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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주일] 전천후 감사 (살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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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홍문수 목사 (신반포교회)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금년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인 것 같습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아마 이런 저런 일들로 많이 힘드셨을 겁니다. 특별히 사업하는 분들이 많이 힘드시리라 생각됩니다. 주위에서 종종 IMF 때보다 더 힘들다는 말을 듣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계속되는 혼란으로 인해 많이 힘들었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분위기 가운데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합니다.

이렇게 어수선하고 힘들 때도 진정 감사할 수 있는가? 혹시 그런 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답은 하나! 감사할 수 있고, 또 감사하는 게 마땅합니다. 감사는 피조물로서, 성도로서 하나님 앞에 당연한 의무이며 또한 행복의 비결입니다. 한 마디로, 감사는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소유가 행복의 조건인 줄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죠. 아무리 많은 소유를 갖고 있어도 감사할 줄 모르면 불행합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떤 환경이든지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늘 행복할 수 있다.” 슈바이처는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아프리카 정글에서 살았던 사람입니다. 모든 형편에 처해본 사람입니다. 그런 분의 말인지라 큰 설득력이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초가삼간에서도 행복한 사람이 있고, 고대광실에서도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인간은 본성 상 감사하기가 참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인간성이 점점 악해져가는 말세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딤후3:1~2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

오늘날 현대인들이 불행한 이유는 무엇이 아직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사네 못 사네 해도, 있네 없네 해도 옛날에 비해 전반적으로 얼마나 풍요로워졌습니까? 의식주 모든 면에서 ... 그런데도 볼행한 이유는 오직 하나 감사하는 마음을 상실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현대인이 부지불식 간에 상실한 최고의 자산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경제 불황을 탈출하는 게 아니라 영적 불황인 감사불감증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오늘 감사절을 맞이하여 혹시라도 우리에게 감사의 마음, 감사의 신앙이 상실되었다면 다시 한번 회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신앙으로 늘 행복한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진정한 감사 : 전천후 감사

먼저, 진정한 감사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봅니다. 그것은 어떤 형편에서도, 어떤 조건에서도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전천후 감사’라고 부릅니다. 지난 번 다윗의 생애 설교할 때도 전천후 감사에 관해 소개해 드린 바 있지만, 다윗뿐 아니라 모든 성경 인물의 신앙이 바로 전천후 감사의 신앙입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어떤 기상 조건도 감당하는 것을 가리켜 ‘전천후’라고 하듯이, 어떤 처지와 형편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게 ‘전천후 감사’의 신앙(All-Weather Thanksgiving Faith)입니다.

날씨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전천후가 아닙니다. 형통할 때는 감사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금세 감사하는 대신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 살전5:18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라는 말은 ‘어떤 환경 조건에서도’ 그런 뜻입니다.

[2] 전천후 감사의 축복 : 행복의 열쇠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전천후 감사가 행복의 열쇠라는 사실을! 왜 그런가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에 환경과 조건으로 만족하려고 하면 언젠가는 실망하고 불만불평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환경 조건이 행복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행복해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전천후 감사만 있으면 늘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전천후 감사, 그것은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인 줄로 믿습니다.

[3] 전천후 감사의 방법 : 범사를 신앙으로 해석하기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전천후 감사를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경우에 모든 것을 신앙으로 해석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환경 조건 때문이 아닙니다. 환경 조건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런 뜻에서 정신의학자 칼 매닝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태도(attitude)는 사실(fact)보다 중요하다.” 어떤 사실보다도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하느냐(=태도)가 중요하다는 겁니다. 흔히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는 말과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환경 조건이라도 해석을 잘하면 감사할 수 있고, 해석을 잘못 하면 불만 불평 원망을 하게 됩니다.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죠. 어느 노인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한 아들은 우산 장수, 다른 아들은 짚신 장수였습니다. 이 노인은 매일 걱정 근심으로 울상입니다. 비오는 날이면 짚신 장수 아들 걱정, 해가 쨍쨍 쪼이는 날이면 우산 장수 아들 걱정을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이 충고합니다. 생각을 바꿔보라고. 비가 오는 날은 우산 장수 아들이 장사 잘 될 것 생각하고, 해가 뜨는 날은 짚신 장수 아들 장사 잘 될 것 생각하면 좋지 않느냐고 말했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더니 날마다 행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혹은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해석이 달라지니까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해지는 겁니다.

‘황금의 입’이란 별명을 가진 크리소스톰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 로마 당국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습니다. 그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감옥에도 복음을 들을 자가 있어 저를 이곳에 보내셨군요. 감사합니다.” 얼마 후 사형이 선고됐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 같이 천한 죄인이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가다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형 집행 직전에 황제가 변심하여 사형을 취소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직도 이 종에 이 땅에서 할 일이 남아 있군요. 감사합니다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런 경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줏대도 없는 사람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주어지는 상황과 현실을 신앙으로 해석하는 사람입니다. 그럴 때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감사하지 못합니다. 형통하면 교만해지기 쉽고, 고난이 오면 원망하기 쉽습니다. 아굴의 기도가 바로 그것 아닙니까? 부요할 때도 가난할 때도 늘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을 위한 기도입니다. 잠30:8~9 “ ...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없는 것은 신앙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신앙은 현실 상황의 해석 능력입니다. 신앙이 좋으면, 성숙하면 환경과 조건에 따라 올바른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비로소 감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신앙의 능력이 갖춰지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습니다.

