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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주의 것입니다 (롬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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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8장 14절 말씀)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건강하게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몸이 불편하십니까?  행복하십니까?  금년에 새로운 유행어가 있습니다. 웰빙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었습니다. 웰빙은 잘 산다는 말입니다. 행복한 삶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하면 잘 삽니까?  그것은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돈을 많이 모으면 행복합니까? 공부를 많이 하면 행복합니까?  높은 자리에 오르면 행복합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는 목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라 합니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내 것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예전에 이런 웃지 못 할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느냐 먹기 위해 사느냐 하는 그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왜 삽니까? 웨스터민스터 소 요리 문답 제 일문에는 사람이 사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답은 “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 이라 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길은 각각입니다.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삽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모르고 사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보니 우리가 사는 것이 다 자기를 위한 것이지요. 정말 우리가 착각을 해도 너무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사도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 한 바 있습니다. 우리 너무 속이 상할 때 있으시지요. 때로는 죽고 싶을 때도 있으셨지요. 불안과 초조에 떨 때도 있으셨을 것입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기가 막힌 일들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긴긴 밤 잠 못 이루고 괴로워 한 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다 우리가 잘 감당 하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하루하루가 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말 우리는 절망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많습니다.

이렇게 숨 막히는 나날들이 우리의 힘으로는 절대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면 잘 사는 것입니까? 그것은 이미 예전부터 인생의 큰 숙제였습니다. 일등 인생은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하신 것입니다 . 우리 한 장 밖에 이제 한 장밖에 안 남은 12월 달력을 봅니다. 긴 한숨을 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왜 이렇게 세월은 빨리 지나가는지 이렇게 나이를 먹고 하루하루가  아쉬울 뿐입니다. 사람은 분명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물질도 그렇습니다. 지식도 그렇습니다. 시간도 그렇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괜히 자기 것이라 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다윗도 다 하나님의 것이라 했습니다. 정말 멋쟁이들 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살면서 이런 인격을 배워야 합니다. 말이야 쉽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금년 일년을 보내면서 우리는 한번 뒤 돌아 봅시다. 과연 나는 그리스도인 다운 생각과 말을 그리고 행동을 하고 살았는지...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지를 말입니다. 그러시다면 우리는 성공적인 삶을 산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인데 내 것이라고 우기고 사신 적은 없습니까?  바울은 정말 많이 가진 부자였습니다.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다 버린 사람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 야구선수들 연봉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 몸값이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심정수 선수라는 사람은 4년간 연봉이 60억, 정수근 선수는 40억6000만원이랍니다. 그렇다면 이 모든 돈은 다 이런 재능을 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정말 하나님과 관계가 남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천지를 다 준다 해도 하나님과는 바꾸지 않는다는 신앙입니다. 이런 철두철미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도 오늘 ‘다 주의 것입니다‘ 하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받고자 합니다.

                  I.우리가 어디서 왔습니까?

