.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국제법 박사입니다. 당시 미국 국무장관 덜레스와 더불어 세계를 양분했던 명 외상 중의 외상이었습니다. 소련외상 비신스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가 참석하지 않으면 그 회의가 성립 안 되는 줄로 잘못 생각했답니다. 이 후자가 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국제법 박사이고 외교에는 귀재라고 하는 그가 왜 착각하게 되었을까요? 성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입니다. 오늘 이 말씀도 말합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내게 구하면" 내가 듣겠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성경에는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함이 바로 죄가 되고 악이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하 12:14) "르호보암이 마음을 오로지하여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함으로 악을 행하였더라"
(대하 16:12) "아사가 왕이 된지 삼십 구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
사무엘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쉬는 죄를 범치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 없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때문에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겠다는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이 곳을 택하여"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하나님의 고치심을 받는 장소를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을 만나실 때에 언제나 특별한 장소를 정하시고 그 장소로 부르시고 그 장소에서 만나주신 분이십니다. 성경에 말세에 모이기를 폐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임에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교회를 통해서 인생을 고치시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만나실 때도 특별히 모리아 산으로 부르셨습니다. 그 모리아 산이 바로 성전이 세워진 산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모리아 산에서 만나신 것은 앞으로 하나님이 인생들을 만나시는 장소로 성전을 구별하신 사실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때에도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시고 만나 주셨습니다. 또한 엘리야를 만나실 때도 기어히 호렙산으로 부르시고 엘리야를 만나심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장소를 택하심은 바로 인생을 고치시는 장소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만나시는 장소를 택하신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나시겠다는 비밀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도 주의 몸된 교회를 통해서 우리를 만나시는 원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도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상은 오늘도 그리스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은혜는 결코 기독교가 말하는 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셋째 "내게 제사하는 전을 삼았으니"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를 통해서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고치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문제를 고침받고 싶다면 먼저 예배에 성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많은 문제가 예배의 실패에서 시작되고 인생의 많은 문제가 예배를 통해서 치유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고침 받은 사실들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을 보면 이 여인은 인생을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 소외된 사람이었고 자기의 세계 속에 갇혀 살았던 사람입니다. 참으로 사랑에 목말랐고 진리에 목말랐던 이 여인을 만나신 후에 주님이 주신 불행한 인생을 구원하신 처방전이 바로 바른 예배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모든 인생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처방전입니다.

야곱은 하나님 앞에 예배를 통해서 자신의 가정을 치유한 사람입니다. 외동딸은 추행을 당하고 아들은 살인자가 되었던 상황에서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벧엘 즉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시고 그 가정의 문제들을 치유하여 주신 것입니다. 교회가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면 그 교회는 세상을 치유하는 힘을 소유하게 됩니다.

과거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려신학교 학장님이셨던 박윤선 목사님이 주일날 후배 선교사가 미국으로 떠나는데 마중 나갔다가 주일날 버스를 탔다해서 학교를 그만두셨습니다. 주일 날 예배 이외에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바로 그들 신앙이었습니다. 물론 율법적으로 흐르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지켜야 합니다.

그래도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교회의 예배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의 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치유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예배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삶의 치유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치유하시는 시간을 소홀히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치유를 다른데서 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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