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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 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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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상훈 목사 (승동교회)

신8:11∼18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향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흠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 큰 병원을 개업을 하고 있는 어떤 의사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의 병원에 특별한 환자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 환자는 병원에 올 때마다 여러 사람의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왔습니다. 그 사실로 보아서 그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거나 또는 대단히 돈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는 아랍 계통의 어느 나라의 왕자였습니다. 곧 그 나라의 왕이 될 신분이었습니다. 의사는 그 사실을 알고서 온갖 정성을 다해서 보살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 환자의 병은 깨끗하게 나아서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진료비를 청구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순간 의사의 마음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그에게 얼마를 청구해야 될는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한 나라의 왕자요, 곧 그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니까 그것으로 족하게 생각을 하고 무료로 해 주는 것이 좋을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지금까지 온갖 정성을 다해서 그를 치료해 주었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비싸게 청구를 해야 될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50불 정도만 청구를 할까, 아니면 500불, 아니면 이왕 청구하는 김에 좀 비싸게 5,000불 정도를 청구해 버릴까? 그는 그 문제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에게 그 문제를 상의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목사님에게 설명을 다 드리고 나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럴 경우에 제가 얼마를 청구하면 좋겠습니까?"
목사님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그에게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방법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고서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진료비 청구서에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당신의 신분에 걸맞게 지불해 주십시오."
그리고서 그 청구서를 그 환자에게 보냈습니다. 며칠 뒤에 그에게서 답장이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덕분에 건강하게 되었다는 감사의 글과 함께 수표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금액은 자그만치 7만 달러였습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8천만 원에 이르는 많은 돈이었습니다. 의사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시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며칠 뒤에 의사에게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교회 목사님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그 안에는 자그마한 쪽지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당신의 신분에 걸맞게 하나님께 감사 헌금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거기에는 감사 헌금 봉투도 한 장이 들어있었습니다. 받은 바 은혜에 따라서 당신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어떤 부잣집에 외동아들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절망적이었습니다. 병원에서도 그의 병을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자는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붙들고 자기 아들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아이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부자는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최고급 호텔에 있는 일류 레스토랑으로 초대해서는 좋은 음식으로 대접을 했습니다. 그는 주일날 하나님께도 감사의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가 감사 헌금으로 드린 액수는 고작 2만원뿐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음식값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신분에 걸맞지 않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린 셈입니다.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는 컸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드린 감사는 쥐꼬리보다도 작은 형식적인 감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가 여태껏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세상일에 쫓기다보니 여태껏 한 번도 제대로 된 감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감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오늘만이라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제대로 된 감사,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감사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를 제목으로 삼고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축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감사의 이유는 출애굽의 은혜였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는 죄의 종들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사탄의 권세에 얽매여서 살았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장차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영원히 누리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하루는 길을 걸어가고 잇었습니다. 목사님은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등 앞에 잠시 멈추어 섰습니다. 그때 한 청년이 목사님 앞으로 다가오더니 인사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에 출석하는 청년입니다.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늘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평소에 성경을 읽으면서 늘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목사님에게 좀 여쭈어보고 싶은데 대답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목사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청년에게 말했습니다.
"그러지요, 제가 아는 범위에서 대답해 드리지요? 무엇이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그때 청년이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도 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필이면 가룟 유다처럼 자기를 배반할 사람을 자기의 제자로 삼으셨습니까?"
그때 목사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글쎄요. 저도 그것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사실 제게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있답니다."
청년은 그 말을 듣고서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니 목사님처럼 늘 믿음으로 사시는 분에게도 궁금한 것이 있으십니까? 그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목사님은 웃으시면서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내가 늘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왜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해주셨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청년은 목사님의 그 말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실 우리에게는 가룟 유다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룟 유다보다도 더못한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시고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깊이 생각한다면 다른 것은 절로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만 회복이 되면 저절로 다른 문제는 쉽게 풀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송가 405장은 이렇게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와,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그렇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것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장차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도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러한 은혜를 생각할 때 우리는 절로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부자가 절망적인 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곧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는 큰 대학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런데 차도가 있어서 다행스럽게도 그의 몸이 점점 좋아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퇴원을 하게 될 때, 그 대학병원에 연구기금으로 5억 원을 희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일 주일이 지났습니다. 그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5억 원은 너무 많으니까 절반 정도만 희사를 해야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병이 완쾌가 되어서 퇴원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 부자는 일억 원만 희사하기로 또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그때 그의 양심이 그를 질책했습니다.
'이놈아, 네가 죽게되었을 때는 너의 재산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게 생각을 하더니 이제는 살게 되었다고 또 욕심을 부린단 말이냐? 이 못된 놈아! 그러다가는 네가 퇴원할 때는 아예 입원비조차도 깍아 달라고 하겠구나!"
그 소리를 듣고서 그는 마음을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에 생각했던 5억 원의 두 배가 되는 10억 원을 그 병원에 희사하고서 퇴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식었습니까? 구원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다시 한번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을 뜨겁게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는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12∼14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사람이 배가 고프면 코가 예민해집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면 자동적으로 코가 무디어지기 마련입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절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형통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흔히들 착각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와서 이런 인사를 했다고 가정을 해보십시다.
"축하합니다. 얼마나 기쁘세요?"
그러면 대개는 어떻게 얼버무립니까?
"뭘요,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요."
우리는 그러한 말이 마치 겸손인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것을 겸손이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교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될 때,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감사하지 않는 것을 바로 교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7∼18절입니다.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축하합니다. 얼마나 좋으세요?"
누군가가 우리에게 이렇게 인사를 한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해야 되겠습니까?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우리는 형통할 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다윗 임금을 한번 생각을 해 봅시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랐습니다. 그는 백향목 궁에 평안히 거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형통할 때 그는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단 선지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좋은 궁에서 평안히 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낡은 천막 속에 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옳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궁전보다도 훨씬 더 좋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서 그 속에 하나님의 궤를 보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의 마음을 보신 하나님은 너무너무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 언제 너더러 성전을 지으라고 말하더냐? 내가 언제 너에게 휘장 속에 거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말하더냐?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와 같이 기특한 생각을 다 했단 말이냐?"
다윗은 형통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아름답게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그의 이름을 존귀케 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형통할 때에,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사람이 쓴 글을 인용해봅니다.