인생은 어디서 왔습니까. 또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여기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방황합니다.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이 몇 천 년 만년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근본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 뿌리가 중요합니다. 저는 사람이 양반이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 케케묵은 옛 날 이야기를 하느냐고 말씀하실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 우리의 것이라는 망상 때문에 일들이 잘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할 때에 자꾸 인간의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 잘 아십니다. 사람의 생각인지 하나님의 뜻인지를 잘 아십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위를 바라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죽습니다. 그런데 나는 죽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 못된 생각입니다. 앞으로 인간의 평균 수명이 12년이 연장 될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다 죽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너무 까다롭게 살 것 없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그런데 인심이 변하면 안 됩니다. 믿음이 변하면 안 됩니다. 옛 날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사람이 마음이 변하면 죽을 때가 가까운 사람이라 합디다. 그건 모르지만 우리는 다 죽음을 약속 받은 사람입니다. 죽음은 순서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많은 순서대로 가는 것 아닙니다. 어른 보다 어린 아이가 먼저 가는 것도 많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사랑으로 삽니다. 늘 하나님에게 빚을 지고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우리의 날이 얼마 남았는지 아십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 주셔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절 대 안 됩니다. 누구나 다 잘 살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다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누구나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지금 다 서울대학에 가고 싶습니다. 누구나 다 의사가 되고 싶지요. 누구나 다 판검사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다 바라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인이 떨어져야 합니다.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다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갑니다. 어느 누구도 이 길은 피할 힘이 없습니다. 물론 현대 의학이 발달 되었습니다. 평균 수명을 엄청나게 연장 시켰습니다. 그러나 죽을 사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저는 어떤 젊은 의사의 말을 들었습니다. 자기는 최선을 다 했답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치료를 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의 수고를 비웃듯이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더 이상 의사를 못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좀 더 치료를 잘 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죄책감에 고민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양심적인 의사입니다. 자기 부주의로 사람을 죽여 놓고도 큰 소리 치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가야 합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살면서 늘 감사합시다. 늘 즐겁게 삽시다. 늘 사랑하며 삽시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할 길입니다. 그러니 미워하지 맙시다. 불평하지 맙시다. 사랑하며 삽시다.  그것이 정말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 오래 마르고 닳도록 살 것 같지요. 아닙니다. 언젠가는 갑니다. 언젠가는 우리 다 죽게 됩니다. 아주 멀리 갑니다. 아주 좋은 행복한 곳으로  갑니다. 밀고 당기고 하지 마세요.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지 맙시다. 늘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하루하루 가고 있습니다. 우리 멋있게 삽시다. 우리 늘 하나님을 향해 살아갑시다.

                  II.우리의 것이 다 주의 것입니다

이 말씀에 쉽게 동의 하십니까? 그러시다면 정말 우리는 멋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늘 이 세상의 것을 다 내 것이라 하는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아파트 100평에 살면 다 행복하실까요? 박사면 다 행복하실까요? 얼마 전 부자는 돈 20억 이상을 가진 사람을 부자라 합디다. 그런데 부자는 다 행복합니까? 높은 사회적 지위에 있으면 행복할까요? 무론 그런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는 시장님이 그렇게 행복하지만 않을 것 같았습니다. 요즈음은 덜 합니다. 정말 고성능 마이크로 노래하고 호소하는 데모대 때문에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사도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다 주이 것이로다. 과연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삽니까.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습니까? 그런 정신으로 살면 일등 그리스도인입니다. 바울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는 그의 목숨을 다 주를 위해 바친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주님이 최우선입니다. 자나 깨나 다 주의 것입니다. 교만은 다 내 것이라는 데서 비롯됩니다. 바울은 이런데서 다 초월한 사람입니다.

그는 최고를 사도로 보았습니다. 저는 말석이나마 약 40년 가까이 신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늘 그런 말을 했습니다. 절대로 기 죽지 말아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무시를 당하고 이 세상에서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해도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보면 살지 못합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께 다 바쳐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목숨입니다. 언제 우리가 부르심을 받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저는 일전에 저를 위해 하루에 두 번 이상을 기도 해 주시는 권사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너무 감사 했습니다. 물론 우리 교회 교인들 중에 그 보다 더 하시는 분들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길손입니다. 나그네 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는 우리를 역려과객이라 했습니다. 여행하면서 잠깐 머물러 가는 길손이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잘 살아가는 그런 멋진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합니다. 하루하루가 신나야 합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마세요. 부모 , 자식, 부부, 친구 , 이웃, 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남의 것 가지고 인심내는 것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베풂입니다. 나눔입니다. 사랑은 꼭 만나와 같습니다. 곧 썩어 버립니다. 그러니 싱싱할 때 나누는 것입니다. 움켜쥐고 있다고 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은 나눔에 있습니다. 이것이 다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주신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은 다 내 것이라 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미 죽음의 선을 수 없이 넘나들었습니다. 이젠 아무것도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정말 담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강한 전도자였습니다. 이미 그는 자기 목숨을 다 내어놓은 사도였습니다.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한 사람입니다. 그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사도입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말합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다 주의 것이라 합니다. 정말 멋진 말씀입니다. 정말 이런 신사가 어디 있습니까? 

사선을 넘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내 목숨도 내 것이라 하시면 안 됩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합니다. 이젠 우리의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길손입니다. 우리는 나그네 입니다.  우리는 상한 갈대입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승리하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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