① 형통의 때 :

사람이 모든 일이 잘 되면 자칫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대신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멀리 하기 쉽습니다. 성경도 곳곳에서 이를 경계합니다. 신8:12~14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 ” 그러므로 형통할수록 더욱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됩니다. 그게 곧 성숙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형통할 때 교만해지는 사람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심지어 그런 사람을 가리켜 뭐라고 표현합니까?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그리고 형통할 때 교만하면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② 고난의 때 :

사람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낙심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계속 문제되었던 게 바로 이겁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 중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하고,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원망은 곧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지 않는 불신앙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원망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민11:1 “백성이 여호와의 들으시기에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로 그들 중에 붙어서 진 끝을 사르게 하시매 ... ” 민14:27, 29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 ”

우리가 혹시 고난을 당할 때면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며 인내하고 감사하는 게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신다면 지금 처한 고난에는 뭔가 뜻이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겁니다. 그 뜻을 헤아리며 인내하고 감사하는 게 성도의 도리라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5: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시각 장애인으로 작가 겸 설교가였던 스코틀랜드의 죠지 마티슨이 이런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는 주님께 내 인생에 장미꽃을 주신 것 때문에는 천 번도 넘게 감사를 드렸어도 나의 ‘가시’ 때문에 감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님, 나의 십자가를 지는 영광을 가르쳐 주옵소서. 나의 ‘가시’의 필요함을 알게 하옵소서. 내게 고통의 길이 있음으로 하나님 앞으로 기어서 올 수 있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내게 눈물이 있었으므로 나의 무지개가 생겼음을 알게 하옵소서.”

③ 일상의 때 :

형통의 때, 고난의 때 감사하는 게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게 평소에, 일상 중에 감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 사이의 대화입니다. 아들이 밖에서 헐레벌떡거리며 들어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께 말합니다. “아버지, 저 오늘 정말 감사해요. 교통 사고가 났어요. 자동차가 일곱 번 굴렀는데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가 말합니다. “아, 그래? 감사하구나. 나는 너보다 더 감사하다.” 아들이 그 말을 듣고 의아해 하며 말합니다. “아니, 아버지도 교통 사고 났어요? 혹시 자동차가 여덟 번 구른 것 아니예요?” 아버지가 웃으며 대답합니다. “무슨, 나는 교통 사고도 안 났고, 자동차가 한 번도 구르지 않았단다.”

우리가 잊고 살지만 평소에 평탄하게 살아가는 게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니까 평안히 살아가는 겁니다. 내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특히 건강할 때 감사하지 못하는데, 건강을 잃어보면 평소 건강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중병으로 산소호흡기를 오래 끼고 있던 분이 호흡기를 떼던 날 하신 고백입니다. “이제 살 것 같습니다. 이거 떼고 혼자 숨쉬는 것만도 어딘데요?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체에 피가 돌고, 호흡을 하고, ... 이 모든 게 내가 신경 써서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복잡하고 힘듭니까? 아예 불가능하죠.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도우셔서 순간 순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나 같은 죄인 십자가 은혜로 구원해 주셔서 자녀 삼으시고 천국 소망 주신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 당할 뻔 한 것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4] 전천후 감사의 축복 : 갈수록 풍성한 은혜

우리가 전천후로 감사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복을 내려주십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우리가 사실은 인간 관계에서도 그런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됩니다. 대학생 몇 명이 어느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장님이 부르더니 다음 날부터 나오지 않아도 된다며 봉투를 나눠주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좀더 일하고 싶었는데 그만 나오라니까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서 인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사장실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학생은 사장님에게 코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그동안 많은 것 배웠습니다. 사회 경험을 한 것도 감사한데 이렇게 봉투까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학생들이 다 나가자 사장님이 비서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인사성 밝은 학생 있지? 그 학생에게 연락해서 내일부터 다시 나오라고 해. 그리고 졸업 후 본인이 원하면 정식 직원으로 채용하도록 해.” 감사하는 사람은 이렇게 인정받고 은혜를 입게 됩니다.

사람 사이에도 이럴진대, 하물며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기쁘시게 해드리면 얼마나 좋은 일이 많이 생기겠습니까? 살전5:18(하) 보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은 감사는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바요,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꽃입니다. 마치 꽃 한 송이 들고 그 향기를 맡으며 좋아하는 사람처럼 하나님이 우리가 올리는 감사의 꽃 향기를 흠향하시며 기뻐하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 은혜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6장 보면 오병이어의 기적이 나오죠.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예수님이 축사 즉 감사 기도를 드린 후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천명이 넘는 사람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이 생겼습니다. 감사가 있는 현장에 하나님이 기적으로 역사하신 겁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67세 되던 해에 큰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실험실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기자재와 실험 자료들이 다 타버렸습니다. 일생 동안 가꾸어 온 것이 잿더미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련의 때에 에디슨은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모든 실수들을 다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로부터 3주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지금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불행하다고 느끼십니까?
만일 불행하다고 느끼신다면 그것은 무엇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환경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그 원인은 감사의 신앙을 상실해서 그런 겁니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지내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전천후 감사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전천후로 행복한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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