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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 (렘 33:14~16, 눅 21: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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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석공 목사 (2004.11.28)
 
  예레미야 33장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담고 있는 말씀으로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기 전 유다 왕의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까? 갈대아인들이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함락시킬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도 포로로 잡혀 가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결국 왕의 미움을 사서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다윗 왕조가 그렇게 끝이 나고 예루살렘 성전도 불에 타 사라지게 되는 참으로 비극적인 사건을 앞에 두고 옥에 갇힌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그에게 들려왔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옥에 갇혀 있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오직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도밖에 할 수 없는 그에게 바로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것 같으면 부르짖는 그의 기도에 응답하여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크고 은밀한 일을 그에게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크고 은밀한 일의 내용들이 예레미야 33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체로 가득 찼던 성읍을 다시금 번성하게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적이 끊겼던 성읍을 다시금 활력이 넘치는 성읍으로 만드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이 황폐했던 곳을 목자들과 양무리들로 가득 채워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선한 말이란 예레미야 29장 10절 말씀으로 이미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러 해 전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들어 있는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그 선한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히고 있습니다. 봉독한 구약의 말씀 가운데 15절, 16절 말씀입니다.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때가 되면 의로운 통치자가 나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공의를 실천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유다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소개하는 이상적인 지도자는 공의로 다스리는 통치자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솔로몬을 찾아 온 스바의 여왕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열왕기상 10장 9절 말씀입니다. “...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또 솔로몬이 뭐라고 했습니까? 시편 72편 1절, 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판단력을 왕에게 주시고 주의 공의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그가 주의 백성을 공의로 재판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정의로 재판하리니...” 선지자 이사야도 같은 말로 메시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9장 7절 말씀입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의 통치를 이렇게 묘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22장 15절, 16절 말씀입니다. “...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쉽게 말해서 왕은 공의를 실천해야 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돕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렇게 공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만사 형통할 것입니다. 요시야 왕의 경우가 아주 좋은 예가 아니겠습니까? 시편 72편 4절 말씀을 통해서 솔로몬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바르게 믿을 것 같으면 공의를 실천하는 삶, 즉 가난한 자를 실제로 돕는 삶을 살아야 마땅합니다.

  당시 예레미야는 옥에 갇혀 있는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옥 안에서 나라가 망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기도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가 부르짖어 간구할 것 같으면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일, 즉 망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을 이루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십니다. 예레미야 33장 6절, 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은 결코 심판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소망을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의 배신으로 인해서 그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그토록 비참한 상태에 그대로 내버려 두실 수는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로 그런 하나님의 생각을 파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한 자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아니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는 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상적인 통치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조건은 오직 공의로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의를 실천하는 것은 특히 약자를 우선적으로 돕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시야 왕도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의 송사를 잘 들어 주었기 때문에 모든 일이 형통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대부분의 왕들이 공의로 다스리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은 이상적인 통치자로 이 세상에 오셨고 장차 공의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그 주님을 우리가 사모하며 기다리는 절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그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의 생존 자체가 위협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할 것 같으면 약자들의 신음 소리가 더 크게 들릴 것이며 그들의 탄식 소리에 더 많은 관심을 쏟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일이 결과적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는 일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장차 그 주님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함께 의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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