"당신은 복 받은 사람."
당신 개인 소유의 성경책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복 받은 것입니다. 세상 인구의 3분의 1이 성경을 한 권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당신이 오늘 아침에 건강하게 일어났다면 당신은 복 받은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십만 명이 아침에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전쟁의 위험이나 감옥 생활이나 고문이나 기근에 고통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복 받은 것입니다. 세상에는 거의 5억 명이 그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당신이 위협이나 체포나 고문을 당하지 않고 교회에 갈 수 있다면 당신은 복 받은 것입니다. 세상에는 30억 명의 사람들이 교회와 동떨어져 살고 있습니다.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따뜻한 옷과 살 집과 잠잘 곳이 있다면 당신은 복 받은 것입니다. 세상 인구의 75%가 그렇지 못합니다.
당신의 통장에 생활비가 있고 지갑에 용돈이 있다면 당신은 복 받은 것입니다. 당신은 세상 사람들 가운데 상위 8%에 속한 사람입니다.
만일 당신이 어제도 오늘도 기도했다면 복 받은 것입니다. 비록 소수에 속하지만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사람입니다. 거기에 죄 용서와 평안과 영생의 보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처럼 형통할 때에,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는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형통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해야 되지만, 곤고할 때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15∼16절 말씀입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곳은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그들을 해하는 불뱀과 전갈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곳은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목축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까? 그들을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였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었습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에서도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 전체를 책임지시고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주릴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이 목말라 할 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셔서 그들의 갈한 목을 축여주셨습니다. 그들이 광야에서 갈 길을 알지 못할 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 기둥을 띄우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을 띄우셔서 그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살던 40년 동안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을 돌보시고 책임져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지금까지 광야와 같은 인생 길을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에벤에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지시고 보살펴 주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해서 광야와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때로는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그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하심이었느니라."
하나님은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실 것입니다.
자동차 왕이라고 불리는 헨리 포드가 한 번은 어떤 기자와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포드의 나이가 78세로서 백발이 성성할 때였습니다. 기자는 포드의 얼굴을 보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의 얼굴이 그렇게나 온화하고 평온하게 보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자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은 큰 기업을 운영하면서 이런 저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와 같이 곱게 늙으셨습니까?"
그때 헨리 포드가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 가운데서 모든 것을 섭리해 가신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언제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왔습니다. 따라서 내 앞에 어떤 어려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그 속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왜 내가 걱정하고 염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나는 아무리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언제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가 늘 감사하면서 살아온 것이 그로 하여금 그렇게 평온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행복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때 절로 우리에게 행복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잊지 맙시다.
여기에 어떤 글을 한 가지 더 인용하겠습니다.

"하나님, 때때로 병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인간의 약함을 깨닫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외로운 것도 감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일이 계획대로 안 되도록 들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저의 교만이 깨지기 때문입니다.
돈이 떨어지고 사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 사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심정을 이해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이 공부를 기대만큼 안 하고, 아내가 미워지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짐스러워질 때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의 우상이 되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허무를 느끼게 하고, 때로는 몸이 늙고, 아프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럼으로 인하여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불의와 부정이 득세하는 세상에 태어난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제게 잘못하고 저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있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밤, 잠 못 이루고 뒤척이게 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래서 병들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것을 더욱 감사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곤고할 때도 얼마든지 그 속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가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을 다시 한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으십시다. 기도할 때도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찬양할 때도 감사함으로 찬양하고, 헌금을 드릴 때도 감사함으로 드리십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도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십시다. 우리는 형통할 때도 감사하지만, 곤고할 때도 변함 없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뜻깊은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향기를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기를 바랍니다.

                            2004년 11월 21일 주일 낮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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